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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158화 (158/529)

<-- 158 회: 7권 2장. 제이슨 란즈헬의 방문 -->

그제야 제이슨의 굳은 표정이 약간 풀렸다.

뭐야. 사실은 약간 겁먹은 거였군?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어서 일부러 높이 날아오른 겁니다.”

“확실히 엿들을 사람은 없겠군.”

제이슨은 하늘의 정경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내심 웃었다.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신 것 같군요. 조금은 긴장을 푸시는 게 어떻습니까?”

“뭐라고?”

“전 대공자님과 허심탄회하게 미래를 논의해보기 위해 일부러 초대장을 보내어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어떤 함정도, 나쁜 의도도 없습니다. 저희를 너무 경계하기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치적 국면이야 어떻든 간에, 오늘만큼은 말입니다. 사랑스런 조카딸 엘레네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을 퇴색시킬 마음은 없습니다.”

“내가 긴장했다는 소리인가.”

“예. 적진에 혈혈단신으로 돌격하는 얼굴을 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

나는 그의 기분을 이해할 것 같았다.

육제후의 두뇌라 불리는 볼프강 란즈헬 백작의 맏아들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압감을 받는 것임을 짐작이 간다.

나 역시 전생 땐 같은 기분을 느꼈으니까.

오러를 느끼지 못하는 체질이란 걸 알았을 때, 아무리 노력해도 강인한 아버지나, 천재인 릭 형님처럼 될 수 없다는 걸 알고서 얼마나 좌절했던가. 아서 형님이 가문의 후계자로서 일찌감치 역할을 수행할 때, 나 혼자만 설 곳이 없음을 느끼고 절망했었다.

아비만 못한 아들이라는 말이 평생 따라 다닐까봐 늘 긴장하고 경계할 것이다.

그래서 늘 저렇게 차갑고, 표독하게 타인을 대하는 것이다.

“아까 전에 녹을 치워준 빚을 갚겠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렇다.”

“그럼 한 가지 요구하겠습니다.”

“말해 봐라.”

“제가 농담을 할 테니까 화내지 말아주십시오.”

제이슨은 잠시 황당하다는 듯이 날 쳐다보았다. 나는 씨익 웃었다.

“……좋다.”

“제이슨 대공자님과 가장 닮은 동물이 무엇일 것 같습니까?”

“모른다.”

“고슴도치입니다.”

조금은 울컥했는지 제이슨의 눈빛이 블리자드처럼 차가워졌다.

흥, 하나도 겁 안 나거든?

“무슨 말을 해도 뾰족하게 반응하시는 것이 긴장해서 가시를 곤두세운 고슴도치 같습니다. 하하하.”

“그러는 그대는 예티를 닮았군.”

“…….”

이번엔 내가 할 말을 잃을 차례였다.

그건 동물이 아니라 몬스터잖아! 아 놔, 이놈의 예티 코트!

뭐, 아무튼 스타일은 구겼지만, 그 덕에 분위기는 다소 좋아졌다. 물론 제이슨의 차가운 표정은 변함이 없었지만, 전보다는 다소 여유가 보였다.

“고슴도치라. 확실히, 그렇게 보일 수 있겠군.”

제이슨이 말문을 열었다.

“어찌 긴장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버님은 병들었고, 가문은 차기 가주인 나의 능력을 시험하려 들고, 혼트 제국은 본격적으로 태동(胎動)한다. 란즈헬 백작가의 대공자란 본래 이런 위치다.”

“하지만 인생은 원래 늘 긴장의 연속이죠. 어렸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대부분 어릴 때가 가장 좋았다고는 하지만, 사실 어릴 때도 마음을 졸이며 걱정하던 문제는 늘 있었습니다. 아버님께 혼나면 어쩌지, 왜 난 이렇게 검술에 재능이 없는 걸까, 성인이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하지, 하고 말이죠. 지금 생각하면 유치한 문제도 그때는 국제정세만큼이나 심각하게 고민했죠.”

“…….”

“언제나 고민해야 할 일들이 항상 눈앞에 있는데, 평생 내내 긴장만 하고 있다가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을까요?”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게다가 긴장하고 있다는 건, 정신이 눈앞에 있는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좀 더 마음을 편하게 갖고 보면 훨씬 많은 것들이 보이곤 하죠.”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지?”

제이슨이 물었다.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긴장을 조금 풀고, 왕실과 육제후가 협력을 한다면 지금보다 더 다양한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까요?”

