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166화 (166/529)

<-- 166 회: 7권 - 6장. 혼트 제국의 혼란 -->

유란 상단.

혼트 제국에서 주로 상행을 많이 다닌 이 상단은 본래 유목민족들에게 약탈을 당하는 바람에 파산의 위기를 맞았었다.

그러나 최근 카록 상단에 인수되어서 간신히 구사일생하였고, 지금은 카록을 위해서 다시 혼트 제국으로의 상행을 감행하고 있었다.

이번 상행의 책임자인 행수 유란은 혼트 제국에 정통한 상인으로, 예전에 자신이 갖고 있던 거래처를 다시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의 경호원으로서 패트릭 콘돌, 카록이 총애하는 기사이자 전생 때는 용병왕으로 불렸던 재능이 넘치는 청년이 동행했다.

“왠지 낌새가 좋지 않군요.”

20대 후반의 남자, 유란이 중얼거렸다.

“뭐가 잘못됐습니까?”

패트릭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예. 제가 전에 혼트 제국에 상행을 갔다가 유목민족들에게 약탈당한 이야기 기억하십니까?”

“물론입니다.”

“그때도 평소보다 더 유목민족들의 활동이 과격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때보다 더 공기가 좋지 않습니다. 거래를 한 부족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들 얼굴 표정이 좋지 않았고, 아무튼 무언가 큰일이 벌어질 듯합니다.”

“상인으로서의 직감이시군요.”

“아, 예.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지만, 하도 험한 혼트 제국에 많이 다녀봐서 이런 위험한 낌새는 곧잘 느끼곤 합니다.”

“특이하군요. 전장을 누빈 베테랑 용병들이 위험을 감지하는 후각을 가진다고 하던데, 유란 행수도 어찌 보면 베테랑이라 불릴 경지에 이른 게 아닐까 싶군요.”

“하하, 별 과찬의 말씀도. 제가 그런 대단한 사람이었으면, 일전에 홀랑 약탈당해 알거지가 되진 않았겠죠.”

“커다란 위기를 겪고 나서 성장하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하하, 부끄러우니 그런 이야기는 그만하죠. 아무튼, 단주님께서 맡기신 식량 및 생필품들이 벌써 절반이나 팔아치운 것도 이상합니다.”

“이상하다고요?”

“예. 분명 늘 식량이나 생필품이 부족한 혼트 제국이고, 5배나 높은 가격에 팔았으니 이익이 나서 기쁘긴 합니다만, 그 절반을 모두 유목민 부족들이 구입한 게 이상합니다. 평소보다 훨씬 식량을 많이 찾고 있는 것이…….”

“식량은, 전쟁에 꼭 필요한 것이죠.”

“바로 그겁니다. 아무래도 유목민족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싶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베테랑 용병들을 열 명이나 고용했고, 유란 행수의 안전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콘돌 경께서 그리 말씀해주시니 든든하군요. 제 부하들도 한 가닥씩 하는 녀석들이니 어떤 위기에도 문제없을 겁니다.”

전 유란 상단의 직원들이었던 사내들은 모두 아홉 명으로, 나이가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까지 나이대가 젊었다. 또한 다들 활을 잘 쐈고, 창도 조금 다루는 듯했다.

또한 활을 잘 쓰는 베테랑 용병 10명을 고용했기 때문에 안전에는 문제없어 보였다.

“그런데 어째서 활을 쓰는 용병들만을 고용한 겁니까?”

“유목민족들은 활을 잘 쏘고, 빠르게 말을 쏘며, 돌팔매질까지 합니다. 원거리 공격에 특화된 전력이 아니면 대항할 수가 없지요.”

“돌팔매질까지?”

“예. 직접 눈으로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직접 볼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가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탈라크 족의 부락.

유목민 부족 중 하나로, 수십 개의 부족들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강력한 무리였다.

그리고 유란의 주 거래처 중 하나였다.

탈라크 족 사람들이 다들 유란을 알아보았다.

“여어, 유란! 오랜만이군!”

“하하. 안녕하셨습니까, 벤젠 씨.”

“작년에는 왜 안 왔나?”

“큰 문제가 있어서 사정이 그랬죠.”

유란은 여러 사람에게 인사를 나누며 부락 안으로 들어섰다.

이윽고 부락 안쪽에서 몇 명의 사내들이 나왔다. 다들 덩치도 컸고, 허리춤에는 커다란 시미터로 무장하고 있었다. 척 봐도 역전의 용사들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겨오는지라, 패트릭은 살짝 긴장을 했다.

