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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109화 (109/529)

<-- 109 회: 5권 - 2장. 성장하는 인재들 -->

“안녕하십니까, 영주님!”

영지민들이 여기저기서 인사를 해왔다.

나는 손을 흔들어 화답해주었다.

오크 부족을 몰살시킨 후로 영지가 부쩍 살 만해졌기 때문에 이곳 바탄 영지에서 내 인지도는 꽤 높은 편이었다.

병사들의 인사를 받으며 성 안으로 들어섰고, 곧장 제론을 만날 수 있었다.

“잘 오셨습니다, 영주님. 그렇지 않아도 가죽세공소의 경영 문제로 상의 드릴 것이…….”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냐.”

“예?”

“제론, 나와 함께 왕실로 가야겠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론은 눈살을 찌푸렸다. 무언가 귀찮은 일이 생겼음을 직감한 표정이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능력자 제론님의 힘이 필요해진 때라는 소리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 저는 보시다시피 영지 일과 영주님께서 떠넘기신 카록 가죽세공소를 운영하는 데만도 벅찹니다. 뛰어나신 영주님이라면 제가 없어도 뭐든 잘 하시리라 믿습니다.”

심하게 빼는데?

“에이, 무슨 겸양을. 우리의 제론 데커드님께서 이런 촌구석 영지에서 썩을 인물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잘 아는데 뭘.”

내 칭찬 공세에 제론은 당황했다.

“절 잘못 보셨습니다. 전 딱 이런 촌구석에서 썩어가는 편이 어울리는 인간입니다.”

“아이고 우리 제론 데커드님, 참 겸손하기도 하시지. 원래 그릇이 큰 인물은 다 겸손하더라.”

“아직 사람 보실 줄을 모르시는군요. 원래 배포가 작은 사람이 작은 동네에서 만족하는 법이지요.”

나는 제론과 눈싸움을 벌였다.

뭐, 장난은 여기까지.

“미안한데 어명이거든?”

“아무리 어명이라도…… 예?”

나는 루이의 밀서를 꺼내 보여주었다. 떨리는 손길로 밀서를 읽은 제론은 애써 말했다.

“이건 폐하의 옥쇄가 찍힌 서신이 아니잖습니까.”

“비밀리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당연하잖아.”

“게다가 10만 대군? 대체 무슨 일에 절 끌어들이려 하시는 겁니까! 안 합니다! 이제 그만 절 가만히 놔두란 말입니다!”

“이미 늦었어. 왕명이란다.”

“크윽!”

제론은 원망스럽게 날 노려본다.

“영주님이지요? 영주님께서 절 추천하셨습니까?!”

“흐흐, 그런 당연한 소리를.”

“끄응! 전후 사정이나 좀 설명해주십시오.”

제론은 체념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바덴 강 문제를 놓고 그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제론의 얼굴 표정이 굳어져갔다.

급기야 10만 대군을 일으켰다는 말에 제론을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미치셨습니까? 그런 위험한 짓을 벌이시다니!”

“뭐, 할 말이 없다.”

내가 판을 벌인 건 사실이니까.

“정말인지…… 영주님의 배짱에는 혀를 내두를 지경입니다. 3국이 낀 거대한 협상이라니! 후폭풍은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아하하, 일이 좀 심각한가?”

너무 심각한 제론의 표정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겸연쩍게 물었다.

제론은 한숨을 푹 쉬더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영주님의 전략에 찬성합니다. 왕실이 육제후를 압도하고 정국의 주도권을 쥐려면 이 정도 위험은 감수해서라도 일을 벌려야 했다고 봅니다. 구심점 없이 혼트 제국을 상대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지?”

“하지만 바덴 강 협상이 성공해서 통행세가 낮아지면 3국의 무역량이 늘어납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잖습니까?”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혼트 제국의 전쟁 준비도 그만큼 빨라지는 셈이지.”

활발해진 무역을 통해 혼트 제국은 군수물자를 더 빨리 확보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 만한 위험은 감수할 만하다.

“이번 협상을 계기로 오리엔 왕국과 계속 외교적인 협조를 해나가서 동맹으로까지 이어진다면, 그만한 위험은 감수할 만해.”

“오리엔 왕국과의 동맹은 저 역시도 찬성입니다.”

“그렇지?”

“하지만 한 가지 걱정이 듭니다.”

“뭐가?”

“영주님과 같은 생각을 카르스 황제는 하지 못하는 걸까요?”

“……!”

나는 흠칫했다.

카르스 황제가 나와 같은 생각을?

제론이 말했다.

“혼트 제국과 손잡고 레던 왕국을 정복한 뒤 절반씩 나눠가진다. 훨씬 현실감 있고 달콤한 제안 아니겠습니까?”

덜컥 두려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오리엔 왕국으로서도 호전적인 혼트 제국과 국경을 직접 맞대고 싶어 하진 않을 텐데?”

실제로 전생에 혼트 제국은 오리엔 왕국의 영토까지 절반 이상 잠식해버렸다.

