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회: 4권 - 6장. 난투 -->
분노한 베르한은 배틀 액스를 하늘 높이 추켜올리더니, 내 머리를 향해 수직으로 내리찍었다.
콰콰쾅!
나는 어스 핸드 세 개를 날려서 막아냈다. 하지만 어스 핸드는 오러의 힘을 당해내지 못하고 흙이 되어 부서져 내렸다.
오러의 기세는 죽지 않고 금방이라도 내 머리를 쪼갤 듯이 떨어졌다.
“큭! 제길!”
나는 급한 김에 반사적으로 왼팔을 들어 막았다.
빠지직!
“끄아아악!”
팔뼈가 부러지는 고통과 함께 나는 비명을 질렀다. 뼈가 부러져서 왼팔이 기이하게 꺾여 있었다.
다행히 팔이 잘려나가지는 않았는데, 내가 입고 있는 레드 미스릴 코트 덕분이었다. 미스릴은 오러를 견딜 만큼 단단했던 것이다.
베르한도 내가 팔뚝으로 오러 실린 배틀 액스를 막자 놀란 눈치였다.
“미스릴? 오오, 좋은 것을 입고 있었군!”
“난 소중하거든!”
이 투철한 상인 정신. 아파 죽겠는데도 말싸움에는 지지 않고 대꾸해준다.
“크하핫! 그래? 그럼 소중한 형씨, 이제 뒈져라!”
뻐억!
베르한은 발길질로 내 복부를 뻥 차버렸다. 숨 막히는 고통과 함께 나는 마차 아래로 추락했다.
그러나 나는 가까스로 정신의 끈을 붙잡았다.
노움!
숨이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노움에게 명령했다.
-아빠!
노움은 어스 핸드로 날 붙잡고 다시 마차 위로 올려주었다.
“오오, 끈질긴데? 제법 근성 있어!”
“칭찬 고맙군. 보답이 필요하겠어.”
나는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끈질기게 대꾸해주었다.
나는 노움을 시켜서 어스 핸드를 만들어 베르한의 면전으로 날려 보냈다.
“진부하군!”
베르한은 배틀 액스로 어스 핸드를 가차 없이 베어버렸다. 그러나 그 순간 어스 핸드가 폭발했다.
퍼엉!
그 흙은 모두 베르한의 얼굴을 향했다. 노움이 내 의도를 전달받아서 행한 장난질이었다.
“크윽! 이 비겁한 새끼!”
눈에 흙이 들어간 베르한은 눈을 비비며 고통스러워했다.
“놀고 있네.”
나는 또 다른 어스 핸드로 그의 발목을 낚아챘다. 베르한은 균형을 잃고 쓰러져 마차 밖으로 굴러 떨어쳤다.
“크악! 어림없다!”
그 와중에도 저 고릴라 자식은 팔을 뻗어서 마차 귀퉁이를 잡고 매달렸다.
“이 새끼!”
“우리도 있다!”
“잘도 우릴 엿 먹였겠다! 죽여 버린다!”
고릴라의 부하들이 따라와 하나둘 마차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실로 거머리 같은 놈들이었다.
그런데 우리 쪽도 화난 애가 하나 있거든?
“샐러맨더! 본때를 보여줘.”
-날 때렸다! 아프게 했다! 다 불태울 테다!
아이스 에로우에 얻어맞은 바람에 심하게 화가 난 샐러맨더는 마차에 매달린 부하들에게 불길을 뿜었다.
“크아악!”
“뜨거워!”
“내 손!”
개념 없는 망나니 아들의 땡강은 얼마나 무서운가.
파리들처럼 마차에 매달린 부하들이 불에 타며 떨어져나갔다. 그러나 저 파리들의 희생은 그냥 삽질이 아니었다.
그 틈에 끈질긴 털북숭이 고릴라 자식이 기어 올라온 것이다.
“죽여 버린다!”
짐승처럼 돌진하는 베르한을 향해 나는 어스 핸드를 닥치는 대로 날려 보냈다. 배틀 액스가 휘둘려질 때마다 어스 핸드가 부서져 흙이 사방팔방 날렸다.
“뒈져―!”
미친 듯이 포효하며 배틀 액스를 횡으로 휘두르는 베르한. 나는 그대로 왼쪽 옆구리를 직격 당했다.
퍼어어억! 우드드득!
“끄으으……!!”
왼쪽의 갈비뼈들이 죄다 박살난 것 같았다. 끔찍한 고통에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자칫 정신의 끈을 놓을 뻔했다.
싸움에서 죽는 기분이 바로 이러할까?
레드 미스릴 코트가 아니었으면 몸뚱이가 두 쪽 날 뻔했다. 이 코트 선물해준 카르스 황제가 순간 고마워졌다. 땡큐, 정신병자 씨.
“썅! 그놈의 코트! 내 꼭 벗겨간다!”
베르한도 지긋지긋했는지 짜증을 낸다.
“끄윽. 어, 어디 팔아치울 데나 있을…… 까보냐…….”
고통스러워서 숨이 막혀도 할 말은 해야겠다.
베르한은 배틀 액스를 고쳐 쥐며 다가왔다.
“이제 끝이다.”
-웃기지 마, 멍청아!
-멍청아!
노움이 어스 핸드를 날리고 운디네는 워터 스피어를 쏘았다. 그러나 베르한은 배틀 액스를 계속 휘두르며 막아냈다. 오러 엑스퍼트 중급 정도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상급은 충분해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
“차앗!”
마부석에 앉아 마차를 몰아야 할 패트릭이 어느새 위로 올라와 비호처럼 기습했다.
정령들의 공격을 막던 베르한은 자세를 낮추고 몸을 날리는 패트릭을 발견하지 못했다.
