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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102화 (102/529)

<-- 102 회: 4권 - 8장. 정령술 연마 -->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아버지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생각 난 김에 릭에게 편지를 보내야겠군. 나와 카록보다 약하다고 놀리면 녀석도 분해서 보다 더 독하게 수련에 전념할 게 아니냐.”

“하하핫, 옳으신 말씀입니다.”

아서 형님이 손뼉을 치며 찬성했다.

승부 근성이 강한 릭 형님은 아마 바짝 약이 올라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할 터였다.

“저도 정령술에 관한 책을 더 살펴볼 겸,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래라.”

“형님과 형수님도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가족들과 작별한 뒤 저택을 나섰다.

*   *   *

나와 시스, 줄리아가 함께 돈을 투자해 지은 아담하고 멋진 3층 저택.

작년 늦가을 경에 바탄 영지로 떠났으니, 이 집에 돌아온 것도 거의 반 년만이었다.

“나 왔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며 말하자, 시스와 줄리아가 쪼르르 달려 나와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오셨어요, 단주님!”

“……반가워.”

두 여자를 보자 나도 마음이 흐뭇해졌다. 어쨌건 둘 다 내 병문안을 와주었었지. 요 착한 것들.

그런데 줄리아를 보자 문득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웨이브 진 붉은 머리칼, 검정색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요염한 몸매. 그리고 도톰한 입술…….

줄리아가 병문안 와서 저 입술로 나에게 한 짓이 떠오르자 낯 뜨거워서 제대로 얼굴을 마주볼 수가 없었다. 아직도 그 보드라운 감촉이 생생했다.

끄응.

나는 애써 태연한 척 말을 건넸다.

“나 없는 동안 병기점은 잘 운영하고 있었지?”

“네. 지난 분기 업무보고서를 보여드릴게요.”

카록 병기점은 줄리아에게 경영을 맡기는 대신, 1년을 4분기로 나눠서 분기마다 업무보고서를 제출하게 하고 있었다.

업무보고서를 보니 매출이 상당히 신장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카록 병기점의 매출이 웬만한 영지의 1년 치 세액과 맞먹고 있었으니 말이다.

“대단한데?”

“오호호, 그럼요. 누가 사장인데요. 저 잘했죠?”

“응, 정말 잘했어.”

“그럼 상을 줘요!”

“……잉? 연봉 올려줄까?”

“그딴 건 제가 알아서 챙겨먹으면 되요! 늘 주던 상을 달라고요.”

그러면서 줄리아는 자기 머리를 스윽 내밀었다.

아…….

그제야 그녀가 원하는 걸 깨달은 나는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자, 잘했다.”

“우후후.”

줄리아는 기분 좋은 듯 여우처럼 배시시 웃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시스도 머리를 내밀었다.

“그래. 시스도 잘했다.”

뭔지는 몰라도 난 시스의 머리도 쓰다듬어주었다. 줄리아는 발끈해서 뭐라고 항의했지만 가볍게 무시해줬다.

함께 오순도순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잡담을 나눴다.

흥이 나서 포도주도 한 병 꺼내 마셨다.

술이 들어가자 줄리아는 흥분에 차서 카록 병기점에 대해 떠들어댔다.

“……놀라운 점이 뭔지 아세요? 총매출은 병기 납품 거래의 비중이 높지만, 순이익의 절반가량은 숙련 장인 이상이 제작하는 고급 무구의 판매에서 나오고 있어요.”

한마디로 군대에 병기를 대량으로 납품하는 것보다, 돈 많은 기사에게 무진장 비싼 무구를 몇 개 파는 게 더 이익이라는 뜻이었다.

뭐, 그렇겠지. 내가 입고 있는 레드 미스릴 코트만 봐도 값어치가 작은 영지 수준 아닌가. 원래 거품이 많이 끼는 사치품을 팔아야 돈이 되는 법이다.

“숙련 장인들이나 구스 최고 장인님이 최고급 재료로 제작한 무구를 사고 싶어서 다들 안달을 내고 있어요.”

이는 뮤트 공작에게 보검을 선물한 뒤로 생긴 현상이었다.

“그렇겠지. 검을 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뮤트 공작처럼 되고 싶을 테니까.”

“바로 그거예요! 값비싼 드레스나 귀금속으로 사치를 부리고 싶은 허영심은 여자만의 전유물이 아니었어요. 최고급, 희귀, 값어치 등은 근엄한 기사들의 흥미도 끌 수 있는 마법의 단어였어요!”

“당연하지. 따지고 보면 귀족, 특히나 기사야말로 가장 명예를 중시하는 족속이니까. 여자들보다 훨씬 남의 눈을 의식하는 과시적인 존재라고.”

“그래서 말인데요, 최고급 무구를 한정된 수량만 생산해서 희소가치를 높이는 전략은 어떨까요?”

“흐음…….”

“수량이 적어서 아무나 구할 수 없다면, 다들 눈에 불을 켜고 구입하려 들지 않을까요?”

줄리아의 제안은 타당했다.

흔히 말하는 ‘경제의 딜레마’는 자원은 한정적인데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기 때문이 아니던가.

희귀해질수록 가치는 높아진다. 물론 그걸 생산하는 장인들의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줄리아, 내게 더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뭔데요?”

“솜씨 좋은 화가들을 20명 정도 고용해.”

“네? 화가들을요?”

줄리아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화가들을 시켜서 최고 장인인 구스 영감과 그 휘하의 숙련 장인들이 1년간 생산한 고급 무구를 그림으로 그리고 설명을 곁들여서 책으로 엮는 거야.”

“일종의 홍보지 같은 거네요? 하지만 책으로 엮어서 발행하면 돈이 더 많이 들잖아요.”

