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197화 (197/529)

<-- 197 회: 8권 - 12장. 증명 -->

뮤트 공작령의 뮤트 성.

일명 템플 오브 나이트(Temple of knight).

레던 왕국은 물론 대륙 전체에 그 명성이 알려진 뮤트 공작과 백여 명의 제자가 모인 기사들의 성지.

그 명성을 흠모하여 수많은 기사가 이곳을 방문하여서 무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을 굳게 다짐한다고 한다. 템플 오브 나이트라는 말은 그래서 생겨난 별칭이었다.

그러한 이곳에 한 사내가 말을 타고 나타났다.

굳건한 성문과 까마득하게 높은 성벽이 사내를 맞이하고 있었다.

사내는 감탄했다.

“과연 크라일 뮤트 공작 전하의 성채다. 백만 대군이 공격해도 끄떡도 하지 않을 것 같구나. 우리 가문도 쿤트 성을 이렇게 축조하면 좋겠군.”

쿤트 자작가의 가주 바스크는 성을 둘러보며 연신 감탄했다.

뮤트 성의 장엄한 성벽은 그 자체로도 혼트 제국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노라는 뮤트 공작의 정신을 대변하는 듯했다. 한 남자로서, 일국의 기사로서 이런 성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아서에게 말해서 쿤트 성을 이렇게 개조하자고 해야겠다. 분위기를 보니 요즘 우리 가문이 돈도 많은 것 같던데.”

정령사인 카록의 재주를 요긴하게 이용하면 튼튼한 성벽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바스크는 생각했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며 성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는데, 잠시 후 말을 탄 무리들이 그를 향해 달려왔다. 갑주와 마갑을 제대로 갖춘 중장비로 보아 뮤트 공작가의 정규 기병대로 보였다.

기병대를 재빨리 바스크를 포위했다.

‘호오, 훈련이 참 잘 되어 있군. 역시 뮤트 공작가!’

바스크는 긴장은커녕 감탄하기에 바빴다.

“신분증을 제시하시오! 신분이 확실치 않을 시 첩자로 간주하겠소.”

“응?”

뜬금없이 첩자라니?

그러다가 바스크는 성 주위를 맴돌며 구경했던 자신의 행동이 첩자로 의심 받기에 충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스크는 웃으며 품속에서 신분증을 꺼냈다.

“쿤트 자작 바스크다. 뮤트 공작 전하의 제자 릭 쿤트가 내 아들이기도 하다.”

기병대의 조장쯤으로 보이는 책임자가 다가와 신분증을 확인했다.

“실례했습니다, 쿤트 자작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나야 말로 실례했군. 성의 위용이 대단해서 구경한다는 게 영락없이 첩자의 행실이었군.”

“하핫, 감사합니다. 공작 전하께서 그 칭찬을 들으시면 기뻐하실 겁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아드님을 만나러 오셨는지요?”

“아들 녀석 얼굴도 한 번 볼 생각이지만, 용건은 공작 전하께 있네.”

“그렇군요. 그럼 저희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고맙군.”

바스크는 잘됐다 싶어 기병대와 함께 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함께 동행을 하면서 기병대원들이 몰래 수군거렸다.

“저 분이 바로 쿤트 자작님이셨군.”

“생김새는 릭님이 말씀하신 대로야.”

“그런데 성격도 정말 릭님의 말씀처럼 개차반일까? 그렇게 안 보이는데.”

“평소에는 점잖은데 한 번 피를 보면 눈알이 뒤집힌다더군.”

“광전사래, 광전사.”

안 들리게 말한다고 작게 속삭였지만, 오러 마스터가 된 바스크의 귀에는 전부 잘 들렸다.

‘릭, 이놈! 여기서 심심하면 내 험담을 하고 다녔다보군. 보나마나 나에게 대련해서 패한 일로 앙심을 품었겠지. 쫀쫀한 녀석. 내 오늘 그 밴댕이 소갈딱지만 한 정신세계를 크게 넓혀주마.’

복수를 결심하게 주먹을 불끈 쥐는 바스크 또한 그리 마음이 넓다고는 할 수 없었다.

기병대의 책임자는 바스크에게 당부했다.

“공작 전하께서는 훈련 시간에는 절대 손님을 만나지 않으십니다. 저녁 시간 때까지 기다리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지금도 훈련 시간인가?”

“예. 제자 분들을 지도하고 계실 시간입니다. 매일 열 명씩 번갈아가며 지도하시지요.”

“더욱 잘됐군.”

“예?”

“아닐세.”

마침내 저택에 도착하자 기병대는 작별을 하고 떠났다.

바스크는 안으로 들어갔다.

쿤트 자작이 왔다는 소식을 기병대원 하나가 알렸기 때문에 하인이 대기하고 있었다.

“쿤트 자작님, 머무실 방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공작 전하께서는 현재 제자님들과 함께 수련 중이시므로 저녁 시간 이후에야 뵐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뵙고 싶다.”

