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193화 (193/529)

<-- 193 회: 8권 - 10. 쿤트 자작가의 기적 -->

바스크는 자신의 정신을 추스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의 성정답게 강인하고 격렬한 오러의 흐름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금껏 바스크는 자신의 오러를 강하게 키우고 움직이기만 했지 가라앉히려고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평정이라는 말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군.’

바스크 쿤트는 원래 그런 인간이었다.

쿤트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나 정통기사가문의 후예로서 검술에 매진했다.

강해지고 싶었다.

이유?

이유 같은 건 갖다 붙이면 얼마든지 있다. 약소가문이라고 귀족사회에서 무시당하는 쿤트 가문을 명문가로 부흥시키고 싶다, 강한 기사가 되어 왕실과 국가에 기여하고 싶다, 무명을 떨쳐 역사에 기억되고 싶다 등등…….

하지만, 남자가 강해지고 싶은 데 이유 따윈 필요 없는 거였다.

피땀 어린 노력으로 강해지고, 싸우고 이겨서 성취감을 얻는다. 세상에 이보다 더 즐거운 인생이 어디 있단 말인가?

단순무식한 인생관이라고 비난 받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바스크는 자신의 본연의 욕망에 솔직하고 충실하였다. 그렇기에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휴식이란 단어는 바스크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참 숨 가쁘게 달려온 것 같았다.

그런 그에게 평정이란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었다.

오러는 조금도 진정되지 않았다.

온몸에 흩어져 있던 오러를 모두 오러 홀에 담아두고 억눌렀지만, 오러는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꿈틀거렸다. 이래서야 강제로 가둬놓고 못 움직이게 한 것에 불과했다.

‘틀렸다. 오러 마스터가 되려면 내 내면부터 다스려야 하는 거였어.’

사실 바스크는 이미 검술과 오러 컨트롤 수준은 극한의 경지에 이미 이르러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스터만의 전유물인 오러 블레이드까지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비록 오래 유지하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바스크가 단련을 소홀히 한 부분은 바로 정신적인 측면이었다.

검술의 극의를 깨닫기에는 그의 정신이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이다.

오러를 평정된 상태에 놓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느끼면서 바스크는 무엇을 수련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바스크는 수련을 중단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맞은편에 앉은 리처드는 오러 브레싱에 몰입하고 있어서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뭐, 그냥 놔둘까.”

바스크는 무책임하게 리처드를 그냥 놔두고 휙 떠나버렸다.

***

다음날부터 바스크는 개인 수련장에 틀어박혀서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물과 식사를 가져온 하인에게 필요 없으니 다시는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경고해두었다.

아무도 없는 수련장의 한복판에 앉아서 오러를 고요한 상태로 만드는 수련을 시작했다. 정신의 수양이었다.

혼자 가만히 앉아 있으니 자꾸만 잡념이 떠올랐다. 오러 마스터의 경지, 가족, 영지, 전쟁…….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떨쳐버리기 위해 노력했다. 오러를 평온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신을 무(無)로 만들어야 했다.

식사를 거르고 며칠간 수련한 일은 종종 있었다. 인내하는 일은 바스크에게 익숙했다.

하지만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 것은 격렬한 검술 수련보다 훨씬 힘들었다.

이를테면 바스크는 정적인 수양에 약했던 것이다. 원채 투쟁적이고 몸을 움직이길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더욱 그러했다.

‘제기랄.’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 롱 소드를 마구 휘두르고 싶었다. 기사들을 모두 불러 모아 놓고 대련을 하고 싶었다.

수년 전의 내전에 참여하여 활약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함성, 폭력, 피, 비명, 죽음, 생존, 포효, 명예……. 말을 타고 전장을 달렸을 때는 얼마나 즐거웠던가. 나와 싸워줄 적이 저렇게나 많았다. 모두들 경탄하고 칭찬했지만, 사실 대단한 게 아니었다. 그저 싸우는 게 좋았을 뿐이다.

우우웅―

오러가 크게 일렁거렸다.

‘아차.’

바스크는 또다시 잡념에 빠져 평정을 놓쳤음을 깨달았다. 급히 마음을 진정시키고 오러를 다스려나갔다.

마음을 비우는 게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다니.

바스크는 좀처럼 마음을 평화롭게 놔두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화가 치밀었다.

오기가 치밀었다.

‘이렇게 된 이상 될 때까지 수련장에서 나가지 않을 것이다.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

생사의 대적이라도 만난 양,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바스크였다.

그리고는 고난의 시간이었다.

오러 엑스퍼트 최상급의 경지는 며칠 식사를 하지 않아도 멀쩡한 경지였다.

그러나 일주일을 넘어서자 몸에 기운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물도 마시지 않았으니 약해지는 게 당연했다. 아무리 오러로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 해도 한계는 엄연히 존재하는 법이었다.

