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167화 (167/529)

<-- 167 회: 7권 - 6장. 혼트 제국의 혼란 -->

“레디나…… 아!”

레디나, 레던 왕국의 화폐.

혼트 제국의 유목민족들은 자국의 화폐보다 레던 왕국의 화폐(레디나)나, 오리엔 왕국의 화폐(오린)를 더 자주 사용하긴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6만 레디나나 되는 돈을 전부 레디나로 줄 정도는 아니다.

“그렇군! 레디나로 그만한 거금을 대줄 사람은 육제후뿐이겠군요.”

패트릭도 그제야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탈라크 족을 비롯한 유목민족들과 혼트 황실간의 큰 싸움이 있을 것 같군요. 그 식량과 생필품을 전부 사고도 얼마든지 사줄 테니 더 가져오라니.”

“싸우려면 식량이 필요할 테니까요.”

유란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것 참, 올 겨울이 지나고 내년이 되면 더 험악해질 것 같은데, 내년에도 상행을 와야 할지 고민되는군요.”

“주군께 이 사실을 알리고 그분의 결정에 따르죠.”

패트릭이 말하는 주군이란 물론 카록이었다.

유란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래야겠지요. 단주님께서 시키신다면, 아무리 위험해도 또 올 겁니다. 상인으로서의 제 근성을 보여드려야지요.”

“과연.”

패트릭은 그런 유란이 존경스러워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이번 상행은 성공입니다. 2만 레디나 치의 상품을 가져와서 총 10만 레디나에 팔았으니 말입니다. 이제 돌아가는 일만 남았군요.”

“무사히 돌아갈 때까지는 성공이 아니지요.”

“하하,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이제 콘돌 경만 믿지요.”

“염려 마십시오.”

그리하여 유란 일행은 레던 왕국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상행은 순탄하게 끝날 것이라고 유란 일행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탈라크 족 부락을 떠난 지 사흘째 지났을 때, 사건이 발생했다.

초원지대를 가로지르고 있었던 오후 무렵이었다.

멀리서 어떤 무리가 말을 타고 달려오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큭! 유목민족들이군요.”

유란은 신음했다.

“유목민족이라고 모두 위험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패트릭의 물음에 유란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부 강도입니다.”

“예?”

“그들의 부락을 방문하면 우호적인 유목민족이지만, 초원에서 마주치면 전부 강도라 봐도 무방합니다. 그들에게 약탈은 생활입니다.”

“그런……!”

충격적일 정도로 야만적인 생활 관습이었다. 혼트 제국에 대해 떠드는 대륙인들의 악의적인 편견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패트릭은 바스타드 소드를 뽑았다.

“모두 전투 준비!”

그 외침에 열 명의 용병이 활과 화살을 꺼내 들었고, 유란의 부하 직원들 역시 활을 꺼내 전투 준비를 갖췄다.

유란 또한 활을 손에 쥐며 말했다.

“탈라크 족이나, 우리와 거래했던 부족이길 바라는 수밖에 없군요. 그들이라면 우릴 약탈하지 않을 테니까요.”

멀리서 나타난 무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숫자는 대략 20여 명 정도로 보였다.

생각보다 숫자가 적어서 패트릭은 안도했다.

“저 정도면 싸워볼 만합니다.”

이쪽에는 오러 엑스퍼트인 패트릭이 있었다. 저쪽에 그만한 강자가 없는 한,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그런데 20명의 유목민족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그들은 속력을 차츰 줄이더니, 그들 중 한 사람만 빠르게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 한 사람은 손을 흔들어보였다. 아마도 공격의 의사가 없다는 표현 같았다.

패트릭은 일행에게 공격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잠시 후, 한 명의 유목민족이 가까이 다가왔다.

유목민 사내는 유란을 보더니 아는 체를 했다.

“유란 상단주 아니시오?!”

유란도 놀란 얼굴을 했다.

“발락 씨?”

발락이라 불린 유목민 사내는 30대 중반쯤의 나이로 보이는 구릿빛 근육질의 인물이었다.

유란은 발락에게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시간이 없소. 부디 우리를 살려주시오.”

“살려달라니요?”

“랠리 족 놈들에게 쫓기고 있소. 숫자는 대략 50명 전후.”

“함께 싸우잔 말씀이십니까?”

