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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147화 (147/529)

<-- 147 회: 6권 - 8장. 초대받은 사람들 -->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되는 쌀쌀한 시기였다.

엘레네가 태어난 지 열흘째로 접어들었다.

지속적으로 운디네를 시켜서 기운을 북돋워줘서 그런지 성장이 빨랐다.

처음 태어났을 땐 꼼짝도 못하고 그저 울기만 하더니, 일주일째에 탯줄이 떨어졌다.

열흘째에 접어들자 팔다리를 활발하게 움직였고, 가끔씩 방긋 웃기도 하는 등 표정도 다양했다.

“연회다! 쿤트 가문 사상 최고로 성대한 연회를 열자!”

아버지는 새근새근 잠든 엘레네를 품에 안은 채 소리쳤다. 그러나 그 우렁찬 목소리 탓에 엘레네는 잠에서 깨어나 울음을 터뜨렸다.

“으애앵!”

“헉! 엘레네! 이 할애비가 미안하다!”

“무슨 짓입니까, 아버님?! 당장 엘레네를 이리 주십시오.”

아서 형님은 재빨리 아버지에게서 엘레네를 채어갔다. 그러나 엘레네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응애애!”

“엘레네, 아빠다, 아빠. 그러니 울음을 그치렴.”

“응애!”

“엘레네, 제발…….”

“어휴, 정말. 이리 주세요.”

“크흑. 여기 있소.”

아서 형님은 눈물을 머금고 엘레네를 레이라에게 주었다. 레이라는 엘레네를 품에 안으며 투정을 부렸다.

“정말 너무들 하세요. 아까 애가 우는 걸 그치게 하려고 한참이 걸렸단 말이에요. 우리 엘레네 착하지? 뚝.”

“흐애앵!”

레이라는 엘레네를 달래려고 노력했다.

엘레네를 울린 장본인인 아버지는 난생 처음으로 의기소침해진 모습이었다. 내 평생 아버지의 저런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군.

그 광경이 재미있어서 가만히 구경하던 나는 문득 레이라에게 말했다.

“저도 한 번 도전해보죠.”

“도련님이요?”

“네.”

“알겠어요.”

나는 레이라에게서 엘레네를 받아들었다. 마치 내가 레이라의 남편이었던 전생 시절로 돌아온 착각이 잠시 들었다.

이윽고,

뚝!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엘레네가 내 품에 안겨진 즉시 울음을 그친 것이다!

“저, 저럴 수가!”

“어째서?!”

“어머나, 세상에.”

세 사람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엘레네는 울음을 그치고 날 빤히 쳐다봤다. 나도 엘레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서로를 바라본다.

묘한 침묵.

나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엘레네 역시 방긋 웃었다. 귀여워! 우리 정령들만큼 귀여워!

그런데 나는 문득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이상하리만치 내 품에 있는 이 자그마한 조카딸에게 친숙함이 느껴진 것이다.

혈육의 정이란 게 다 이런 걸까?

아니다.

혈육의 정이 어떤 것인지는 나도 알고 있다. 나도 전생 때, 망나니 아들이 ‘왜 우리 아빤 이따위지?’ 라고 대놓고 투덜거리기 전까지는 내 아들을 사랑했었으니까.

그런데 이건 혈육을 향한 정과는 약간 다르다.

대체 뭐지?

이 친근감, 동질감…….

이게 대체 무슨 감정이지? 답답해서 미치겠네!

나는 복잡한 감정으로 엘레네를 쳐다보았다.

에이, 모르겠다. 나는 일단 감정을 접어두고 엘레네와 재미있게 놀아줌으로써 아버지와 아서 형님을 약 올리기로 했다.

“운디네.”

-응.

허공에서 물방울이 모여서 운디네가 소환됐다. 엘레네는 운디네가 나타나자 활짝 웃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거리는 한 여자가 있었다.

“우우. 엘레네……. 왜 엄마보다 카록 도련님을 더 좋아하는 거니?”

“여보, 울지 마시오. 나도 울고 싶잖소.”

아서 형님 부부는 애증과 원망이 담긴 눈빛으로 날 째려본다. 왜들 그런 눈으로 봐?! 엘레네가 날 좋아하는 걸 어쩌라고?

나는 운디네에게 물었다.

“아기 안아볼래?”

-응.

운디네는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엘레네를 바라보았다. 나는 운디네에게 엘레네를 건네주었다. 운디네는 다섯 개의 워터 핸드로 엘레네를 조심스럽게 안아들었다.

운디네에게 안기자 엘레네는 무척 기분이 좋은 모양인지 웃음이 입가를 떠나지 않는다. 엘레네는 운디네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듯했다.

으음.

아무래도 운디네 같은 정령은 대자연의 의지의 파편이니 갓난아기에게 친근한 거라고 막연하게 추측해본다.

혹은, 태어날 때 운디네가 회복의 힘을 걸어주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친근감을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엘레네와 운디네는 너무 사이가 좋았다.

맙소사! 둘 다 귀여워서 미치겠다. 현기증이 날 것 같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령술을 배워볼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든다.”

아버지는 질투심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린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것이야말로 기사들은 따라올 수 없는 정령사의 우월함이라고나 할까요? 후훗.”

“크윽! 부인할 수 없다!”

몹시 분한 표정을 짓는 아버지였다. 으하하.

좋아, 본격적으로 정령술로 우리 엘레네와 놀아줄까?