푸욱―!
오른쪽 허벅다리에 깊숙이 꽂힌 바스타드 소드.
“크으윽! 이 애송이 자식이!”
크게 노한 베르한이 배틀 액스를 휘두르려 하자, 패트릭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과연 미래의 용병왕 콘돌다운 날카로운 기습!
나는 힘겹게 패트릭에게 말했다.
“꽉…… 잡아……!”
“예?!”
뜬금없는 내 경고에 패트릭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움, 어스 월…….”
그걸로 충분했다. 노움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다. 정령친화력이 대폭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거나 먹어라!
땅에서 솟아나는 흙의 벽이 마차의 왼쪽 바퀴를 막았다.
콰아앙!
육중한 충격에 마차가 흔들렸다.
빠르게 달리던 차였기 때문에 마차 전체가 공중에 붕 떴다.
“헉!”
패트릭은 사색이 되어서 마차를 꽉 붙들었다.
이윽고 공중에서 마차가 뒤집혔다.
노움!
더 이상 소리를 낼 기력도 없어 마음속으로 외쳤다.
노움은 어스 핸드로 나와 패트릭을 빼내주었다.
“크아악!”
다리를 다쳐 균형을 잡지 못한 베르한은 뒤집힌 마차와 함께 땅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러나 나 역시 정상이 아니었다. 왼팔과 왼쪽 갈비뼈가 죄다 부러져 숨 쉴 때마다 칼로 가슴을 찌르는 듯했다. 그 고통 속에서 나는 정령들에게 마음으로 명령했다.
살아 있는 적들을 모두 죽여.
내 정령친화력이 다 떨어질 때까지 계속 공격해!
-알았어, 아빠!
-응!
-크헤헤! 다 불태우기!
노움은 쓰러져 있는 베르한을 향해 트랩과 어스 스피어를 난사하고 운디네는 워터 스피어를 계속 만들어 날렸다. 샐러맨더는 미친 듯이 날아다니며 블루울프 용병단 멤버를 불태워 죽였다.
“으아악!”
“살려줘!”
“정령들이 미쳐 날뛴다!”
광기가 몰아치는 싸움.
나는 하늘을 보고 뻗어 누웠다.
정령친화력이 물 새듯이 빠져나갔다. 정령친화력이 소모될수록 두통과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속이 울렁거리고 온몸이 짓이겨지는 고통이 치밀었다.
정령친화력이 거의 바닥났을 때쯤에 나는 의식의 끈을 놓고 말았다.
베르한은 죽었을까?
살아 있으면 안 되는데.
아무튼…… 뒷일은 패트릭에게 맡기는 수밖에.
* * *
정령들의 광란의 공격이 잠잠해지자 패트릭은 바스타드 소드를 들고 일어섰다.
“남작님?”
카록은 정신을 잃고 널브러져 있었다. 남은 힘을 쥐어짜서 공격을 감행한 게 틀림없었다.
패트릭은 살아 있는 적이 있는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차 근처에서 누군가가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베르한!’
그 몬스터 같은 블루울프 용병단의 단장이 아직 살아있는 모양이었다.
패트릭은 그쪽으로 달려갔다.
“끄으윽…… 이놈들이!”
베르한의 몰골은 너덜너덜했다.
마차가 뒤집혀서 추락했을 때, 정령들의 집중공격을 받은 탓에 만신창이가 되었다. 노움에게 생매장을 당할 뻔했던 걸 간신히 빠져나온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아직 살아있었구나!”
패트릭은 바스타드 소드를 고쳐 잡았다.
“이 애송이 새끼……!”
“간다!”
패트릭은 빠르게 덤벼들었다. 베르한은 비틀거리며 배틀 액스를 휘둘렀다.
카앙!
“큭!”
과연 오러 엑스퍼트. 배틀 액스와 충돌한 순간 바스타드 소드를 잡고 있던 손이 마비될 듯했다. 다행히 상대가 오러를 사용하지 않아서 버틸 수 있었다.
‘상대가 지쳤다.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야!’
패트릭은 계속 검을 좌우로 휘두르며 공격을 퍼부었다. 앞뒤로 스텝을 빠르게 밟으며 템포를 높였다. 지친 베르한의 체력을 압박하는 작전이었다.
그 작전은 효과가 있었다.
베르한이 기진맥진한 것이다.
“이 쥐새끼 같은!”
인내심이 바닥난 베르한은 한 방에 끝장내고 싶다는 유혹에 빠져 오러를 발출했다.
하지만 그 순간 패트릭은 그 기색을 눈치채고 후다닥 뒤로 물러섰다.
“이놈이……!”
오러를 쓰는 바람에 체력이 더욱 고갈된 베르한이었다.
‘됐다!’
패트릭은 저돌적으로 돌진했다. 배틀 액스가 목을 노리고 휘둘려졌지만, 아까처럼 기세가 매섭지 않았다.
패트릭은 자세를 낮춰서 피해냈다.
푸욱!
바스타드 소드가 베르한의 복부를 꿰뚫었다.
“꺼억!”
그 충격에 베르한은 배틀 액스를 놓치고 비틀거렸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패트릭을 쏘아보며 그가 말했다.
“겨우 저깟…… 애송이…….”
콰직!
패트릭은 베르한의 목을 잘라냈다. 악명 높은 블루울프 용병단 단장의 허망한 최후였다.
싸움이 일단락되자 패트릭은 카록에게로 달려갔다.
“남작님!”
혼절한 카록은 아무리 불러도 반응이 없었다. 패트릭은 나뭇가지와 천으로 부러진 카록의 왼팔에 부목을 댔다.
‘어서 쿤트 성에 가서 치료를 해야 한다!’
급한 마음이 든 패트릭은 카록을 등에 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