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203화 (203/529)

<-- 203 회: 9권 - 2장. 세렌스 공주의 마음 -->

2장. 세렌스 공주의 마음

세렌스 공주는 장미정원을 거닐었다. 향긋한 꽃향기가 달콤하게 파고들어 기분을 평온하게 만들었다.

세렌스 공주는 이 시간이 가장 좋았다.

번잡한 것을 싫어하는 그녀였기에 아무도 없는 밤에 고요한 정원을 걸을 때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시간만큼은 신분, 의무, 운명 등 그녀를 옭아매고 있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웠다.

‘그도 이런 기분을 알까?’

카록에게 마음을 빼앗긴 이유는 단지 정치적인 목적 때문이 아니었다.

첫 만남 때 느낀 묘한 친밀감과 동질감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왕실에 속하여 높은 지위를 얻었고 재물 또한 어마어마하게 벌었지만, 그에게는 언제든 그것들을 내팽개치고 떠날 수 있다는 여유로움이 보였다. 모든 걸 잃어도 웃을 수 있는 그런 남자로 보였다. 그래서 그가 좋았다.

그런 사람과 함께 살아가면 자신 또한 자유로울 것 같다는 생각에. 그것은 일종의 동경이었다.

지금도 저 보름달 속에 그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눈앞에 아른거린…….

“응?”

세렌스 공주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름달이 떠 있는 밤하늘에 카록이 헤엄을 치고 있었다. 타이밍 좋게 나타난 것도 기막힌데, 물도 없는 하늘에서 헤엄을 치고 있으니 더욱 기가 막혔다.

그 옆에는 노움이라고 했던 예의 그 노랗고 귀여운 정령도 함께 헤엄을 치고 있는 게 보였다.

“잘 봐라! 인어 왕자를 떠올리게 하는 이 아빠의 우아한 수영 솜씨를.”

그러면서 카록은 팔다리를 우아하게 휘저었다.

-아빠 멋져! 인어왕자야!

-멋져.

-크헤헤! 똥 싸는 개구리!

“아하하. 얘들아 고맙고, 샐러맨더 넌 좀 닥쳐.”

-나도 할래!

노움은 의욕 충천한 목소리로 소리치더니, 온몸을 공처럼 웅크린 채 뱅글뱅글 돌며 하늘을 질주했다. 카록이 박수를 쳤다.

“오오! 훌륭해!”

-헤헤, 나 훌륭해.

그렇게 놀고 있는 카록과 정령들을 세렌스 공주는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다른 귀족들이 저 모습을 보면, 저 작자는 귀족으로서의 체면도 없냐며 흉을 볼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놀고 있었다.

그래, 저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좋아하는 거다.

세렌스 공주는 쿡쿡 웃었다. 거꾸로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잠시 후, 카록이 방향을 지상 쪽으로 틀어서 세렌스 공주를 향해 곧장 헤엄쳐왔다.

***

이야, 산책이 이렇게 끝내주게 재미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정령들과 함께 신나게 하늘 위를 헤엄치며 놀았다.

정원에 누군가의 기척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만나기로 한 오리엔 국왕의 기척은 아니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여자였다. 그리고 어딘지 낯이 익은 기척이었다.

“누구지?”

-공주야, 아빠.

노움이 가르쳐주었다.

“공주? 아! 세렌스 공주구나.”

-응.

마침 세렌스 공주도 날 발견하고는 이쪽을 쳐다보았다. 발견 못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늘 위에서 이렇게 야단법석을 떨며 놀고 있는데, 아하하.

일전의 데릴사위 문제 때문에 조금 껄끄러운데…….

그래도 이왕 마주친 이상 인사를 안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를 향해 날아갔다. 물론 헤엄쳐서.

“안녕하셨나요?”

세렌스 공주가 나에게 인사했다. 그런데 그녀의 눈가에 약간 눈물이 맺혀 있는 게 운디네의 감각에 포착됐다. 설마, 울었나? 왜 울었대? 누가 울린 거야?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공주 저하.”

그런데 문제는 정령들이었다.

세렌스 공주를 빤히 보던 노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아빠. 공주 왜 울었어?

커헉!

