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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204화 (204/529)

<-- 204 회: 9권 - 2장. 세렌스 공주의 마음 -->

“제가 정령술을요? 정말로 가르쳐주시는 건가요?”

“정령술을 가르쳐드린다고 해봐야, 저는 그저 정령 계약을 도와드릴 뿐입니다. 정령술은 공주 저하께서 정령과 함께 배워나가야 하는 것이죠.”

“그래도 유명한 정령사이신 리간드 자작님께서 직접 정령술을…… 그런 걸 제게 함부로 가르쳐주셔도 되는 건가요?”

“원래 인간에게 정령술을 전해준 건 엘프죠. 엘프는 분명 아무 조건 없이 선의(善意)로 가르쳐주었을 겁니다. 대자연의 의지로 인도하는 귀중한 학문은 많은 사람이 배울수록 좋으니까요.”

정령술은 검술이나 마법과는 다르다.

이것은 누구의 비전도 아니며, 악인이 배울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정령친화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정령술을 가르쳐줄 용의가 있다. 아직까지 그런 사람은 두 명밖에 못 봤지만.

세렌스 공주는 잠시 멍하니 내 얼굴을 쳐다본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그러자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리간드 자작님은 정말 좋은 분 같아서요.”

“하, 하하. 별 말씀을요.”

그녀의 미소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나는 순간 넋을 놓는 바람에 말을 더듬거려야 했다. 과연 오리엔 왕국 최고의 미녀라는 세렌스 공주였다. 내 곁에 시스와 줄리아가 없었더라면 아마 나는 정말로 그녀에게 반했을지도 모르겠다.

자자. 이제 그만 진정해라, 나.

혹시나 까먹었을까봐 강조하자면, 넌 유부남이란다. 아내가 벌써 둘이라고?

마음을 진정시킨 나는 품속에서 정령석을 꺼냈다.

일전에 레던 왕성의 마법길드에서 세 개를 구입한 적 있었는데, 샐러맨더와 계약할 때 하나를 쓴 뒤에도 두 개가 남아서 지금껏 지니고 있었다. 정령석을 지니면 정령친화력이 상승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었다.

“자, 그럼 말 나온 김에 시작해볼까요?”

“지금요?”

“예. 무언가 문제라도 있으신지요?”

“아, 아니요. 그런데 여기서 가능한 건가요?”

“물론입니다. 그냥 지켜보기만 하세요.”

노움에게 시켜서 흙으로 된 사발과 막대를 만들었다. 정령석을 사발에 넣고 막대로 빻아서 가루로 만든 다음, 운디네를 시켜서 사발에 물을 부었다. 잘 휘저어주자 물과 정령석 가루가 섞여서 끈적끈적한 액체가 되었다.

이제 정령 계약 마법진을 그리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그때, 뒤쪽 2백 미터쯤 뒤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구지?

노움과 운디네의 감각에 정신을 집중해보았다.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오리엔 국왕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호수처럼 잔잔하고 또한 방대한 오러를 머금고 있는 인물이었다. 즉, 오러 마스터. 아마 브리튼 공작일 것이다.

마침 잘 됐군.

저 두 양반한테도 좋은 구경을 시켜줘야겠어.

“밤잠 못 이루시는 분들이 또 오시네요.”

“네?”

내 말을 이해 못한 그녀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으나, 이내 오리엔 국왕과 브리튼 공작이 함께 나타나자 탄성을 터뜨렸다.

“아바마마?”

“세렌스? 네가 이 시간에 여기는 웬일이냐.”

“잠이 안 와서 잠시 산책을 하다가 리간드 자작님을 만났어요.”

“우연이군. 그런데 리간드 자작, 그대는 무얼 하고 있는 것이냐?”

오리엔 국왕은 사발과 막대를 들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물었다.

“세렌스 공주 저하를 정령사로 만들어드리려 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오리엔 국왕과 브리튼 공작은 깜짝 놀랐다.

“공주 저하께 정령술에 재능이 있으셨나?”

브리튼 공작이 물었다.

“예.”

오리엔 국왕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세레스 공주를 쳐다보았다.

“허어! 하마터면 그런 아까운 재능을 그냥 모르고 지나칠 뻔했구나.”

그래서 이 세상에 정령사가 보기 드문 것이랍니다.

또한 정령친화력이 있다고 해서 다 정령 계약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었다. 전생의 나처럼 정령친화력이 부족해서 계약에 실패할지도 모른다. 내가 느끼기에 세렌스 공주의 정령친화력은 간당간당했다.

“그럼 세렌스도 그대처럼 될 수 있는 것이더냐?”

잔뜩 기대감을 품고 있는 오리엔 국왕.

아서 형님 부부랑 똑같은 소릴 하는군. 부모 마음은 다 저런가보다.

“하하, 글쎄요. 하지만 계약에 실패할 수도 있으니 너무 큰 기대를 하지는 마십시오.”

“실패할 수도 있다고?”

“예. 정령친화력이 부족하면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으음, 그럼 그대처럼 크게 대성할 정도의 재능은 아니라는 뜻이군.”

글쎄.

타고난 정령친화력의 양과 정령술로 대성할 가능성은 꼭 비례한다고 볼 수는 없었다.

날 봐라!

나의 정령술에 대한 재능은 평범한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상급 정령사가 되지 않았는가.

중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정령을 대하는 진심과 마음가짐이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정령석을 섞은 물로 땅에 마법진을 그렸다. 몇 번이고 해본 작업이라서 빠르게 끝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세렌스 공주에게 주문을 가르쳐주었다.

