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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117화 (117/529)

<-- 117 회: 5권 - 5장. 조엘 브리튼 공작 -->

오리엔 국왕을 알현한 지 사흘째에 접어들었다.

노움, 운디네, 샐러맨더는 늘 그랬듯 자기들끼리 소꿉놀이를 하며 놀고 있었고, 패트릭은 방구석에 앉아 오러 브레싱에 전념했다.

나는 뭐하냐고?

생각중이시다.

과연 카르스 황제는 어떻게 움직일 것이며, 순순히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게 분명한 육제후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치열하게 추론 중이다.

그나저나, 오리엔 국왕 쪽도 이제 슬슬 결론이 났을 텐데.

난 내 말이 오리엔 국왕에게 충분히 먹혀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륙 정복 전략.

그건 순전히 우연히 떠올린 전략이었다.

카르스 황제가 스스로를 베잘리우스 대공의 환생이라고 믿고 있으니, 분명 베잘리우스 대공이 선보인 바 있는 전략을 답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카르스 황제는 실제로 전생 때, 비슷한 전략으로 대륙의 절반을 삼켜버린 바 있었다.

전생 때, 카르스 황제는 우선 적을 셋으로 나눴다.

하나는 레던 왕실, 또 하나는 육제후, 나머지 하나는 오리엔 왕국.

혼트 제국의 입장에서는 대륙 정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보급선.

그러니 보급선이 될 바덴 강 유역을 우선적으로 얻을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왜 육제후를 먼저 치지 않고 레던 왕실을 먼저 멸망시켰을까?

레던 왕실을 치려면 길목을 철통처럼 지키고 있는 뮤트 공작의 방어선을 먼저 밟고 넘어서는 수고가 필요한데도 말이다.

그것은 육제후를 치면 당연히 레던 왕실이 구원하기 위해 참전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라면 어떨까?

당시 란즈헬 백작이 죽고 구심점을 잃은 육제후는 판단력을 잃고 있었다.

카르스 황제는 레던 왕실을 공격하는 한편, 육제후에게는 혼트 제국의 귀족으로 귀화하지 않겠냐는 유화의 제스처를 보냈다.

나라의 안위보다 자신들의 기득권이 훨씬 소중했던 육제후는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레던 왕실이 멸망하도록 방치하였다.

레던 왕국이라는 울타리가 사라지면 자신들 역시 무사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못한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오리엔 왕국 역시 레던 왕국이 사라지면 다음은 자신들 차례라는 걸 알면서도 참전을 하지 못했다.

육제후가 왕실을 돕지 않는 걸 보고는 레던 왕국이 이미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가망도 없는 나라를 도왔다가 괜히 국력을 낭비하고 혼트 제국과 긁어 부스럼이나 남기지 말자는 판단이었다.

카르스 황제는 구심점을 잃고 얼간이들이 된 육제후와 조심성이 많은 오리엔 국왕의 심중을 동시에 꿰뚫어보고 과감하게 움직인 것이다.

그 뒤, 카르스 황제는 유목민족들로 하여금 레던 왕국의 영토 일부를 자치령으로 주겠다고 약조하면서 참전을 유도했다.

유목민족들이 제안에 응하자, 더욱 강력해진 혼트 제국은 바덴 강을 보급로로 삼고 오리엔 왕국으로 진격했다.

결국 오리엔 왕국은 영토의 절반을 잃는 대패를 당하였다.

그나마도 미래를 내다본 제론 데커드(전생 당시에는 제론 폴만)의 철저한 대비 덕에 멸망을 면한 것이었다.

전생 때 그런 역사의 흐름을 봤기 때문에 카르스 황제가 어떤 전략으로 대륙 정복을 할지 추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카르스 황제가 오리엔 왕국에 동맹을 제안할 것이라는 제론의 추론이 없었더라면 떠올리지도 못했겠지만.

“끄응. 하지만 너무 쉬운데…….”

뭐랄까…….

오리엔 국왕을 만나 혼트 제국과 동맹을 맺지 않도록 설득만 하면 해결된다.

그런데 이 정도로 끝날 거였으면, 카르스 황제의 술책 치고는 너무 싱겁지 않은가?

오리엔 왕국과 손잡고 바덴 강 유역을 치려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까맣게 모르고 있을 거라고 확신한 걸까?

그건 아니다.

상대를 과소평가하고 움직이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카르스 황제는 그렇게 안일한 생각으로 10만이나 되는 대병력을 움직일 정도로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설마, 이것조차 미끼?”

그런데 그때였다.

“응?”

노움과 공유된 예민한 감각에 커다란 기운의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노움의 감각권인 이곳 왕궁 내에는 거대한 에너지를 가진 인물이 두 사람 있었다.

한 명은 당연히 7서클 대마법사 레이몬드 후작.

또 한 사람은 오러 마스터이자 오리엔 국왕의 최측근인 조엘 브리튼 공작이었다.

그런데 그 중 브리튼 공작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설마, 나에게 볼일이 있는 건가?

나는 오러 브레싱 중인 패트릭에게 말했다.

“패트릭, 네 소원이 곧 성취될지도 모른다.”

그 말에 패트릭은 오러 브레싱을 중단했다.

