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 회: 5권 - 3장. 오리엔 왕국으로 -->
괜히 전생에 용병왕이라 불렸던 게 아니었다. 역시 타고난 재능!
“아깝다! 조금만 더 힘내!”
흥이 난 나는 분전을 펼치는 패트릭을 응원했다.
오우거는 보통 오러 엑스퍼트 중급쯤 되는 기사가 상대할 수 있는 대형 몬스터였다.
패트릭은 이제 갓 오러를 발출할 수 있게 됐지만, 대신 타고난 전투 감각으로 커버하고 있었다.
하지만 괴력의 한 방이 있는 오우거는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 주먹질을 해댔다.
한 대라도 허용하면 골로 가기 때문에 패트릭은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빠르게 움직였다. 위태로움의 연속이라 보는 내가 다 심장 떨릴 지경이었다.
기어코 패트릭이 수세에 몰렸다.
“크아아!”
패트릭이 공격을 자꾸 요리조리 피하자 오우거는 분노에 차올라 바닥에 있는 바위를 번쩍 집어 들어 던졌다.
“허억!”
세차게 날아오는 바위를 보고 패트릭은 기겁을 했다.
콰아앙!
오러가 실린 바스타드 소드로 바위를 박살내버렸지만, 워낙 바위에 큰 힘이 실려 있어서 패트릭은 비틀비틀 두어 걸음 밀려났다.
그 틈에 오우거가 전속력으로 돌진해왔다.
이쯤에서 내가 나서야겠군.
난 노움과 감각을 공유하고 빠르게 어스 핸드 세 개를 만들었다. 그중 하나로 막 주먹질을 하려는 오우거의 오른팔을 붙잡았다.
“크어어?”
오우거가 놀라 멍청한 표정을 지을 때, 나는 재빨리 또 다른 어스 핸드로 오우거의 왼쪽 오금을 후려쳤다. 그 바람에 오우거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동시에 잡고 있던 오른팔을 뒤로 꺾었다. 균형을 잃는 바람에 힘을 못 쓴 오우거는 그대로 오른팔이 뒤로 꺾어졌다.
좋아, 지금이다!
다른 두 어스 핸드로는 등을 누르면서 왼쪽 다리를 붙잡아 들어올렸다.
“크아아아!”
오우거는 힘껏 발버둥을 쳤지만, 팔이 뒤로 꺾이고 등이 눌린 상태에서 한쪽 발까지 붙잡혀 있어서 효과적으로 저항하지 못했다.
적은 힘으로 상대의 큰 힘을 무력화시키는 비법. 바로 아버지로부터 배운 유술이 마침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이얍!
노움은 귀여운 기합과 함께 열심히 삽질해서 순식간에 5미터짜리 구덩이를 팠다. 나는 오우거를 구덩이 안으로 집어던졌다.
쿠웅!
육중한 몸뚱이가 구덩이 속으로 거꾸로 처박혔다.
노움은 다시 자기 덩치만 한 삽으로 땅을 찍어서 구덩이를 매워버렸다.
“마, 맙소사…….”
패트릭은 멍하니 오우거가 생매장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보기 드물 거다.
저 엄청난 대형 몬스터가 저토록 무력하게 땅속에 묻혀버리는 광경은 말이다.
“저, 정말 대단하십니다!”
“뭘. 상급 정령사씩이나 되었는데 오우거 하나 처리 못하면 웬 망신이야.”
“그게 아닙니다. 압도적인 힘으로 공세를 퍼부어서 쓰러뜨린 것도 아니고, 유술을 써서 간단하게 오우거를 무력화시키셨잖습니까. 정령술에 유술을 그런 식으로 결합시키시다니, 정말 감격했습니다!”
“뭘 감격씩이나.”
하지만 존경에 찬 눈초리로 날 우러러보는 패트릭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뭐, 내가 잘나긴 했지. 아하하.
시스를 처음 만났을 때, 딘 용병단과 함께 고군분투해서 오우거를 간신히 쓰러뜨렸던 일을 떠올리니 감개무량할 정도였다.
그 오우거를 이렇게 손쉽게 잡아버리다니! 나도 정말 많이 성장했구나 싶었다.
싸우다 지친 패트릭을 위해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다시 출발할 때쯤에 파묻은 오우거를 다시 꺼냈다.
오우거는 압사 및 질식사로 죽었는지 축 늘어져 있었다.
“이렇게 멀쩡한 오우거의 사체는 처음 봅니다. 하기야 오우거 자체를 처음 보기는 합니다만…….”
“챙겨가야지. 이거 팔면 1천 레디나는 너끈히 받거든.”
