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 회: 7권 - 9장. 리카도 백작 쟁탈전 -->
다음날 아침.
나는 여관을 떠날 차비를 하면서 리카도 백작에게 물었다.
“리카도 백작님은 어디로 가십니까?”
리카도 백작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레던 왕성에 볼 일이 있어서 가는 길인데, 이것 참……. 말이 다쳐서 한동안은 여기에 머물러야겠소. 다른 말을 한 필 구하면 좋겠는데, 이런 작은 마을에서는 힘들 것 같고.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발이 묶이고 말았소.”
“어라? 우연이군요. 저도 레던 왕성으로 가는 길인데.”
“그렇소?”
“예. 말씀드렸잖습니까. 왕실에 입관을 하게 되었다고요. 여행을 마치고 이제 슬슬 왕궁에 갈 참이었습니다.”
“그럼 폐가 되지 않는다면, 마차를 빌려 탈 수 있겠소?”
“이런, 전 마차를 타고 온 게 아닙니다.”
“그럼……?”
나는 씨익 웃었다.
“보여드릴까요?”
나는 노움과 감각을 공유한 뒤 흙으로 작은 흙집을 한 채 만들었다.
갑자기 흙으로 된 집이 떡하니 만들어지자, 리카도 백작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흙집에 들어가 안에 만들어둔 의자에 앉았다.
이윽고 흙집이 둥실 허공에 떠올랐다.
“허억!”
“지, 집이 하늘을!”
리카도 백작은 물론 호위기사와 마부도 기겁을 했다. 마을 주민들이 기절할 듯이 이쪽을 보고 있는 건 당연했다.
난 다시 흙집을 지상으로 착지시켰다.
“날아다녔지요.”
“허어, 그게 정령술이오?”
“그렇습니다. 아주 편리하겠지요?”
“부럽구려. 그런 재주가 있다니…….”
리카도 백작은 내가 만든 흙집을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씨익 웃으며 넌지시 물었다.
“괜찮으시다면, 저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그래도 되겠소?”
리카도 백작이 반색을 했다.
“예. 이걸 타고 가면 이틀 안에 레던 왕성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백작님의 호위기사도 태울 수 있습니다.”
리카도 백작은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좋소. 그럼 신세를 지겠소.”
“잘 생각하셨습니다.”
암, 그렇고말고. 으흐흐.
리카도 백작은 마부에게 말이 쾌유되면 천천히 따라오라고 지시를 해두었다.
“자자, 그럼 출발할 테니 준비하고 나오십시오.”
“알겠소.”
리카도 백작과 호위기사는 이윽고 짐을 챙겨서 여관을 나왔다. 우리는 함께 흙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막 출발을 하려고 할 때였다.
어라?
노움의 감각에 이상한 기척이 포착되었다.
거대한 마나를 가진 사람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법사로 추측되는데, 이토록 엄청난 마나량을 보유한 마법사는 처음 보았다.
아니, 처음은 아니다.
오리엔 왕국에서 이런 마나량을 보유한 대마법사를 한 명 본 적이 있었다.
레이몬드 후작!
나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오리엔 왕실은 내가 결혼한 사실을 눈치 챘다. 그래서 동맹을 제안하러 보낸 리카도 백작을 다시 되돌아오게 하려고 레이몬드 후작을 보낸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빨리 오다니!
아무래도 레이몬드 후작은 마법을 써서 순식간에 이 인근까지 도착한 모양이었다.
어쩌지?
이대로 출발해도 텔레포트나 플라이 마법을 쓸 줄 아는 레이몬드 후작에게 들키면 곧장 따라잡힌다.
가만…….
그 영감님, 분명 마법에 대한 호기심이 대단한 양반이라고 했지?
나는 마음속으로 샐러맨더를 불렀다.
-크헤헤! 불렀냐?
“허억!”
“악마?!”
흙집에 들어가 앉아 있던 리카도 백작과 호위기사가 샐러맨더의 등장에 화들짝 놀랐다.
“제 정령입니다.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나는 두 사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샐러맨더에게 지시를 내렸다.
