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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99화 (99/529)

<-- 99 회: 4권 - 7장. 뜻 깊은 환자 생활 -->

줄리아가 왜 나에게 입맞춤을 한 거야?

아니, 늘 일이 많아서 피곤한 애가 왜 집에서 편히 쉬지 않고 짬을 내서 내 병문안을 온 거야? 단주인 나에게 점수 따려고? 그럼 내가 의식불명으로 잠들어 있는데 키스는 왜 하냔 말이야!

줄리아는 나의 혼란함에 부채질을 했다.

“어머, 단주님. 목이 마르신 것 같네요.”

아니! 목 안 마르거든?

“제가 먹여드릴게요. 직, 접.”

돼, 됐어. 구,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단다. 암, 그렇고말고. 그리고 직접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니?

‘직접’의 의미는 곧 알게 되었다.

줄리아는 나에게 또다시 입을 맞추더니 입속에 머금고 있던 물을 내 입안에 부어넣었다.

한 번, 두 번…… 생략하겠다.

입에서 입으로 물을 먹여주는 깊은 키스를 열한 번은 한 것 같았다.

나에게 물을 다 먹인 줄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우, 속 시원해! 한동안은 계속 의식불명 상태였으면 좋겠어.”

악담 같은 소릴 남기고 줄리아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녀가 나간 뒤에도 나는 한동안 멍하니 누워있기만 했다. 너무 쇼크인 일을 많이 겪어서 정신이 없었다.

줄리아의 보드라운 입술의 감촉이 입에 선명히 남아 있어서 내 마음을 더 심란하게 만들었다.

다음날에는 시스도 병문안을 왔다.

말수가 적은 시스는 내 머리맡에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로 한 시간 동안 아무 말도 안 해서 내가 다 답답할 정도였다.

눈을 뜰 수 있을 땐 말이 없어도 눈부신 미모를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눈 감고 의식불명인 척 연기하고 있으니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한 시간쯤 후, 시녀가 내 저녁식사로 소고기와 야채를 듬뿍 넣고 오래 끓여 국물을 낸 뒤 건더기만 건져낸 스튜를 가져왔다.

“줘.”

시스가 시녀에게 요구했다.

시녀는 다시 돌아갔고, 시스는 직접 내 입에 스튜 국물을 흘려 넣어주기 시작했다.

쩝쩝, 맛있군. 시스가 먹여주니 더 맛있는 것 같아.

그렇게 조용히 나는 스튜를 받아먹었다.

식사가 끝나고 나는 시스의 목소리를 한 번 더 들을 수 있었다.

“배불러?”

그렇게 혼잣말처럼 묻고는 냅킨으로 내 입가를 닦아주었다. 아아, 귀여워 죽겠어!

나는 시스를 끌어안고 뒹굴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했다. 나중에 노움과 운디네를 불러서 실컷 안고 뒹굴어야지.

시스는 부스럭거리며 내 침대로 기어들어왔다. 내 바로 옆에 밀착한 채 눕더니 날 인형마냥 끌어안고 잠들었다.

시스가 새근새근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든 동안 나는 비로소 눈을 뜰 수 있었다.

긴긴 푸른 머리칼을 흐트러뜨린 채 눈을 감고 잠든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하얀 살결은 쓰다듬어주고 싶고 고운 속눈썹은 사랑스러웠다.

결국 시스는 한 시간 동안 내 옆에서 잠을 자다가, 들어온 시녀가 깨워준 후에야 돌아갔다.

요 예쁜 것들.

아무튼 내 병문안을 와주는구나.

그런데 한센, 이 괘씸한 녀석은 왜 코빼기도 안 비치는 거야? 충성심 빼고는 쓸데가 없는 녀석이 감히!

어디 두고 보자!

……라고 생각했었는데, 한센은 다음날 점심 경에 찾아왔다.

“단주님, 저 한센입니다.”

오오, 오긴 왔군. 100일 동안 갈구려고 했는데 특별히 10일로 줄여주마.

