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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118화 (118/529)

<-- 118 회: 5권 - 5장. 조엘 브리튼 공작 -->

가로 베기 동작을 취할 때 패트릭은 잽싸게 돌진을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재빠른 몸놀림!

하지만 브리튼 공작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롱 소드를 휘두르지도 않았다.

대신 한 걸음 전진했다.

“큭!”

단지 한 발짝 다가왔을 뿐인데, 패트릭은 두어 걸음 물러났다. 이미 정신적으로 압도당하고 있는 듯했다.

하기야.

그도 그럴 것이, 오러 마스터는 상대의 무를 한눈에 완전히 꿰뚫어보는 경지!

패트릭이 어떤 방식으로 공격하고 방어할지 빤히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밀릴 수밖에. 속내를 모두 들킨 채 협상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파앗!

패트릭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이를 악물고는 다시 찌르기를 펼쳤다.

그러나 찌르기가 도중에 궤도를 바꾸었다. 그리곤 어느 새 베기가 되어서 브리튼 공작의 오른쪽 어깨를 노렸다. 실로 멋진 변칙 공격이었다.

카앙!

브리튼 공작은 처음으로 오러를 일으켜 막았다. 패트릭 회심의 공격은 그렇게 막혔다. 브리튼 공작은 동시에 왼손으로 패트릭의 소매를 낚아챘다.

“엇?!”

브리튼 공작은 그대로 당황한 패트릭을 매쳐 바닥에 패대기쳤다.

쿠웅!

“크윽!”

패트릭은 신음을 했다.

세상에. 그래도 오러 엑스퍼트에 오른 패트릭인데 어찌 저렇게 어린애 다루듯 한단 말인가.

오러 마스터의 끝없는 강함에 나는 전율마저 느꼈다.

“한 번 남았다.”

“예……!”

패트릭은 끙끙거리며 벌떡 일어났다. 쯧쯧, 등짝이 부서질 것처럼 아플 텐데.

“이번엔 내가 먼저 가지.”

브리튼 공작은 처음으로 공격적인 자세를 취했다. 패트릭은 긴장하여 방어태세를 갖췄다.

그런데 브리튼 공작은 문득 곁눈질로 나를 흘깃 봤다. 그리고는 희미하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뭐지? 왜 날 보고 웃지? 저게 무슨 뜻이지?

순간, 브리튼 공작에게서 무서운 살기가 폭사되었다.

“허억!”

패트릭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살기가 패트릭에게로 쏟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자, 잠깐!”

나는 당황하여 소리쳤다.

설마 패트릭을 죽일 셈이냐!

대체 왜?!

혹시 패트릭이 훗날 오러 마스터가 될 거란 사실을 알아채서? 미래의 강적을 싹부터 밟으려는 건가?

순간적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브리튼 공작이 패트릭을 향해 롱 소드를 휘둘렀다.

롱 소드는 어느새 무시무시한 오러 블레이드에 휩싸여 있었다.

저런 걸 패트릭이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안 되겠다!

나는 그가 패트릭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노움!

-응!

마음속으로 부르자 노움이 나타났다. 노움과 감각이 공유되었다.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어스 핸드 두 개를 만들었다. 하나는 브리튼 공작의 공격을 막고, 또 하나는 패트릭을 집어 들고 뒤로 던져버렸다.

콰르릉!

어스 핸드와 오러 블레이드가 충돌하여 천둥 같은 굉음을 일으켰다.

보통의 오러로는 깨부수지 못하는 단단한 어스 핸드였지만,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는 당해내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하지만 브리튼 공작 역시 묵직한 저항감을 느꼈는지 눈살을 찌푸린다.

“차아!”

브리튼 공작은 여전히 내가 아닌, 패트릭을 노려보고 달려들었다.

저 인간 대체 왜 저래?!

갑자기 실성했나?

나는 어스 월을 다섯 번 연거푸 시전 했다. 흙의 장벽이 무려 다섯 겹으로 패트릭을 보호했다.

콰앙! 쾅! 쾅! 쾅!

브리튼 공작은 어스 월은 연거푸 깨부수며 패트릭에게 다가갔다.

패트릭은 갑작스런 사태에 영문을 몰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안 되겠군.

“노움, 패트릭을 안전한 곳에 숨겨두자.”

-응!

노움은 내 생각을 읽고 즉시 행동에 옮겼다.

파파파팟!

노움은 순식간에 무려 100미터나 되는 깊이로 땅을 팠다.

불과 3초도 안되는 사이에 깊은 구덩이가 생긴 셈이다.

그 100미터 깊이에 사람 하나가 누울 만한 넉넉한 공간을 마련하고, 구덩이 속으로 패트릭을 던져버렸다.

