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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103화 (103/529)

<-- 103 회: 4권 - 8장. 정령술 연마 -->

정령과 정령사는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정령이 하급에서 중급, 상급, 최상급으로 진화하면 당신 역시도 영향을 받아 진화하게 된다.

그렇다면 정령이 대자연의 의지의 주체가 되는 정령왕으로 궁극적인 진화를 이루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될까?

정령이 완전한 존재가 된다면, 당신은?

당신 역시 완전한 존재가 되지 않겠는가?」

나는 솔깃해졌다.

그냥 가볍게 읽으려 했더니, 보통 책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상급 정령사로 발돋움 할 수 있는 힌트가 있지 않을까 싶어 집중해서 읽었다.

「당신은 정령왕을 소환하는 정령사를 들어본 적 없을 것이다. 그런 건 애당초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물질계의 어떤 존재도 감히 대자연의 의지의 주체인 정령왕을 소환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건 사실 잘못된 관점이다.

정령왕을 소환할 수 없는 건 당신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령과 함께 당신은 조금씩 성장하며 단계적으로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정령이 정령왕으로 진화함으로서 완전해지면, 당신 역시 그처럼 완전한 존재가 된다.

나는 감히 주장하건대, 지금껏 정령왕의 정령사가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완전해졌기 때문에 더 이상 물질계에 존재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물질적 형태에 갇힌 생로병사의 괴로운 존재가 아니라, 완전하고 자유로운 정령계의 존재가 된 것이다.

이제 당신은 엘프가 인간에게 정령술을 가르쳐준 이유를 알아야 한다.

정령술이란 정령을 불러내서 이것저것 일을 시키는 기술이 아니다. 정령으로 하여금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수단도 아니다.

불완전한 당신을 완전하게 해줄 수 있는 위대한 학문이자 축복이다.

나는 평생 내 사랑스런 정령을 죽은 내 아들로 여겼다. 나의 실프는 아들을 잃은 상실감에 빠진 나를 위해, 기꺼이 내 아들을 대신할 존재가 되어준 것이다.

그러나 말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나는 실프의 본연의 진심을 알게 되었다.

내 아들과 같은, 내가 보고 싶어 했던 물질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실프가 왜 나에게 와주었는지, 정령술이 왜 존재하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알았을 때, 내가 보고 싶어 하는 모습으로만 정령을 보지 않고 정령의 진심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을 때, 비로소 나는 상급 정령사가 되고 최상급 정령사가 되었다.

그러니 당신도 노력해라. 정령에게 당신이 원하는 모습만을 강요하지 마라. 정령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라. 그러면 당신도 나와 같이 될 것이다.

―라울 리간드」

라울 리간드?

헐!

유일무이한 최상급의 대정령사였던 라울 리간드의 저서였단 말이야?

그가 자기 저서를 남겼다는 건 들어본 적 없는데.

놀란 나는 줄리아에게 달려가 물었다.

“줄리아, 혹시 이 책 어디서 났어?”

“단주님 서재에 있는 책은 다 서적상에게 시켜서 구해온 것들이에요. 경영과 정령술에 관한 책을 최대한 많이 구해오라고 주문했었는데, 정확하게 어떤 책이 있는지는 확인해본 적 없어요.”

“응, 알았어.”

나는 이 책의 저자가 진짜 라울 리간드인지, 아니면 그를 사칭한 사기꾼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진짜 라울 리간드일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기꾼이라고 하기에는 내용에 진심성이 있었고, 라울 리간드는 특정 국가의 공직에 올라본 적 없는 자유로운 방랑자였다. 그의 구체적인 행적은 어느 기록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때문에 언제 어느 장소에서 책을 남겼다 해도 알려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 알려지지 않은 그의 저서가 서적상을 통해 이리저리 떠돌다가 내 서재에 도착했다고 생각해도 이상할 것 없었다.

“좋아. 한 번 이 책을 따라서 수련을 해보자!”

그렇게 결심한 나는 내 방으로 돌아가 책을 펼쳤다. 페이지를 넘기다가 내가 원하는 대목을 발견했다.

「중급에서 상급 정령사로 진화하려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정령은 당신과 영혼이 연결되어 있어서, 당신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중급 정령사인 당신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아도 정령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반대로도 가능하다고 생각해보지는 않았는가?

