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회: 5권 - 2장. 성장하는 인재들 -->
다시 쿤트 자작령에 들려서 제론과 함께 우리 가문의 저택을 방문했다.
약속대로 패트릭은 피나는 노력 끝에 오러 컨트롤에 익숙해졌다고 한다.
“이제야말로 진짜 오러 엑스퍼트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패트릭은 무척 자랑스러워하며 내게 말했다. 그 옆에서 아버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죽 쒀서 남 준 것 같아서 못내 찜찜하군.”
“사랑스런 막내아들에게 남이라니요? 우리는 한 가족 아닙니까.”
“시끄럽다! 패트릭은 너처럼 뺀질거리는 녀석에게는 너무 과분해! 패트릭, 그러지 말고 지금이라도 내 휘하에 들어오지 않겠느냐?”
“어허,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아버님.”
나는 패트릭을 사수하기 위해 아버지와 한바탕 티격태격해야 했다.
당사자인 패트릭은 어쩔 줄을 모르고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결국 패트릭만큼 쓸 만한 용병을 찾아주겠다고 다시 한 번 약속한 뒤에야 아버지를 패트릭에게서 떼어놓을 수 있었다.
“그럼 간단하게 패트릭의 솜씨를 테스트해줄까?”
나는 씨익 웃으며 물었다. 패트릭은 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저도 꼭 한 번 남작님과 실력을 겨뤄보고 싶었습니다.”
“좋아, 노움!”
-응.
노움이 땅속에서 슉 튀어나와 내 머리 위에 사뿐히 앉았다.
즉시 노움과 감각이 공유되었다.
패트릭도 바스타드 소드를 뽑았다.
노움의 감각으로 패트릭을 살펴보았다.
패트릭의 모든 것이 정령의 놀라운 감각에 포착되었다. 그의 몸 안에 흐르는 오러의 기세가 유유하게 흘러서 바스타드 소드로 뻗어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 오러가 바스타드 소드 밖으로 발출되는 순간 나는 어스 핸드를 만들었다.
마음먹은 즉시 흙이 고밀도로 뭉쳐져서 커다란 손바닥이 되었다.
노움과 감각을 공유하고 있는 까닭에 마치 내가 노움의 능력을 손에 넣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패트릭은 오러가 실린 바스타드 소드를 빠르게 휘둘렀다.
카아앙!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헉!”
“저럴 수가!”
패트릭과 아버지가 동시에 놀랐다. 물론 나도 놀랐다.
패트릭의 오러 실린 일격이 내 어스 핸드를 파괴하지 못한 것이다!
“제, 제 오러가 그렇게 약합니까?”
패트릭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물었다.
보통 내가 펼친 어스 핸드는 오러보다 강도가 약해야 정상이었다.
흙으로 뭉친 손바닥이 강맹한 오러를 견딜 리 없었다.
얼마 전에 베르한이라는 산적 두목 놈과 싸웠을 때도 어스 핸드는 오러 실린 배틀 액스에 잇달아 부서지지 않았는가.
그런데 지금, 내가 펼친 어스 핸드는 패트릭의 오러보다 견고했다.
“아직 미숙해서 그럴지도 모르겠군. 내가 해보겠다.”
아버지가 롱 소드를 뽑아들고 나섰다.
콰아앙!
더 쩌렁쩌렁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쩌저적!
아버지의 파워풀한 일격에 어스 핸드는,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금이 갔다.
그냥 그뿐이었다.
황당해진 아버지가 소리쳤다.
“이건 무슨 흙이 아니라 강철, 아니 미스릴로 만든 손바닥이냐?”
“제가 상급 정령사가 되면서 더 고밀도로 흙을 뭉칠 수 있게 된 덕분인 것 같습니다, 아버님.”
“오러보다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니…… 그런 사기 같은!”
아버지는 물론 패트릭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도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상급 정령술의 위력에 감탄했다.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도 오러보다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야말로 무적이 아닌가!
“아버님, 마침 롱 소드를 뽑으신 김에 저와 한 번 대련을 하지 않겠습니까?”
흠칫한 아버지가 소리쳤다.
“안 싸운다! 내 두 번 다신 정령사와는 싸우지 않겠다고 다짐한 바가 있다!”
“에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싸움이라면 사족을 못 쓰시는 아버님께서. 저 같은 ‘강자’를 보니 기사로서 피가 끓지 않습니까?”
“안 끓는다! 그, 그보다 넌 국왕 폐하께서 부르시지 않으냐. 볼일 다 봤으면 얼른 가봐라!”
“아무리 바빠도 아버님을 상대해드릴 여유쯤은…….”
“에잇! 난 바빠서 먼저 들어가마!”
