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회: 7권 2장. 제이슨 란즈헬의 방문 -->
올바로, 그리고 강하게 처신해야 한다. 적들이 가득한 연회장에서 조금도 기죽어서는 안 된다.
란즈헬 백작가의 차기 가주가 그리 녹록한 남자가 아님을 보여줄 참이었다.
정적들에게 둘러싸인 연회장에서도 제이슨 란즈헬은 조금도 기가 죽지 않더라.
그런 이야기가 알려진다면, 자신은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진 모자란 아들이란 인식을 벗을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도 조금은 날 인정해줄 지도 모르지.”
“예?”
“아무것도 아니다.”
기사의 물음에 제이슨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대공자님. 저쪽을 보십시오!”
한 병사가 소리쳤다.
기사들과 제이슨 역시 병사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응?”
제이슨은 당혹감을 느꼈다.
웬 괴물체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의자?”
그랬다.
어떤 정체불명의 인물이 의자에 앉은 채 하늘을 날며 이쪽을 향해 똑바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것도 이상하리만치 두터운 흰 털가죽 코트를 입은 괴이한 남자였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인지라, 기사들은 경계하고 검 손잡이에 손을 가져갔다.
제이슨은 그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었다.
이윽고 제이슨이 말했다.
“바덴 강 협상 때 본 적이 있는 얼굴이군. 경계를 풀어라. 그는 카록 쿤트다.”
“예.”
이윽고 카록 쿤트는 제이슨의 앞에까지 날아와 착지했다. 의자는 흙이 되어 산산이 흩어져 사라져버렸다.
카록은 웃으며 활기차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고생이 많으십니다.”
* * *
내 인사에도 제이슨은 화답하지 않고, 잠시 날 뚫어져라 응시했다.
으음. 저 차가운 눈빛은 아버지인 볼프강 란즈헬 백작을 닮았다. 누가 아들 아니랄까봐, 인상이 차갑다.
나는 웃으며 재차 인사했다.
“쿤트 자작가의 삼남, 카록 쿤트입니다.”
“란즈헬 백작가의 대공자, 제이슨 란즈헬 자작.”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쿤트 영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마중 나온 건가.”
제이슨이 물었다.
근데 이 자식 말이 좀 짧네?
쳇. 마음 넓은 내가 참자.
“예. 그리고 주둔지를 마련하는데 도움을 드릴까 해서 제가 직접 왔지요.”
“도움? 필요 없다.”
제이슨은 눈살을 찌푸리며 거부했다.
정말 차가운 성격이군. 과할 정도로 날 경계하고 적대한다. 깊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는, 전형적인 삐뚤어진 성격의 소유자이다.
뭐, 부친이 바로 ‘육제후의 두뇌’라 불리는 볼프강 란즈헬이니, 잘난 아버지를 둔 아들이라는 콤플렉스로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타입을 상대로 호감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상대가 차갑고 딱딱한 만큼 내가 발랄하고 활기차게 대해주면 된다.
나는 빙글빙글 웃었다.
“전 도울 건데요?”
“뭐?”
“이렇게 말이죠. 샐러맨더!”
-춥다! 부르지 마라!
허공중에서 나타난 샐러맨더가 나에게 벌컥 화를 냈다. 아 놔, 저 자식이! 주인 망신 주려고 작정했나.
“시끄러! 이 주변 눈을 전부 녹여버려.”
-귀찮다! 눈은 불에 타지 않아서 재미없다!
“얌마!”
제이슨 일행이 보는 앞이라 나는 깊은 쪽팔림을 느꼈다. 아, 얼굴이 화끈거린다.
-쳇!
샐러맨더는 하는 수 없다는 듯, 거대한 불덩어리를 허공에 생성했다.
화르르르!
“헉!”
“부, 불이다!”
한창 눈을 치우느라 개고생을 하던 병사들이 혼비백산했다.
제이슨을 지키는 기사들 역시 흠칫 놀라 저도 모르게 검을 뽑으며 했으나, 제이슨이 냉정하게 제지했다.
화르르르! 화르륵!
불덩어리가 여러 개의 작은 공 모양으로 분리되어서 사방에 흩어졌다.
불덩어리들이 여기저기 누비며 쌓인 눈을 녹이기 시작했다. 란즈헬 백작가 일행은 멍하니 뜨거운 불길에 눈이 삽시간에 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이게 정령술이구나.”
“이런 광경은 난생 처음이야.”
병사들은 기가 질려서 서로 수군거렸다.
이윽고 이 일대의 눈이 모조리 녹았다. 뿐만 아니라 눈 녹은 땅에는 진흙탕이 없이 단단했다. 샐러맨더의 뜨거운 불길이 땅의 물기까지 날려버렸기 때문이었다.