그 위험성을 모르지는 않을 터였다.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오리엔 왕국도 한때는 대륙의 패권을 쥐고 있었던 거대한 대제국이었다는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야 그렇지…….”

“만에 하나 오리엔 왕실에 아직 그 먼 옛날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인물이 있다면, 카르스 황제는 분명 그 점을 파고들어 달콤한 제안을 할 겁니다.”

“그땐…… 진짜 전쟁이 벌어지겠군.”

내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더 이상 여유 부릴 수가 없었다.

역시 왕실에 제론을 천거하길 잘한 것 같다. 내가 생각 못했던 위협요소를 짚어내지 않은가.

“그럼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네. 육제후를 승복시키고 협상을 타결하는 것과 오리엔 왕국이 혼트 제국 측에 넘어가지 않게 하는 것, 이 두 가지 방향으로 추진해야겠어.”

“예. 내일 당장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해놓겠습니다. 그런데, 영주님. 제가 왕실로 올라가면 이 영지는 누구에게 맡길 생각이십니까?”

“음, 그건 아직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제론은 너무한다는 듯이 날 노려봤다.

“아무리 사업으로 성공가도를 달리시는 분이라지만, 이런 촌구석이라도 자기 영지인데 조금은 신경 쓰시지요?”

“하하, 미안. 혹시 천거할 만한 인물이 있어?”

“예.”

“누군데?”

“의외의 인물일 겁니다. 지금 부르겠습니다.”

제론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과연 제론이 말한 인재가 누굴까?

누구든 믿고 영지를 맡길 정도만 된다면 나는 오케이다.

솔직히 바탄 영지야 징수한 세금 수입도 얼마 되지 않고 인구도 적어서 신경을 별로 안 쓰니까 말이다.

대리 통치해줄 사람만 있다면 그냥 맡겨버리고 손을 떼놓고 싶다.

제론이 데려온 두 사람은 정말로 의외였다.

“오셨습니까, 남작님.”

“먼 길 다녀오셨는데 또 술 한 잔 하셔야지요?”

바로 딘 용병단의 단장과 부단장인 딘과 렉스였다.

“그럼 네가 말한 사람이 딘이었어?”

제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업무가 너무 많아서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마침 딘 단장이 용병단을 지휘한 경험도 있고 해서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하기야 침착하고 냉정한 성격의 딘이라면 영지 관리도 맡길 수 있을 터였다. 영지 업무는 제론을 도우면서 배웠을 테니 문제없고.

제론이 계속 말했다.

“문제는 두 사람이 용병이라서 영지를 맡길 수 없다는 점입니다만, 더 이상 용병이 아니게 된다면 문제없지요.”

“그 말은…….”

놀란 나에게 딘과 렉스가 무릎을 꿇었다.

“일전에 저희에게 기사가 되지 않겠냐고 제안하신 일, 오늘에서야 답을 드리겠습니다. 저희를 기사로 받아주십시오, 주군.”

“저희 용병단 전원 주군을 모시기로 결심했습니다.”

두 사람의 말에 나는 뛸 듯이 기뻤다.

나는 신이 나서 그들을 일으켜 세웠다.

“날 따르기로 결정해줘서 고맙다. 앞으로 술값은 걱정하지 마!”

내 말에 딘과 렉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두 사람은 나의 기사가 되었다. 그들이 통솔하던 용병단 50명도 우리 영지의 군대에 편입되었다.

나는 딘에게 내가 없는 동안 영지를 다스릴 것을 명했다.

딘은 놀라워하면서도 쾌히 승낙했다.

다음날, 나는 제론과 함께 출발했다.

한 달 이내에 왕궁에 오라고 했었고, 이제 일주일이 지났으니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바로 레던 왕성으로 출발하십니까?”

“아니. 쿤트 자작령에 잠시 들렸다가 갈 거야. 데려갈 사람이 있거든.”

“저야 상관없습니다. 그동안 업무에 치이고 살았는데 유람 나온 셈 치면 되니까요. 참고로 저는 장거리 여행 경험이 거의 없으니 야영이나 식사 등의 모든 문제는 영주님만 믿겠습니다.”

“나 이래봬도 비공식 자작이라고? 감히 내게 잡일을 시키려고?”

“어떤 자작이 하인이나 호위병도 없이 달랑 단둘이 먼 길을 나섭니까?”

“제론 너 말이야. 전부터 계속 나한테 삐딱하게 나온다?”

“누구 때문에 제가 이 고생을 하게 됐는지 기억하십시오. 예정대로라면 전 오리엔 왕국에서 새 신분으로 안빈낙도의 삶을 즐겼을 겁니다.”

전생 대로였으면 넌 거기서도 오리엔 왕국을 지키기 위해 죽기 살기로 일해야 했거든?

우리는 길을 가는 내내 티격태격 싸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노움이 몰고 있는 마차는 빠른 속도로 북쪽을 향해 질주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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