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회: 6권 - 8장. 초대받은 사람들 -->
어쨌거나 아버지의 주장에 따라 우리 가문은 엘레네의 탄생을 축하하는 연회를 열기로 했다.
최근 우리 쿤트 가문은 급격히 성장해서 그 위상이 상당해졌기 때문에, 이번 연회는 성대하게 열기로 했다.
공연으로 흥을 돋울 수 있는 곡예단이나 악단, 극단, 무용수들을 부르고, 실력 좋은 요리사를 초청해서 연회의 메인디시를 맡기기로 했다.
나는 저택 앞뜰에 우리 가족의 석상을 크게 만들어서 장식했다.
아버지, 엘레네를 안고 있는 아서 형님 부부, 릭 형님, 그리고 나까지.
아버지는 예의 그 검을 휘두르고 있는 호쾌한 모습 그대로였고, 아서 형님 부부는 활짝 웃는 엘레네를 함께 안은 채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나는 멋진 레드 미스릴 코트를 입은 채 하늘을 보며 서 있는 포즈를 택했다. 음, 정말 멋진 석상이었다. 하지만 조금 더 멋져보이게 보정을 해볼까?
“노움, 키를 약간 더 크게 하자. 콧날은 좀 더 오뚝하게 세워줘. 부탁해.”
-응!
노움은 금방 내 석상에 손을 봤다. 음, 훨씬 낫군.
아무튼 준비는 아서 형님의 지휘 하에 착실하게 진행되었다. 우리 쿤트 가문의 남자들 중 가장 평범해 보이는 아서 형님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일찌감치 영지 업무에 관여했던 터라 이런 일에 있어서는 훌륭한 통솔력을 보였다.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형님만 아니면 직원으로 고용하고 싶다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연회에 초대할 손님을 선택하는 문제가 남았다.
정치적인 성격을 띤 문제였기 때문에 나도 아서 형님과 이 문제로 함께 상의했다.
“초대할 손님은 어느 정도가 좋겠느냐?”
“예전이었으면 우리 가문과 인연이 있는 몇몇 가문과 주변 영지의 가문들 정도만 초대했겠지만, 이제는 사정이 크게 다르죠.”
“그래. 네가 바덴 강 문제를 주도했다는 소문이 사교계에 퍼지면서 우리 가문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다. 아버님께서 오러 엑스퍼트 최상급의 경지에 오르신 것도 한몫 했고 말이다.”
“일단 왕실파의 주요 귀족가문에는 모두 초대장을 돌리죠. 제가 국왕 폐하나 듀론 후작 각하와 가깝기 때문에 아마 초대한 손님이 전부 찾아올 겁니다.”
“알겠다. 혼트 제국이나 오리엔 왕국 쪽에는 초대할 사람이 없느냐?”
“으음. 혼트 제국 쪽은 한 명도 없고, 오리엔 왕국 쪽은 왕실과 브리튼 공작가와 인연이 있습니다.”
“하지만 브리튼 공작가는 오리엔 최고의 명문가 아니냐. 우리의 연회를 거들떠나 볼지 모르겠구나.”
“올 겁니다.”
나는 확실히 단언했다.
“그 정도로 브리튼 공작가와 인연이 깊으냐?”
아서 형님이 묻자,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가 상급 정령사라는 사실을 그쪽은 알고 있습니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조엘 브리튼 공작과 싸웠다고요.”
“쯧쯧, 그럼 확실히 오겠군. 브리튼 공작은 오지 않더라도, 그 아들 급의 인사는 오겠어.”
“오리엔 왕실에도 초대장을 보내놓으십시오, 형님. 오리엔 왕국과는 동맹을 진행해야 하니 평화 무드를 조성하는 게 좋습니다.”
“알았다. 또 초대해야 하는 인사가 있느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있죠. 아주 중요한 사람이.”
“누구냐?”
“제이슨 란즈헬 자작.”
“뭐라고?”
제이슨 란즈헬 자작. 바로 란즈헬 백작의 맏아들로 란즈헬 백작가의 차기 가주로 유력한 인물이었다.
“육제후 쪽의 핵심 인물을 초대해서 어쩌자는 게냐? 아마 초대에 응하지도 않을 거다.”
“올 겁니다.”
“어째서 말이냐?”
“란즈헬 백작은 병을 앓고 있고, 아마 지금쯤 제이슨이 확실하게 후계자로 지명됐을 것입니다. 조만간 신임 가주가 될 테니, 미리 정계의 현황을 살펴볼 기회를 원할 테죠.”
“으음……. 너는 무슨 목적인 거냐?”
“그를 설득해서 왕실파 쪽으로 마음을 기울게 만들 작정입니다. 그것으로 육제후가 흔들리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볼프강 란즈헬 백작이 무대에서 퇴장하는 이때야말로 절호의 찬스죠.”
“가능하겠느냐?”
“글쎄요. 하지만 승산은 있습니다. 제이슨은 부친과는 다른 성향의 인간이고 스스로도 그걸 알고 있습니다. 부친처럼 육제후의 리더 역할을 할 수 없음을 알고 있고, 바덴 강 협상을 계기로 정치적인 현황도 변한 이상, 기존과는 다른 방향을 찾아야 할 필요성을 느낄 테죠.”
“그러냐. 알았다. 일단 초대장은 보내마.”
“감사합니다.”
“무슨. 그나저나 이제는 정치가가 다 되었구나.”
아서 형님은 날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젊을 때 열심히 일해야지요. 나중에 일찍 은퇴해서 빈둥빈둥 놀려면 말이죠.”
“쯧쯧, 속을 알 수 없는 것도 여전하구나. 원래는 안 그랬는데 열여덟 살 성인이 되고부터 전혀 딴 사람이 된 것 같단 말이야.”