“으아아악!”

100미터 구덩이 안으로 추락하면서 패트릭은 비명을 질렀다. 걱정 마, 설마 널 추락사하게 놔두겠어?

나는 어스 핸드를 만들어 패트릭을 안전하게 착지시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덩이를 매워버렸다.

물론 넉넉한 공간을 만들어두어서 패트릭을 숨겨놓았기 때문에 압사하거나 질식사할 염려는 없었다. 기다리렴. 조금 있다가 꺼내줄게.

다섯 번째 어스 월을 부숴버린 브리튼 공작은 패트릭이 땅속 깊은 곳으로 사라져 버리자 당혹스러워하는 눈치였다.

흥, 어떠냐?

그 날난 오러 블레이드로 열심히 땅 파서 패트릭을 찾아내 보시지?

으하하!

아무튼 나는 브리튼 공작을 가만 놔둘 수 없었다.

저 작자가 갑자기 왜 미쳐서 패트릭을 죽이려드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일단 무력으로라도 제압해봐야겠다.

오러 마스터를 상대로 싸워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나는 밀려오는 긴장감을 떨쳐내고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어스 스피어 50발을 만들었다.

단숨에 땅속에서 흙으로 만들어진 창 50자루가 떡하니 튀어나와 브리튼 공작을 향해 날카로운 창날을 겨눈다.

이 정도면 천하의 오러 마스터 브리튼 공작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가라!”

50자루가 단숨에 쏘아져나갔다. 브리튼 공작 역시 오러 블레이드를 미친 듯이 휘둘러댔다.

콰콰콰콰쾅! 콰콰쾅!

검의 잔상(殘像)이 수십 개로 보였다.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스피드로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러 어스 스피어들을 막아내는 브리튼 공작이었다.

어스 스피어들이 박살날 때마다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마구 휘날렸다.

“쳇.”

과연 오러 마스터라 이거냐?

“그럼 이것도 받아봐라.”

나는 다시 어스 스피어 50발을 만들었다.

그걸로 끝난 게 아니라 미세한 흙 입자를 하나하나 조정해서 뿌연 흙먼지를 만들어냈다.

상급 정령술의 경지에 도달해서 노움과 감각을 공유했기에 가능한 고도의 스킬이었다.

“받아라!”

나는 어스 스피어 50발을 일제히 날려 보내고, 동시에 흙먼지로 브리튼 공작에게 보냈다.

단지 흙먼지로 시야를 가리는 것만으로는 오러 마스터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줄 수 없다.

하지만 흙먼지의 입자들이 눈으로 파고들면 꽤나 정신이 사나워지지 않겠는가?

어디 흙먼지 속에서도 공격을 막을 수 있나 보겠다.

콰콰콰콰쾅! 콰르릉! 꽈아앙!

또다시 나의 맹공이 몰아쳤고, 브리튼 공작은 바쁘게 움직이며 공격을 막아냈다.

그야말로 치열한 접전이었다.

이내 모든 어스 스피어가 파괴되었고, 뿌연 흙먼지 속에서 브리튼 공작의 모습이 드러났다.

흙먼지에 잔뜩 더러워진 브리튼 공작이었지만 별다른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역시 이걸로도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운디네와 샐러맨더도 불러서 총공격을 퍼부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데 브리튼 공작은 더 이상 싸울 생각이 없다는 듯 롱 소드를 검집에 집어넣었다.

“이만하면 됐네.”

되긴 뭐가 돼? 댁이 멋대로 패트릭을 죽이려 들었잖아?

“무슨 의도였는지 알고 싶군요.”

나는 여전히 브리튼 공작을 경계하며 물었다.

그가 답했다.

“두 가지 의도가 있었네. 패트릭 그 친구를 죽일 의도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내 명예를 걸고 맹세하지.”

“그럼 왜 살기를 드러낸 겁니까.”

“확인하고 싶었네.”

“무엇을 말입니까?”

“자네.”

“예?”

나는 순간 당혹감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난 졸지에 모든 실력을 드러내고 말았다.

오러 마스터인 그를 이 정도로 몰아세울 수 있는 정령사라면 상급의 실력자인 게 당연한 것이다.

“제 실력을 알고 계셨다는 뜻입니까? 어떻게…….”

브리튼 공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날 대하는 태도가 다른 이들과 미묘하게 다르더군.”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공작 전하.”

“나도 말로 설명하기 힘들군.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 대등한 분위기를 은연중에 풍겼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혹시 알려진 것보다 더 강한 정령사가 아닐까 의심이 들었네.”

“제가 말입니까?”

브리튼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러 마스터가 되면 상대의 무를 파악할 수 있게 되지. 심지어 극도의 기감으로 마법사의 마나까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네. 하지만 정령사만은 도저히 파악할 도리가 없더군. 그래서 이런 일을 벌였네. 나의 실례를 용서하게.”

