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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170화 (170/529)

<-- 170 회: 7권 - 7장. 가정을 이루다 -->

릭 형님도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거다! 너 폐하랑 친하잖아? 폐하께 증인이 되어달라고 부탁하면 한 방에 오케이잖아?”

아, 그렇구나.

에릭 국왕이 결혼의 증인이 되어주면, 국제적으로 공식화되는 것이다.

“국왕 폐하께 그런 사소한 부탁을 해도 되겠느냐? 공사다망하신 분께 폐가 될라.”

충성스런 왕실파인 아버지가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아무렴 어때? 내가 에릭 국왕 그 인간 때문에 얼마나 열심히 뛰어다녔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그럼 지금 당장 서신을 보내겠습니다. 아서 형님, 가장 빠른 배달 편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촉각을 다투는 일이니 말을 잘 타는 자에게 힐링포션까지 두 병 줘서 밤낮 달리게 하마.”

“감사합니다!”

난 후딱 깃펜과 잉크, 종이를 구해다가 서신을 작성했다.

그동안의 경위와 오리엔 왕실의 의도 등을 모두 설명하면서 증인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뭐, 요약하면 ‘나 결혼함. 증인이 되어줘. 나 같은 인재를 오리엔 왕실에 뺏기고 싶지 않지?’였다.

그리고 서신이 레던 왕성으로 출발했다.

그로부터 열흘 뒤에 에릭 국왕의 답장이 도착했다. 에릭 국왕이 친필로 쓴 친서였다.

「그대의 자유대로, 쿤트 가문의 일족끼리 조용히 결혼식을 올려라. 그리고 두 아내와 함께 내년 봄 1월 2일 01시 정각에 시작되는 궁정 회의에 참석하라.

나머지는 짐이 알아서 해결해주겠다.

ps. 그대가 짐과 한 약속을 지킬 때가 왔구나.」

약속? 아하.

에릭 국왕은 나에게 왕실의 관리로 입관할 것을 요구하면서, 대신 올해까지 휴식기간을 주었다.

올해가 거의 끝나가니, 이제 레던 왕실에 입관할 때가 된 것이다.

이제 좋은 시절은 다 갔구나. 왕실에서 개 발에 땀나도록 뛰어다니며 일하게 생겼네.

어라? 아니지.

그래도 에릭 국왕과 듀론 후작 어르신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으니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지도? 적당히 비리도 저지를 줄 아는 부패관료나 되어볼까? 누가 날 막을쏘냐? 아하하.

아무튼 에릭 국왕의 서신대로 나는 결혼식을 쿤트 가문의 가족들만 모아놓고 적당히 치르기로 했다. 줄리아와 시스도 찬성했다.

“좋아요. 저도 마침 밀린 일이 많아서 결혼식은 빨리 해치우고 싶었어요. 그냥 가문 족보에다 이름만 올려도 상관없고요. 아참, 근데 단주님은 서자라서 쿤트 가문의 족보에는 이름을 못 올리죠? 그럼 절차가 더 간단하겠네요.”

“…….”

그래, 찬성 해주니까 좋긴 한데…….

근데 넌 결혼보다 일이 중요하냐? 너도 여자라며? 결혼 안 해주면 사표 낼 거라던 배짱은 어딜 갔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로맨틱이 어쩌고 하지 않았냐?! 난 뭣 때문에 린델 백작령까지 날아가서 반지를 사온 거냐?

“……조용한 결혼식. 음식은 많이.”

“그래그래. 맛있는 거 많이많이 먹게 해줄게. 어휴, 우리 귀염둥이.”

나는 본능적으로 정령들을 대하듯 시스를 번쩍 들어 껴안고 부비부비를 했다. 시스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뭐, 어때? 이제 내 마누란데. 우히히.

그런데 이를 본 줄리아가 또 눈에 불을 켜고 태클을 걸었다.

“잠깐! 왜 내가 말할 땐 뚱한 표정 짓더니 시스만 그렇게 예뻐하는 거예요?!”

넌 또 왜 불만인 거니? 앞으로 얼마나 바가지를 긁어대려고.

“시스는 귀엽잖아!”

“뭐예요?! 전 안 귀엽다는 뜻이에요?”

“넌 그냥 워커홀릭이잖아! 하나도 안 귀여워! 내가 청혼할 때 로맨틱 타령을 하던 여자의 마음은 다 어디다 버린 거야? 팔았냐?”

“우우, 서로의 마음만 확인하면 됐잖아요. 남들 보란 듯이 하는 결혼식은 필요 없어요.”

그 말에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얘야, 뭐 잘못 먹었니? 넌 남보다 우월할수록 행복해하는 아이잖니. 당연히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길 바란 거 아냐? 난 그런 줄 알고 설득이 힘들어질까봐 내심 긴장했는데.”

“제가 말했잖아요!”

줄리아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더듬더듬 말했다.

“다, 단주님의 아내가 될 수 있으면 그, 그런 건 상관없다고요.”

헉. 미쳤나. 줄리아가 귀여워 보여.

“그, 그래? 미안…….”

“그럼 저도 귀여워해주세요.”

“……뭘 어떻게 해줄까?”

“아까 시스한테 해준 거랑 똑같이 해달라고요!”

……당당하구나. 무서운 아이.

나는 하는 수 없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줄리아를 번쩍 안아 들었다.