지금은 사돈지간이 된 후디니 자작 같은 몬스터 박제 마니아에게 팔면 3천까지도 받을 수 있고 말이다.
우리는 마차 천장 위에 오우거를 싣고 출발했다.
오우거가 꽤 육중해서 그런지 마차 속도가 좀 느려진 듯했다.
* * *
레던 왕국의 국경검문소.
레던 왕실군 소속의 병사들은 우리 마차에 실린 오우거를 보고 기겁을 했다.
나는 마차에 내려서 그들에게 말했다.
“나는 카록 쿤트 남작이다. 왕명을 받고 오리엔 왕국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 자네들은 몬스터 출몰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나?”
내 말에 책임자로 보이는 장교가 나와 답했다.
“예. 경계와 순찰로 사방을 주시하고 있고 웬만한 몬스터 무리쯤은 격퇴할 수 있는 병력도 있습니다.”
“오우거도?”
나는 마차에 실린 오우거 사체를 가리켰다.
장교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솔직히 오우거에 대한 대비는 잘……. 공격해오면 격퇴할 수는 있지만 이쪽의 피해도 상당할 겁니다.”
“주의하라고 말해두고 싶어서. 여기서 머지않은 곳에서 이놈을 잡았거든.”
“감사합니다. 앞으로 오우거 출현에도 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수고해.”
간단히 검문을 받고 우리는 국경을 넘었다.
하지만 오리엔 왕국의 국경검문소에서는 보다 철저한 검문을 받아야 했다.
오리엔 왕국의 병사들은 우리의 모든 소지품을 뒤져보고는 말했다.
“160오린 혹은 200레디나를 내십시오.”
“그건 무슨 관세야?”
“오우거의 사체에 대한 관세입니다. 몬스터의 사체는 20%의 관세가 부가됩니다.”
“쯧, 알았어.”
참고로 오린은 오리엔 왕국의 금화다.
레디나와 오린의 환율은 1 대 0.8 수준이다. 즉, 10레디나를 8오린과 바꿀 수 있다는 뜻.
환율은 보통 금화에 금이 얼마나 함유되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여건 등 여러 가지 요소도 환율에 영향을 끼친다. 레디나는 오린보다 금 함유량이 적었고, 오리엔 왕국은 우리보다 더 경제 규모가 큰 대국이어서 화폐 가치가 높았다.
나는 200레디나를 지불하고 국경 검문소를 통과했다.
20%의 관세는 낮은 편이었다.
물건에 따라 곡물류는 100%, 귀금속 같은 경우는 200%까지 관세가 치솟는다.
이렇게 거둔 관세는 왕실 재정으로 직결되니, 각국의 왕들은 최대한 높은 관세를 뜯어내려고 안간 힘을 쓴다.
한마디로 관세만 사라진다면 물가가 아주 싸질 거란 뜻이다.
“역시 오우거 사체를 싣고 다니니 주목을 많이 받는군요.”
패트릭의 말대로 국경검문소를 통과하는 사람들이 우리 마차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에는 상인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으음, 아예 여기서 오우거를 팔아버리고 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때마침 웬 뚱뚱한 30대 초반쯤의 사내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보아하니 상인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로윈 상단의 단주인 알렌 로윈이라고 합니다.”
호오, 로윈 상단?
들어봤다.
훗날 오리엔 왕국에서 꽤나 잘 나가게 되는 대형 상단이다.
전생 때 로윈 상단과도 몇 번 거래한 적이 있었다.
단주인 알렌 로윈은 워낙 거물이고 바쁜 사람이라 만나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 사람이 알렌 로윈이었군.
“카록 쿤트 남작이다.”
“어이쿠, 쿤트 남작님이셨군요. 명성은 많이 들었습니다. 실물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내 이름을 많이 들어봤는지 알렌은 놀란 얼굴로 굽실거렸다. 하기야 요즘 상인치고 내 이름 못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생 땐 내가 저 양반 얼굴 한 번 보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역전되다니. 역시 출세하고 볼 일이었다.
“그런데 무슨 볼일이지? 혹시 오우거의 사체에 관심 있다면 좋은 가격만 제시하면 생각해보겠다.”
“잠깐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5분을 주지. 난 바쁘거든.”
“예.”
알렌은 자신의 짐꾼들을 불러서 오우거를 마차에서 내린 후 이곳저곳 살펴보았다.
“정말 큰 오우거로군요. 이런 놈을 잡으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다만 몸에 상처가 많아서 아쉽군요. 가죽의 상태가 좋지 않아요.”
패트릭이 오우거의 몸에 자잘한 상처를 많이 입혀놓은 탓이었다.
좋은 가격은 못 받겠군.
다 살펴본 알렌은 나에게 제안했다.