고통스러웠다.

온갖 음식이 생각나고 물 한 모금이 간절했다.

가족들이 나를 걱정해서 물과 음식을 가져다주지는 않을까?

그런 기대감과 망상으로 오락가락했다.

한편으로는 그런 스스로와 싸웠다.

‘오냐 덤벼라. 그런다고 내가 이 자리에서 꼼짝이라도 할 것 같으냐!’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는 익숙한 바스크였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는 참을 자신이 있었다. 스스로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에 더없이 익숙했다. 그의 인생은 절제와 싸움 두 가지로 대변될 수 있었다.

보름이 지났다.

허기가 지고 목이 말라서 신경이 더없이 예민해졌다. 사소한 생각에도 쉽게 격노가 일게 되었다. 굶을수록 감정이 격렬하고 극단적으로 변했다.

그런데 그때 개인 수련장의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더없이 예민해진 바스크의 감각은 귀신 같이 그 인기척을 포착해낼 수 있었다.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바스크는 분노했다.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내 말을 거역하다니. 수련을 방해 받지 않으려면 호되게 호통을 쳐줘야겠다.

목이 마르고 허기가 져서 당장 수련장을 뛰쳐나가고 싶은 걸 견디고 있던 바스크는 이상하게도 분노가 들끓어 올랐다.

마침내 수련장에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아서였다. 그의 맏아들인 아서는 우유와 빵이 담긴 쟁반을 들고 있었다.

우유와 빵을 보자 군침이 돌았다. 하지만 바스크는 그런 자신을 다잡고, 대신 아서에게 호통을 쳤다.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아서는 흠칫 놀랐다.

바스크 본인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하마터면 그간 갈증과 굶주림에 시달려온 분노를 아서에게 쏟아 부을 뻔했다.

‘내가 아서에게 화를 내다니?’

상대가 아서였기에 간신이 억눌러 참은 거였다. 모범적인 삶을 사는 아서에게는 바스크가 혼나면 혼났지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아서는 당황하거나 서운해 하는 기색은 없었다. 아서는 웃으며 말했다.

“레이라가 자기가 식사를 들고 가겠다고 하더군요. 아버님은 자기를 예뻐해 주시니 크게 혼을 내시지 않을 거라더군요.”

그 말에 평소에도 늘 자신에게 애교를 떠는 귀여운 며느리가 떠올랐다. 바스크는 노기가 한층 누그러짐을 느꼈다.

“나는 좋은 며느리를 뒀군.”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사내가 체면이 있지 아녀자를 앞세울 수는 없어서 제가 직접 가져왔습니다. 자, 드시지요.”

“가지고 나가거라. 방금 보았듯이 지금은 내가 신경이 많이 예민해진 탓에 쉽게 화를 낸다. 네게 화를 내고 싶지 않으니, 같은 말을 두 번 하게 하지 말아다오.”

“수련을 위해 물과 음식을 끊고 계시는군요.”

“그렇다.”

아서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검의 극의란 세상의 모든 이치 중 하나겠지요?”

“물론이다.”

“제가 무얼 알겠냐마는, 딱 하나 알고 있는 세상의 이치가 있습니다.”

바스크는 흘깃 아서를 올려다보았다.

아서는 웃으며 말했다.

“배고프면 빵을 먹어야지요.”

“뭐?”

황당해하는 바스크에게 아서가 말했다.

“세상 만물이 영양을 취해서 살아가는데 그걸 거슬러서 검술의 극의를 찾겠다는 것은 어딘지 맞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네가 무얼 안다고 그러느냐? 나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수련 중이다. 육신의 집착에서 벗어나야 하니 이만 가지고 나가거라.”

그러나 아서는 빵과 우유가 담긴 쟁반을 바스크의 앞에 내려놓았다.

“마음을 다스리고 계신다고 하셨는데, 제 눈에는 갈증과 굶주림과 싸우는 데 집착하시는 것 같습니다.”

바스크는 흠칫 놀랐다. 아서의 말이 자신의 가슴을 날카롭게 후벼 팠던 것이다.

아서는 등을 돌려 밖으로 나가며 말을 덧붙였다.

“아버님은 늘 싸우셨습니다. 적과 맞서 싸우고, 적이 없으면 아버님 스스로를 적으로 삼아서 싸우셨습니다. 아버님께 있어 검술 수련이란 자기 자신을 공격해 몰아세우는 수단이 아닌지요? 제가 아버님을 존경하는 이유는 매일 수련을 거르지 않는 근면함이 아니라, 제게는 없는 바로 그 투쟁심 때문입니다. 때로는 걱정도 되지만 말입니다.”

“……?!”

놀란 얼굴을 한 바스크를 남겨놓고 아서는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내가…… 나랑 싸웠다고?’

평생 겪은 모든 경험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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