유란이 그런 패트릭에게 속삭였다.

“너무 경계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망토로 무기를 감추십시오.”

“아, 네. 그런데 저자들은 무기를 감추지 않잖습니까.”

“무기를 내놓고 다니는 이들은 족장의 친위대뿐입니다. 저들이 그 친위대이지요.”

“아, 그렇군요.”

그제야 패트릭은 망토자락으로 허리춤의 바스타드 소드를 감췄다.

친위대 사내들은 유란에게 다가왔다. 모두 일곱 명이었다.

“잘 왔소, 유란 씨. 족장님이 기다리고 계시오.”

“예. 가지요.”

유란 일행은 사내들의 안내에 따라 이동했다.

커다란 천막 앞에 도착하자, 사내들이 말했다.

“유란 씨만 들어가시오.”

“나도 함께요.”

패트릭이 나섰다.

사내들은 그런 그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허락 불가하오.”

“유란 씨 이외에는 족장을 뵐 수 없소.”

“난 유란 씨를 경호할 책임이 있소. 양해를 부탁드리오.”

패트릭도 지지 않았다.

사내들의 눈빛이 험악해졌다.

“우린 분명히 말했소.”

“나도 분명히 말했잖소.”

“좋은 말로 할 때 순순히 들으시지, 레던의 애송이.”

“별로 무섭지 않소.”

패트릭은 그렇게 대꾸했다.

사내들은 마침내 저마다 시미터에 손을 가져갔다. 패트릭 또한 망토자락을 걷고, 바스타드 소드를 드러냈다.

금방이라도 싸움이 벌어질 때였다.

“시끄럽잖아. 둘 다 들어오라고 해, 자식들아.”

천막 안에서 걸걸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친위대 사내들은 당황하여 시미터에서 손을 뗐다.

패트릭도 다시 바스타드 소드를 망토로 감추었다.

사내들이 패트릭에게 말했다.

“운이 좋군, 애송이.”

“운이 좋은 게 누구였는지 언젠가는 알게 될 거요.”

패트릭이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대꾸하자 사내들은 또다시 분노했지만, 순순히 길을 비켜주었다.

유란과 패트릭은 함께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여어! 왔나, 유란.”

한 사내가 두 사람을 반겼다.

“……!”

유란도 패트릭도 깜짝 놀랐다.

천막에서 그들을 반긴 사내는 키가 2미터를 훌쩍 넘기는 거대한 체격의 소유자였다. 그 거대한 몸뚱이는 근육이 철갑처럼 자리 잡고 있어, 그 자체로 강철의 탑을 연상케 했다.

거한은 벌거벗을 채 침상에 앉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나신의 여자 둘이 거한과 한데 얽혀 있었다. 한 여자는 젖가슴을 거한의 등에 맞댄 채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고, 다른 여자는 꿇어앉은 채 그의 아랫도리를 애무하고 있었다.

쾌락과 퇴폐의 향연이 벌어지는 천막 안에서 거한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유란과 패트릭을 반겼다.

“자리에 앉지.”

“아, 예.”

그제야 정신을 차린 유란은 패트릭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패트릭은 그런 거한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심기가 불편해졌다.

“거기 잘생긴 친구. 들어보니 제법 배짱 좋던데, 실력도 그만큼 있나?”

패트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자칫 잘못하면 심기를 거슬러서 추방당하거나,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혼트 제국에선, 특히나 유목민족들에게는 강한 면모를 보일수록 좋다고 했지?’

함께 동행을 하면서 유란에게 들었던 충고를 떠올린 패트릭은 입을 열었다.

“적어도 당신의 친위대라 하는 저 자들은 몇 명이든 이길 자신이 있소.”

“크하핫! 좋군. 그럼, 이 티란 탈라크도 이길 자신이 있나?”

거한은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며 물었다. 이번에도 패트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크하하하!”

탈라크 족의 족장, 티란 탈라크는 짐승이 포효하듯이 크게 웃어 젖혔다.

“크흐흐흐, 예전 같았으면 한 판 붙어보자고 했을 텐데 말이야!”

탈라크 족장은 불쑥 자신의 아래를 입으로 애무하던 여자의 뺨을 가볍게 때렸다. 화들짝 놀란 여자는 애무를 그만두고 물러났다.

하늘 높이 치켜선 그의 남근이 패트릭의 기분을 더 언짢게 만들었다.

“지금은 함부로 싸움질을 하면 안 돼.”