나는 망치로 한 대 맞은 심정이 되었고, 세렌스 공주 역시 사색이 되어서 허둥지둥 변명했다.

“아, 안 울었어요!”

-울지 마.

-크헤헤! 울보 공주!

운디네와 샐러맨더가 잇달아 노움을 거들었다.

쉿! 얘들아.

그런 건 굳이 아는 채를 할 필요 없는 거란다.

내 마음을 읽고 노움과 운디네는 조용해졌지만, 이놈의 샐러맨더는 계속 내 체온에 동화된 채 ‘울보 공주! 크헤헤!’를 반복했다.

결국 세렌스 공주는 새빨개진 얼굴로 빽 소리쳤다.

“그래요! 울었어요! 당신 때문에 상심해서 울었다고요!”

“크헉!”

그 말에 나는 피를 토하는 심정이 되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직접 말하지 말란 말이야!

그냥 점잖게 인사말만 나누고 헤어지려고 했는데, 대화가 민감한 화제로 접어들고 말았다.

속 시원하게 다 털어놓은 세렌스 공주는 오히려 이제는 거리낄 게 없다는 듯이 당당해졌고, 그 앞에서 나는 움츠러들었다.

“작별한 지 한 달도 안 되어서 결혼을 해버리다니, 제가 그렇게 싫었던가요?”

“아, 아뇨. 공주 저하가 싫을 리 있겠습니까? 저, 저는 다만 오리엔 왕실에 데릴사위가 되는 게 조금…….”

“대체 저의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셨던 거예요?”

“아니, 그러니까 공주 저하가 싫은 게 아니고…….”

“아니면 제가 무슨 실수라도 한 건가요?”

“저기, 일단 제 말 좀…….”

세렌스 공주는 흥분해서 막무가내로 나를 몰아세웠다. 마치 실연을 당한 여자의 모습이었다.

그랬다.

그녀는 정령친화력의 작용으로 나에게 친밀감과 동질감을 느낀 것을 좋아하는 감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오리엔 왕실의 공주와 친해지면 좋겠지 싶어서 그 사실을 가르쳐주지 않고 그냥 놔뒀는데, 이제 보니 그녀는 그것을 이성에 대한 감정으로 착각하고 있다.

일단 좀 진정시켜야겠다.

“운디네.”

-응, 아빠.

운디네는 주먹만 한 물 덩어리를 만들어서 세레스 공주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깨끗이 닦아주었다.

“어맛!”

시원한 감촉이 얼굴을 스치자 깜짝 놀란 세렌스 공주는 그제야 흥분을 가라앉혔다.

진정이 된 모양인지 숨을 고르고는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제가 조금 흥분했네요. 죄송해요.”

“아닙니다.”

나는 그녀를 달래주기로 했다.

“공주 전하께서 제게 마음을 품으신, 아니 품었다고 생각하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당연하다고요?”

세렌스 공주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예. 공주 저하께서도 정령친화력을 가지고 계시니까요. 정령친화력을 가진 사람끼리는 말로 형용하기 힘든 친밀감을 느끼게 되지요. 그래서 첫 만남부터 저를 친근하게 느끼셨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 말에 세렌스 공주는 멍해져서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빙긋이 웃으며 계속 말했다.

“제 귀여운 조카 엘레네를 아시지요?”

‘귀여운’이란 수식어는 빼먹을 수가 없지.

“알다마다요.”

“그 아이도 강한 정령친화력을 타고났지요. 엘레네에게도 친밀감이 느껴지지는 않았었는지요? 아마 엘레네도 공주 저하를 무척 좋아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세렌스 공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생각에 빠졌다. 무언가 생각나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그녀가 믿기 힘들다는 듯이 물었다.

“거짓말 하는 게 아닌가요?”

“설마요. 증명해드릴까요?”

“증명이요?”

나는 눈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정령술을 배우고 싶지 않나요?”

그녀가 가진 정령친화력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운이 좋으면 간신히 계약을 해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그녀에게 정령을 하나 안겨준다면 양국의 관계도 훨씬 좋아지지 않겠는가. 오리엔 국왕이 끔찍이 아끼는 금지옥엽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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