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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142화 (142/529)

<-- 142 회: 6권 - 6장. 줄리아의 협박 -->

다음날 아침.

유란 상단에는 줄리아가 사람을 보내겠다고 했다.

나는 오랜만에 상단 사무실로 출근했다. 아마 그곳에서는 결혼을 앞둔 한센이 달콤한 신혼생활을 상상하며 정신 줄을 놓고 있겠지.

오랜만에 한센이나 괴롭히러 가야지!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나는 순간 헛것을 봤나 싶어서 눈을 비벼야 했다.

한센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우리 약재상회 소속의 약재상 주인들을 전부 모아놓고 회의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지난달보다 10%나 매출이 상승했소. 사람들이 피부미용과 건강에 이렇게 관심이 높아졌을 줄은 몰랐지 뭐요.”

“그러게 말이오. 우리 약재상도 11%쯤 상승했소. 먹고 살기도 힘들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정말 사람들이 살 만해진 것 같소이다.”

“그러게 말이오.”

약재상 주인들이 저마다 매출을 보고하며 한 마디씩 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한센은 한참 고민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하지만 곧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됩니다. 겨울에는 판매가 축소될 수 있으니 피부미용이나 건강보양에 쓰이는 약초의 비중을 조금 줄이고, 감기처럼 겨울에 잦은 질병에 집중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요.”

쯧쯧쯧.

저런 얼빠진 소리라니. 역시 한센은 한센이구나.

“안 돼.”

내가 단호하게 말하며 끼어들었다.

모두들 나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한센은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다, 단주님!”

“한센아, 잘 있었니? 나 없는 동안 아주 살 판 났겠구나.”

“그, 그럴 리가요. 단주님이 너무 보, 보고 싶었습니다.”

“말 더듬는 것 봐라. 거짓말인 게 다 티 나네. 보나마나 내 걱정은 조금도 안 하고, 그저 조만간 결혼할 생각에 실실 웃고 있었겠지.”

“아, 아닙니다.”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한센은 얼굴을 붉혔다. 좋긴 좋나 보네. 너 장가 잘 가는 것도 다 내 덕분인 줄 알아라. 내가 아니었으면 네가 출세나 했겠니?

한센은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그런데 안 된다고 하신 건 대체 뭘…….”

“너 내가 바덴 강 통행세 협상 하러 간 이야기 들었어, 못 들었어? 그것 때문에 전 대륙의 이목이 집중되었었는데, 왜 너만 모르고 있니?”

“아, 아니 그 소식은 물론 들었습니다만…….”

“그럼 협상이 타결되어서 평민층 이하가 주로 소비하는 식량 및 생필품의 통행세가 확 줄었다는 이야기 들었어, 못 들었어?”

“아…….”

그제야 뭔가를 깨달은 한센.

“그럼 당연히 물가가 싸질 테고 생활비도 줄어서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도 여윳돈이 많아질 건 당연한 예측 아니니?”

“마, 맞습니다.”

“그럼 그 여윳돈을 당연히 미용이나 건강에 더 쓸 것이라는 생각 안 해봤니? 넌 대체 상인이 되어가지고 왜 그런 것 하나 생각을 못하세요? 확 모가지 뎅강 해주랴?”

“죄송합니다!”

한센은 허리를 직각으로 굽혔다. 좋은 자세다. 널 사죄의 마스터라고 불러주마.

“그러니 오히려 피부미용과 건강보조에 쓰이는 약초의 생산량을 대폭 늘려야 한다. 그리고 약초밭도 있는 대로 더 매입하도록 해. 앞으로 약초 생산량을 크게 늘려야 하니까.”

“어, 얼마나 말입니까?”

“지금의 두 배 이상.”

“허억!”

놀란 한센에게 나는 말을 계속했다.