무려 오리엔 왕국 굴지의 대귀족이 순순히 사과하는데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는다면 그 사과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소문내진 않겠네. 폐하나 레이몬드 후작에게는 귀띔을 해야겠지만.”

“……알겠습니다.”

제길.

내가 상급 정령사인 사실은 비장의 카드로 숨겨두려 했는데 이런 식으로 들통이 나버리다니.

입맛이 씁쓸하다.

“그럼 또 한 가지 의도는 무엇입니까?”

“일단 그 친구부터 꺼내지 그러나.”

브리튼 공작은 발로 툭툭 땅을 쳤다.

아차! 패트릭!

땅속에 묻어놓고 깜빡했구나!

나는 서둘러 100미터 깊이의 땅속에 있는 패트릭을 꺼냈다. 잠시 지하 세계(?)를 다녀온 패트릭은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 남작님? 남작님이 여긴 어쩐 일로…… 남작님도 죽으셨습니까?”

“정신 차리렴, 패트릭.”

“어라? 제가 살아 있었던 겁니까? 저는 죽어서 저승에 온 줄 알고…….”

“거긴 저승이 아니라 그냥 땅속이야. 물론 죽으면 가게 될 곳이지만 지금은 아니란다.”

내 말에 브리튼 공작은 피식 웃었다.

오러 브레싱을 하면서 호흡을 가다듬은 뒤에야 패트릭은 제정신을 되찾았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패트릭의 말에, 브리튼 공작이 다가갔다.

그가 다가오자 패트릭은 긴장하곤 침을 꼴깍 삼켰다.

패트릭의 오른손이 저도 모르게 바스타드 소드의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브리튼 공작은 웃음을 지었다.

“아직도 나에게 대적할 용기가 남아 있나. 과연.”

“…….”

“재능 있는 젊은 친구. 내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똑똑히 기억해라.”

“……예?”

영문을 몰라 하는 패트릭.

“마스터로 향하는 길은 참으로 멀고도 멀어서, 길을 모르면 도착할 수가 없지. 그러니 내가 너의 길이 되어주마. 오늘의 나를 기억에 각인시켜라. 무섭고 압도적이어서 감히 맞설 엄두도 나지 않겠지.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언젠가 나와 맞설 자신이 생겼을 때, 그때 비로소 넌 오러 마스터가 된 것이다.”

패트릭은 바스타드 소드 손잡이를 쥐고 있던 오른손을 내려놓고, 멍하니 브리튼 공작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자신이 얼마나 귀중한 선물을 받았는지 깨닫고는 고개를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오러 마스터로 가는 길의 방향타가 되어준 브리튼 공작에게 패트릭은 마음속 깊이 감사를 표했다.

브리튼 공작은 다시 날 보며 말했다.

“이걸로 사죄의 표시가 되었으면 좋겠네. 그럼 이만.”

브리튼 공작은 그 길로 성큼성큼 공동 수련장을 떠났다.

비록 흙먼지로 행색이 지저분해졌지만, 그의 높은 위엄은 조금도 깎인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패트릭, 우리고 돌아가자. 피곤해 죽겠는데 낮잠이나 때려야겠다.”

“아, 예!”

우리도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겨우 한 시간쯤 지났을 뿐인데 벌써 하루를 다 보낸 듯한 피로가 느껴졌다.

*   *   *

돌아가는 브리튼 공작의 앞에 불쑥 웬 황금빛 광채가 흐르는 묘한 생물체가 바닥에서 튀어나왔다.

열네 살 남짓한 소녀의 모습.

머리에는 안전모, 손에는 자기 덩치만 한 삽자루를 쥐고 있는 앙증맞은 모습이었다.

노움은 브리튼 공작에게 말을 건넸다.

-안녕, 깡패야.

“……깡패?”

-아빠가 사람을 막 때리면 깡패래.

“그런가.”

브리튼 공작은 피식 웃었다.

-왜 패트릭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는지 아빠가 물어보래.

브리튼 공작은 스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여전히 밝은 태양이 떠 있었다.

노움도 따라서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윽고 그는 조금은 쓸쓸한 어조로 말했다.

“20년 전, 당시 태자이셨던 국왕 폐하와 함께 반란 토벌에 나섰지. 그때 죄 없는 이들의 피까지 보아야 했다. 명령이니까…….”

노움은 큼직한 눈망울을 말똥말똥 뜨고 그를 보았다.

브리튼 공작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는다.

“패트릭 콘돌이라고 했나. 제 부친을 많이 닮았더군. 못 알아볼 리 없지. 평생 잊을 수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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