“제가 가르쳐드린 그대로 외셔야 합니다.”

“알겠어요.”

세렌스 공주는 다소 긴장한 얼굴로 마법진 앞에 섰다.

성공했으면 좋겠군.

실패하면 다들 왜 괜히 기대하게 했냐는 눈길로 날 노려보겠지? ‘날 실망시켰으니까 동맹 안 해!’라고 억지 부리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하하하.

마침내 세렌스 공주가 주문을 외었다.

“태초부터 존재해온 자연계의 위대한 정신이여, 나의 영혼의 부름에 응답해다오.”

파아앗!

마법진에서 빛이 쏟아져 나왔다.

눈부시게 쏟아져 나온 빛은 이내 사그라졌다. 모두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어렸다. 하지만 나는 느긋하게 계속 지켜보았다.

이윽고,

파앗!

한 줄기의 가느다란 빛이 마법진에서 튀어나왔다.

“어머!”

세렌스 공주는 놀란 얼굴로 그 빛을 쳐다보았다.

한 줄기의 빛은 이리저리 요란스럽게 왔다 갔다 했다. 자유롭게 이리저리 흘러가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저건 뭐지?

노움, 운디네, 샐러맨더와 계약해본 나도 처음 보는 현상이었다.

빛은 세렌스 공주 주위를 빙빙 돌았다. 마치 그녀를 살펴보는 듯했다.

그리고 잠시 후, 길게 늘어져 있던 빛이 하나의 둥그런 덩어리로 뭉쳐졌다.

꿈틀꿈틀.

빛 덩어리는 찰흙덩이처럼 꾸물거리며 모양이 변했다.

두 개의 다리가 만들어졌다.

작고 동그란 얼굴과 큼직한 부리가 만들어졌다.

또한 등에는 작은 날개 한 쌍이 쑥 튀어나왔다.

저게 뭐야? 닭? 오리? 꿩?

이윽고 완성된 것은 초록색의 자그마한 앵무새였다. 그것도 살짝 맛이 간 듯한 반쯤 뜬 눈을 한 괴이한 앵무새 말이다.

뭐야 저게.

정령은 정령사가 원하는 형태를 띠게 된다. 그럼 세렌스 공주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저런 이상하게 생긴 앵무새가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세렌스 공주는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탄성을 터뜨렸다.

“빅!”

-빅, 빅.

앵무새가 바보마냥 그녀의 말을 따라했다.

“빅이라뇨?”

내 물음에 세렌스 공주는 몹시도 반가운 얼굴로 설명했다.

“제가 어릴 적에 길렀던 앵무새예요! 어머나 세상에. 빅이 정령이 되어서 소환되다니!”

기뻐 어쩔 줄을 모르는 세렌스 공주.

나는 흥분한 그녀에게 조언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계약을 해달라고 부탁하세요.”

그러자 세렌스 공주는 녹색 앵무새를 꼬옥 끌어안았다.

“빅, 나와 계약을 해줄래? 응?”

-계약, 계약! 계약한다!

“꺄악! 만세!”

그녀는 앵무새를 끌어안고 마치 어린애처럼 펄쩍펄쩍 뛰었다.

그 순간 마법진이 사라지고, 앵무새와 그녀의 몸이 빛났다.

정령과 정령사의 영혼이 하나로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아마 그녀는 대자연의 의지를 잠시나마 보게 될 것이다.

“아……!”

예상대로 그녀는 영혼이 연결되는 과정에서 대자연의 의지를 아주 잠깐 엿보고는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저게 어찌 된 일이냐?”

오리엔 국왕이 내게 물었다. 나는 대자연의 의지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렇게 정령 계약이 끝났다.

눈물을 닦은 세렌스 공주는 앵무새 빅을 껴안고 얼굴을 부비며 좋아하였다.

그런데 저건 대체 무슨 정령이야?

세렌스 공주가 말했다.

“빅은 어릴 때 키웠던 앵무새예요. 공주라는 신분 때문에 어릴 때는 친구가 없어서 외로웠거든요. 말도 가르치면서 애지중지했었는데, 결국 수명을 다해 죽은 바람에 몹시 울었었어요.”

“허어, 정말로 그때 그 앵무새처럼 생겼구나.”

오리엔 국왕도 앵무새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역시.

소환된 정령은 세렌스 공주의 추억 속에 있는 앵무새의 형상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헤에, 잘됐군요. 어디 저도 한 번 만져 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나는 앵무새에게 다가갔다.

물론 하나도 귀엽지는 않았지만, 저게 무슨 정령인지는 알고 싶었다.

으음?

그런데 왠지 앵무새가 날 아니꼽다는 눈초리로 쏘아보는 기분이 느껴지는데. 뭐, 그냥 기분 탓이겠지.

“안녕?”

내가 앵무새의 머리에 손을 뻗는 그 순간이었다.

-캬악!

앵무새가 갑자기 나를 향해 부리를 쩌억 벌렸다. 그러자 한 줄기의 강한 바람이 휘이잉 불어와 내 몸을 떠밀었다.

“우왓!”

나는 벌렁 뒤로 넘어졌다.

다행히 운디네로 몸 안의 체액을 조절하고 있었기 때문에 꼴사납게 엉덩방아를 찧지 않고 균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뭐, 뭐야 이거?

앵무새는 몹시 화난 얼굴로 나에게 소리쳤다.

-바보! 결혼 실컷 해라! 바람둥이!

“……?!”

나도 세렌스 공주도, 오리엔 국왕과 브리튼 공작도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뭐래, 이 재수 없는 앵무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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