“언제까지 이 좁은 영지에서만 놀 거야? 혼트 제국 쪽에다가 수출을 할 생각이야. 그쪽은 먹고 살기 힘들고 싸움질도 많이 하는 동네이니까 우리 영지와는 반대로 질병과 지혈 등에 초점을 맞추도록 해.”

“알겠습니다.”

“자 그럼 회의 끝!”

나는 손뼉을 짝짝 치며 회의를 끝장냈다. 약재상 주인들은 나에게 굽실굽실 인사를 하곤 하나둘 사라졌다.

텅 빈 사무실에는 한센과 나만 남았다. 이제야 단 둘이 됐군. 크흐흐.

한센은 불안 가득한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또 뭘 빌미로 갈굴까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그래. 나도 고민이다. 이번에는 뭘 빌미로 괴롭혀줘야 하지? 예전 같았으면 보는 순간 딱 갈굴 거리가 떠올랐을 텐데, 나도 감(?)이 많이 떨어졌다.

아, 그거다!

좋은 아이디어가 뇌리를 스쳤다.

“한센.”

“예, 예! 단주님!”

긴장한 나머지 막 입대한 군인처럼 바짝 군기가 든 한센이었다.

“결혼이 언제야?”

“다음 달에 약소하게 치를 예정입니다.”

“그래? 이야, 우리 한센 노총각 신세는 면했네? 아, 물론 다음 달이 되기 전에 도중에 파혼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파, 파혼이라뇨?! 분명히 결혼합니다!”

“아직 모르잖아. 무능하다고 나한테 해고당하면 너는 다시 평범한 약재상집 아들로 변신, 그러면 신부 쪽에서 파혼.”

“서, 설마 절 해고하시려는 생각은 아니시겠죠?”

한센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고민 중이야.”

“…….”

이제 슬슬 본론을 꺼내볼까?

“너 말이야. 결혼해서 딸 낳으면 이름을 엘리스라고 지어라.”

“네?”

“니 딸 이름은 이제부터 엘리스다 알간?”

“아직 결혼도 안 했고, 아들일지 딸일지도 모르는데…….”

“아무튼 딸 낳으면 무조건 엘리스야. 알았어?”

한센은 당황한 얼굴로 반박했다.

“그건 저희 가족이 결정할 일 아닙니까.”

“해고당할래?”

“커헉! 너무하십니다.”

한센은 울상을 지었다.

“한센아, 한센아. 잘 생각해보렴. 네가 존경하는 이 단주님은 이제 국제적인 거물이시란다. 조만간 아주 높은 사람이 될 거란 말이지. 그런 내가 친히 이름을 지어줬는데, 한센 주제에 감히 불만이니?”

“아, 아닙니다.”

“그럼 네 딸은 엘리스야. 알았어?”

“네…….”

한센은 울먹거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음, 아들은 찰리가 좋겠다.”

“단주니이임!”

한센의 절규가 터져 나왔다.

나는 계속해서 한센의 둘째 아들, 셋째 아들, 둘째 딸, 셋째 딸, 손자, 손녀의 이름까지 지어주며 시간을 보냈다. 아, 재미있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한센과 노닥거리다 보니 어느덧 오후 1시였다.

점심 때 지났으니까 이제 퇴근해야지.

“그럼 수고하렴. 난 소중하니까 일찍 퇴근할게.”

“제발 퇴근해주십시오, 흐흐흑.”

한센은 오랜만에 나에게 시달려서 정신적으로 무척 피폐해진 모습이었다.

아, 기분 좋아라.

이제야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 기분이야. 바덴 강 협상을 진행하면서 알게 모르게 쌓였던 피로가 말끔히 씻기는 듯한 기분이었다.

역시 한센은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심복이라니까.

왕실에 등용되면 한센도 데려갈까? 아마 험한 정치판에 데려가면 아마 한 달도 못가서 위장병에 시달릴 테지만, 하하하.

