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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214화 (214/529)

<-- 214 회: 9권 - 5장.  패퇴 -->

***

왕실에서 벌어지는 클레비우스 백작과 듀론 후작의 대립 상황은 그대로 란즈헬 백작에게 전해졌다.

"각 부서의 상서들이 다시 클레비우스 백작에게 호응하고 나섰습니다. 이번 내전 결과에서 유목민족 독립 세력이 승리하면, 듀론 후작은 실각하고 클레비우스 백작이 국정을 주도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되면 카록 리간드 또한 한동안은 힘을 발휘하지 못할 테지요."

에반의 보고에 란즈헬 백작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침상에 누운 채 죽음을 기다리는 볼프강 란즈헬 백작이었지만, 그의 지성은 여전히 잘 벼려진 칼처럼 날카로웠다.

그가 물었다.

“카록 리간드의 동태는 어떠냐.”

"여전히 오리엔 왕궁에 머무르고 있다고 합니다. 관세 협정 채결 후 오리엔 왕실과 곡물 판매 건에 관한 상거래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이런 시기에도 상인으로서의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군."

그렇게 말하면서 실소한 란즈헬 백작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다시 말했다.

"그렇군. 칙령은 카록 리간드의 머리에서 나왔다."

"옛?"

에반은 흠칫했다.

칙령.

에릭 국왕은 그들 육제후에게 혼트 제국에 대한 군사행동을 금하는 칙령을 내렸다. 때문에 란즈헬 백작은 무방비상태가 된 카슈텔 성을 공략할 계획을 단념해야 했다.

에반이 알기로 그 칙령을 주장한 사람은 듀론 후작이었다. 그것과 얽혀서 듀론 후작과 클레비우스 백작이 서로의 자리를 걸고 도박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게 실은 듀론 후작이 아니라 카록의 생각이었다니?

란즈헬 백작이 말했다.

"이런 정치적인 국면에도 불구하고 카록 리간드는 여전히 오리엔 왕국에 체류하고 있다. 오리엔 왕실과의 동맹 문제에 올인하겠다는 뜻인데, 혼트 제국 내전의 결과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럼 우리가 카슈텔 성을 공략할 것이라는 걸 예측한 것도 카록 리간드 자작이겠군요."

"그렇겠지. 듀론 후작은 일이 잘못되면 대신 책임을 떠안으려는 것뿐이다."

듀론 후작은 안정성을 중시하는 인물이지, 칙령 선포 같은 과감한 결정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볼프강 란즈헬 백작이 보기에 그런 생각을 할 사람은 현 레던 왕실에는 카록 리간드밖에 없었다.

"큭큭큭, 쿨럭! 쿨럭!"

란즈헬 백작은 냉소하다가 기침을 했다. 에반은 놀라서 손수건으로 그의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다.

란즈헬 백작은 떨리는 손으로 테이블에 있는 힐링 포션을 가리켰다. 에반은 즉시 힐링 포션을 그의 입에 흘려 넣어주었다. 그제야 란즈헬 백작의 안색이 조금은 호전되었다. 그럼에도 그의 목숨이 풍전등화임은 변함이 없었지만 말이다.

"이번 일의 책임을 듀론 후작이 떠안고 실각하면, 카록 리간드는 왕실 정계에 살아남을 수 있다."

"바스크 쿤트 자작의 존재가 있기 때문이지요."

쿤트 자작 바스크가 레던 왕국의 두 번째 오러 마스터가 된 일은 일대 사건이었다.

그 뮤트 공작과 동급의 무인이 탄생한 것이니 말 다한 셈이었다.

카록은 바로 그 쿤트 자작의 셋째 아들이었다. 당연히 카록의 입지도 덩달아 튼튼해졌다.

게다가 카록 리간드가 그동안 세운 공로가 어디 한둘이던가? 한 번의 실패로 무너질 인물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란즈헬 백작의 눈빛에는 즐거움이 어려 있었다.

“재미있군.”

카르스 황제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카록 리간드도 그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새 시대를 여는 두 젊은이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어찌 흥미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이길지, 그 두 젊은이가 이길지의 승부로군. 내 인생의 마무리로는 더없이 좋다."

평생을 싸워온 란즈헬 백작이었다. 마땅히 인생의 결말도 싸움이어야 한다.

"린델 백작은 어떠냐."

란즈헬 백작은 화제를 돌렸다.

"카슈텔 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칙명 따윈 무시하자고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백작 각하를 직접 만나겠다고 하는 것을 간신히 말렸습니다."

"그런가."

육제후의 일인인 린델 백작은 유난히 성정이 과격한 작자였다.

게다가 혼트 제국에게 빼앗긴 카슈텔 성은 린델 백작가의 소유였다. 당연히 린델 백작은 이번 기회에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내가 죽으면 린델 백작은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될 것이다."