형님 눈치도 보통이 아니었군.
아서 형님은 신중하게 초대장을 작성했다. 어떤 인물이냐에 따라서 초대장의 내용을 다르게 했다. 딸의 출생 축하 연회이니 심혈을 기울이겠다는 팔불출로서의 의지가 엿보였다.
나 역시 아서 형님을 도와 초대장을 썼다.
완성된 초대장은 곧바로 기병대 병사를 시켜서 발송하게 했다.
마침내 초대장을 전부 완성해서 보내고 나자 아서 형님은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일어났다.
“드디어 끝났구나. 원, 초대장 쓰는 게 이렇게 힘든 줄은 처음 알았다.”
“예전까지는 초대할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요.”
“마음 같아서는 가족끼리 조용하게 축하하며 보내고 싶다만, 어디 그게 되겠느냐. 내 딸 엘레네를 축하하는 자리인데, 정치 무대가 되겠어.”
“어쩔 수 없지요. 우리는 귀족인걸요.”
“그렇구나.”
아서 형님은 피식 웃었다.
***
오리엔 왕실.
어전 회의를 마친 오리엔 국왕은 최측근인 브리튼 공작과 레이몬드 후작을 따로 불러서 담화를 했다.
이는 비공식 회의로 사실상 국정 운영은 그들 셋에 의해 결정된다.
강력한 왕권의 유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오리엔 국왕이 제위에 오른 뒤로 줄곧 취하던 방식이었다.
“식량 확보에 주력했던 것이 완전히 미스였군. 대륙적으로 곡물이 과잉 생산 되어서 시세가 바닥을 치다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오리엔 국왕은 심기가 몹시 불편했다.
대흉년과 흑혈병이 연속으로 발생하는 바람에 식량난에 시달렸던 오리엔 왕실이었다.
식량은 군대를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에 올해 들어서 오리엔 국왕은 식량을 조기에 대량 확보해놓는 정책을 펼쳤다.
미리 대금을 결제하고 추수기가 되면 식량을 받는 방식으로 자금을 봄에 대량으로 풀었다.
그런데 막상 올해 가을이 되니 밀을 비롯한 모든 곡물이 대풍년.
모든 영주가 사력을 다해 농업에 주력한 결과였다.
시세는 바닥까지 뚝 떨어지고, 결국 미리 대금을 결제했던 오리엔 왕실은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식량을 매입한 결과가 되었다.
오리엔 국왕으로서는 속이 쓰라릴 수밖에 없었다.
“시세를 미리 예측할 수 있었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경제적인 측면에 밝은 인물이 측근 중에는 없다는 것이 아쉬워지는 오리엔 국왕이었다.
그러다가 오리엔 국왕은 문득 한 인물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쿤트 자작가로부터 초대장이 왔더군.”
“쿤트 자작가라면 그 카록 쿤트의 가문 말씀이십니까?”
레이몬드 후작이 관심을 보였다.
“맞네. 그의 조카딸이 태어났다더군. 일단 예의상 우리 왕실에도 초대장을 보낸 모양이네. 브리튼 공작, 그대의 가문도 초대장을 받았는가?”
“예, 폐하.”
“역시 그렇군. 아, 그런데 카록 그 친구는 올해에 식량을 매입했던가?”
브리튼 공작은 고개를 저었다.
“작년 겨울에 식량과 함께 생필품을 2만 레디나어치 매입하긴 했습니다만 식량보다는 각종 생필품의 비중이 더 컸고, 올해 들어서는 식량에 아예 손도 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확보해놓은 식량 및 생필품은 혼트 제국에 수출하려는 동향도 보고되었습니다.”
브리튼 공작가는 여러 상단을 운영하고 있었고, 정보망 또한 주요 국가에 퍼져 있었다.
그래서 조엘 브리튼 공작은 가만히 앉아서 전 대륙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가 오리엔 국왕의 오른팔이 된 데에는 오러 마스터로서의 능력과 유년시절부터 친구였다는 친분 외에도 정보에 밝아 오리엔 국왕의 올바른 판단을 도와줄 줄 아는 능력이 한 몫 했던 것이다.
당연하지만, 최근 들어 브리튼 공작가의 정보망이 가장 주목하는 인물은 카르스 황제와 카록 쿤트였다.
“혼트 제국?”
“예. 혼트 제국은 아직 식량과 생필품이 부족합니다. 바덴 강 통행세 협상이 타결된 틈을 타서 그쪽으로 진출할 모양입니다.”
오리엔 국왕은 기가 차서 헛웃음을 지었다.
“작년 겨울에 이미 협상 결과까지 다 알고 돈을 벌 준비를 하고 있었군. 과연 대단해.”
“보통 내기가 아닙니다. 어쩐지 첫 인상부터가 약삭빠른 친구였지요.”
레이몬드 후작은 카록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때 그는 카록 쿤트에게 속아 넘어가 오리엔 왕국이 혼트 제국으로부터 동맹 제의를 받았다는 실토한 경험이 있었다.
“그 녀석을 빨리 내 품에 오게 만들어야 하는데 말이야.”
실로 탐나는 인간이 아닐 수 없었다.
상급 정령사에다가 지혜까지 갖췄다. 그런데도 나이는 불과 스물두 살.
이런 인물을 수하로 만들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든 치를 수 있을 터였다.
오리엔 국왕은 안달이 났다.
이번 식량 확보 정책으로 발생한 손해 탓에 더욱 카록 쿤트를 얻고 싶어졌다.
그는 상인이기도 하니 경제적인 측면에도 무척 밝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오리엔 국왕은 모종의 결심을 했다.
“쿤트 자작가의 초대에 응하겠다. 카록 그 친구에게 내가 자랑하는 막내딸을 미리 선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