“노움, 샐러맨더.”

-응!

-크헤헤!

노움과 샐러맨더도 잇달아 소환되었다.

그런데 두 정령도 소환되자마자 곧바로 운디네가 안고 있는 엘레네에게 관심을 보였다.

노움은 큼직한 눈망울로 나에게 말했다.

-아빠, 나도 아기 안아볼래! 응?

어라?

심지어는 성질 더러워서 아기의 인성교육에 안 좋을 것 같은 샐러맨더까지도,

-아기가 춥겠다!

하면서 사방에 불똥을 띄워서 엘레네 주변을 따듯하게 하는 것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크헤헤! 불타는 아기!’ 같은 망발이나 했을 망나니 정령이 웬일이지?

원래 정령들은 아기와 친해서 그런 것일까? 아기는 아직 순수해서 그런가?

운디네는 몹시 아쉬워하면서도 엘레네를 노움에게 건네주었다.

노움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엘레네를 본다.

-다음은 내 차례다! 내 차례다!

샐러맨더가 투정을 부렸지만, 불로 이루어진 샐러맨더는 온도조절을 하는 것 외에는 물리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어서 불가능했다.

결국 샐러맨더는 그저 따스한 온도로 조절한 손으로 엘레네를 쓰다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정령들이 우리 엘레네를 참 좋아하네요.”

레이라가 신기하다는 듯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저도 이런 적은 처음입니다. 아기는 많이 봤지만 쟤네들이 저렇게 좋아한 적은 없었는데. 제 조카딸이어서 그럴 지도 모르겠군요.”

“그럴까요? 저도 정령을 소환할 줄 알면 엘레네를 저렇게 기쁘게 만들어줄 수 있을 텐데. 카록 도련님, 제가 정령술을 배울 수 있을까요?”

“아하핫, 유감이네요. 정령친화력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제게는 그 정령친화력이라는 게 없나요?”

“네. 정령친화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제가 알아볼 수 있어요. 아직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정령사가 정령친화력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곧바로 느낌으로 알 수 있다고 책에…….”

거기까지 말하다가 나는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망치로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인 채 엘레네를 바라보았다.

설마? 설마?!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재빨리 노움이 안고 있는 엘레네에게 다가갔다.

“노움, 이리 줄래?”

-응.

노움이 엘레네를 건네주었다.

엘레네는 날 보며 반가워하는 표정이었다.

이 자그맣고 귀여운 조카딸에게서 나는 동질감과 친근감을 느꼈다.

“하하하!”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였나. 엘레네를 보면서 자꾸만 느꼈던 기묘한 감정은 바로 이거였어!

“안녕, 엘레네. 너도 삼촌과 같구나.”

아버지와 아서 형님, 레이라는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너도 정령사의 재능이 있어. 그렇지?”

내 말에 모두들 경악에 찼다.

“내 손녀가 정령사의 자질이 있다고?”

“카록 너처럼 말이냐?”

“세상에, 세상에. 우리 딸이 정령사가 될 수 있나요? 그게 사실인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레네만 보면 자꾸만 묘한 동질감 같은 감정이 들어서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저와 마찬가지로 정령친화력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 정령들이 엘레네를 유독 좋아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죠.”

아서 형님은 그제야 영문을 알게 된 모양인지 말했다.

“그럼 엘레네가 네게 안기자마자 울음을 그쳤던 것도 그 때문이겠구나.”

“네, 형님. 엘레네도 제게서 같은 동질감을 느꼈던 거예요. 그렇지, 우리 엘레네?”

내 물음에 그저 방긋 웃는 엘레네.

아버지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검술보다는 정령술이 최고였구나! 원통하다! 손녀에게 검술을 가르쳐주며 오순도순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꿈꿨거늘!”

“아버님, 딸애한테 검술 같은 것을 가르쳐주면 여자가 품위 없다고 시집 못 갑니다.”

아서 형님이 아버지에게 대꾸했다.

레이라는 몹시 기대에 찬 얼굴로 날 보았다.

“그럼 우리 엘레네도 카록 도련님처럼 되는 건가요? 카록 도련님은 4년 만에 상급 정령사로 성장하는 탁월한 재능을 뽐내셨잖아요.”

“하하, 글쎄요. 사람마다 다 정령술에 맞는 타입이 있고 그렇지 않은 타입도 있으니까요. 정령술의 재능은 혈통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니거든요.”

사실 나는 지난 전생을 살면서 수많은 인생 경험을 했고, 많은 부분 깨달음도 얻으면서 인간의 욕망에 대해 많이 자유로웠다.

내가 정령사로서 빠르게 성장한 것은 정령들을 끔찍이 사랑한 것 말고도 그런 비결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니 엘레네도 나와 같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선천적으로 정령술과 잘 맞는 타입도 있으니, 어쩌면 순식간에 상급 정령사가 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사실 정령사는 사회성이 제로에 가깝다. 나처럼 사회적인 활동을 왕성하게 하면서 상급 정령술의 경지까지 갖춘 완벽한 정령사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아무튼 중요한 점은 딱 한 가지입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엘레네가 이 삼촌을 가장 좋아할 것이라는 사실이죠. 그렇지, 엘레네? 으흐흐흐.”

아버지와 아서 형님은 진심으로 분하다는 듯이 날 노려봤다. 엘레네 쟁탈전의 승자는 바로 나인 것이다. 으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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