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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104화 (104/529)

<-- 104 회: 5권 - 1장. 상급 정령술 -->

나는 처음 정령 계약을 했을 때처럼 노움과 손을 맞대었다.

그리고 노움을 느끼려고 노력했다.

노움이 내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을 모두 알듯이, 나 역시 노움이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을 느끼려고 주의를 기울였다.

타인과 감각을 공유한다는 건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정령사다.

정령과 영혼이 연결된 정령사는 그게 가능하다.

대정령사 라울 리간드의 저서(로 추측되는) ‘진화의 정령술’의 주장을 나는 믿는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진척이 없었다.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노움의 말랑말랑한 손바닥의 감촉뿐이었다.

으음. 하기야, 너무 뜬구름 잡는 수련이긴 했지.

하지만 나는 잡념을 버리고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한 번에 되면 그게 어디 말이나 되겠는가. 상급 정령술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마음속에서 나를 지웠다.

깨끗이 비운 마음에 오직 처음 정령 계약을 했을 때 잠시 느꼈던 대자연의 의지를 떠올렸다.

노움과 계약했을 때, 나는 대지의 의지를 잠시나마 느꼈었다. 그때 나는 까닭 없이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가.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기이한 감동을 잊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

그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짧은 찰나의 순간, 나는 이질적인 감각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이, 이럴 수가!”

나는 기절할 듯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마치 내가 인간이 아니게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왜 라울 리간드가 인간을 ‘갇혀 있는 존재’라고 표현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짧은 순간, 잠시 느꼈던 노움의 감각은 실로 경이로웠다.

노움은 대지의 정령.

대지 위에 있는 모든 존재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것은 시각도 청각도 후각도 아니었다.

보다 기묘한…… 굳이 비유하자면 몹시 뚜렷한 육감쯤 될까?

아무튼 정령만의 육감으로 반경 수 킬로미터 내의 모든 존재를 낱낱이 파악했다.

500미터 떨어진 골목에서 웬 어린아이들이 흙장난을 하는 것도, 3킬로미터 떨어진 논밭에서 개미가 기어 다니는 것까지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는 땅속에 어떤 광물의 성분이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대단해!”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령이 이런 놀라운 감각을 가진 존재였다니.

노움이 할슈타인 백작이 오러 마스터라는 사실을 한 눈에 안 것도 당연했다.

이런 초월적인 감각을 가진 노움을 인간이 어떻게 속일 수 있겠는가?

차라리 귀머거리에 눈 먼 장님이 엘프를 속이는 게 더 말이 될 것이다.

물질계의 존재라면 누구도 본질을 꿰뚫어 보는 노움의 감각을 속이지 못할 터였다.

바로 그 노움의 육감을 나는 느낀 것이다!

맙소사.

정말 인간은 초라한 몸뚱이에 갇혀 있는 존재에 불과했다. 정령에 비하면 가여운 눈 먼 장님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째서 상급 정령사가 되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거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찰나에 불과했다.

내 정신은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고, 더 이상 노움과 감각을 공유할 수 없었다.

노움도 신기하다는 듯이 날 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빠! 방금 나랑 하나가 됐어!

하나?

아아, 그렇구나.

노움은 내 감각을 느낄 수 있고, 나 역시 아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노움의 감각을 느꼈으니 하나가 됐다고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래, 이거였구나.

라울 리간드가 주장한, 정령사가 나아가야 하는 진화의 방향이란 바로 이것이었다.

정령과 정령사가 하나가 되어서 함께 완전한 존재로 진화하는 것!

“노움, 계속 하자.”

-응.

나는 노움과 손을 맞대고 계속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나 그날은 더 이상 노움의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

뭐,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상급 정령술의 실마리를 잡은 것만으로도 큰 성과였다.

검술로 따지자면 오러 마스터에 해당되는 경지를 살짝 맛본 셈 아닌가.

그 위대한 크라일 뮤트 공작과 동급의 경지에 발을 들였다고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내 나이를, 그리고 정령술을 익힌 지 몇 년 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취였다. 그러니 조급할 필요 없었다.

음. 뭐, 그래도 되도록 바덴 강 협상이 시작되는 가을 전에 성취를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긴 하다.

상급 정령사가 되면 그만큼 내 마음도 조금은 여유가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   *   *

가을이 되기 전까지 시간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하루 종일 정령술 수련에 몰두했다.

상급 정령술의 실마리를 잡았는데 당연히 죽기 살기로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령술 수련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되도록 밖으로 외출하지 않았다.

이 점은 아버지와 아서 형님께도 미리 양해를 부탁했다.

두 사람 역시 내가 상급 정령술의 실마리를 잡았다고 귀띔하자 놀라워하면서도 기뻐하였다.

다만 아버지는 이에 크게 자극받으신 모양이었다.

“애비도 체면이 있는데 이 나이에 벌써 아들 녀석에게 추월당할 수는 없지!”

오러 엑스퍼트 최상급으로 마스터를 바라보게 되신 아버지는 궁극의 경지에 오르기 위하여 수련 방법을 바꾸셨다.