놀란 얼굴을 한 유란에게 발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때, 패트릭이 단호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아니 되오! 난 유란 행수 및 일행을 보호할 의무가 있소. 미안하지만, 당신의 일은 스스로 해결했으면 좋겠소.”

발락은 갑옷으로 무장한 패트릭의 차림새를 보고는 고개를 숙여보였다.

“레던의 기사여. 이미 당신들 역시 우리를 뒤쫓는 놈들의 시야에 포착되었을 거요. 비열한 랠리 족 놈들이 그대들을 그냥 보낼 거라 생각하시오?”

“그들이 우릴 포착했다고?”

패트릭의 놀란 물음에 발락은 무슨 소릴 하냐는 듯이 대꾸했다.

“우리도 그대들을 이미 한참 전에 발견했었소. 초원을 누비는 우리들 바람의 일족의 시력은 그대들의 상상을 초월하오.”

‘바람의 일족’이란 유목민족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단어였다.

패트릭은 노한 얼굴로 발락을 노려봤다.

“당신, 일부러 이쪽으로 그들을 끌고 왔군?”

발락은 면목 없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지푸라기라고 붙잡는 심정이었소. 미안하게 됐소.”

“제기랄, 됐소! 하는 수 없지.”

발락의 안색이 환해졌다.

발락이 손을 흔들어보이자, 멀리서 대기하고 있던 그의 부하들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발락 일행은 모두 21명이었다.

“고맙소, 레던의 기사여.”

“패트릭 콘돌이오. 이 빚은 받아내겠소.”

“꼭 갚겠소. 콘돌 경.”

“전투 준비!”

패트릭이 소리쳤다. 다시 10인의 용병과 유란 일행이 화살을 활시위에 놓으며 전투 준비를 마쳤다.

발락 일행 역시 저마다 무기를 꺼냈다.

“전투 지휘는 내가 맡겠소. 전원 궁시 준비를!”

“잠깐 기다리시오.”

패트릭의 지시에 발락이 입을 열었다.

“뭐요? 내가 지휘하는 것에 불만이오?”

“아니오. 지휘권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소. 하지만 전술이 잘못됐소.”

“뭐라고?”

패트릭은 의아함을 느꼈다.

이쪽은 패트릭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활을 지니고 있었다. 발락 일행도 유목민족이기 때문에 당연히 활을 잘 쏜다.

그래서 궁시로 선공을 할 생각인데, 그게 뭐가 잘못 됐단 말인가?

“잊었소? 저쪽은 50명 전원이 바람의 일족이오. 궁시로 정면 승부를 하면 단연 필패란 말이오.”

“아!”

그제야 패트릭은 실수를 깨달았다.

바람의 일족, 즉 유목민족은 승마술과 함께 활쏘기 또한 어릴 때부터 배운다. 게다가 저쪽은 50명 내외. 같이 원거리에서 활쏘기로 싸우면 불리한 게 당연했다.

“당신 말이 옳군. 그럼 어떻게 해야 하오?”

순순히 실수를 인정하는 패트릭의 태도에 발락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 기사라 불리는 자들은 오만불손하고, 자존심이 세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하던데, 패트릭 콘돌이라 한 저 젊은 기사는 겸손했던 것이다.

발락은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우리 쪽에 유리한 게 있다면 바로 콘돌 경 그대요.”

“나 말이오?”

“맞소. 그대는 우리 중 유일하게 중갑옷으로 무장하였소. 그리고 보아하니 강한 오러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혹시 상당한 경지를 이루지 않았소?”

“오러 엑스퍼트요. 당신도 오러를 익혔소?”

“오러 유저 상급이오.”

“그랬군.”

“아무튼 콘돌 경이 앞장서서 근접전을 벌이면 이쪽에 승산이 있을 거요.”

“우리 일행은 용병 열 사람을 제외하고는 근접전을 못하는데, 오히려 수적으로 더 불리한 게 아니오.”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소. 콘돌 경, 내 의견에 따라주시겠소?”

발락이 물었다.

패트릭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전투 지휘에 익숙해 보이니 당신에게 모든 걸 맡기지.”

“고맙소.”

감사를 표한 발락은 전방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랠리 족의 무리라고 했던 50여 명의 적이 빠른 속도로 돌진해오는 모습이 보였다.

