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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206화 (206/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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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내전 발발

다음날, 오리엔 왕궁의 어전 회의에 레던 왕실과의 동맹 안건이 논의되었다는 소식을 접해들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 나는 오리엔 국왕에게 불려갔다.

오리엔 국왕의 결정은 이러했다.

“동맹은 아직 조금 더 고민을 해봐야 할 문제인 듯하다. 허나, 레던 왕국과의 관세 협정이라면 받아들이겠다. 양국의 경제협력은 짐 역시 바라던 바다.”

“그렇다면 관세 협정부터 채결하고, 동맹은 보류하시겠다는 말씀이신지요?”

내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러나 동맹 문제 역시도 긍정적으로 생각은 하고 있으며, 빠른 시일 안에 대답을 해주겠다.”

“빠른 시일이라면, 혼트 제국의 내전이 발발한 후를 말씀하시는 것이겠지요?”

내 은근한 물음에 오리엔 국왕은 피식 웃었다.

“알면서 묻는군.”

나 역시 웃었다.

“알겠습니다. 일단은 관세 협정으로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게 되었으니, 본국의 폐하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동맹은 성사하지 못했지만, 상황은 긍정적이었다.

경제적으로 양쪽이 모두 윈-윈 하는 사이처럼 긴밀한 국제관계는 없다. 경제적으로 서로 돕는 관계에 있으면, 자연히 안보 측면에서도 협력 관계를 가지게 된다. 관세 협정과 공상 제도는 레던 왕실이 존재해야 오리엔 왕실에게도 이득이 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자세한 협의는 리카도 백작과 하도록 하라. 그에게 관세 협정에 대한 문제를 일임하였다.”

리카도 백작이라면, 얼마 전에 나를 데릴사위로 데려가려다가 나에게 속았던 그 사신 말이군.

“알겠습니다. 폐하의 용단에 찬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용단? 흥,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는군. 짐의 일생 최대의 의사결정 실패는 자네를 데릴사위로 데려오지 못한 것이다. 생각할수록 아까워죽겠군.”

그 말에 나는 실실 웃었다.

물론 아까우시겠지.

나는 최상급의 경지를 바라보는(뻥이지만) 정령사이고, 또한 오러 마스터의 아들이기도 하니까!

아버지가 오러 마스터가 되었다는 소식 또한 오늘 접한 사실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신이 나서 춤을 추었다.

아버지가 드디어 경지에 올랐다!

뮤트 공작이나 브리튼 공작, 그리고 할슈타인 백작 같은 쟁쟁한 강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실력자가 된 것이다.

오러 마스터는 전투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파괴적인 강함을 제외하더라도, 기사로서 무의 최고봉에 올랐다는 증명했으므로 그것만으로도 존경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러한 경지에 아버지가 오르다니, 쿤트 가문에도 마침내 오러 마스터가 탄생했구나.

전생을 살아본 나는 아버지의 성공에 감개무량했다. 이는 우리 가문의 위상이 단숨에 육제후도 무시할 수 없는 위치로 격상된 것을 의미한다.

이제 릭 형님과 전생의 용병왕인 패트릭 콘돌만 마스터가 되는 일만 남았군. 이 두 사람만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다면, 나는 더 이상 혼트 제국에 대하여 아무 걱정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 후 나는 리카도 백작을 만나서 관세 협정에 대한 세부 사항을 협상했다.

오리엔 왕실의 외교부상서인 리카도 백작은 경제에 매우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 사람을 외교의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해가 갔다.

이야기가 잘 통하니 협상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다만, 서로 자국의 특산품에 대한 관세를 보다 낮추기 위해 경쟁하는 바람에 시간이 좀 걸렸다. 하지만 사흘 만에 끝낼 수 있었다.

종결하면서 리카도 백작이 말했다.

“그리고 폐하께서는 본 왕실이 보유하고 있는 곡물을 혼트 제국에 수출하는 일을 그대의 상단에 맡기고 싶어 하오.”

“물량이 어느 정도 됩니까?”

“밀 30만 포대, 보리 5만 포대요.”

그 말에 나는 휘파람을 불었다. 정말 많은 물량이었다. 내가 대흉년 때 저만한 곡물을 갖고 있었더라면 영지 몇 개는 샀을 것이다. 뭐, 곡물 시세가 똥값이 된 지금 그런 소릴 해봐야 소용없지만 말이다.

“순이익은 6대 4로 배분하겠습니다. 물론 저희 카록 상단이 6입니다.”

“5대 5로 나누는 게 공평하지 않소?”

그렇게 협상을 하려는 리카도 백작에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더 협상을 하기에는 제가 너무 지쳤군요. 이건 조금도 양보하지 않겠습니다.”

“허어, 하긴 사흘 내내 협상테이블에서 입씨름을 했으니……. 그럼 내일 다시 협의해봅시다.”

