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207화 (207/529)

<-- 207 회: 9권 - 3장. 내전 발발 -->

“필요 없다.”

“……?!”

그 한 마디에 다들 얼어붙어버렸다.

그 반응을 유심히 지켜보던 카르스 황제는 계속 말했다.

“오해를 하는군. 이깟 대수롭지 않은 싸움에 너희의 힘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대, 대수롭지 않은 싸움입니까?”

“그렇다.”

“하지만 탈라크 족장 그자는 보통 인물이 아닌…….”

늙은 족장이 계속 말하려 했지만 카르스 황제는 손을 저었다.

“너희는 나와 함께 대륙을 정복하는 그날을 위하여 힘을 아껴두어라.”

그 말에 족장들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대륙 정복.

그들이 얼마나 꿈꾸는 열망이던가. 풍족한 중앙 대륙을 손에 넣었던 그 영광의 역사를 다시 재현하기를 얼마나 기대해왔던가.

카르스 황제가 말했다.

“탈라크 족장이 무서운 인물이라고 생각했던가? 잘됐군. 그렇다면 똑똑히 봐둬라. 내가 어떻게 그를 꺾는지. 그리고 내가 베잘리우스 대공의 의지를 잇는 황제인지를 확인해두어라.”

그 목소리에는 오만함도 치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 감정 없이, 그저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 듯이 보였다.

족장들은 그런 황제에게 감탄과 열망을 느꼈다.

저 젊은 황제는 탈라크 족장과 6만의 유목민족 전사라는 막강한 적을 앞에 두고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족장들의 8만 유목민족 전사라는 지원을 거부하고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한다.

‘어쩌면 이 사람이라면!’

‘정말로 제 2의 크로센트 베잘리우스가 될 지도 모른다!’

족장들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들이 스쳤다.

그렇게 족장들이 물러간 뒤, 카이슨 백작은 걱정스런 얼굴로 카르스 황제에게 말했다.

“폐하. 어째서 저들의 지원을 물리치셨나이까?”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오나 탈라크 족장을 위시한 반란세력은 엄청난 기동력을 가진 유목민족들입니다. 저들의 도움이 없으면 다소 전쟁이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나를 의심하나?”

카르스 황제가 물었다.

돌발적인 질문에 카이슨 백작은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카르스 황제의 그 성격은 어느 정도 파악한 카이슨 백작이었다. 그는 솔직히 말했다.

“폐하의 승리를 의심하진 않사오나, 발 빠른 유목민족을 상대로 전쟁을 신속하게 종결시킬 수 있을지는 의심이 됩니다. 전쟁이 길어지면 재정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자칫 레던 왕국의 개입을 부를 수 있습니다.”

“레던 왕국이 개입하면 더욱 좋다.”

“예?”

놀란 카이슨 백작에게 카르스 황제가 말했다.

“나는 세 번을 지고 한 번을 이길 것이다. 레던 왕국은 내전에 개입하여서 아무 소득 없이 우리에게 명분만 내어주고 돌아가게 될 것이다.”

‘세 번을 지고 한 번을 이긴다고?’

카이슨 백작은 의문을 느꼈다.

그러나 그 말에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세 번은 승리를 내어줄 것이다. 카록 리간드가 있는 레던 왕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그러면서 카르스 황제는 웃었다.

카이슨 백작은 그런 황제를 경악 어린 눈초리로 보아야 했다.

그것은 진짜 웃음이었기 때문이다.

***

왕도 오리엔의 시내에 있는 용병길드에 도착했는데, 어째 풍경이 예전과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전에는 용병길드 앞에 일에 굶주린 용병들이 거지 떼처럼 우글거렸었는데, 지금은 한산했다.

용병업계에 불황이 끝났나?

그럴 리가.

전쟁이 워낙 없어서 일거리 없는 건 여전할 텐데.

아무튼 나는 길드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의뢰가 있으십니까?”

젊은 남자 직원은 여전히 깍듯하게 인사하며 반겼다. 고객을 대하는 태도를 이곳 길드장이 잘 교육시켰기 때문이다.

“응. 레던 왕국의 쿤트 영지로 심부름 보낼 용병이 필요한데.”

“중요한 심부름이신지요?”

“응. 서신을 전달하면 되는 일인데, 조금 서둘렀으면 좋겠어. 말을 탈 줄 아는 용병으로 네 명 정도?”

한 명만 고용해도 상관은 없지만, 도중에 몬스터나 산적을 만나면 큰일이기 때문에 일부러 네 명을 고용한 것이다.