왜 정령만 당신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나.

당신도 정령의 관점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정말 그리 생각한다면, 당신은 너무나 자기중심적이고 ‘물질적인 껍데기’에 꽉 갇힌 인간이다.

당신의 정령의 입장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려고 노력해보아라. 그리고 기억하라. 처음 계약했을 때 잠시나마 느껴보았던 위대한 대자연의 의지를.

성공한다면 당신은 상급 정령사가 될 수 있고, 정령의 감각으로 세상을 볼 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이 그저 인간에 불과했던 중급 정령사 시절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는, 상급 정령사가 되어보면 알 것이다. 그 자유로움! 인간의 ‘갇힌’ 감각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환상의 세계!」

“좋아. 한 번 해보자.”

나는 우선 정령들을 불렀다.

-불렀어?

-안녕.

-크헤헤! 집도 태우고 싶다!

세 정령은 제각각의 개성대로 나타났다.

나는 그중 가장 오래 나와 함께 한 노움을 바라보았다.

“노움. 내 앞에 앉아봐.”

-응, 아빠.

노움은 내 앞에 앉아 나와 마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노움은 뭐가 그리 좋은지 배시시 웃었다.

그런 노움이 너무나 귀여워서 나 역시 웃음이 나왔다.

-나도…….

운디네가 쪼르르 다가와 내 주위를 빙빙 돌았다. 자기도 끼어달라는 뜻이었다.

나는 운디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달랬다.

“잠시만 기다려줘. 나중에 운디네하고도 할게. 알았지?”

-……응.

운디네는 시무룩한 얼굴로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샐러맨더는 나에게 신경도 안 쓰고 불량스럽게 하품을 쩍쩍 할 뿐이었다.

나는 노움에게 손을 뻗었다.

-헤헤헤.

노움은 내 생각을 읽었는지 활짝 웃으며 역시 손을 뻗어왔다.

서로의 손이 맞닿았다.

따스하고 상냥한 감촉…….

처음 정령 계약을 맺었을 때 했던 것처럼, 우리는 서로 손을 맞댄 것이다.

다시 느끼고 싶다.

서로의 영혼이 연결되었을 때 잠시 느꼈던 대자연의 의지, 대지의 의지를. 그게 바로 노움일 것이다.

나는 노움을 알고 싶었다.

이 귀엽고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를 보다 더 많이 이해하고 싶었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의 관점에서 느껴보고 싶다고 생각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순간,

“……?!”

그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짧은 찰나의 순간, 나는 이질적인 감각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   *   *

“동이 터 오른다.”

지평선 위로 고개를 살짝 내미는 태양이 창밖 너머로 보였다.

어둠이 걷히는 순간을 응시하는 창백하고 야윈 청년의 얼굴은 인형처럼 무심하기 그지없었다.

청년의 등 뒤에는 장년의 검객이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넌 저걸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카르스 황제가 물었다.

할슈타인 백작이 답했다.

“폐하의 미래를 생각합니다.”

“왜 내 미래를 생각하지?”

“그 곁에 제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카르스 황제는 히죽 웃었다.

그것은 무표정한 얼굴 위에 입 꼬리만 올라간, 일그러진 인형의 미소였다.

*   *   *

레던 왕실에 혼트 제국 황실에서 보낸 서신이 도착했다. 이웃국가 군주의 친서였기 때문에 어떤 중간절차도 없이 재상인 듀론 후작에게 도착했다.

듀론 후작은 그것을 에릭 국왕에게 가져갔다.

“폐하. 혼트 제국 황제의 친서입니다.”

“가져오시오.”

에릭 국왕은 서신의 봉인을 뜯고 펼쳤다.

내용을 읽어 내리면서 에릭 국왕의 얼굴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갔다.

“폐하, 무슨 내용입니까?”

“혼트 제국이 약속대로 육제후를 압박하기 위해 군대를 움직였다고 하오.”

“다행이군요.”

“동원된 병력의 숫자는…….”

“듣고 있습니다, 폐하.”

에릭 국왕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 숫자는, 무려 십만!”

“시, 십만……?!”

듀론 후작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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