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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159화 (159/529)

<-- 159 회: 7권 - 3장. 카록의 여자들 -->

란즈헬이 쿤트를 찾아왔다!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내가 제이슨과 함께 연회장에 나타나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런, 이런. 제이슨을 바라보는 왕실파 여러분들의 시선이 별로 좋지 않다.

일부 육제후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적 있는 영주들은 대놓고 이를 바득바득 갈 정도였다. 음, 이가 갈릴 정도로 싫다는 표현이 바로 저런 거였군.

제이슨은 그 모든 악의 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수행하는 기사들도 없이 혼자 나아가는 모습이 그렇게 당당할 수가 없었다. 절반은 의지, 다른 절반은 오기였겠지만, 아무튼 적어도 배짱 없는 남자는 아니었다.

그렇게 걸음을 옮길 때였다.

손님들 중 웬 갈색 머리칼의 젊은 귀족이 제이슨의 정면으로 나섰다.

덕분에 제이슨은 걸음을 멈추고, 그 귀족을 바라보았다.

나이는 20대 중반쯤 되었을까. 얼굴은 제법 그럴 듯하게 생긴 젊은 귀족은 당당하게 소리쳤다.

“란즈헬 백작가의 대공자 제이슨 자작! 나는 마크 패더런 남작이다!”

“관심 없다.”

제이슨의 차가운 대꾸.

“큭!”

무시당해버린 패더런 남작이란 남자의 얼굴이 분노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대의 가문을 비롯한 육제후는 바덴 강의 통행세라는 명목으로 갈취를 하여 나라를 피폐하게 만들었는데, 그런 주제에 뻔뻔스럽게 잘도 이 자리에 고개를 들고 나타났구나. 다행히도 국왕 폐하의 현명한 조치에 의하여 통행세가 인하된 덕분에 백성들의 삶이 크게 나아져 칭송의 소리가 매우 높다. 그대는 부끄럽지도 않은가?!”

이런.

나는 내심 혀를 차며 그 상황을 지켜봤다.

저 패더런 남작이라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디 제이슨이 어떻게 대응할 지는 흥미로웠다.

제이슨은 차가운 눈길로 패더러 남작을 응시하더니 이내 말했다.

“흥, 버러지 같으니.”

“뭐, 뭐라고!”

제이슨의 나직한 독설에 연회장이 술렁거렸다. 심지어는 나조차도 놀라 휘파람을 불렀다.

제이슨이 말했다.

“그래서 뭘 어쩌란 말이냐? 이미 바덴 강 통행세는 협상을 통해 하향 동결되었다.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문제를 제기해서 뭘 어쩌겠다는 것이냐? 나는 과거를 문제 삼아 의미 없이 물고 늘어지는 자를 버러지라고 부르고, 미래를 논하는 자를 상대할 만한 자라 여긴다.”

“이이, 마, 말이면 단 줄 아느냐!”

“잘 아는군. 말이 다가 아니다. 정 과거를 문제 삼고 싶거든 나로 하여금 사죄와 배상을 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가져와라. 가진 수단이 그 입 밖에 없다면, 입을 놀리기 보다는 네 역량을 키우는데 노력을 기울여라. 나는 지금껏 그렇게 살았다.”

“이익……!”

젊은 귀족은 분한 얼굴로 이를 갈았지만, 더는 말을 하지 못했다.

쯧쯧쯧. 보아하니 제이슨을 멋지게 질타하여서 사교계에서 명성을 얻고 싶었던 모양인데, 거꾸로 쓴 맛을 보았군. 오히려 스스로 제이슨의 명성을 높여주는 재물이 되고 말았다.

어딜 가나 저런 작자가 꼭 하나씩은 있다.

주로 무명의 약소가문 출신들이 눈에 띄어서 출세하기 위해 저렇게 튀는 짓을 한다.