한센도 내 머리맡에 앉았다.

녀석은 시스와 달리 말이 무진장 많았다. 그 대부분은 나에 대한 불만 표출이었다.

“단주님! 야속하신 단주님! 왜 절 그렇게 싫어하십니까! 크흐흑!”

내가 언제 널 싫어했다고 그래? 그냥 채찍, 채찍, 채찍, 당근으로 널 대했을 뿐이지.

한센의 한탄을 계속되었다.

“그래요! 저 좀 어리바리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제가 무능하다는 뜻은 아니잖습니까?! 저도 우리 동네에서는 제법 출세했다는 소리를 듣는단 말입니다!”

하기야, 내 상단의 약재 사업을 담당하게 되었으니 출세라면 출세였다.

“이웃집 또래 소녀 메리를 아십니까? 제가 어릴 때 사랑을 고백했다가 뼈아프게 차여서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바로 그 소녀 말입니다! 바로 그 메리네 집에서 혼담이 들어왔습니다! 메리네 부모님이 절 사위로 삼고 싶답니다! 조만간 제가 그 메리의 남편이 되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이 한센, 더 이상 예전의 한센이 아닙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발전한 것 아닙니까? 예?! 으하핫!”

한센은 미친놈마냥 웃어젖혔다.

이, 이 녀석, 정신이 붕괴되고 있어! 괘, 괜찮은 거냐?!

나는 심한 불길함을 느꼈다.

그래 미안하다! 내가 앞으로는 조금 상냥하게 대해줄게. 그러니까 미친놈만 되지 말렴, 응? 내가 카르스 황제 이후로 미친놈이라면 학을 뗀단다.

다행히 한센은 아직 미친 건 아닌 듯했다.

한참동안 신세한탄을 하더니 가버렸다. 갈 때도 내게 작별인사까지 하는 걸 보니 아직 정신건강은 무사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의식불명 환자생활은 꽤나 즐거웠다.

내가 눈을 감고 있는 동안 많은 사람의 본심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아서 형님까지도 날 찾아와 혼잣말로 고민을 털어놓았다.

“후우…… 부부생활이란 게 다 이런 건지 모르겠구나.”

아서 형님은 레이라(전생의 내 마누라)와의 신혼생활에 고민이 있는 모양이었다.

한숨을 푸욱 쉬더니 아서 형님은 말을 이었다.

“사실 레이라를 아내로 맞아서 나는 무척 만족스럽다. 그녀는 착하고 내 말에 잘 따라주지. 아차, 너는 아직 모르겠지만 레이라는 내 아이를 가졌단다. 조만간 아버지가 되니 축하해다오.”

커억!

나는 놀라서 흠칫했다.

레이라가 임신? 이 양반들, 결혼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자식이야?!

전생의 내 마누라와 큰형님 사이에서 내 조카가 태어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몹시도 이상해졌다. 이상해! 이상하다고!

“아버지는 가문의 후계자가 될 아들을 원하시고 나도 겉으로는 아들이길 바라는 척 하지만, 사실 난 딸이기를 기대하고 있단다.”

저도요. 자꾸 전생의 내 망나니 아들이 생각나서 꺼림칙하거든요.

“사실 우리 가문이 가뜩이나 남자밖에 없어서 좀 삭막하지 않으냐. 어쩌면 남자들밖에 없어서 아버님의 성격이 나날이 폭력적으로 변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 견해에는 나도 동감이었다.

기사가문에다가 남자들밖에 없으니 아버님도 릭 형님도 폭력적인 마초들이 된 것이다.

“레이라가 들어와서 약간 분위기가 밝아지기는 했지만 아직 아버님을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내 딸이 태어나면 어떻겠느냐? 설마 아버님이 귀여운 손녀를 무릎 위에 앉혀놓고 잔인한 전쟁 얘기를 하겠느냐? 분명 아버님의 성격도 조금은 부드러워질 거다.”

과연, 좋은 생각이군.