“예? 제가 오러 마스터가 될 것 같다고요?”

아. 소원이 그걸로 바뀌었구나?

“아니, 그것 말고. 오러 마스터를 직접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고.”

“헉! 정말입니까?”

“응. 브리튼 공작이 이쪽으로 오고 있어. 나에게 볼일이 있나봐.”

“오오!”

패트릭은 잔뜩 흥분하여 객실 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윽고,

똑똑똑.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긴장한 패트릭이 후다닥 달려가 문을 열었다.

나는 서둘러 정령들을 돌려보냈다.

혹시라도 내가 상급 정령사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게 조심하는 것이었다.

문이 열리자 브리튼 공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 갈색 머리칼에 잘생긴 30대 중반의 외모.

170cm가 약간 넘는 평범한 키, 소드 벨트에 걸린 롱 소드. 소문으로 듣던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고개를 숙여보였다.

“공작 전하를 뵙습니다.”

“날 금방 알아보는군.”

“예. 정령들이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런가.”

브리튼 공작은 옆에 멀뚱히 서 있는 패트릭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패, 패트릭 콘돌이라고 합니다. 존경하는 조엘 브리튼 공작 전하를 직접 뵙게 되다니, 무, 무한한 영광입니다.”

패트릭은 긴장한 나머지 말을 더듬었다. 쯧쯧, 너도 언젠간 마스터가 될 수 있다니까 그러네.

“콘돌? 들어보지 못한 가문인데.”

그야 당연했다. 패트릭이 용병 생활을 하면서 지어낸 성이니까.

브리튼 공작은 패트릭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말했다.

“이만 한 인재를 배출하다니 좋은 가문인가 보군.”

“아, 아닙니다! 지금은 이름도 없는 무명 가문입니다.”

브리튼 공작의 시선은 다시 나에게로 옮겨졌다.

“자네의 기사인가?”

“예.”

“사람 보는 눈이 좋군.”

“운이 좋았지요.”

나는 씨익 웃었다.

암, 운이 좋았고말고. 레던 왕성에 미래의 용병왕이 있을 줄을 누가 알았겠어?

“콘돌 경이라고 했나? 한 번 대련을 해볼 텐가.”

“옛?! 그, 그게 진심이십니까?”

패트릭은 화들짝 놀랐다.

오러 마스터가 친히 대련을 제안하다니. 보통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같은 마스터가 아닌 이상 상대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하군.

나는 의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브리튼 공작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패트릭에게 관심을 보였다.

혹시 패트릭의 재능을 알아본 것일까?

“그렇다면 저야 영광입니다. 아니, 꼭 한 번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패트릭은 흥분해서 간청했다. 브리튼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왕궁 뒤편에 왕실친위기사단의 공동 수련장이 있다. 지금은 비어 있을 테니 그리로 가지.”

“예. 남작님, 괜찮겠습니까?”

패트릭은 나에게 허락을 구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같이 가보자. 브리튼 공작 전하께 가르침을 받을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감사합니다.”

패트릭의 안색이 더없이 밝아졌다.

그렇게 우리는 왕궁 뒤편으로 향했다.

으음, 근데 왜 이렇게 불길한 예감이 들지? 오러 마스터로서 오리엔 왕국 최고의 기사로 존경 받는 브리튼 공작이 상대적으로 보잘 것 없는 패트릭에게 대련을 친히 제안하다니? 아무래도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야.

공동 수련장은 텅 비어 있었다.

왕실친위기사단이 휴일을 맞은 건지 단체로 휴가를 나갔는지 알 수 없었다.

브리튼 공작은 수련장 중앙으로 나가 롱 소드를 뽑았다.

“와라.”

“예!”

패트릭도 후다닥 뛰어나가 바스타드 소드를 뽑아 들었다. 현 오러 마스터와 미래의 오러 마스터가 대련을 하려고 한다.

브리튼 공작 대 용병왕 콘돌이라니.

전생을 살아본 나로서는 묘한 감동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전생이었다면 전장에서나 마주쳤을 두 사람이었다.

“그럼 가겠습니다!”

브리튼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패트릭은 상대가 무려 오러 마스터임에도 패기 있게 선공을 펼쳤다. 하긴, 선공을 안 하면 칼질 한 번 할 기회조차 없을 것이다.

촤아악!

오러가 충만한 바스타드 소드가 빛살처럼 브리튼 공작의 심장을 향해 쏘아졌다.

패트릭의 장기인 빠른 찌르기였다.

터엉!

손잡이로 찌르기를 옆으로 쳐낸 브리튼 공작.

그리고 스윽 롱 소드를 패트릭의 목전에 내밀었다. 방어와 반격이 한 동작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내가 봐도 기막힐 정도였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패트릭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그러니 패트릭 본인은 어떻겠는가?

패트릭은 허망한 얼굴로 자신의 목전에 겨눠진 롱 소드를 쳐다봤다. 마스터와의 대련이라는 귀중한 기회가 이렇게 끝난 것이다.

롱 소드를 거둬들인 브리튼 공작이 말했다.

“두 번 기회를 더 주겠다.”

“가, 감사합니다!”

한층 밝아진 패트릭은 다시 검술의 준비동작을 취했다. 이번에는 한층 더 신중을 기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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