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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173화 (173/529)

<-- 173 회: 7권 - 9장. 리카도 백작 쟁탈전 -->

나는 떠나기에 앞서 듀론 후작과 따로 만났다. 듀론 후작이 내게 볼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허헛, 지겨운 정치 이야기를 하느라 미처 말을 못했네만, 결혼한 것을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사실 결혼의 주례는 재상 각하께 부탁드리고 싶었는데, 서둘러야 했던지라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이 늙은이에게 주례를? 허허헛, 자네의 결혼식이라면 기꺼이 주례를 서 주었을 텐데 아깝게 됐구먼. 다음 결혼식 땐 꼭 나를 부르게나.”

“아이고, 큰일 날 말씀을. 다음은 없습니다.”

“허헛!”

우리는 한동안 덕담을 나누었다.

하지만 곧 듀론 후작이 본론을 꺼냈다.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어서 자넬 보자고 했네.”

“말씀하십시오.”

“오리엔 왕실이 왜 이토록 자네를 원하는 겐가?”

“예? 그게…….”

“내 말을 오해하지 말고 들어보게. 물론 자네가 보기 드문 인재라는 건 이 늙은이가 더 잘 안다네. 하지만 오리엔 왕실이 세렌스 공주까지 줘서라도 자네를 데려가려고 할 정도로 자네를 탐내는 이유를 잘 모르겠네.”

세렌스 공주는 말 그대로 미혼의 공주.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미모까지 갖췄다.

오리엔 왕실로서는 그야말로 비장의 정치 카드인 셈이었다.

그런데 그 카드를 기꺼이 쓸 정도로 나에게 가치가 있느냐 하면, 그건 조금 생각해 봐야 할 문제였다.

특히나 오리엔 국왕은 막내딸 세렌스 공주를 대단히 아끼기로 유명한데 말이다.

듀론 후작이 의문을 갖는 건 당연했다.

하아…….

내 주변에는 눈치 빠른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듀론 후작은 나를 후계자로 생각할 정도로 신뢰를 주는 사람이니, 나도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재상 각하. 이 사실은 되도록 비밀로 하셔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내 입은 무거워지고 있다네.”

“사실 전 상급 정령사입니다.”

“……?!”

듀론 후작은 눈을 크게 치켜떴다. 아이고, 나이 드신 분을 놀라게 하면 심장에 안 좋은데.

“그게 정말인가?”

“예. 얼마 전에 상급 정령술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그럼 오리엔 왕실이 그 사실을 아는 것이었군. 그랬군. 그래서 기꺼이 세렌스 공주를 동원했던 거야.”

“네. 숨기고 싶었는데, 그만 조엘 브리튼 공작에게 들켰습니다. 짤막하지만 겨루기도 했었지요.”

“브리튼 공작과 겨루었다? 허허, 대단하군. 오리엔 왕국 기사들의 정점이라 불리는 그와 실력을 겨룰 정도였다니. 이러니 오리엔 국왕이 자네를 탐내지.”

“비밀로 해서 죄송합니다. 결정적으로 써먹을 순간까지는 숨기고 싶었습니다.”

“정말 훌륭하군.”

“예?”

“잘했네. 정치판에서 처음부터 모든 카드를 다 보여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세. 오히려 칭찬 받아야 마땅한 일인 게야.”

“그리 말씀해주시니 마음이 놓입니다.”

“허헛, 그나저나 뮤트 공작 전하에 이어 자네까지 있으니 이 늙은이는 한층 더 안심이 되는군. 앞으로도 폐하께 힘이 되어주게.”

“물론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제가 신혼 중에 일을 맡게 되는 바람에…….”

“아, 그렇군. 자네의 아내들은 내가 잘 보살펴주겠네. 마침 왕비 전하께서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두루 사귀니 좋은 친구가 될지도 모르겠군.”

“감사합니다.”

“이제 어서 가보게.”

“예.”

나는 비로소 안심하곤 왕궁을 나섰다.

줄리아, 시스, 공사다망한 나를 용서해라. 너희의 남편님은 너무 대단한 남자라 늘 바쁘단다.

*   *   *

“뭣이! 결혼을 해?”

“예, 폐하. 쿤트 가문의 일가족끼리 단출하게 결혼식을 치렀다고 합니다. 쿤트 영지에 심어둔 첩자로부터 방금 보고를 받았습니다.”

조엘 브리튼 공작의 보고에 오리엔 국왕은 낭패를 느꼈다.

한 발 늦고 말다니!

설마 그 짧은 사이에 결혼을 해버릴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도 둘씩이나 되는 여자와 말이다!

“이런 낭패를 보았나. 나는 이번에도 망설이다가 기회를 놓치고 말았어. 그냥 단숨에 진행해버리는 것이었는데!”

“폐하.”

오리엔 국왕이 자신의 부족한 결단력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걸 잘 아는 브리튼 공작은 조용한 어조로 타일렀다.

“카록 쿤트에게 이렇다 할 여자관계는 보고된 적 없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지 않았나.”

“그 여자들은 본래 부하 직원들이었는데, 카록 병기점의 직원들을 통해 알아봐도 그 전까지는 카록 쿤트와 애인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결혼을 해버린 겁니다.”

오리엔 국왕은 눈썹을 꿈틀했다.

“우리의 생각을 눈치 챘나?”