에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백작 각하 외에는 없으니까요."

"뭐, 그건 아무래도 좋다."

죽은 뒤의 일이야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란즈헬 백작이었다.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걱정하는 건 덧없는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혼트 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의 결과다.

여기에 대륙의 미래가 걸렸다.

그리고 자신의 최후의 작품이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가 걸려 있다.

이에 비하면 카슈텔 성은 아주 사소한 것에 불과했다.

***

보름 후.

카르스 황제가 직접 군대를 끌고 전장에 나섰다가 패하고 후퇴하였다는 소식이 전 대륙을 강타했다.

6장. 승리의 행방

6군단이 패하고 돌아오자 카르스 황제는 다음 작전을 개진했다. 모두가 반대할 만한 작전이었다.

"1군단, 2군단, 4군단은 각기 다른 경로로 진군한다. 6군단과 11군단은 짐과 함께 움직인다. 네 갈래의 방향에서 반란군을 압박하여서 그들의 빠른 기동력을 제한시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부사령관 카이슨 백작은 기가 막혀서 반박했다.

"폐하! 외람되오나, 그 작전은 오히려 아군을 각개격파당할 위기에 빠뜨릴 것입니다! 유목민족의 기동력은 겨우 네 방향에서의 포위로 제한시킬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폐하께서 직접 출전하시겠다니, 더더욱 아니됩니다!"

"안다."

"옛?"

"나는 전장에 나아가서 패배할 것이다."

카이슨 백작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카르스 황제는 분명히 세 번을 지고 한 번을 이기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황제 본인이 직접 전장에 나갔다가 패하는 건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다. 자칫 목숨이라도 잃는다면, 그야말로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읽었는지 카르스 황제는 계속 말했다.

"다행히 짐에게는 할슈타인 백작이 있지. 할슈타인 백작의 보호를 받아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것이다. 하지만 짐이 패하여 도망쳤으니, 다른 경로로 진군하던 1군단, 2군단, 4군단 역시 후퇴할 수밖에 없을 테지. 결국 전군의 후퇴. 반란군을 승리감에 도취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하다."

그랬다.

카르스 황제는 반란군을 끌어내기 위해 이번에는 스스로를 미끼로 내건 것이었다.

카이슨 백작은 카르스 황제의 대범함에 기가 질렸다.

'세 번은 질 거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6군단의 병력의 절반. 다음은 폐하 스스로를 위험에 내몰았다. 그럼 다음 세 번째 미끼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무서워서 감히 생각하기도 싫어졌다.

정말 이렇게 전쟁을 수행해도 되는 건지 알 수 없어진 카이슨 백작이었다.

그리하여 카르스 황제의 작전이 각 군단에 하달되었다. 당연하게도 군단장들이 찾아와서 한바탕 반론을 늘어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혼트 제국군은 수많은 실전으로 다져진 정예 군단! 당연히 군단장들은 각기 실력을 인정받은 인물이 대부분이었고, 그렇기에 그 작전이 얼마나 위험천만한지도 잘 알았다.

하지만 카르스 황제는 늘 그랬듯이 무표정으로 일관, 자신의 뜻을 관철했다.

그리고 반란토벌군은 네 개의 무리로 쪼개져서 진격을 개시했다.

그중 카르스 황제가 이끄는 병력은 6군단과 11군단이 전부였다.

반란군의 입장에서는 군침이 도는 미끼임이 분명했다.

"크흐흐, 드디어 자신의 초라한 한계를 드러냈나, 이 애송이 황제 놈!"

탈라크 대왕은 광소를 터뜨렸다.

군대를 네 개로 나눠서 포위하겠다니.

우스울 지경이었다.

지금껏 혼트 황실의 통제를 피해 약탈을 일삼으며 살아온 유목민족들이었다. 겨우 그 정도 포위망에 갇혀서 꼼짝없이 당할 수준이었으면, 지금껏 오랜 세월 혼트 황실의 골칫거리로 여겨지지도 않았을 터였다.

"모두 내 생각대로 이루어졌다! 큰 코를 다친 애송이 황제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직접 전장에 나타났다!"

모든 족장을 불러놓고 탈라크 대왕이 역설했다.

"이런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는다! 황제의 모가지를 딴다! 그러면 우리의 대업이 이루어진다!"

"우오오오!"

"바람의 왕국 만세!"

"탈라크 대왕 만세!"

"혼트 황실을 처부수자!"

족장들은 환호하며 호응했다. 그들 또한 이번 기회가 카르스 황제의 목숨을 거둘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첫 전투에서의 승리로 이미 사기가 고취되어 있는 그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탈라크 대왕을 비롯한 반란군은 전원이 진격하였다.

목표는 카르스 황제의 목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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