-쳇! 귀찮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샐러맨더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밖으로 휙 나갔다.
나는 리카도 백작에게 말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그러시오.”
흙집이 둥실 하늘로 떠올랐다.
가자, 최대 속력으로!
* * *
산에서 노숙을 하고, 새벽이 되자마자 다시 말을 타고 출발한 레이몬드 후작은 아침이 되어서야 작은 마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옳지. 리카도 백작도 저곳에서 묵었겠군.”
레이몬드 후작은 박차를 가해 말의 속도를 높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까아악― 까악―
“으잉?”
하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충격적인 광경이 그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불타는 새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온몸이 불꽃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새는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훨훨 북쪽을 향해 날고 있었다.
“저, 저게 뭐냐?!”
마나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누군가 마법으로 장난을 친 건 아닌 듯했다.
불새라니?! 듣도 보도 못했다! 애당초 불꽃으로 이루어진 생명체가 존재할 리 없었다. 그런데, 그렇다면 눈앞에 보이는 저건 뭐냔 말이다.
불새는 북쪽 하늘을 향해 날면서 점차 모습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이, 이럴 때가 아니지. 플라이!”
레이몬드 후작은 비행마법으로 말에서 뛰어올라 하늘로 솟구쳤다.
그리고 멀리 사라져가는 불새를 무서운 속도로 뒤쫓았다.
“난생 처음 보는 생물이다! 어, 어쩌면 내가 최초의 발견자가 될 지도 모르겠구나! 기필코 정체를 밝혀내겠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머지, 리카도 백작의 일은 까맣게 잊고 만 레이몬드 후작이었다.
리카도 백작은 이미 충분히 따라잡았으니 그리 급할 게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불새와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까아악― 까아악―
아무리 들어봐도 괴상한 울음소리.
레이몬드 후작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난생 처음 보는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사그라지지 않는 그의 왕성한 호기심이 미친 듯이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레이몬드 후작이 쫓아오자 불새는 날갯짓을 멈추고 그 자리에 정지했다. 그리고 휙 레이몬드 후작을 돌아보았다.
레이몬드 후작 또한 멈췄다.
그리곤 불새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난 적이 아니다. 공격하려는 게 아니니 무서워하지 말거라.”
-까아악― 까아악―
“넌 대체 무엇이더냐. 너 같은 생물은 내 처음 보는구나.”
말을 알아들을 리 없었지만, 레이몬드 후작은 흥분해서 계속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나는 피닉스. 인간을 피해 천 년을 살았다. 까악―!
“피, 피닉스? 신화 속에서나 나오는 그 불사조 말이냐?”
-그렇다, 까아악―!
“시, 실존하는 거였다니?! 난 당연히 백성들 사이에서나 구전으로 떠도는 민담인 줄 알았는데.”
-근데 넌 왜 반말이냐? 까악―?
“으응?”
눈이 휘둥그레진 레이몬드 후작에게 자칭 피닉스가 말했다.
-나 천 년 넘게 살았다. 반말하지 마라, 까악―! 인간은 당연히 다른 모든 생물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건방진 인간! 나 화났다, 까악―!
“미, 미안하다. 아니, 미안하오. 내가 흥분해서 그만 실례를 저지르고 말았소.”
-이제야 좀 정신을 차렸냐. 개념 있는 인간, 까악―!
“그보다 다, 당신에 대해 좀 알려주시오.”
-말했다. 난 피닉스다, 까아악―!
“아니, 그건 아는데 당신이 어디서 사는지, 왜 인간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지 등 뭐든 말해주시오.”
피닉스는 레이몬드 후작을 빤히 보며 말했다.
-난 뜨거운 열기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존재한다, 까악―!
“그럼 왜 인간을 피해 살아온 거요?”
-그건…….
피닉스는 말문이 막혔는지 잠시 고민하더니, 이윽고 말했다.
-인간을 보면 전부 불태워버리고 싶기 때문이다, 까아악―!
“허어억!”
레이몬드 후작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놀란 그의 모습에 좀 흥이 났는지, 피닉스는 신나게 말을 이었다.
