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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151화 (151/529)

<-- 151 회: 6권 - 9장. 세렌스 -->

“공주 저하, 카록 쿤트 남작이 인사를 드리겠다고 합니다.”

“어머, 그런가요?”

음, 곱고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마차 문이 열리고 한 여인이 ‘뒤뚱’거리며 마차에서 내렸다. 마차 문을 통과하지 못해서 낑낑대다가 간신히 내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 하지만 그녀가 뚱뚱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몸집보다 훨씬 두터운 흰 털 코트에 둘러싸여 있었을 뿐이었다.

거기에 숄로 또 한 번 둘러쌌으니 덩치가 세 배는 커 보였던 것이다.

짙은 갈색의 머리칼을 뒤로 묶은 후에 땋아 올려서 은비녀를 꽂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고, 얼굴을 달걀형에 가늘고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예쁜 푸른 눈동자가 매력적인, 실로 아름다운 여자였다.

나이는 대략 18세쯤?

우리 레던 왕국 최고의 미녀인 시에나 왕비와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미모였다.

하마터면 정신 줄 놓고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볼 뻔했다.

“오리엔 왕가의 공주 세렌스에요.”

“쿤트 가문의 삼남 카록 남작입니다.”

“제 옷차림이 조금 우스꽝스럽죠? 보기 흉해도 이해해주세요.”

나는 싱긋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천만에요. 아주 귀여워 보이십니다. 꼭 예티 같네요.”

“호호호, 너무해요.”

예티는 사시사철 눈으로 덮인 설산지대에서 서식하는 하얀 털북숭이 몬스터였다.

예티는 덩치가 오우거만 하고 흉포한 대형 몬스터이지만, 눈앞의 이 세렌스 공주는 놀라우리만치 아름다웠다.

세렌스 공주는 귀엽게도 삐죽 입술을 내밀며 말했다.

“원래는 좀 더 간편한 차림이었는데, 오는 길에 폭설이 쏟아지고 한파가 시작되는 바람에 춥더라고요. 설상가상으로 드레스의 온도조절마법까지 손상되는 바람에 따뜻한 옷을 사와 달라고 부탁했더니, 라엘 경께서 이런 옷을…….”

“죄, 죄송합니다.”

예티 같은 거대 털 코트를 사온 장본인인 라엘은 얼굴을 붉히며 사죄했다.

“그랬군요. 그럼 잠시 제 옷을 걸치시죠.”

“어머, 안 그러셔도 되는데…….”

“괜찮습니다.”

나는 내가 입고 있던 레드 미스릴 코트를 벗어주었다.

세렌스 공주는 잠시 망설이다가 순순히 입고 있던 두툼한 코트를 벗어서 라엘 경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하늘색의 예쁜 드레스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나.

얼굴과 목소리만큼이나 몸매까지도 매혹적이었다. 저렇게 가느다란 허리는 처음 본다.

레드 미스릴 코트를 건네받아서 몸에 걸친 세렌스 공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정말 훌륭한 코트네요.”

“감사합니다.”

선물 받았죠. 어떤 미친 인간한테…….

그렇게 코트를 벗어주고 보니 막상 내 몸에 오싹한 추위가 닥쳤다.

헉! 몰랐었는데 진짜 춥잖아!

난 추위에 떨며 라엘에게 말했다.

“이젠 제가 춥군요. 라엘 경, 그 이상한 예티 코트를 제게 빌려주시겠습니까?”

예티 코트란 말에 세렌스 공주는 입을 가리며 킥킥 웃었다.

“예, 예티 코트가 아니오.”

라엘은 얼굴을 붉히며 예티 코트를 내게 던져줬다.

그걸 입으니 내 덩치가 두 배는 불어난 기분이었다. 공주에게 이런 옷을 사주다니, 아무리 따듯한 옷이라지만 정말 파멸적인 센스로군.

“아무튼 제 가문의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먼저 돌아가면서 오시는 길을 깨끗하게 치워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흙으로 만든 흔들의자 위에 다시 올라탔다.

그런데 흔들의자를 보는 세렌스 공주의 반짝거리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저도 태워주시면 안 될까요?”

“예?”

“고, 공주 저하!”

라엘 경이 크게 당황했다.

세렌스 공주는 나에게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부탁했다.

“저도 그걸 함께 타고 하늘을 날면서 가고 싶어요. 빨리 도착해서 쉬고 싶기도 하고요. 부탁드려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세렌스 공주가 무척 마음에 들었던 참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녀는 첫인상부터가 무척 친근한 느낌이 들어서 남 같지가 않았다. 오랫동안 사귄 친구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낼 줄 아는 여자였다.

나는 노움을 시켜서 흔들의자를 개조했다. 흔들의자는 좀 더 커지더니 앉을 자리가 두 개로 변했다.