하지만 남을 비방함으로써 명예를 얻고자 하면 결국 저렇게 된다. 또한 그런 방식으로 쌓은 명예는 결국 오래 가지 못하고 모래성처럼 산산이 사라지고 만다. 그 뒤에 실체 없는 환상에 취하여 덧없게 산 자신의 삶을 후회하는 이들이 결코 적지 않다.

“흥.”

제이슨은 휙 등 돌려 계속 걸음을 옮겼다.

휘유.

역시 란즈헬 백작가의 대공자라 이건가.

과연 보통 인물은 아닌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연회장의 손님들은 제이슨의 방금 전의 대응을 놓고 수군거리고 있었다. 노움의 감각을 통해 들어보니 ‘역시 보통 놈은 아니다’, ‘과연 란즈헬 백작의 아들인가’ 등등 나쁘지 않은 평가가 내려졌다.

성격 못된 놈이란 소리도 섞여있긴 해도, 일단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인식이 심어진 셈이었다.

제이슨은 아버지와 아서 형님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곤 아버지에게 말했다.

“자기소개는 생략하겠소. 축하하오.”

“감사하오. 좋은 시간되시오.”

아버지도 무뚝뚝하게 형식적인 인사를 건넬 뿐이었다.

그때, 아서 형님이 딱딱한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요량인지 제이슨에게 말했다.

“축하하러 오신 자리인데, 제 딸 엘레네를 한 번 보시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제이슨은 레이라가 안고 있는 엘레네에게 다가갔다. 그의 차가운 시선이 엘레네에게 향했다.

뭐야! 우리 사랑스런 엘레네를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좀 더 따스한 눈빛으로 봐줘야지!

엘레네는 울거나 웃지도 않고 그저 제이슨을 호기심 어린 눈망울로 바라보았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제이슨은 흠칫했다.

황급히 고개를 돌린 제이슨은 날 쳐다봤다.

“내 숙소로 쓸 방으로 안내해라.”

“예, 그러지요.”

근데 이 인간이 아까부터 자꾸 날 하인처럼 대하네.

*   *   *

세렌스 공주와 라엘은 한동안 다른 연회 참석자와 대화를 나누고 즐기다가, 밤이 깊어지자 뒤뜰로 빠져나갔다.

달빛이 내리쬐는 아담한 정원의 아름드리나무 아래에서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눴다.

“어땠나요?”

세렌스 공주가 물었다.

“확실히, 폐하와 아버님의 말씀대로였습니다. 그는 보통 인물이 아닙니다. 사람을 파악하는 능력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정령술과 상재도 모자라, 그런 통찰력까지 지녔다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랬나요?”

세렌스 공주는 마치 자신이 칭찬 받은 것처럼 기뻐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연회에 제이슨 란즈헬을 초대하는 과감한 수를 두었습니다. 어떤 의도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치적인 면에서도 강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말을 마친 라엘은 세렌스 공주를 응시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공주 저하께서는 어떠셨습니까?”

그녀는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쩐지 느낌이 너무 좋은 남자였어요. 처음 만난 순간부터 줄곧 친한 친구사이였던 것처럼 친숙하고, 거리낌이 없었어요.”

“역시, 그가 마음에 드셨군요.”

“네. 결심했어요.”

세렌스 공주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바마마의 말씀대로 그와 결혼하겠어요. 그의 아내가 되고 싶어요.”

라엘의 눈빛이 빛났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공주 저하의 결혼상대로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공주 저하의 마음에도 들고, 우리 오리엔 왕국을 위한 길이기도 하니 금상첨화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결심하신 이상 확실하게 그의 마음을 얻을 필요가 있겠군요.”

“첫 만남 때부터 저를 무척 친근감 있게 대해주었어요. 그도 제게 어느 정도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요? 이 귀한 미스릴 코트까지 빌려주었는걸요.”

그러나 라엘은 고개를 저었다.