하인은 송구한 얼굴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훈련 시간에는 누구도 만나주시지 않습니다.”

“그러지 말고 말이라도 전해보아라. 장담컨대 만나겠다고 하실 거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소식이라도 전해보겠습니다.”

“알았다.”

하인은 바스크를 방으로 안내해준 뒤 사라졌다.

바스크는 외투를 벗어 침대에 던져놓고는 바닥에 앉았다.

“시작해볼까.”

씨익 웃은 바스크는 오러 브레싱을 시작했다.

깨달음을 얻은 후 급격하게 늘어난 오러가 해일처럼 약동하며 온몸을 휘돌기 시작했다.

뮤트 공작이라면 알아차릴 것이다.

자신과 같은 오러 마스터가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

뮤트 공작은 열심히 수련하고 있는 제자 열 명을 냉정한 눈길로 보고 있었다.

근엄한 표정을 고수한 채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지만, 이따금씩 제자들에게 날카로운 조언을 했다.

“릭.”

“예? 제가 뭐 또 잘못했습니까?”

릭은 검술 동작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힘이 약하다.”

“아, 스피드를 좀 더 올리고 싶어서 힘을 약간 뺐습니다.”

“속도와 기술은 충분하나, 너는 때때로 한 번의 공격에 큰 파괴력을 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이 적이 너를 두려워하고, 네 빠른 스피드를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알겠습니다.”

릭은 심호흡을 하고는 다시금 검술을 펼쳤다.

막강한 오러가 실린 롱 소드가 허공을 힘차게 베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들려서 함께 수련하던 다른 제자들이 흠칫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그만.”

뮤트 공작의 입에서 중단 명령이 떨어졌다.

모두들 의아한 표정으로 훈련을 멈췄다.

“손님이 온다. 물러서서 대기하라.”

“예?”

릭을 포함한 열 명의 제자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스승의 명령은 곧 철칙이었기 때문에 다들 연무장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잠시 후 하인이 나타났다.

“공작 전하.”

“손님은 누구냐.”

“예? 아, 바, 바스크 쿤트 자작님이십니다.”

하인은 손님이 온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뮤트 공작에게 놀라며 더듬더듬 대답했다.

쿤트 자작이란 말에 릭 역시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손님이 우리 아버지였습니까?”

뮤트 공작은 그런 릭을 무시하곤 하인에게 말했다.

“모셔라.”

“예!”

제자들은 웅성거렸다. 뮤트 공작이 지금껏 훈련 도중에 손님을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수십 년 전에 국왕이 방문했는데도 저녁까지 기다리게 했다던 일화가 전설처럼 전해질 정도였다.

그런데 쿤트 자작이 왔다는 말에 훈련 시간임에도 부른 것이다.

“릭 형님의 아버님이라서 그런가?”

“얌마, 스승님이 우리 아버지라고 딱히 다른 대접하시겠냐?”

“릭 형님 아버님은 상당한 실력자라면서요?”

“흐흐, 아무리 실력자라고 해봐야 스승님 앞에서는 한 방 감인데 뭘.”

“릭 형님. 형님은 왜 자기 아버님에 대해 존경심이 없습니까?”

“흥, 아버지라고 쓰고 앙숙이라고 읽는다. 두고 봐. 내가 실력이 높아지면 패배의 쓴맛을 보여줄 테니.”

그렇게 제자들끼리 시답잖은 잡담을 나누고 있는 사이, 바스크가 나타났다.

바스크는 곧장 뮤트 공작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갖췄다.

“그간 건강하셨는지요.”

“내 건강을 물러 뭐하나. 내가 감기라도 걸렸다면 우스갯소리가 될 텐데. 아무튼 오랜만이군. 일어나게.”

“예.”

바스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허리를 굽히며 청했다.

“감히 한 번 더 가르침을 청하고자 합니다.”

“바라던 바일세.”

제자들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 수 없어서 어안이 벙벙해졌다.

마스터에게 대련을 청하는 것 자체가 실례 되는 일이다. 하물며 한 번 대련해보았다면 다시는 청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예의이다. 상대가 전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뮤트 공작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대련에 응하는 게 아닌가.

뮤트 공작은 허리춤에서 일전에 카록에게 선물 받은 최고의 명검을 뽑았다. 유려하게 뻗은 미스릴 롱 소드.

바스크 역시 연무장으로 걸어 나와서 자신의 롱 소드를 꺼냈다.

쿵쾅쿵쾅.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오러 마스터가 되어서 마침내 가장 존경하는 무인과 겨룰 수 있게 된 상황이 꿈만 같았다. 뮤트 공작도 자신을 적수로 인정해주니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았다.

‘내 모든 걸 보여드리겠다. 훌륭한 무인이 되었다고 저분께 인정받겠다.’

바스크는 정신을 집중했다.

쿤트 가문의 가주 바스크를 집어넣고, 의식의 저편에서 도사리고 있는 자신의 본성을 끄집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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