“그건 즉 나더러 차후 가주가 되었을 때 육제후와 왕실의 화해를 이끌어달라는 소린가?”

“화해까지는 아닙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라는 말이 있지만, 오랜 갈등이 짧은 시간 내에 사라지지는 않겠죠.”

“그럼?”

“다만 조금은 생각을 유연하게 해보자는 뜻입니다. 열심히 아웅다웅 다투고 있다가도 어느 한 면에서는 서로 협력할 줄도 아는 그런 관계 말입니다. 예를 들자면…….”

제이슨은 나의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왕실파와 육제후가 대립하고 있어도, 한편에서는 저와 란즈헬 백작가가 합작투자로 사업을 한다면 더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제이슨의 눈빛이 변했다.

“합작투자라. 날 불러낸 목적은 그건가?”

“아닙니다. 예를 들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합작투자라……. 나쁘지는 않겠군요. 란즈헬 백작가의 자금력을 빌려서 사업을 추진한다는 상상도요. 그렇게 된다면 사업이 성공했을 때 함께 이익을 누릴 수 있어서 좋고, 유사시에는 왕실과 육제후가 협력해야 할 때 우리가 소통의 통로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겠군요.”

‘유사시’란 물론 혼트 제국의 침공을 뜻했다.

“잘도 그런 생각이 나오는군. 우리는 이미 한 번 바덴 강 협상 건으로 그대에게 쓴 맛을 보았고, 그대 또한 한 차례 암살을 시도 당했지. 그런 우리가”

으음. 그래, 새삼 기억나는군. 베르한 용병단이라는 용병단의 탈을 쓴 도적놈들.

란즈헬 백작의 사주로 그들이 내 목숨을 노렸더랬다. 퇴치하긴 했지만, 팔과 갈비뼈가 왕창 박살나는 부상을 당했지. 그때 미래의 용병왕 패트릭이 곁에 없었더라면 죽을 뻔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난 죽지 않고 살아 있고, 그때의 일로 자극을 받은 덕분에 열심히 수련해서 상급 정령사가 되었다. 지금은 오히려 감사하다고 해야 할 지경.

“볼프강 란즈헬 백작님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할 겁니다. 하지만 제 눈앞에 있는 남자가 볼프강 란즈헬이 아닌 제이슨 란즈헬이기 때문에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겁니다.”

“내가, 나이기 때문에?”

“예. 아직 전 제이슨 대공자님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 않지만, 대공자님이 란즈헬 백작님과는 다른 타입의 인간이라는 것쯤은 압니다.”

제이슨은 왠지 동요하는 기색이 다분했다.

그래, 내가 정곡을 찔렀군.

부친과 그는 서로 다른 인간이기 때문에 란즈헬 백작을 흉내 내려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내가 지적한 것이다.

좋아.

조금 더 그쪽으로 밀어붙여보자.

“만약에 대공자님이 아닌 란즈헬 백작님이었다면, 우리 쿤트 가문의 초대에 응했을까요? 그렇지는 않았겠죠. 가치가 없는 자리라고 판단하셨을 테니까요. 하지만 대공자님은 이 자리에 오셨습니다. 그것은 곧 란즈헬 백작님이 걸었던 길을 따라가지만은 않겠다는 의지가 어느 정도 잠재된 게 아니었는지요?”

“…….”

제이슨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도 더는 말을 건네지 않고, 2인승 흙 의자 비행을 조종했다. 일부러 대화할 시간을 벌기 위해 천천히 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우리 가문의 저택이 보이고 있었다.

잠시 후, 제이슨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그대는 지금까지 사업에 실패한 적이 없었지.”

네. 대박 행진만 했답니다.

“그 비범한 상재를 감안한다면, 또한 합작투자에 내포된 정치적 가치까지 생각한다면, 놀고 있는 가문의 자금을 그대에게 투자해보는 것도 나쁜 발상만은 아니야.”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제이슨은 그런 날 보고는 차갑게 코웃음을 쳤지만, 이내 입가에 보일까 말까 한 미세한 미소가 어렸다. 노움과 감각을 공유하지 않았더라면 눈치 채지 못했을 그런 희미한 미소였다.

“벌써 도착했군요.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그리하지. 그대는 상대할 가치가 있는 인간 같으니까.”

우리는 천천히 하강하여 저택의 앞뜰에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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