“가죽은 좀 상했지만 심장 같은 중요한 장기와 힘줄은 무사하군요.”
패트릭이 치명상을 입히지 못한 탓이었다.
“750오린 어떠십니까?”
“좋다.”
알렌은 곧 750오린을 지불했다. 20오린짜리 큼직한 금화 37닢과 1오린짜리 10닢이었다.
마침 오리엔 왕국 화폐가 필요했는데 잘됐군. 환전할 필요가 없어져서 나야 편했다.
“그럼 앞으로도 좋은 인연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쿤트 남작님.”
“마찬가지다. 좋은 사업 이야기가 있거든 언제든 카록 상단을 찾아오도록.”
“예.”
그렇게 로윈 상단과 작별하고 우리는 다시 출발했다. 육중한 오우거를 처분하고 나니 마차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
* * *
왕도 오리엔.
한때는 대륙 중서부 일대를 장악한 대제국의 수도였던 대도시다.
베잘리우스 대공에게 대패하여 혼트 제국의 속국으로 전락했다가 백여 년 후 다시 왕국으로 독립한 뒤에도 그들의 정치, 문화, 경제의 중심지는 줄곧 이곳이었다.
왕도를 둘러싼 거대한 성벽은 전생 때 카르스 황제의 맹공에도 버텨냈을 정도로 난공불락.
무려 백만에 가깝다고 알려진 도시 인구는 거리마다 가득한 인파가 증명했다. 원채 사람이 득시글거려서 마차가 지나가기도 힘들 정도였다.
“나 원, 이 정도면 도시를 증축해야 하는 거 아냐? 이런 동네에서 살다간 압사당하겠네.”
한참을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마차 안에서 나는 투덜거렸다.
“이대로라면 왕궁까지 두 시간은 족히 걸리겠습니다.”
“으음, 그건 곤란한데.”
잠시 궁리해보던 나는 결심했다.
“눈에 띠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하는 수 없지. 패트릭, 우리 날아갈까?”
“예? 전 날지 못합니다만…….”
“꽉 잡고 있기만 하면 돼.”
나는 노움을 소환했다.
“노움아, 우리 날아가자.”
-응!
노움은 즉시 어스 핸드 열두 개를 만들었다.
흙으로 이루어진 큼직한 손들이 마차와 두 말을 붙잡았다.
말들은 무언가에 붙잡히자 깜짝 놀라 히히힝 울러댔다. 이윽고 어스 핸드들이 마차를 통째로 들어올렸다.
“허억!”
패트릭은 깜짝 놀랐다.
“하핫, 뭘 놀라고 그래? 가자, 노움!”
-응! 가자!
노움도 무척 재미있어하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마차를 타고 하늘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거리에 바글거리는 행인들의 시선이 대번에 우리에게 모였다.
“마, 마차가 하늘을 난다!”
“마법인가? 마차를 통째로 띄우다니 대단한 마법사인가 봐.”
“아냐. 저 이상한 손들이 마차를 들어 올리고 있잖아. 저런 마법은 들어본 적도 없어!”
“왕실의 궁정마법사단에서 새로운 마법을 개발했나보지. 저 봐, 왕궁 쪽으로 가고 있잖아.”
사람들의 여러 가지 오해를 뒤로하고 우리는 과감하게 그대로 왕궁으로 향했다.
* * *
“응?”
레이몬드 후작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내 눈을 비비며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실험을 너무 오래 했나. 이젠 환각까지 보이는구먼.”
아무렴 쌍두마차가 하늘을 가로지르며 이쪽으로 날아오는 풍경이 보이는 게 정상일 리가 없지 않은가.
레이몬드 후작은 다시 마법서에 집중했다.
최근 그는 기초 속에 진리가 들어있음을 새삼 깨닫고 1서클 마법서부터 다시 차근차근 읽고 있었다.
그러다가 레이몬드 후작은 다시금 창밖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싶어서였다.
그런데…….
“뭐야 저게!”
여전히 마차가 하늘을 날아오고 있었다.
물론 5서클 이상의 마법사라면 마차 전체에 플라이 마법을 걸어서 날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어떤 미친놈이 왕궁을 향해 날아온단 말인가.
“이런 제기랄.”
레이몬드 후작은 마법서를 내려놓고 창문을 열었다. 창밖으로 뛰어내리며 그는 마법을 펼쳤다.
“플라이!”
추락하던 그의 몸이 깃털처럼 붕 떠올랐다.
레이몬드 후작은 마차를 향해 날아가 음성증폭마법으로 소리쳤다.
[거기 하늘을 나는 마차! 혼구멍나기 전에 지상으로 내려가라! 정식 절차를 밟고 왕궁에 진입하지 않으면 침입자로 간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