아버지는 도망치듯이 후다닥 저택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으흐흐 음흉하게 웃었다.
“이제 바야흐로 쿤트 가문 막내의 전성시대가 도래하였구나, 큭큭큭.”
“상급 정령사가 되셨다고 하니 존경해야 마땅한데, 이상하게 영주님은 존경하고 싶지 않군요.”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던 제론이 짤막하게 평가를 내렸다. 괘씸한 녀석 같으니!
패트릭은 나와 함께 레던 왕성으로 가기 위해 길을 떠날 차비를 했다.
나는 제론에게 기다리라고 한 뒤, 카록 상단 사무실로 향했다.
한센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제 슬슬 내가 낸 과제를 풀었는지 확인해야지.
물론 한센은 과제를 풀지 못했을 거다.
다만 열심히 궁리를 했을 테고, ‘역시 전 무리에요 엉엉!’ 하며 울음보를 터뜨릴 거야.
그럼 내가 한센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멋지게 말하는 거지. ‘괜찮아. 그냥 하나만 기억하면 돼. 인간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해. 내가 낸 과제를 완수하려고 머리를 싸맨 것처럼 절실하게 말이야.’ 라고. 감격한 한센은 ‘단주님! 이 한센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하며 감격의 눈물을 줄줄이…….
……라는 게 내가 생각한 계획이었다.
그렇게 되어야 했을 터였다. 그런데 어째서,
“단주님, 판매 실적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사업을 구상했습니다!”
어째서 한센 녀석이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주장하는 거야? 바보 한센이 이럴 리가 없는데!
나는 설마 하는 심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말해봐.”
“예. 단주님의 말씀을 듣고, 다른 영지와 달리 우리 영지 사람들은 대흉년과 흑혈병을 잘 넘긴 덕분에 생계에 여유가 생겼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활에 여유가 생긴 사람들이 어떤 것에 관심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답을 발견했습니다.”
“서론은 됐어.”
“예. 올해는 피부미용과 정력에 좋은 약재를 중점적으로 판매하기로 했습니다.”
그 말에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잘 팔릴 것 같았다.
웬일이야? 어리바리한 한센이 이런 생각을 해냈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누구야?”
“네?”
“그걸 가르쳐준 사람이 누구냐고.”
“헉! 저, 저, 저, 저 혼자 새, 생각한 겁니다!”
한센은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그래, 바로 저게 눈 먼 장님이 엘프를 속이려 든다는 비유에 걸맞은 예다.
“한센아. 넌 멍청하지만 성실하고 솔직한 게 유일한 장점이었거든? 해고해버린다?”
“……메리…….”
“잉?”
“메리가 가르쳐줬습니다, 크흐흑! 제발 해고하지 말아주십시오, 단주님!”
헐. 이건 의외였다.
메리라면 한센과 결혼이 예정된 여자였다.
옛날 어린 한센에게 트라우마를 심어준 그 옆집 소녀가 그렇게 똑똑할 줄은 몰랐다.
“제법 머리가 잘 돌아가는 여잔데? 근데 왜 한센 따위랑 결혼하려 할까. 아, 하긴 한센은 어리바리하고 만만하니까 휘어잡고 살기는 좋지.”
“……다 들립니다, 단주님.”
“다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 확 잘라버릴 까보다.”
기껏 열심히 고민해보라고 과제를 던져줬더니만…….
아마 한센답게 징징거리며 지네 엄마랑 약혼녀에게 달려가 미주알고주알 고민을 털어놓았을 거다.
그러다가 머리 잘 돌아가는 약혼녀 메리가 답을 가르쳐줬고, 덕분에 한센을 깨우쳐주려 했던 내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한센아.”
“예, 단주님.”
“생각 같아서는 널 다시 예전처럼 내 잡일꾼이나 하게 하고 싶다.”
“다, 단주님!”
한센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네 결혼식은 파토가 나겠지? 당분간 약재 상회는 계속 네게 맡기마.”
“단주님!”
감격한 한센에게 내가 말했다.
“아무튼 이번 일을 계기로 네가 뭔가 교훈을 얻었으면 좋겠다.”
“네, 단주님!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제가 너무 고민하지 않고 안일하게 살아왔다는 걸 느꼈습니다. 역시 인간은 끊임없이 고민해야…….”
“아니.”
“그럼?”
“넌 네 마누라 말이나 잘 듣고 살아라.”
“네…….”
그렇게 약재 상회 문제도 일단락되자, 이젠 레던 왕성으로 출발하는 일만 남았다.
저택으로 돌아가니 제론과 패트릭이 떠날 차비를 끝내놓고 있었다.
나는 제론, 패트릭과 함께 쌍두마차를 타고 출발했다.
이제 바탄 강 문제가 종료되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못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