마을 광장 게시판에 홍보지를 붙이는 건 장사꾼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하는 전형적인 마케팅 방법이다.

하지만 내가 떠올린 방법은 그보다 한 발, 아니 두세 발은 더 앞선 것이었다.

“그 책 제목은 ‘카록 카탈로그’라고 짓고 딱 100부만 발행해야 돼.”

“상품 소개용 책자인가요? 그럼 더 많이 찍어서 여기저기 돈 많은 기사가문에 뿌려야죠.”

“천만에. 그 책은 아무나 손에 넣을 수 없어. 레던 왕국과 오리엔 왕국을 통틀어서 가장 훌륭한 무인으로 선정된 100인에게만 보내주는 책자거든.”

“아! 이제 알겠어요!”

줄리아는 그제야 내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감탄했다. 나는 계속 설명했다.

“카록 병기점에서 생산되는 고급 무구는 그 ‘카록 카탈로그’를 소지한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판매할 거야. 그리고 팔리지 않은 무구는 연말에 ‘카록 카탈로그’를 얻지 못한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거지.”

“기사라면 다들 ‘카록 카탈로그’를 받고 싶어 하겠네요. 카록 카탈로그를 받으면 가장 훌륭한 무인 100인에 선정된 셈이니, 명예의 징표나 다름없잖아요.”

“카록 카탈로그를 기사들의 명예의 상징으로 만들 거야. 그렇게 되면, 자연히 우리 카록 병기점의 명성도 높아지지 않겠어? 당연히 우리가 생산한 고급 무구의 가치도 껑충 뛸 테고.”

“멋져요, 멋져! 그렇게 되면 대륙 최고의 병기점이 될 거예요! 무인이라면 누구나 우리 병기점에서 만든 무기를 갖고 싶어 하겠어요.”

“하지만 그 전략에 성공하려면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해. 말 안 해도 알지?”

“네. 나머지는 저에게 맡겨주세요! 실력 좋은 화가 20명, 톱클래스의 실력을 가진 장인들, 최고의 기사 100인을 평가·선정할 평론가들을 고용하고 일을 추진할게요.”

줄리아는 자신 있게 말했다.

이것이 내가 줄리아를 고용해서 사장 자리에 앉혀놓은 이유였다.

아이디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 추진력이다. 색다른 발상이야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걸 강한 행동력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다.

나는 생각난 경영 전략을 던져주었고, 줄리아는 놀라운 추진력으로 직접 행동에 옮겨준다. 상단 경영에 관해서는 이미 내 분신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나 할까?

게다가 줄리아 본인도 일을 좋아하니 더없이 소중한 2인자였다. 앞으로 잘 해줘야지.

식사를 마치고 줄리아는 ‘카록 카탈로그’ 프로젝트를 준비한다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시스는 티타임을 가질 생각인지 홍차와 산더미처럼 쌓인 쿠키를 가져와서 먹기 시작했다.

나도 올라가서 책이나 봐야겠군.

나는 3층의 내 서재로 올라갔다.

서재에는 많은 책이 꽂혀 있었다. 본래 가문의 저택에서 가져온 책들 말고도, 내가 없는 동안 줄리아가 서적상으로부터 책을 많이 구입해서 책장에 채워 넣은 모양이었다.

가만 보니 정령술에 관한 책들도 꽤 있었다. 나 읽으라고 사놓았구나.

나는 줄리아가 참으로 기특해졌다.

처음엔 그저 같이 있으면 골치만 아픈 불만쟁이였는데, 이제는 의외로 착하고 귀여운 구석이 많았다.

그러고 보니 선물을 하나 사주겠다고 약속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잘 기억이 안 나네. 나중에 하나 구해줘야겠다.

나는 눈에 띄는 정령술 관련 책을 하나 뽑았다. 책 제목은 ‘진화의 정령술’이었다.

「본래 정령은 완전한 존재였다.

정령계에서 대자연의 의지로서 존재할 적에는 그 무엇보다도 완전함 그 자체였다.

그런 정령이 대자연의 의지에서 인위적인 형태를 갖춘 물질적인 존재로 추락한 이유는, 바로 당신 때문이다.

당신이 정령을 물질계로 불러내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정령은 당신을 위해 추락했다.」

도입부의 서문부터 내 흥미를 끌었다.

본래 완전체였던 정령이 정령사가 물질계로 불러낸 탓에 불가피하게 불완전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니. 그걸 추락했다고 표현하는 게 신선했다.

그래.

생각해보면 정령은 대자연의 의지다.

처음 계약하면서 서로의 영혼이 연결될 때, 나는 대자연의 의지를 잠시마나 느꼈다.

그 차마 말로 형용할 수조차 없는 그 위대함과 까마득함! 나는 까닭 없이 감격하여 울고 웃고 경악했더랬다.

정령은 본래 그런 존재였다. 그 위대한 대자연의 의지로서 존재하던 무결점의 완전체였다.

그런 정령들이 내가 소환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외모와 성격을 갖춘 자아로서 변화되어 물질계에 불려나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노움, 운디네, 샐러맨더에게 몹시 고마우면서도 미안해졌다. 앞으로 더 잘해줘야지.

나는 계속 책을 읽었다.

「당신과 계약한 정령은 현재 대자연의 의지의 작은 파편에 불과하다. 당신이 원하는 모습 그대로의 존재가 되어서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그럼에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당신이 정령사로서의 자질이 없다는 뜻이며, 조만간 정령친화력을 완전히 잃게 되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당신의 정령이 완전해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그저 대자연의 티끌에 불과하지만,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정령의 진화다.

중급, 상급, 최상급 등 단계적으로 진화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정령왕이 되면, 마침내 정령은 대자연의 ‘티끌’에서 대자연의 의지를 행하는 위대한 ‘완전체’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상식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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