“아뇨. 10초 드리겠습니다. 결정하십시오.”

“뭐요?”

“자, 시작. 10, 9, 8, 7…….”

“자, 잠깐! 이런 법이 어디에…….”

리카도 백작은 황당하다는 듯이 따지려 들었다.

헹, 내 마음이다 왜? 내가 원래 이런 놈인 건 댁네 국왕이 더 잘 알고 있을걸. 싫으면 그냥 계속 그 곡물 떠안고 있던가.

“6, 5, 4, 3,…….”

결국 리카도 백작은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알았소, 알았소, 6대 4. 계약서나 씁시다.”

“흐흐, 좋죠.”

“지난번에 속았을 때도 느꼈지만, 리간드 자작 그대는 정말 괴짜요.”

“하하핫!”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요즘 많은 사람이 나를 괴짜라고 하지만, 전생의 내 인생을 표현할 가장 적당한 단어는 바로 ‘평범함’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90년 살고 다니 왜 굳이 그렇게 보편적인 평범함을 지키며 살려고 했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쓸데없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며 살아서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일정한 틀 안에 갇혀야 했던 것이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다. 괴짜든 철딱서니 없든 무슨 말을 들어도 이젠 상관없다.

그렇게 계약서까지 작성한 끝에 모든 협상이 끝났다.

“수고하셨소.”

“수고하셨습니다.”

우리는 악수를 했다.

협상 과정이야 어쨌든 양쪽 모두 이익을 얻었기 때문에 서로가 만족한 결과였다.

“이제 유란에게 혼트 제국으로 상행을 갈 준비를 하라고 해야겠구나.”

생각해보니 이번에 유란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했다.

오리엔 왕실의 대량의 곡물은 물론이고, 레던 왕국 최대의 곡창지대를 보유한 후디니 자작가의 곡물까지도 도맡아서 혼트 제국에 수출해야 한다.

즉, 그의 어깨에 수십만 포대의 곡물이 달려 있는 것.

게다가 곡물의 판매처는 바로 유목민족의 반란을 주도하고 있는 탈라크 족장이다.

중요할 뿐만이 아니라, 상당히 위험하기도 한 상행이었다.

물론 그 위험성을 감안해서, 이번에는 패트릭이 이끄는 콘돌 기병대 전원을 호위로 붙여줄 셈이었다.

겸사겸사, 패트릭이 이번에도 떠도는 유목민족들을 잔뜩 데리고 돌아왔으면 좋겠다. 카르스 황제가 유목민족의 힘을 손에 넣기 위해 이번 일을 벌였다면, 나 또한 거기에 스푼을 슬쩍 얹어서 유목민족 전사를 영입해 콘돌 기병대를 강화할 속셈이다.

나는 당장 유란에게 보낼 서신을 작성했다.

그런데 누구를 시켜서 서신을 전달할까?

이게 문제였군.

수행원을 한 명도 거느리지 않고 왔더니, 심부름 보낼 사람이 없었다.

하는 수 없지.

용병을 고용해서 서신을 보내야 할 듯했다.

“겸사겸사 용병들 중에 장래성이 있는 인재가 보이면 냉큼 기사로 스카우트해야지.”

나는 용병길드를 향해 유쾌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창문에서 뛰어내려 유쾌하게 하늘 위를 걷다가 왕궁의 수비대에게 또 핀잔을 들었다.

***

혼트 제국은 혼란에 휩싸이고 있었다.

바덴 강 협상에서 카슈텔 성을 점령한 카르스 황제는 ‘일부 불손한 유목민족 부족들이 보급로를 방해하여 바덴 강 유역을 정복하는데 실패했다’며 유목민족을 황실에 복속시킬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절반 이상의 부족들은 카르스 황제의 휘하로 투항하였다.

황실에 대한 반역죄를 두려워했을 뿐더러, 과거 베잘리우스 대공과 함께 대륙을 질타했다는 자부심을 가진 그들은 자신들과 같은 유목민족이 혼트 제국의 정복사업을 방해했다는 사실에 분노하였다.

하지만 강경한 부족들은 오히려 황제의 주장에 반감을 가졌다.

황실이 또 되도 않는 수작질로 자유로운 자신들을 통제하려 든다는 것이었다. 자유롭게 초원을 누비며 죽이고 빼앗는 생활습관을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부족이 바로 탈라크 족이었다.

탈라크 족장은 비밀리에 육제후의 자금적인 지원에 힘입어서 독립에 나섰다.

탈라크 족장은 과격하지만 확실하게 세력을 늘리기 시작했다. 막대한 자금으로 손에 넣은 식량을 잔뜩 베풀어서 한 편으로 만드는가 하면, 말을 안 듣는 부족은 힘으로 정복해서 복속시켰다.