“말을 소유한 용병은 없기 때문에 말 네 마리의 대여비를 따로 지불하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응. 돈은 문제없어.”

“알겠습니다. 조건에 해당되는 용병을 소집할 때까지 기다리셔야합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응.”

직원은 다른 부하 직원을 시켜서 용병들을 데려오게 했다.

나는 기다리는 동안 직원에게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원래 요 앞에 용병들이 항상 진을 치고 있지 않았어?”

“아, 예, 그랬었죠.”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한산해? 조용해서 좋긴 하지만.”

“그게…… 길드장님께서 모두 쫓아내셨습니다. 통행에 불편하다고요.”

“엥?”

아무리 그래도 용병 길드가 용병을 쫓아내다니? 용병 길드란 결국 용병들의 조직이다. 용병들의 숫자가 곧 길드의 힘이 된다.

이상하네.

이곳 용병길드의 길드장은 꽤 사업 감각이 있는 인물 아니었던가?

내 기억에 이곳 길드장은 오러 엑스퍼트 중급의 실력을 가졌으며, 용병 경력 30년 출신의 인물로, 사업 감각도 좋아서 여러 가지 방책으로 용병업계의 불황에 대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 길드장 이름이 무슨 페리였던가?”

“아, 닐 페리 전 길드장님 말씀이시군요.”

“전 길드장?”

“예. 반년 전에 그만두시고 새로운 분이 길드장이 되셨습니다.”

“그만뒀어? 그 사람 운영을 꽤 잘하지 않았나?”

“예, 사정이 있어서요.”

그렇게 말하는 직원의 얼굴은 어두워보였다.

쯧쯧, 내부에서 파벌싸움이 있었나보군.

내가 보기에 닐 페리라고 했던 그 길드장은 꽤 길드 경영을 잘 했다.

아마도 훌륭한 경영으로 실적이 쌓이고 길드 수입이 많아지자 다른 놈들이 그 자리를 탐낸 모양이었다. 길드 자금을 빼돌려먹고 싶어 하는 무리는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길드 앞에 진을 치고 있던 용병들을 쫓아내버린 것은…….

그러나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추측이 있었다.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곳 길드장, 뇌물을 준 용병들에게만 좋은 의뢰를 몰아주고 있지?”

“헉!”

직원은 화들짝 놀란 모습이었다. 쯧쯧, 정답이구나.

그래서 용병길드 앞에 용병들이 얼씬거리지 못하게 쫓아낸 것이다. 용병들의 보는 눈이 있으면 비리를 저지르기 힘드니까 말이다.

“망조가 들었구나, 망조가. 쯧쯧.”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직원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안 봐도 뻔해. 닐 페리라던 그 길드장은 능력이 좋잖아. 능력 좋은 사람은 그만큼 질투를 많이 받거든.”

나처럼. 에헴.

좋은 인재가 주변의 질시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혀버리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닐 페리, 그 사람 참 아깝네.

뭐, 원래 오러 엑스퍼트 중급의 용병이었다고 하니 실직자로 전전긍긍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나는 혹시나 싶어 물었다.

“그 닐 페리 전 길드장은 지금 뭐해?”

“전 길드장님께서는 은퇴하시곤 집에만 계신다고 합니다. 가끔 술집에서 뵙기도 하죠.”

“얼레? 다른 일은 안 해? 그 정도 실력이면 비록 나이가 있어도 웬만한 귀족가문의 수석기사는 충분히 해먹을 텐데.”

“그런 제안은 많이 왔는데, 더 이상 피를 보는 직업은 싫다고 하시더군요.”

직원은 안타까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굉장히 열정적으로 길드를 운영하셨는데, 그만두게 되시고서는 상심이 상당히 크신 모양입니다.”

대충 감이 온다.

30년이나 용병노릇을 했으면 피는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많이 봤을 것이다. 그래서 그 아까운 실력을 놔두고 은퇴를 해버리고 용병길드의 길드장이 됐겠지.

그러다가 용병 길드를 경영하는 일에 색다른 흥미를 느끼고는, 열정을 다해 길드를 운영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 길드장 자리에서 쫓겨나버렸으니 의욕을 잃은 것은 당연했다.

“어느 술집이야? 그 양반이 자주 가는 술집이.”

나는 닐 페리에게 흥미를 느껴서 물어보았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쭉 가보시면 ‘잭 하퍼의 선술집’이라는 작은 가게가 있을 겁니다.”

“흐응, 그래?”

의뢰만 해놓고 가봐야겠다.

가뜩이나 줄리아가 인력난을 호소하던 참이었는데 잘됐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