-본래 난 누구에게도 모습을 드러내선 안 된다! 근데 넌 좀 개념이 있는 인간이라서 마음에 든다. 원래는 단숨에 불태워버려야 하지만 특별히 살려주겠다, 까아악―!
“그, 그런…….”
7서클 대마법사인 자신마저도 단숨에 불태운다고 단언하는 피닉스의 말에 레이몬드 후작은 식은땀을 흘렸다. 허풍일 거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피닉스는 신나게 말을 이었다.
-난 최후의 그날이 올 때 너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까아악― 인간이 모두 타락하고 서로가 화해하지 못하는 시대가 왔을 때, 나는 너희를 모두 불태우고 이 세상을 종말로 이끌 것이다, 까아악―!
레이몬드 후작은 가슴이 섬뜩해졌다.
“그, 그런……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오! 인간은, 인간은 아직 희망이 있소!”
-그럼 널 봐서 당분간은 가만히 지켜보겠다, 까악―!
“고, 고맙소! 결코 실망시키지 않겠소!”
-그럼 난 이만 간다. 그리고 수염 좀 깎고 다녀라, 까악―!
그리고 피닉스는 허공중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레이몬드 후작은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 * *
-나 잘했냐? 까악―!
“응. 잘했으니까 이제 깍깍대지 마라.”
-재미있었다, 크헤헤!
신이 나서 킬킬거리는 샐러맨더를 보며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뭐, 아무튼 레이몬드 후작을 따돌리는 데는 성공했다. 이 정도 떨어졌으니 빠른 속도로 나는 우리를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레이몬드 후작의 정신 상태를 미루어보아 리카도 백작 문제는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샐러맨더 이놈, 시킨 일은 잘 하긴 했는데, 어느 한 사람에게 몹시도 심각한 문제를 안겨주고 말았다. 하여간 악마인지, 정령인지 이젠 나도 헷갈린다.
오늘 나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 정령이 상급 정령사에게 떨어질 수 있는 거리는 최장 10킬로미터가 한계라는 점.
그리고 둘째, 내가 속인 걸 알면 저 대마법사 영감님은 기필코 날 죽일 거라는 사실.
* * *
오리엔 왕실의 궁전.
“레이몬드 후작, 리카도 백작은 무사히 데리고 돌아…….”
오리엔 국왕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뜬금없이 수염을 싹 밀어버리고 나타난 레이몬드 후작의 모습에 할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레이몬드 후작은 침울한 얼굴로 말했다.
“리카도 백작은 놓쳤습니다. 카록 쿤트가 한 발 먼저 리카도 백작을 데리고 날아가 버렸다고 마부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크윽!”
오리엔 국왕은 분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카록 쿤트 그놈! 대체 눈치가 빨라도 얼마나 빠른 거냐!”
벌써 이쪽이 사신을 보낼 줄 예상하고 직접 마중까지 나왔었다니?! 이쪽의 속내를 완벽하게 꿰뚫어보았다는 뜻이었다.
그런 인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게 되었으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까워서 통탄할 노릇이었다.
“폐하.”
“응? 하아, 그만 돌아가 쉬게. 고생이 많았네.”
“그것이 아니라…… 카록 쿤트를 죽여야 할 날이 오거든, 필시 제게 맡겨주십시오.”
피닉스가 사라진 뒤, 레이몬드 후작은 한동안 상념에 잠겨 있다가 덥수룩한 수염부터 재빨리 마법으로 없애버렸다.
그 뒤 리카도 백작을 찾아 마을로 갔다.
그런데 리카도 백작을 카록이 데려갔다는 이야기를 마부에게 들었을 때, 레이몬드 후작은 그 피닉스 또한 놈의 장난이란 걸 비로소 깨달았다.
어쩐지 신화 속의 피닉스치곤 좀 괴상하긴 했었다.
“기필코 신의 손으로 박살을 내겠나이다.”
‘이 몸을 바보로 만들다니. 역시 그 얄밉게도 약아빠진 놈이 싫다!’
오리엔 국왕은 분노로 주먹을 부들부들 떠는 레이몬드 후작을 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대체 수염은 왜 밀었냐고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