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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92화 (92/529)

<-- 92 회: 4권 - 5장. 패트릭 콘돌 -->

첫인상으로 상대의 됨됨이를 파악할 수 있을까?

정답은 ‘그렇다’다.

예를 들어보자.

날렵한 체격에 눈매가 날카로운 내 또래의 남자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눈동자가 홱홱 바쁘게 움직였다. 방안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살피고, 이어서 내 옷차림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쭈욱 한 번 훑는다.

그 다음에서야 비로소 나와 눈을 마주한다. 그리고 비로소 인사.

“명성은 많이 들었습니다. 루이 콘체른입니다.”

봐라.

눈동자의 바쁜 움직임만 봐도 아주 약삭빠른 성격임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이런 유형의 인물은 위기를 빨리 알아차리는 특성이 있다. 자신의 안전과 이익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엔 옷차림을 한번 보자.

최고급 품질의 옷감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다. 반지, 목걸이, 브로치, 커프스링크, 회중시계 등 액세서리도 꼼꼼하게 갖췄다. 남들이 잘 눈치 못 채는 부분까지 패션이 빈틈없는 걸로 보아 단순한 허영심으로 잘 차려입은 게 아니다.

마치 고위급 귀족을 연상케 하는 옷차림. 약소 가문 차남 출신의 말단 왕실 관리치고는 상당히 무리했을 것이다.

아마 옷차림부터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갖출 자격을 확보하려는 심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가 출세지향적인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앉으세요.”

나는 루이 콘체른에게 맞은편 자리를 권했다. 루이는 자리에 앉아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아마 이 친구 역시 속으로 열심히 머리를 굴리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려 하고 있겠지.

내 부름을 받았을 때, 이것이 출세에 도움이 되는 만남인지 열심히 머리를 굴렸을 것이다. 분명해.

자, 그럼 얼마나 두뇌회전이 빠른지 테스트해보자. 분발하도록. 네 출세가 걸려 있으니까.

“내가 왜 불렀을 것 같습니까?”

내가 물었다.

루이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바덴 강 통행세 문제와 관련된 일로 제게 시키실 일이 있으신 게 아닌지 추측해보겠습니다.”

나는 상당히 놀랐다.

“눈치가 빠르군.”

“남작님께서는 국왕 폐하와 재상 각하의 신뢰를 받고 있고, 최근의 가장 심각한 사건은 폐하가 바덴 강 통행세 인하를 명령한 일로 육제후와 충돌한 일입니다. 아마 그 문제에 남작님도 개입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 문제에 관련된 건 어떻게 알았죠?”

“입고 계시는 옷을 보고 알았습니다.”

“옷?”

아, 레드 미스릴 코트를 보고 눈치를 챘구나. 하긴 이게 보통 옷이 아니지.

내게 루이가 설명했다.

“지금 입고 계시는 붉은색 미스릴 코트는 천문학적으로 비쌀뿐더러, 아예 그걸 만들 수 있는 장인이 대륙에 몇 명 없어서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합리적인 상인이신 남작님께서 한창 사업을 추진하시는 시기에 그런 막대한 돈을 옷 한 벌 구입하는데 쓰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그렇지.”

“필시 선물을 받은 것이고, 그런 선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일국의 군주급뿐입니다. 즉, 중요한 용무로 거물급 인사를 만나고 다녔다는 의미겠지요. 저는 아마도 혼트 제국에 다녀오시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설명을 모두 듣고 나는 미소를 지었다.

과연!

루이 콘체른은 내 생각보다 훨씬 똑똑한 인간이었다.

단지 약삭빠르기만 해서 총독의 지위까지 올랐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좋아, 이 정도라면 참모로 천거하기에 충분했다.

그를 레던 왕실의 편으로 만들면, 그만큼 운명이 좋은 방향으로 바뀔 확률도 높아질 터!

결심을 굳힌 나는 루이에게 말했다.

“그렇게 장황한 설명을 하는 걸로 보아, 아마도 그대도 나와의 만남을 통해 무언가 기회를 잡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맞습니다.”

루이는 솔직하게 시인했다.

“게다가 설명을 하는 동안 그대의 얼굴에 필사적인 빛이 보였어요. 마치 물러설 곳이 없다는 듯한 비장한 표정 말이죠. 혹시 궁지에 몰려 있나요?”

내 물음에 이번에는 루이가 놀랐다.

“맞습니다. 사실 남작님의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곤경에 처했습니다.”

“이런, 나 때문에?”

“남작님은 국왕 폐하나 재상 각하와 친분이 두텁고, 젊고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에 왕실의 고위 관리들이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런 남작님을 제가 만났으니, 아마 저도 좋게 안 볼 겁니다.”

그랬군.

하기야, 아마 내가 그 인맥으로 떡하니 왕실 고위직에 임명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겠지.

젊고 유능한(흠흠) 내가 왕실에 나타나면 필시 나를 중심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 테고, 늙고 무능한 그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힘들어질 테니까.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책임을 져야겠네요. 예를 들면 재상 각하께 자네를 중임에 쓸 것을 추천한다거나…….”

“절 바덴 강 문제와 관련해서 참모로 써주실 생각이십니까?”

루이가 기쁘고도 놀란 얼굴로 물었다.

아 놔, 요즘 만나는 인간들은 왜 다 이렇게 눈치가 귀신같은 거야?

나 이 동네 무서워! 그냥 상인질만 하고 싶어!

“그건 또 어떻게 알았죠?”