지금까지는 홀로 개인 수련장에 틀어박혀 검을 휘두르셨지만, 이번에는 가문의 기사들과 패트릭 콘돌을 가르치면서 검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하셨다.

오러 마스터란 상대의 무(武)를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경지.

그러니 타인을 가르침으로서 상대를 살피고 파악하는 법을 터득하시려는 모양이었다.

백여 명의 제자를 둔 뮤트 공작을 본받으시려는 듯했다.

덕분에 내 기사가 된 패트릭의 검술 실력도 향상될 수 있으니 나도 좋았다.

미래의 용병왕으로 재능 하나는 확실하게 보장된 패트릭이니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으면 실력이 쑥쑥 성장할 것이다.

나는 저택의 정원에서 노움과 마주보고 시간을 하염없이 보냈다.

*   *   *

일주일 동안은 아무 소득이 없었다. 더 이상 노움과 감각을 공유하지는 못하나 싶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났을 때부터 조금씩 효과가 보였다.

8일째에 드디어 노움과 감각을 공유하는데 다시 한 번 성공한 것이다.

약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희열에 찼다.

장님이 비로소 눈을 뜬 것 같은 그 느낌이라니! 굉장한 정령의 감각은 나를 완전히 홀려놓았다.

나는 마약 중독자처럼 그 감각을 자유자재로 쓰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했다.

생각해봐라!

멀쩡한 사람에게 이제부터는 눈을 뜨고 다니지 말라고 하면 어떻겠는가?

지금 내가 딱 그 심정이었다.

그 정도로 노움과 감각을 공유하는 것이란 대단한 일이었다. 거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듯한 기분이니 말이다.

그날부터는 하루에 한 번씩 노움과의 감각 공유에 성공했다.

감각이 공유되는 시간은 역시나 1초 정도.

그러나 조금씩 시간이 늘어났다.

2초, 3초, 4초…….

노움과 감각을 공유하는 일에 점점 익숙해졌다.

나는 내가 상급 정령술의 경지에 거의 임박했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전보다 더 노움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령이란 존재에 대하여 보다 더 이해하고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할까?

쉽게 말하면 더 친해졌다고 할 수 있었다. 내내 서로 마주 보고 손을 맞대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수련을 통해서 노움 역시 변화하기 시작했다.

바로 노움의 성장.

노움은 어느 때보다도 훨씬 빨리 성장하기 시작했다.

열두 살 남짓한 귀여운 소녀의 외모는 변함없었지만 덩치가 점점 커져갔다.

하루에 1,2센티미터씩 쑥쑥 크더니 어느새 키가 1미터에 달하게 되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신체만 아니었으면 누가 봐도 영락없는 열두 살 소녀였다.

내가 보기에는 상급 정령으로 진화하기 직전에 이른 것 같았다.

상급 정령술의 세계로 발을 들이는 때가 다가온 것 같아서 나는 벅찬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련을 시작한 지 열흘째 되는 때였다.

“수련이 너무 단조롭나?”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열흘밖에 안 됐건만 벌써부터 이 수련이 질리기 시작한 것이다.

애당초 같은 수련을 하염없이 반복하는 일은 내 체질상 맞지 않았다.

“으음…….”

나는 약간 수련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그래! 노움의 감각으로 다른 정령들을 보는 건 어떤 느낌일까?”

지금까지의 수련법에 아주 약간만 변화를 주기로 했다.

본질의 꿰뚫어보는 노움의 감각으로 운디네와 샐러맨더를 살펴본다면 무언가 더 성과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운디네와 샐러맨더를 불러 자리에 앉혀놓았다.

요 귀여운 것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날 빤히 바라보았다.

어휴, 사랑스런 내 새끼들. 꼬옥 껴안아주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노움, 손.”

-응.

나는 노움과 손을 맞댔다.

이제는 노움과 감각을 공유하는 게 꽤나 능숙해졌다. 정신을 집중하니 금세 노움의 감각에 닿을 수 있었다. 게다가 공유 시간도 늘어나서 10초는 너끈히 버텼다.

나는 노움의 감각으로 운디네를 바라보았다. 아니, 본다기보다는 느낀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그리고 나는 깜짝 놀랐다.

노움의 관점으로 보는 운디네는 겉모습과 같이 열두 살 남짓한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아니었다.

대자연의 일부, 물의 정수로서의 운디네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잔잔하고 맑은 호수와도 같은 아름다움이라고 할까. 인간의 시각만으로는 채 다 알아볼 수 없는 순수한 자연미가 보였다.

이번에는 샐러맨더를 주시했다.

샐러맨더는 특유의 재수 없는 표정으로 뭘 보냐는 듯이 날 쳐다봤다.

하지만 그 겉모습 너머의 내면에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보인다.

아직 그 무엇도 불태운 적 없는, 신이 인간에게 선물해준 태초의 상태의 순수한 불과도 같은 존재감!

“아아……!”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왜 내가 정령의 감각에 홀렸는지 이제야 알았다.

그것은 비단 노움의 감각이 인간보다 훨씬 발달됐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정령은 인간이 미처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본다.

정령들이 물질계의 온갖 사물에 호기심을 보이고 흥미로워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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