“그렇게 의심이 됩니다. 아무래도 세렌스 공주 저하나 제 아들 라엘이 카록 쿤트에게 속내를 읽힌 게 아닌지 싶습니다.”

“허……, 그게 사실이라면 참으로 눈치가 귀신같은 놈이로군.”

오리엔 국왕은 기가 차서 혀를 찼다.

“그보다 더 급한 게 있지 않습니까.”

“응? 아아, 그랬군. 일주일 전에 동맹 제의를 하려고 사신을 보냈지.”

“카록 쿤트를 얻을 수 없는 이상, 동맹 제의는 우리가 먼저 해서는 안 됩니다.”

“알고 있다. 우리가 먼저 제안해서는 안 되지.”

동맹을 더 절실히 원하는 쪽은 레던 왕실.

그런데 굳이 이쪽이 먼저 동맹을 하지 않겠냐고 제안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카록 쿤트를 얻지 못하는 이상에는 말이다.

“다시 불러들이게. 혹시라도 레던 왕성에 도착하기 전에 돌아오게 해야 하네.”

“지금쯤 레던 왕국과의 국경을 통과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럼 서둘러야겠군. 아, 그럼 레이몬드 후작을 부르게.”

“알겠습니다.”

브리튼 공작은 사람을 시켜서 레이몬드 후작을 불러오게 했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레이몬드 후작은 금방 나타났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좋아하는 마법 연구를 하고 있었던 탓에 얼굴에 귀찮음이 역력했다.

오리엔 국왕이 껄껄 웃었다.

“바쁜데 불러서 미안하군.”

“험험, 아닙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일주일 전에 레던 왕실에 사신으로 보냈던 리카도 백작을 다시 불러들여야겠네.”

그러면서 오리엔 국왕은 자세한 일을 설명하며 덧붙였다.

“이 대륙에서 자네보다 빠른 사람은 없지 않은가.”

레이몬드 후작은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신이 가야지요.”

그리하여 7서클 대마법사, 레이몬드 후작이 직접 움직이게 되었다.

“텔레포트(Teleport).”

마법을 시전한 순간, 레이몬드 후작의 신형이 허공에서 사라져버렸다.

*   *   *

나는 초고속으로 비행해서 레던 왕국의 국경 검문소에 도착했다.

어찌나 서둘렀는지, 밥 먹을 틈도 없이 이틀 내내 날았다.

아아, 배고파 죽겠다. 뭔가 육포라도 싸올 걸 그랬네. 하지만 일단은 오리엔 왕실의 사자를 찾는 게 급선무지.

나는 국경 초소로 갔다.

“정지.”

“신분을 밝혀주십시오.”

초소의 병사들이 다가왔다. 그런데 병사들 중 몇 명이 내 얼굴을 알아보았다.

“어라? 혹시 전에 오우거를 사냥하셨던 분 아니십니까.”

“맞아 맞아. 오우거 사체를 본 건 그게 처음이었어.”

“기억하는군.”

“물론입니다. 이곳 국경은 생각보다 별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특별한 분은 오래 기억에 남지요.”

일전에 패트릭과 함께 오리엔 왕국에 갈 때, 오우거를 한 마리 잡은 적 있었다. 그걸 기억하나 보군.

“그럼 혹시 오리엔 왕국의 귀족이 이곳을 통과한 적 있어? 아마도 오리엔 왕실의 사자라고 추측되는 인물인데.”

내 물음에 병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어제 오후에 오리엔 왕실의 사자로서 왔다는 귀족 분이 국경을 통과했습니다.”

“이름은.”

“리카도 백작님이었습니다.”

“인상착의는.”

“음, 그러니까……. 나이는 40대 초중반쯤이었고, 키는 저보다 약간 더 작고 마른 체격이었습니다. 그리고 하얀색 계통의 외투를 걸치고 있었습니다.”

“어떤 마차를 타고 있었어?”

“말 두 마리가 끄는 꽤 좋은 마차였습니다.”

“서두르는 기색이었어?”

“예. 급한 일이었는지 빠른 속도로 달렸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오케이, 땡큐!”

다행이다. 국경을 통과해서.

병사들에게 인상착의를 들어서 찾기가 더 쉬워졌다. 게다가 어제 오후에 통과했다면, 그리 많이 가지 못했을 것이다.

“옜다. 근무 끝나고 술이나 한 잔 해.”

나는 금화 한 닢을 병사들에게 던져주곤 하늘로 뛰어 올랐다.

파앗! 촤아악!

땅에서 흙더미가 솟아올라 의자가 되어 날 태웠다. 나는 그대로 하늘 높이 솟구쳤다.

병사들이 멍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게 노움의 감각으로 볼 수 있었다. 이거야, 심심한 국경 검문소의 병사들 사이에서 또 한동안 화제가 되겠구나.

나는 노움과 공유된 감각을 한껏 확장한 채 국경 검문소에서 레던 왕성 쪽으로 향하는 길목을 이 잡듯이 살폈다.

하지만 이따금씩 짐마차를 끌고 가는 상인만 보였을 뿐, 귀족이 탄 화려한 마차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더 갔을 때, 작은 마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군. 저 마을에서 하루 묵고 가려는 것일 수도 있어.

그동안 서둘러 오느라 피곤했을 테니까. 말들도 지쳤을 테고.

지상에 착지한 나는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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