하기야 나도 우리 노움, 운디네를 만난 뒤로 나날이 착해지고 있지. 최근 들어 샐러맨더를 만나 다시 나빠지고 있지만 말이야.

“아차, 얘기가 딴 길로 샜구나.”

상관없습니다, 형님. 어차피 혼잣말 아닙니까. 마음대로 지껄이세요. 난 그저 조용히 들으면서 형님의 심리상태나 분석해볼 테니까.

이제 보니 아서 형님도 고민이 참 많은 사람이었다.

그동안 아버지도 나도 아서 형님에게 여러모로 의지하는 경향이 있어서 몰랐는데, 아서 형님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었다.

“지난해에 결혼식을 성공적으로 올렸고 아이까지 가졌다. 이만하면 성공적으로 신혼생활을 보내는 것 같은데, 영 못내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설마…… 성생활 문제는 아니죠? 아닌 거죠?!

무, 물론 제가 왕년에 레이라와 부부생활을 좀 해봤지만, 제가 형님한테 레이라가 좋아하는 체위나 성감대를 가르쳐드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무엇보다도 기분이 이상해지니까 제발 부디 성생활 고민만 아니기를!

다행히 내가 생각한 쪽의 문제는 아닌 듯했다.

“어쩐지 우리 사이에 거리감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레이라를 존중해주고 레이라도 나를 존중해줘. 그런데, 너무 예의가 바르다고 할까? 가끔씩 마치 타인을 대하듯 서로 조심스러운 것 같아서 외로워질 때가 있단다. 나도 때로는 사이좋은 소꿉친구처럼 살갑게 지내고 싶은데……. 혹시 레이라는 내심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닐까 고민이구나.”

난 두 사람 사이의 문제를 알 것 같았다.

아서 형님은 사실 무척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다.

그게 단지 겉모습만 그러면 모르겠는데, 정말 타고난 천성 자체가 예의범절, 성인군자였다. 그 때문에 레이라도 아서 형님을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이다.

뭐, 그런 문제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사라지는 사소한 일이다.

아직 결혼한 지 1년도 안 됐는데 벌써 서로의 모든 걸 알게 되길 기대할 수는 없지 않나.

아무튼 사소한 문제라서 다행이군.

차마 입에 담기 부끄러운 쪽의 문제였으면 식은땀만 뻘뻘 흘렸을 텐데.

대부분의 고민이 다 그렇듯, 아서 형님도 고민을 내게 혼잣말로 털어놓다가 스스로 답을 찾았다.

“그래. 벌써부터 조급해질 필요는 없겠구나. 아이가 태어나면 보다 서로에게 솔직해지는 계기가 되겠지. 아무튼 이렇게라도 고민을 털어놓으니 속이 시원해지는구나. 얼른 쾌유하길 빌겠다.”

그러고 아서 형님을 휙 나가버렸다.

나의 환자놀이는 계속되었다.

나흘째 되는 날에는 아버지가 혼자 병문안을 왔다. 아버지는 털썩 침대 위에 걸터앉고는 내 이마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서 정신을 차려라. 난 너를 그렇게 약하게 키우지 않았다.”

그 말에 나는 순간 가슴이 찡해졌다.

내색은 안 해도 항상 날 사랑하고 계시는 그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야 이 애비가 널 상대로 오러 엑스퍼트 최상급의 성취를 마음껏 시험해볼 수 있지 않으냐.”

…….

“우리 가문의 기사들은 충성스럽긴 한데 다들 약골이라서 마음껏 실력발휘를 할 수가 없다. 요즘 우리 가문의 재정 수입도 좋아졌는데, 어디 가서 오러 엑스퍼트쯤 되는 기사 한 명쯤 영입하는 것도 어떨까 싶구나. 아무튼 현재로서는 내가 마음껏 오러를 펑펑 날려도 되는 상대는 너밖에 없으니, 어서 쾌유하길 바란다. 이 애비가 심심하잖니.”

결국 심심해서였냐.

나는 뭐 흠씬 두들겨 패도 괜찮은 존재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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