어떠냐? 나의 솜씨가.
난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제이슨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이게 다 손님을 위한 배려 아니겠습니까. 병사들 얼굴 좀 보십시오. 이제 살았다~ 하는 얼굴들 아닙니까. 하마터면 한겨울에 눈 치우며 하루를 보낼 뻔했으니 그게 무슨 개고생입니까?”
내 말에 제이슨의 차가운 얼굴에 점점 불쾌감이 어렸다. 이 양반, 이런 타입이었군. 농담을 걸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고지식한 타입 말이다.
“확실히 이상한 코트를 입은 인물치고는 뛰어난 재주였다. 빚을 졌으니 대가는 조만간 치르겠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난 내 멋진 레드 미스릴 코트는 세렌스 공주에게 빌려준 터라 이상 망측한 예티 코트를 입고 있었다.
이런 차림으로 제이슨 란즈헬을 맞이하다니, 이런 실수가. 본의 아니게 이상한 놈이라는 첫인상을 심어주고 말았다!
-크헤헤! 웃기는 코트!
샐러맨더의 요란한 목소리에 일부 병사들이 킬킬거렸다.
“시끄러! 넌 돌아가!”
-크헤헤헤!
샐러맨더는 재수 없게 웃으며 사라졌다. 젠장! 어쩌다 저런 놈이 정령계약 때 튀어나와갖고는! 중급 정령이 되더니 내 마음을 읽을 줄 알게 되어서 더더욱 얄미운 짓만 골라서 하는 샐러맨더였다.
“자, 그럼.”
“……?”
내 말에 제이슨은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난 노움에게 마음을 전달했다.
그러자 땅에서 흙덩어리가 우수수 허공에 띄워지더니, 2인용 의자 모양이 되었다.
난 오른쪽 좌석에 앉은 뒤 제이슨을 향해 왼쪽 자리를 권했다.
“자, 제가 모시겠습니다. 날아서 가면 마차보다 훨씬 편안한 겁니다.”
제이슨의 한쪽 눈썹이 꿈틀했다.
그를 호위하는 기사들이 나에게 물었다.
“대공자님을 홀로 보내드릴 수는 없습니다. 저희는 대공자님을 호위해야 합니다.”
“자리를 몇 개 더 만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안타깝게도 내 실력이 부족하여서 2인승이 한계인데. 그대들은 말을 타고 뒤따라오면 문제없을 텐데?”
물론 거짓말이지.
조금 무리를 하면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다 태우고 날 수도 있다. 명색이 상급 정령사이니까.
난 제이슨을 마주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자, 어쩔 거냐?
수행하는 기사 한 명 없이 달랑 혼자서 연회장에 가는 거라고. 연회장에 득시글거리는 왕실파의 귀족들이 반갑게 맞이해줄 거야.
무섭지?
당연히 꺼려질 테지. 일반적으로는 거절하는 게 보통일 터. 당신은 어떨까, 제이슨 란즈헬? 평범한 사람인가, 대범한 사람인가.
제이슨은 제 부친을 닮은 차가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리곤 입을 열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군.”
“대공자님!”
기사들이 당황하여 만류하려 했다.
그러나 제이슨이 오른손을 들어보이자 다들 입을 다물었다. 호오, 제법 카리스마 있는데?
제이슨은 기사들에게 말했다.
“먼저 가겠다. 너희는 주둔지 구축이 끝난 뒤에 천천히 오도록 해라.”
심지어는 천천히 오라고 명령까지 한다. 홀로 적진으로 가는데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제이슨은 내 왼쪽 자리에 걸터앉았다.
“가지.”
응? 이러니까 마치 내가 마부가 된 기분인데.
인마, 뒤질래? 니네 아빠도 나한테 안 이래. 나 차기 재상으로 지목 받은 남자라고.
“알아 모십죠.”
내가 참아야지.
이윽고 우리 두 사람을 태운 2인승 흙 의자가 하늘로 둥실 떠올랐다.
10미터, 30미터, 50미터, 100미터…….
자꾸만 고도가 상승한다.
지상에서 400미터쯤 되는 높이까지 솟구쳤을 때, 제이슨이 입을 열었다.
“일부러 이렇게 높이 나는 건가?”
“네.”
그러자 제이슨이 무서운 눈으로 쏘아본다.
나는 손을 휘휘 저었다.
“아아, 물론 제이슨 대공자님을 겁주려고 하는 저열한 의도는 아닙니다. 혹시나 불편하시다면야.”
그러면서 나는 의자의 형태를 약간 변화시켰다.
아래쪽에 발판을 만들고 손잡이를 더욱 높이 만들어서 안정적인 형태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