발락은 모두에게 지시를 내렸다.

“말이 없는 자들은 일단 여기서 대기. 콘돌 경과 나머지는 우회하여서 놈들의 측면을 친다!”

“옛!”

발락의 부하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발락의 지시는 계속되었다.

“우리가 싸움을 시작하면 여기 대기하던 자들은 활 사정거리까지 다가간 후, 내가 신호를 주면 일제히 활을 쏜다.”

“알겠습니다.”

유란이 대표로 대답했다.

‘능숙하구나.’

발락의 신속한 지휘를 본 패트릭은 내심 감탄을 했다. 감탄하고 있는 패트릭에게 발락이 말했다.

“앞장서 주시오. 무장과 실력이 출중한 콘돌 경이 앞장서서 공격을 받아내는 편이 아군의 희생이 적어지오.”

“그러겠소.”

패트릭은 앞장서서 말을 달렸다.

“가자! 이랴!”

발락과 20명의 부하들이 뒤따라 달렸다.

무거운 중갑옷을 입은 패트릭의 말의 속력이 조금 느렸지만, 발락 일행은 적당히 속력을 줄여서 보조를 맞췄다.

그렇게 전투가 시작되었다.

패트릭과 발락 일행은 오른쪽으로 빙 돌아서 측면에서 공격을 감행했다.

랠리 족 전사들은 옆에서 공격해오는 패트릭 일행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가소로운 놈들, 활을 쏴라!”

랠리 족 대장의 명령에 랠리 족 전사들이 일제히 달리던 말을 멈춘 뒤, 활을 쏘기 시작했다.

달리는 말 위에서 활을 쏘는 것은 극소수의 전사만이 할 수 있는 기예. 대부분의 유목민족은 가만히 멈춰선 말 위에서 활을 쏘는 게 고작이었다.

랠리 족 전사들이 일제히 화살을 날리자, 그때부터는 앞장서 있던 패트릭의 활약이 시작되었다.

파파팍! 슈각! 팟!

패트릭은 오러가 실린 바스타드 소드를 빠르게 휘둘렀다. 날아드는 화살이 오러에 휩쓸려 박살이 나거나, 그의 두꺼운 중갑옷에 튕겨나갔다.

선두에 선 패트릭이 방패막이가 되어서 화살을 모두 막아낸 덕분에 뒤따르는 발락 일행의 피해는 전무했다.

궁시가 무위로 돌아가자 랠리 족 전사들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대장이 곧 명령했다.

“놈들의 숫자가 얼마 안 된다. 총공격해라! 앞장 선 놈부터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옛!”

랠리 족 전사들은 즉시 말을 몰아서 패트릭 일행에게 덤벼들었다.

그때, 패트릭은 비로소 유목민족이 돌팔매질로 공격하는 것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랠리 족 전사들은 한 손으로 말을 몰면서 다른 손으로 주머니에 든 돌멩이를 허공에 던졌다.

그리고 잽싸게 슬링(sling: 투석 끈이라고도 불리는 무기. 안대 같은 모양으로, 천에 돌멩이를 넣어 휘둘러 날린다.)을 꺼내 휘둘러서 돌멩이를 낚아챘다.

그대로 빙빙 슬링을 돌려 회전시켰다가 원심력을 실린 돌멩이를 쏘아 보냈다.

그 모든 동작을 달리는 말 위에서, 한 손으로 해낸 것이다.

‘대단한 기예다!’

패트릭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적이 날리는 돌멩이가 집중되자, 감탄만 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차아!”

패트릭은 검을 휘둘러 돌멩이를 쳐내기 시작했다.

파팍! 파앙! 땅! 까앙!

주로 얼굴을 노리는 돌멩이만 막아냈다. 몸통을 노리는 돌멩이는 입고 있는 중갑옷에 튕겨나갔다.

분명 유목민족의 돌팔매질은 대단한 기예였지만, 패트릭처럼 중무장을 한 기사에게는 소용없다는 단점이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무장상태가 가벼운 랠리 족 전사들에게는 돌팔매질이 효과가 있었다.

“투석해라!”

발락의 명령에 그의 부하들도 슬링으로 돌을 쏘아 날리기 시작했다.

퍼억! 퍽퍽! 빠악!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