“폐하의 주변에는 재상 각하 외에 두뇌파가 적으니까요. 그리고 방금까지 제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시며 테스트를 하셨잖습니까.”

“예, 맞아요. 오늘 오후에 폐하와 재상 각하께 그대의 이야기를 하죠.”

“감사합니다!”

루이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내게 고개를 숙였다. 출세코스를 탔다고 좋아하고 있군.

왜 저렇게 출세에 목을 맬까?

나는 궁금해져서 물었다.

“이번 중임이 당신의 인생을 윤택하고 고귀하게 만들 거라고 생각하나요?”

“아니요. 곧 전쟁이 날지도 모르는 왕실에서 중임을 맡는 게 제 인생을 윤택하게 만들 것 같지는 않습니다.”

헐.

혼트 제국의 침략을 벌써부터 예상하고 있었군.

“그럼 왜 그렇게 출세를 하고 싶어 하는 거죠?”

“중요한 일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바쳐도 시간 낭비가 아니었다고 생각될 만한 일을요.”

전생 때는 훗날 기회주의자로 불렸던 남자.

하지만 나는 루이 콘체른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번 생에서도 그가 기회주의자가 될 지는 지켜봐야 할 듯했다.

아직 ‘총독체제에 의한 레던 왕국 통치의 초안’ 집필은 시작하지 않았겠지?

나는 루이를 듀론 후작에게 소개시켜주었다. 듀론 후작은 루이의 지모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우리 세 사람은 그날 오후에 드디어 에릭 국왕을 알현하게 되었다.

“수고 많았다, 쿤트 남작. 큰일을 해주었군.”

내가 겪은 이야기를 모두 들은 에릭 국왕은 크게 기뻐했다.

“아닙니다.”

“오리엔 왕국 쪽도 우리의 제안에 쾌히 수락했다. 그대가 생각했던 대로 풀리는군.”

그러자 듀론 후작이 말했다.

“폐하, 남작의 공이 큰데 그만한 보답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를 자작으로 승작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당한 말이로군. 작위 수여 증서를 가져오시오.”

“미리 준비해뒀지요.”

듀론 후작은 품속에서 서류를 꺼냈다. 에릭 국왕은 직접 서류에 서명하고 옥새를 찍었다. 그리고 나에게 건넸다.

“축하한다, 카록 쿤트 자작. 당분간 자네가 이번 일에 깊이 개입한 일은 숨기는 편이 좋으니 예식은 생략하겠네. 자작이 된 것도 숨기게.”

“알겠습니다.”

나는 증서를 받아 품에 넣어두었다.

내 나이 곧 있으면 21세였다. 그런데 벌써 자작이라니……. 이번 두 번째 삶에서 나의 출세 속도는 무척 빨랐다.

곧 있으면 백작이 될 테고 언젠간 재상직도 물려받겠군. 쿤트 가문 사상 최고로 출세한 녀석으로 이름을 남기겠어. 아하하.

“오리엔 왕실 측에서는 가을에 협상을 하자고 제안하더군. 그러니 당분간은 여유가 있을 것 같다. 카록 쿤트 자작, 그대는 혼트 제국에 다녀오느라 고생했으니 당분간은 돌아가 쉬도록 하라. 때가 되면 다시 부르겠다.”

“예, 폐하.”

휴우, 드디어 돌아가는군.

쿤트 영지로 가서 쉬어야겠어.

“그리고 루이 콘체른이라고 했나?”

“예, 폐하.”

루이는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부복했다.

아직 젊고 말단 관리의 신분이다 보니 국왕 같은 거물과의 대면은 처음인 듯했다.

“그대에 대해서는 듀론 후작에게 들었다. 소속을 재상부로 옮겨줄 테니 앞으로 듀론 후작을 도와 최선을 다 하도록 하라. 이번 일이 잘 되면 공로에 따라 진급은 물론 작위 수여도 있을 것이다.”

“예!”

루이는 주먹을 불끈 쥐며 은근히 기쁨을 표했다.

다들 얻고 싶은 것을 얻었군.

에릭 국왕은 바덴 강 문제는 진전시켰고, 듀론 후작은 나를 차기 재상으로 만들 계획을 진행시켰고, 루이는 출세 기회를 얻었다. 나는…… 글쎄.

자작이 되었으니 좋아해야 하나? 아직 이번 일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이상 좋아할 수는 없어 보인다.

아무래도 이번 바덴 강 문제는 전생 때는 없었던 매우 큰 게임이니 때문이다. 이것이 예정된 운명을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지 나는 무척 기대가 컸다.

*   *   *

“젊은 국왕은 바덴 강 문제를 제대로 물고 늘어질 생각이다.”

육제후의 일인.

육제후의 두뇌라 불리며 그들의 대표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볼프강 란즈헬 백작의 판단이었다.

그의 오른팔, ‘란즈헬의 청소부’ 에반 테일러 남작 역시 동의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오리엔 왕국에 사람을 보냈다는 소식이 정보망을 통해 입수됐습니다. 바덴 강 문제에 오리엔 왕실까지 끌어들여 우리를 압박할 의도로 보입니다.”

“무슨 힘으로 우리를 압박할지 궁금했는데, 과연 그랬나. 그렇다면 오리엔 왕실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마 혼트 제국 쪽도 끌어들였을 거다.”

“혼트 제국을 말입니까? 그건 상당히 위험한 짓 아닙니까?”

에반은 놀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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