“그, 그래. 어휴…… 우리 귀, 귀염둥이…….”

“우후훗.”

난 시스에게 해줬듯이 줄리아에게 마지못해 부비부비를 했다. 줄리아는 배시시 웃으며 만족해했다. 익숙해지자. 얘도 일단 내 아내이니까.

그리하여 우리는 저택의 연회장에서 조용히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는 가까운 곳에 사는 귀족 중 식견 있고, 친분도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을 불러야 했는데, 그래서 낙점된 인물이 바로 레이라 형수의 부친인 후디니 자작이었다.

주례를 서달라는 부탁은 처음 받아봤는지, 후디니 자작은 무척 만족스러워하는 얼굴로 헐레벌떡 우리 영지에 와주었다.

보통 주례는 인망 있는 어른이 맡을 수 있는 역할.

본래 근본이 상인 출신이었던 짧은 가문의 역사 탓에 돈으로 신분을 산 삼류가문이라는 폄하를 받아온 콤플렉스가 있는 후디니 자작이었으니, 주례가 된 것에 기뻐하는 건 당연했다.

뭐, 사실 우리 집안에 이렇다 할 어른이 없었고, 우리 아버지에게 식견이란 걸 도통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명재상 듀론 후작이 주례엔 딱 인데, 다 늙은 분더러 여기까지 와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무튼 후디니 자작의 주례는 마음에 들었다. 망신당하면 어쩌나 고민을 많이 했는지, 꽤 신경을 많이 쓴 멋진 주례사를 들려주었다.

반지를 나눠주고, 키스를 하고, 사랑을 맹세하는 절차를 끝으로 우리 세 사람은 부부가 되었다.

연회장에 모인 아버지, 아서 형님, 릭 형님, 그리고 레이라 형수와 엘레네까지. 몇 안 되는 쿤트 가문의 식구들이 박수를 치며 축하해주었다. 오붓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그날은 푸짐하게 음식을 차려놓고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했다. 그중 절반을 시스가 먹어치운 것 같았다. 아하하.

그리고 다음날.

12월도 거의 끝나가는 시기였기 때문에 슬슬 레던 왕성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자, 신혼여행을 겸해서 다녀오자. 가서 원하는 건 뭐든지 사줄게! 줄리아, 뭐가 갖고 싶니?”

“쓸 만한 상단 하나 인수하고 싶어요.”

“……그래, 그렇구나.”

실리적인 아이. 앞으로 우리 집안의 재무 관리는 걱정 없겠구나.

“시스는?”

“……마법서. 4서클.”

“아참, 3서클을 모두 마스터했다고 했었지?”

고개를 끄덕이는 시스.

“그런데…… 보석이라든가, 옷이라든가 좀 여자다운 물건은 바라는 게 없는 거니, 둘 다?”

“……없어.”

“딱히 필요 없는데요. 아, 하지만 궁정 회의에 함께 참석해야 하니 화려한 드레스와 장신구를 사야 할 것 같긴 해요.”

“그렇군. 좋아, 일찌감치 가서 실컷 쇼핑하자. 좋은 물건은 싹 쓸어 모으는 거야.”

“사재기했다가 시세가 오르면 팔아치워서 차익을 얻는 것도 괜찮을 거예요.”

“……자꾸 그렇게 꿈도 희망도 없는 소리만 할래?”

“이히히.”

“그럼 가자. 넉넉잡고 사흘이면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어떻게 레던 왕성까지 사흘밖에 안 걸려요?”

“날아가면 되잖니.”

나는 노움을 불러서 직경 4미터 정도 되는 작은 흙집을 한 채 지었다.

“자, 들어가자.”

우리가 흙집 안으로 들어가자, 흙집이 통째로 둥실 공중에 떠올랐다.

우리는 흙집에서 편안히 쉬면서 레던 왕성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줄리아와 시스를 데리고 하늘로 소풍을 가자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실현될 줄이야. 정말 감개무량하다.

“와아, 빠르네요.”

“그치?”

“하늘을 나니까 너무 기분이 좋아요. 사람들이 모두 개미처럼 작게 보여요. 마치 지상에 있는 모든 인간이 내 발 아래에 있는 듯한 기분! 너무 좋아!”

“…….”

“후훗. 농담이에요, 단주님.”

응? 그러고 보니 아직도 단주님이라고 부르네?

“얘야.”

“네, 단주님.”

“왜 아직도 단주님이라고 부르니?”

“……네, 네?!”

갑자기 크게 당황해서 허둥지둥 하는 줄리아.

“결혼도 해서 정식으로 부부가 됐는데, 이제 날 부르는 호칭이 따로 있지 않니?”

“그, 글쎄요?”

올게 왔다는 듯, 줄리아는 짐짓 시치미를 뗐다.

“쯧쯧쯧. 시스, 날 뭐라고 불러야 하지?”

“여보.”

“어휴, 잘했어. 우리 귀염둥이 마누라.”

난 시스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그리곤 줄리아를 휙 돌아봤다. 내 시선을 받자, 줄리아는 움찔했다.

“잘 봤지? 따라해 봐.”

“그, 그게…….”

“어허!”

“이익! 하면 되잖아요! 여, 여, 여…… 그러니까, 여…….”

“됐다. 내가 너에게 뭘 기대하겠니.”

“칫! 아직 어색해서 그런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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