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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171화 (171/529)

<-- 171 회: 7권 - 8장. 입관, 카록 리간드 자작 -->

우리는 이틀 만에 레던 왕성에 도착했다.

궁정 회의 때 입고 갈 옷을 사고, 각종 장신구를 샀다. 장신구를 사면서 귀금속류의 유행과 업계 동향을 알아봤는데, 아직 내가 전생의 기억으로 알고 있는 그대로였다.

1월이 되기도 전에 도착했기 때문에 우리는 레던 왕성 시내를 돌아다니며 놀았다.

음식이 맛있는 레스토랑도 찾아다니고, 시장을 둘러보며 돈 될 만한 사업을 찾아보는 놀이(?)도 했다.

마법길드를 방문해서 4서클 마법서를 구입하기로 했다.

마법길드에서 고가에 판매하는 마법서에 서술된 마법은 이미 수많은 마법사 사이에 보급된 기본적인 것들뿐이고, 진짜 마법길드의 노하우가 집약된 최신형 개량 마법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시스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전쟁터에 데리고 다닐 것도 아닌데 뭘. 그리고 시스는 마법에 대한 재능이 뛰어나서 스스로 마법을 개량시키는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보니 어느 새 1월 2일이 되었다.

“이제 가자.”

“저, 정말 왕궁에 가는 거 맞죠?”

“그럼 왕궁에 가지, 집으로 돌아가리?”

“왕궁을 방문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란 말이에요.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분이 사는 곳을 방문하게 되다니, 꿈만 같아요.”

“남자 잘 만난 덕인 줄 알아.”

“후훗, 고마워요.”

줄리아는 내 뺨에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이제 제법 애교가 늘었군. 음, 바람직한 현상이다.

왕궁경비대의 검문을 통과하고 왕궁 안으로 입장했다.

정문을 통과하니 푸른 잔디와 나무들, 그리고 각종 화려한 조각상이 장식된 정원이 우리를 반겼다.

난 이미 수없이 본 풍경이었지만, 줄리아는 잔뜩 들떠서 여기서 산책을 하자며 졸라댔다. 시스도 내색은 안 하지만, 기분이 좋아보였다. 마침 시간이 좀 남아서 이곳에서 좀 놀기로 했다.

“아아. 우리 이담에 돈 많이 벌어요.”

줄리아가 잔디에 벌렁 누우며 말했다.

“지금도 충분히 많이 벌잖아.”

아주 돈이 넘쳐나지.

“돈 무지무지 많이 벌어서 이 왕궁보다 더 큰 집을 짓는 거예요.”

“…….”

내 바탄 영지 같은 쪼그만 영지에 이런 거대한 건축물이 왜 필요한데?

정작 드레스나 보석류도 안 밝히는 애가 이상한 데서 허영심을 발휘한다. 차라리 그냥 귀금속이나 밝혔으면 좋겠다. 그게 더 싸게 먹히겠네.

그런데 문득 왼쪽을 바라보니, 누군가가 나무 그늘에 숨어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게 보였다.

누구지?

왠지 낯이 익었다.

노움을 소환해서 감각을 공유한 뒤 다시 확인하니, 나 참. 다름 아닌 제론이었다. 왕실에서 가장 의욕 없는 관리, 제론 데커드가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히 지금은 아직 공무 시간일 텐데?

저놈이 지금 땡땡이 치고 있구나!

“노움. 가서 저 녀석 한 대 쥐어박아서 깨우렴.”

-응!

후다닥 달려간 노움은 들고 있던 커다란 삽으로 제론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데엥!

“크헉!”

어휴, 뉘 집 자식인지 참 시원스럽게도 때리네.

제론은 머리를 붙잡고 데굴데굴 뒹굴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주위를 둘러본 제론은 노움과 눈이 마주쳤고, 이윽고 날 발견해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너야말로 그게 무슨 짓이냐?”

“전 낮잠을 즐기고 있었습니다만?”

“재상부 소속의 관리가 이 시간에 한창 일을 해야지 낮잠을 왜 자?!”

“재상 각하께서는 궁정 회의를 준비하시느라 안 계시고, 재상부 집무실은 루이 콘체른이 지키고 있습니다. 뭐라 하는 사람이 없으니 전 당연히 낮잠을 자는 겁니다만?”

“당연한 거냐?! 듀론 후작 각하께 이른다?”

어르신은 은퇴할 나이에 열심히 일하시는데, 저놈의 젊은 노무 시키는!

“치사하게 나오시는군요. 출세가도에 오른 남자라고 절 이렇게 박대하기입니까?”

“너 이 녀석, 내가 왕실에 입관하면 봐라. 아주 달달 볶아주마!”

“쳇! 아무튼 결혼 축하드립니다.”

“흥, 고맙다. 그보다 왕실 분위기는 어때?”

“바덴 강 협상에 성공한 뒤 한창 들떠 있었습니다만, 최근에 혼트 제국의 동향이 이상해서 다시 긴장한 추세입니다.”

“혼트 제국? 아아, 그거.”

“들으셨습니까?”

“응. 카르스 황제가 유목민족 통합에 나선 그거 말이지?”

“예. 아마 잠깐 진통은 있을 테지만, 아마 순조롭게 유목민족을 정벌해서 자기 휘하에 넣겠죠.”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육제후가 유목민족의 배후에서 수를 쓰고 있는 거 모르냐?”

“예?”

레던 왕실의 문제점을 온몸으로 보여주시는군. 정보력이 너무 약해서 탈이다. 이놈의 왕실은. 하긴, 나도 제이슨에게 직접 들은 덕분에 정보가 좀 빨랐지만.

“란즈헬 백작이 죽기 전에 카르스 황제에게 큰 선물을 주려고 한다. 유목민족 몇 부족이 독립을 주장하고 들고 일어설 거야.”