아무튼 한센은 그럭저럭 약재상회를 잘 운영하고 있었다. 매달 10%씩 매출이 상승했으니 일단은 잘했다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다만 너무 멍청해서 앞으로가 걱정이었지만, 한센을 대체할 만한 사람도 없었다.

다행히도 한센과 곧 결혼할 약혼녀 메리는 똑똑한 여자인 듯했으니 그쪽을 기대하는 수밖에.

집으로 돌아가니 아무도 없었다.

당연했다.

이제 겨우 오후 1시 20분. 줄리아도 시스도 한창 열심히 일할 시간이었다.

나는 정령술 수련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운디네를 소환해서 감각을 공유하는 연습을 했다.

그렇게 저녁이 될 때까지, 나는 모든 게 순조롭게 풀리는 하루라고 생각했다.

***

저녁이 되어서 줄리아와 시스가 퇴근했다.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줄리아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단주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요.”

“무슨 일이야?”

“이거, 받으세요.”

“뭔데? 설마 선물?”

“호호호.”

줄리아는 종이 한 장을 스윽 내밀었다. 종이의 상단에는 ‘사직서’라는 타이틀이 적혀 있었다.

나는 잠시 눈을 비볐다. 요즘 너무 열심히 살아서 피곤한가. 왜 헛것이 보이지?

그러나 다시 봐도 사직서였다.

안 되겠군. 환각 증상 같아.

“노움!”

-응?

노움이 땅바닥에서 쏙 얼굴을 내밀었다. 즉시 노움과 감각을 공유한 후 다시 살펴보았다. 정령은 환각을 보지 않으니까.

……분명히 사직서라고 적혀 있었다.

사직서?!

나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이윽고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하핫! 나이스 센스! 날 깜짝 놀라게 할 생각이었다면 정말 멋진 시도였어. 하마터면 정말 믿을 뻔했잖아. 하하하!”

“진심이에요.”

“에이, 농담하지 말고.”

“농담이 아니에요. 현실도피는 그만하시고 제 사직서를 보세요.”

“갑자기 왜 이래? 내가 널 섭섭하게 하기라고 했니?”

“아뇨.”

“그럼 왜 나와 재회한 지 이틀 만에 사직서를 내니? 그래,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내가 그냥 다 잘못했다. 우리 이러지 말고 대화로 풀자.”

나는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줄리아 로렌.

전생 시절 그녀의 별명은 황금의 여인.

현재 카록 상단의 소속으로 카록 병기점의 사장을 하고 있음. 내 카록 상단에 있어서 그녀의 업무 비중은 절대적!

그녀가 사직서를 낸다?

그럼 그녀가 하던 일을 내가 해야 한다. 잠시도 비워서는 안 되는 중요한 위치였기 때문이다. 안 돼. 있을 수 없어. 그럼 난 업무 지옥에 빠지는 거야.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침착하게 물었다.

“그래. 이유를 한 번 말해봐.”

“저도 여자에요.”

“……응?”

“저도 여자라고요!”

줄리아는 화를 냈다. 나는 황당해져서 되물었다.

“그럼 네가 여자지 남자니?”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그래, 인정해줄게. 넌 여자야. 이제 됐지?”

“전혀요! 제 나이가 벌써 스물한 살이에요. 보통 여자였으면 벌써 시집가서 애가 둘일 나이라고요.”

“잉? 어디 보자. 열여덟 살 성인이 되어서 결혼하자마자 즉시 애가 들어서고, 낳자마자 또 애가 생겼다고 가정하면 얼추 계산이 맞는구나.”

줄리아는 매서운 눈으로 날 쏘아봤다. 찔끔한 나는 헛기침을 했다.

“물론 일 자체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에요. 너무 바빠서 탈이지만, 제가 열심히 할수록 회계장부에 올라가는 숫자가 너무 마음에 들어요. 웬만한 영지 재정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사업체의 사장인 점도 좋아요. 제가 대단한 사람이 된 기분이 느껴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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