탈라크 족장이 손을 내밀자, 침상에 있는 두 여자가 그의 옷을 내밀었다.

탈라크 족장은 바지를 입으며 말을 이었다.

“이 몸의 옥체에 손상이 가해지면 안 되거든.”

옷을 모두 입은 탈라크 족장은 클클클 짐승처럼 웃었다.

“장차 왕이 될 남자니까. 나는.”

유란도 패트릭도 그 말에 경악을 해야 했다.

‘왕이라니? 이 남자가 실성을 했나?’

패트릭은 눈앞의 남자가 여러모로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야심만만하다 해도 절대 전제의 황제가 군림하는 혼트 제국에서 왕이 될 거라니?

유목민족들이 아무리 제멋대로라 해도 감히 그런 소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탈라크 족장은 놀란 두 사람을 보며 웃었다.

“너무 놀라게 만들었나? 뭐, 그건 됐고 가져온 물건이나 좀 보지.”

“예? 아, 예! 여기 있습니다.”

유란은 허둥지둥하며 가져온 서류를 보여주었다. 서류에는 그가 가져온 상품이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쭉 훑어보던 탈라크 족장은 간단하게 한 마디 내뱉었다.

“전부 사겠다.”

“예?!”

“얼마면 되겠나? 레디나로 지불해주지. 이 동네 화폐는 싫어할 테니까 말이야.”

“저, 전부 하면 딱 잘라 5만 레디나만 주시면 됩니다.”

“6만 주겠다.”

“……?!”

유란은 경악의 연속이었다. 5만을 불렀는데, 오히려 1만을 더 얹어준다?

그러나 유란은 곧 냉정을 되찾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여 바라시는 것이 더 있으신지요?”

“1만을 더 쳐주는 조건은 딱 하나야. 식량! 식량을 더 많이 가져와. 모두 사줄 테니까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사주신다고 하니 상인으로서는 이보다 더 기쁠 수 없습니다. 반 년 이내로 곡물을 더 가져오겠습니다.”

“좋아. 되도록 오래 보존할 수 있는 곡물이 좋겠군. 말린 고기 같은 것도 좋고.”

“예. 그런데…….”

유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못 뵌 사이에 배포가 무척 커지신 것 같습니다. 자금 사정에 여유가 생기셨나봅니다.”

“아아. 왕이 되어달라고 돈을 넙죽넙죽 바쳐대는 고마운 놈들이 있어서 말이야.”

그리 대꾸하며 탈라크 족장은 킬킬거렸다.

비로소 그 이면에 모종의 음모가 있음을 깨달은 유란은 굳은 얼굴로 침묵했다.

더는 알고 싶지 않아졌다.

아니, 앞으로의 상행에 어떤 영향이 갈지 알고는 싶었지만, 함부로 알려고 했다간 험한 꼴을 당할 것 같았다.

“아무튼 돈은 걱정하지 말고, 식량이나 가져와. 유란 당신은 그간 우리 부족과 많이 거래를 해왔으니 큰돈을 만질 기회를 준 거라고.”

“감사합니다.”

“좋아. 그럼 나가봐.”

탈라크 족장이 휙휙 손짓하자 유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패트릭도 따라 일어섰다.

그렇게 천막을 나서자 유란은 긴장이 풀렸는지 가슴을 쓸어내리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휴우! 정말 이렇게 긴장해본 것도 오랜만이군.”

“저자는 대체 뭡니까?”

“천천히 설명하겠습니다. 일단은 어서 계산을 마치고, 이곳을 떠나지요.”

“예.”

유란 일행은 가져온 곡물 및 생필품을 모두 넘기고, 6만 레디나를 건네받았다.

유란 일행은 계산이 끝나자, 서둘러 탈라크 족 부락을 빠져나왔다.

“족장 티란 탈라크는 본래 좀 거친 성격이긴 해도 저 정도로 난폭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2년 전에 봤을 때만 해도 저렇지는 않았는데…….”

“그럼 그 짧은 사이에 저렇게 사람이 변한 겁니까?”

“예. 아무래도 누군가가 그를 부추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 누군가는 바로 육제후가 아닐까 싶군요.”

“육제후!”

유란은 심각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까 탈라크 족장이 6만 레디나를 선뜻 내준 것 기억하십니까?”

“예. 레던 왕국의 웬만한 영주도 그만한 돈을 마련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물며 그렇게 선뜻 내주기는…….”

“그리고 전부 ‘레디나’였지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