그렇게 초원에 피바람이 몰아친 끝에, 탈라크 족장의 휘하로 뜻을 함께 하는 독립 세력이 도합 42개 부족으로 늘어났다. 싸울 수 있는 전사들의 숫자만도 6만을 헤아리는 대병력이었다.

그 6만이 하나같이 말을 타고 전투와 살육을 숫하게 경험한 전사들이란 점을 감안하면, 실로 무시무시한 전력이 아닐 수 없었다.

혼트 제국에 큰 사단이 날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하면서 전 대륙의 이목이 그들에게 쏠렸다.

그리고 태풍의 중심에 있는 사내, 탈라크 족장은 마침내 휘하의 41명의 족장들과 6만 전사들을 집결시켜놓고 선언했다.

“과거 우리는 위대한 크로센트 베잘리우스 대공과 함께 대륙을 질타하였다. 승리와 승리가 쌓이고 쌓여서 마침내 우리는 대륙 동부에까지 세력을 뻗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황실의 멍청한 실정으로 대륙 동부 원정에 실패하고, 속국으로 굴복시켰던 오리엔 왕국은 다시 부활하였으며, 레던 왕국까지 건국되면서 우리는 다시 이곳 척박한 대륙 서부로 쫓겨났다!”

탈라크 족장의 쩌렁쩌렁한 연설에 독립 세력의 전사들이 함성을 질러대며 함께 분노하였다.

탈라크 족장이 노하여서 소리쳤다.

“지금 우리를 봐라! 베잘리우스 대공과 함께 손에 넣은 그 비옥한 땅은 다 어디로 갔나?! 대륙을 질타한 우리들 위대한 바람의 일족은 왜 이곳에서 먹고 살기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 하나! 이 지경을 만들어놓고 황실은 이제 우리를 반역자라고 몰아세우고 있다!”

“우오오!”

“황실은 비겁하다!”

“무능한 황제를 쳐부수자!”

6만의 반란집단에게서 분노의 광기가 뿜어져 나왔다.

평소 살육과 약탈로 먹고 살던 과격한 전사들이었으니, 탈라크 족장의 선동에 쉽사리 휩쓸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우리는 더 이상 황실에 복종하지 않는다! 우리만의 자유로운 나라를 세울 것이며, 국명은 바람의 왕국이라 하겠다!”

“바람의 왕국!”

“바람의 왕국 만세!”

“우리만의 왕국을 세우자!”

탈라크 족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보여주자! 진짜 죄인에게 징벌을 가하고, 진정한 자유를 손에 넣자!”

“와아아!”

“탈라크 족장 만세!”

“바람의 왕국 만세!”

“무능한 황실에게 징벌을!”

광기의 도가니에 휩싸인 유목민족들.

탈라크 족장을 위시한 반란세력의 공식적으로 독립 국가 건설이라는 입장을 표명한 일대 사건이었다.

***

“바람의 왕국인가.”

카르스 황제는 웃음을 지었다.

딱히 비웃는 것이 아니었다.

그 웃음은 아무 감정도 들어 있지 않은 채, 억지로 웃는 인형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그 앞에 부복한 부사령관 밴 카이슨 백작이 말했다.

“명하신 대로, 반란 진압군의 편성을 마쳤습니다. 도합 15만의 제국군이 폐하의 출전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군수물자 보급도 내 지시대로 됐나?”

“예, 폐하.”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폐하. 그리고…… 64명의 족장들이 폐하께 알현을 청하고 있습니다.”

“족장들이?”

그들은 카르스 황제의 휘하로 복속한 64개 부족의 족장들을 뜻했다.

“그들은 이번 반란 진압에 참여하여서 공을 세우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거느리고 있는 유목민족 전사들만 8만여 명에 이릅니다.”

카르스 황제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만나보지. 모두 들어오라고 해라.”

“예!”

카이슨 백작은 족장들을 불러오기 위해 대전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카이슨 백작과 64명이나 되는 족장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왔다.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들어오자 대전 안이 번잡해졌지만, 그들은 카르스 황제의 차가운 위엄 앞에서 한 마디의 잡담도 하지 않았다.

황실의 예의를 모르는 유목민족의 족장들이니 너도나도 한 마디씩 할 법도 한데, 감정이 전무하다시피 한 표정 없는 황제의 기괴함에 압도된 것이었다.

카르스 황제가 말했다.

“참전을 원하나?”

그 물음에 족장들 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나이든 족장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예, 폐하. 탈라크 족장 놈은 우리들 바람의 일족의 수치입니다. 이번 기회에 그놈들을 쳐부수는데 앞장서서 저희들의 용맹함을 황제 폐하께 증명해보이겠습니다.”

다른 족장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카르스 황제는 특유의 감정 없는 눈길로 모두의 얼굴 표정을 살펴보았다.

그리곤 나직이 입을 열었다.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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