“자, 타시죠.”

“고마워요.”

세렌스 공주는 어린아이처럼 들뜬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 옆자리에 앉았다.

2인용 흔들의자를 공중에 띄우려고 할 때였다.

“잠깐, 나도 함께 탑승하겠소.”

라엘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2인승입니다.”

“방금 전까지는 1인승이었잖소? 나 한 사람쯤은 더 태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이오.”

난 몹시 우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남자는 태우기 싫은데…….”

“호호호, 어떡해……!”

내 말에 세이렌 공주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깔깔 웃어댔다.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참으려 하는데도 등과 어깨가 들썩거렸다.

또 내가 개그 한 방 터뜨리고 말았군. 하여간 나의 위트 센스는 정말인지 위험할 정도라니까.

한편,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은 라엘은 내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그대가 우리 아버님과 싸웠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소. 아버님과도 싸울 정도로 훌륭한 정령사라는 분이 나 한 사람 더 못 태워준다는 게 말이나 되시오?”

그 말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비밀로 해달라고 그렇게 당부했는데! 나는 기가 막혀서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브리튼 공작 전하께서는 몇 사람 외에는 비밀로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시더니, 혹시 동네방네 소문대고 다니신 겁니까?”

“아버님은 입이 무거우신 분이오. 다만 내가 그 ‘몇 사람’ 중에 포함될 뿐이오. 정말로 동네방네 소문나고 싶지 않으면 나도 태워주는 게 좋을 거요.”

“끄응, 그렇게 타고 싶으셨습니까?”

내 말에 라엘의 얼굴이 빨개졌다.

“무슨 망발이시오? 공주 저하를 호위 한 명 없이 홀로 보낼 수는 없잖소!”

결국 나는 쳇 하고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타고 싶어 하시니 태워드리겠습니다. 하기야, 흔들의자에 앉아서 하늘을 나는 것이 보통 재미있어야 말이지…….”

“그러니까, 재미로 타고 싶어서 타는 게 아니라지 않소? 내가 어린애인 줄 아시오?”

“그럼 세렌스 공주 저하는 어린애라는 뜻이십니까?”

“아, 아니, 그, 그런 뜻이 아니잖소?”

당황하는 라엘.

흐흐흐, 재미있다.

이 엘리트 완벽남은 솔직한 성격이라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서 놀리는 재미가 있었다.

언뜻 보면 아버지인 브리튼 공작을 닮아 다방면에서 빈틈없이 완벽한 것 같은데도, 의외로 한센과 비슷한 포지션이었던 것이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비밀스럽게 나누시나요?”

흔들의자 위에 앉은 세렌스 공주가 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세렌스 공주 저하께서 어린애 같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니까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내 누누이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소!”

“어머나! 너무해요, 라엘 경.”

“헉! 고, 공주 저하. 그게 아니고…….”

“호호호.”

세렌스 공주는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든 나는 다시 흔들의자를 3인승으로 변형시켰다. 세렌스 공주와 내 자리에 앞에 나란히 있고, 그 뒤에 라엘의 자리가 동떨어진 모양이었다.

난 세렌스 공주의 옆에 앉았고, 라엘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뒷자리에 앉았다.

“자, 그럼 출발할까요?”

“네!”

세렌스 공주가 한껏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잠시 서로 눈이 마주치자, 세렌스 공주는 나를 향해 해맑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나는 어떤 마력에 이끌린 것처럼, 따라서 웃음을 짓게 되었다.

정말 이상할 정도로 친근함이 느껴지는 여자였다. 어떻게 만난 지 10분 만에 이렇게 서로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일단 3인승 흔들의자를 하늘로 띄웠다.

둥실 떠오르자 세렌스 공주는 ‘꺅!’하고 짧은 비명을 지르며 팔걸이를 꼭 붙잡았다.

무서워할 지도 모르는 그녀를 위해 나는 천천히 날기로 했다. 하지만 곧 높은 고도에 익숙해지자, 그녀는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풍경을 감상하는 여유를 보였다.

“어머! 이렇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라니! 발 디딜 곳이 없어서 조금 무섭긴 하네요.”

“그렇습니까? 발판이 있는 게 좋겠군요.”

나는 즉시 발판을 만들어주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세렌스 공주는 나를 빤히 보았다. 그 시선에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녀가 말했다.

“참 이상해요.”

“제 얼굴이요?”

“푸훗. 그게 아니고요. 왠지 남작님이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던 친구를 만난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져요.”

“이런. 제게 반하셨군요.”

“아이 참, 그런 건 아니에요!”

세렌스 공주는 얼굴을 붉히며 내 어깨를 토닥토닥 때렸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실은 저 역시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요?”

“예. 마치…….”

말을 하려다가 나는 우뚝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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