“그게 사실입니까?”

“그럼 내가 뻥을 치겠냐?”

“그럼 혼트 제국에서 유목민족들을 중심으로 내전이 벌어지겠군요.”

“그래.”

“그건 좋은 소식이니 안심했습니다. 그럼 현재 시점에서 가장 주의해야 하는 건 쿤트 자작님이 오리엔 왕실의 데릴사위가 되느냐의 문제이겠군요.”

“안 돼. 이미 결혼했잖아. 봐라, 내 마누라들이다.”

난 줄리아와 시스를 소개시켜주었다.

그녀들과 인사를 나눈 제론은 무척 아니꼽다는 듯이 날 노려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째려봐? 눈깔을 확.”

“자작님이 뭐가 잘났다고 이렇게 예쁜 아내를 둘씩이나 얻은 겁니까?”

“노움, 저 녀석 한 대 더 때려.”

-응!

“자, 잠깐!”

데에엥!

“크으윽!”

또다시 노움의 삽에 맞아 머리를 붙잡고 뒹구는 제론.

그때 시스가 날 툭툭 쳤다.

“왜?”

“시간.”

“아.”

회중시계를 꺼내 확인하니 어느덧 오후 12시 35분이었다. 헉, 늦겠다!

“서두르자. 시간 됐다.”

“네.”

“응.”

우리는 잔디에 발랑 뻗어버린 제론을 뒤로하고 궁전으로 향했다.

아무나 붙잡고 물으니, 한 시녀가 우릴 응접실로 안내해주었다.

그리고 금세 늙은 부인 한 명이 나타났다. 고급스러운 옷차림이나 몸가짐에 서린 기품으로 보아 시녀 장 쯤 되는 높은 사람 같았다.

노부인은 우리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시녀장인 아렌 백작 부인 마가렛이라고 합니다. 카록 쿤트 남작 부처(夫妻) 되시는지요?”

“그렇습니다, 자작 부인.”

나는 공손히 대꾸했다.

시녀장이면 상당한 고위직으로 왕비를 직접 모시는 왕실 사교계의 핵심 직책이었다. 또한 아렌 백작가는 유서 깊은 왕실파의 명문가였다. 지금은 세력이 많이 쇠퇴하긴 했지만 말이다.

아렌 백작 부인이 말했다.

“곧 궁정 회의에 참석하실 텐데, 카록 쿤트 남작께서는 익숙하시겠으나, 두 부인께서는 왕실의 법도를 모르실 것 같기에 제가 지도해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줄리아와 시스도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이윽고 우리는 아렌 백작 부인에게 왕실의 예법을 간단하게 배웠다.

“이곳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곧 여러분들을 호출할 것입니다. 그때 안내에 따라 궁정 회의장에 입장하셔서 제가 가르쳐드린 대로 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아렌 백작 부인은 우리와 작별을 나누고 떠났다.

잔뜩 긴장했던 줄리아와 시스는 지친 듯 풀썩 소파에 주저앉았다.

“후아! 긴장했다.”

“뭘 긴장은. 얘야, 네 낭군님은 허풍을 좀 보테자면 이 왕실에서 가장 파워가 센 남자란다. 예법을 조금 틀려도 아무도 뭐라고 그러지 못해요.”

“우와, 정말요?”

“그럼! 그저 예의 없는 여자라고 뒤에서 호박씨를 조금 깔 뿐이지.”

“그게 뭐예요! 더 싫어!”

“쯧쯧, 줄리아야. 나처럼 잘난 남자의 부인이 되었으니 뭇 많은 여자들의 질투의 대상이 되는 건 당연하잖니. 지금부터 익숙해지려무나.”

“…….”

줄리아는 황당하다는 듯이 날 보려보았다.

“그보다 우리 시스는 할 만하니?”

“……응.”

“막막 긴장해서 우는 거 아니지?”

“아냐.”

“그래그래, 장하다.”

나는 시스의 푸른 머리칼을 슥슥 쓰다듬었다. 감촉이 실크처럼 부드러워서 자꾸만 쓰다듬게 된다. 이러다 버릇이 될 것 같다.

이렇게 귀여운 여자가 나의 부인이라니! 이제 밤에 끌어안고 자고 범죄가 아닌 거지? 아싸! 나이스!

“우와. 단주님, 무지 기분 나쁜 얼굴이 되었어.”

줄리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게 못된 말만 골라서 하면 소박맞는다?”

“잘됐네요. 저도 바가지 마구 긁어줄 테니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고요.”

“내가 잘못했다.”

“후후훗.”

그렇게 시답잖은 잡담으로 두 여자의 긴장을 풀어주고 있다 보니, 시녀 한 명이 종종걸음으로 와서 우리에게 말했다.

“폐하께서 궁정 회의장으로 드시랍니다.”

“자, 가자.”

우리는 시녀의 안내를 받으며 궁정 회의장으로 향했다.

내가 그동안 왕실을 위해 많은 일은 했지만, 왕실 소속의 관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궁정 회의장에 갈 일은 없었다. 따라서 나도 궁정 회의장에 가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뭐, 그래 봤자 별로 긴장이 되지는 않는다. 혼트 제국의 정신병자와 말상대 해주는 것과 비교하면, 놀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거든.

마침내 궁정 회의장의 입구에 다다랐다. 입구는 로열나이츠의 기사 두 명이 지키고 있었다.

노움의 감각을 통해, 줄리아와 시스의 심장이 쿵쿵 뛰는 게 느껴졌다.

많이들 긴장했구나.

“운디네.”

-응.

허공에서 운디네가 나타났다.

“모습을 감추고, 계속 우리 곁에서 치유의 힘을 불어넣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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