“속단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는 원채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는 대가의 경지에 이른 인물이라, 상대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알맞은 태도를 취하곤 합니다. 일전에 국왕 폐하를 알현했을 때에는 강한 설득에 도발까지 섞어서 폐하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던 남자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저를 친근하게 대해주었던 것은 이성에 대한 감정 때문이 아니라…….”

“예. 그건 아마 카록 쿤트란 인물의 처세술이었을 겁니다. 실제로 첫 만남으로 공주 저하께 좋은 인상을 심는데 성공했잖습니까.”

세렌스 공주의 얼굴에 약간의 실망감이 어렸다.

그녀는 카록이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남편이 될 남자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기뻤다.

왕실의 혈통을 타고난 공주로서 스스로 정치적인 수단이 되어 원치 않는 상대와도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이 숙명이었다. 왕가의 일원으로서 태어나면서부터 특권을 누렸으니 그에 따른 의무가 따르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만약 그 숙명에 따라 결혼해야 하는 상대가 자신이 원하는 남자라면! 그것은 신이 내려준 행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렌스 공주는 카록을 놓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잘생기거나 근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남자는 아니었다. 멋진 남자라면, 오히려 눈앞의 라엘이 훨씬 완벽하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세렌스 공주는 카록에게 강하게 끌렸다.

처음 보자마자 친근하고 동질적인 느낌이 드는 게, 내 남자는 바로 이 사람이구나 하는 확신이 들 정도였다.

“낙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조만간 우리는 레던 왕실에게 동맹을 제안하고, 그 필수 조건으로 카록 쿤트를 공주 저하의 데릴사위로 요구할 것입니다. 동맹은 레던 왕실의 입장에서는 아주 절실한 것. 그는 나라를 위해 좋든 싫든 공주 저하의 신랑이 되어야 하는 입장에 놓일 겁니다.”

“좋든 싫든…… 인가요.”

세렌스 공주는 우울해졌다.

자신은 이렇게 그가 좋은데.

그 역시 자신과 결혼하고 싶어 하기를 원했다. 기쁘게 자신의 남편이 되어주길 바랐다.

“그러니 더더욱 공주 저하께서는 정신 똑바로 차리시고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가 우리의 안배에 의하여 결혼을 강요받았을 때, 만약 그 역시 공주 저하께 어느 정도 감정이 있다면 그는 거부감 없이 혼사를 받아들일 겁니다.”

“그렇군요. 그럼 전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가 봤을 때, 카록 쿤트는 여자관계에 대해서는 의외로 서툴러보였습니다. 애당초 정치나, 사업 문제로 사람 상대할 땐 귀신같은 사람이 지금껏 밝혀진 여자관계가 전무하다는 것은 그가 동성애자가 아닌 이상 연애에 서투르다는 뜻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그런 타입일수록 결혼 문제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해결하기를 선호합니다.”

“전통적인 방식 말인가요?”

“예. 바로 가족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죠.”

라엘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 쿤트 가문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갖도록 하십시오. 그럼 자연히 카록 쿤트의 호의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자 세렌스 공주도 눈을 빛냈다.

“네,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바스크 쿤트 자작은 손녀딸 팔불출이고, 아서 쿤트 대공자 역시 딸과 아내에 대한 애정이 지극했어요. 레이라와 엘레네랑 친해지면 쿤트 가족 전원과 친하게 될 거예요.”

“저도 동의합니다. 쿤트 가문의 남자들은 오랫동안 남자들끼리 살았던 탓에 최근 몇 년 사이에 새로이 가족이 된 레이라와 엘레네에게 지극정성이었습니다. 카록 쿤트 또한 조카딸에 대한 애정이 상당했습니다. 우리 브리튼 공작가의 첩보에 따르면, 조카딸 엘레네의 작명을 놓고 쿤트 가문의 남자들이 심하게 다투기까지 했답니다. 결국 국왕이 직접 엘레네라는 이름을 하사한 끝에야 겨우 불화가 종식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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