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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90화 (90/529)

<-- 90 회: 4권 - 4장. 귀국 -->

카르스 황제를 떠올리자 뮤트 공작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그는 마냥 우리의 뜻대로 순순히 움직여줄 사람은 아니었다.

거기서 우리 모두를 당황하게 할 만한, 더 위험한 장난을 시도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불안해졌다. 어쩌면 나는 터무니없이 위험한 짓을 벌인 셈인가?

뮤트 공작은 날 보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 자네는 아직 완전하지 않군.”

“예?”

“완전해지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물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네를 완전하게 만들어줄 사람을 모으라는 뜻이네.”

그제야 나는 뮤트 공작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때, 릭 형님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야, 꼭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거든.”

다들 릭 형님을 쳐다봤다.

릭 형님은 내게 물었다.

“너 눈이 왜 그러냐?”

“…….”

*   *   *

결국 식사가 끝날 때까지 나는 릭 형님에게 내 불탄 속눈썹에 대해 놀림당해야 했다.

나도 지지 않고 노움, 운디네, 샐러맨더를 소환해 릭 형님을 비방했다.

울컥한 릭 형님이 검을 뽑아들기에 이르자 뮤트 공작은 혀를 차며 한 마디 남기고 자리를 떴다.

“한심한 놈.”

그 뒤에도 흥이 난 우리는 술을 마시며 실컷 떠들어댔는데, 릭 형님은 아서 형님 부부의 부부생활에 지대한 관심을 표했다. 아직 애는 안 나왔냐는 등…….

아직 아서 형님은 결혼한 지 1년도 안 지났거든?! 그렇게 애가 탐나면 댁도 결혼하던가.

다음날.

나는 뮤트 공작가의 병영을 둘러보며 병장기의 상태를 점검해보았다. 뮤트 공작가의 2만여 군대에 카록 병기점이 병장기를 납품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장교들이 우리에게 공급 받은 병기의 품질을 극찬하였다. 워낙 품질이 좋아서 파손율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었다. 다행이군.

마지막으로 뮤트 공작에게 다시 인사를 드렸다.

뮤트 공작이 말했다.

“폐하께 전하게. 이 크라일 뮤트는 왕실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적어도 혼트 제국은 내가 막고 있다고.”

“공작 전하. 혼트 제국의 대군이 침공해올 때, 공작 전하 한 분이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너무도 염려스러워서 물었다.

뮤트 공작이 답했다.

“뮤트 공작가의 최대 목표는 혼트 제국군이 침범해올 때, 이 길목을 3개월간 막아내는 것일세. 딱 3개월. 그 이상은 바라지 않지. 혼트 제국군에 대항하여 우리 왕국의 왕실과 귀족이 하나가 될 그 3개월의 여유만 만들 수 있다면,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 기사로 태어나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아!”

나는 벅찬 감격을 느꼈다.

전생 때, 뮤트 공작은 정말로 혼트 제국의 20만 대군을 상대로 3개월을 버텨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다 간 사람이었다.

이 얼마나 고결한 기사인가.

나는 고개를 숙였다.

“저 역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전하.”

“그거면 됐네. 최선을 다하면 남은 건 운명에 맡길 뿐. 어찌 그 이상을 바랄까.”

그렇게 나는 가슴속에 여운을 남긴 채 뮤트 공작과 작별했다.

레던 왕성으로 떠나는 길에, 릭 형님이 마중을 나왔다.

릭 형님이 말했다.

“아서 형님이야 믿음직한 분이지만, 사실 나는 카록 너를 제일 걱정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출세한 걸 보니 마음이 든든하다.”

“출세는 무슨요.”

“사업도 성공가도를 달린다고 들었고, 왕실을 위해 중대한 일을 하고 있으니 출세가 아니면 뭐냐. 이제 나는 안심하고 검술에만 전념하련다.”

“언제는 안 그러셨습니까? 아버님께 패한 걸 제 탓으로 돌리지 마시죠, 형님.”

“뭐야?! 아니, 근데 이 자식이…….”

우리는 또다시 으르렁거렸지만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잘 해봐라. 건투를 빈다.”

“예. 형님도 어서 마스터가 되셔야 제가 안심하죠.”

“안 그래도 미친 듯이 수련하고 있으니까 걱정 마라, 자식. 내가 오러 마스터가 되면 높은 작위랑 커다란 영지를 받아내서 떵떵거리며 살 테니 두고 봐라! 제자는 한 천 명 정도만 받아놓고 마음껏 거드름피워야지. 너희는 이것도 못 하냐, 왜 이렇게 게으름피우냐, 머저리들 등등 실컷 갈굴 테다!”

스승인 뮤트 공작에게 맺힌 게 많았나 보다.

릭 형님과 작별하고 레던 왕성으로 떠나면서 나는 아련한 기분에 젖었다.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릭 형님이 오러 마스터가 되어서 높은 작위와 영지를 받고, 오리엔 왕국과 굳건한 동맹을 맺어 혼트 제국의 침략을 차단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릭 형님도, 저 고결한 뮤트 공작도 죽을 일이 없으니 전생보다 훨씬 행복한 미래가 펼쳐질 터였다.

내 어깨에 점점 많은 사람의 운명이 걸리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   *   *

레던 왕성이 눈앞에 보이자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반가움에 찼다.

“와아! 고향에 돌아온 기분입니다. 맥주나 한 잔 할까요?”

내 제안에 랜달이 화를 냈다.

“지금 장난하나? 폐하를 먼저 배알해야 하지 않나. 자네는 왕실에 대한 예의가 중요한가, 아니면 그깟 맥주가 중요한가?”

“당연히 맥주지요.”

“제길, 정답이다!”

우리는 낄낄거리며 주점을 향해 돌진했다. 혼트 제국에서 퀸즈 블러드를 실컷 마셔서 입이 호강하긴 했지만, 지금은 시원한 맥주를 미친 듯이 마셔대고 싶었다.

“맥주! 오크통 하나 통째로!”

랜달이 선봉에 서서 주점을 습격하며 소리쳤다. 그 박력에 놀란 뚱뚱한 주인장이 허둥지둥 주류고로 달려갔다.

붓고 마시고 떠들고 붓고 마시고 노래하고…….

실컷 마시고 나니 어느새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으음, 이제 슬슬 가야겠지?”

랜달은 술기운이 벌겋게 올라온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술 냄새 풀풀 풍기며 왕실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운디네, 술기운을 회복시켜줘. 냄새도 좀 없애주고.”

-응.

운디네는 방긋 웃으며 랜달과 나에게 회복을 걸어주었다.

시원한 기분이 온몸에 들더니, 코를 찌르던 술 냄새가 날아가고 정신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랜달 역시 오러 브레싱으로 술기운을 없앴다. 운디네는 랜달의 몸에 배인 술 냄새도 없애주었다.

“음. 말해두지만…….”

“우리는 도착하자마다 가장 먼저 폐하를 알현한 거죠? 물론 맥주 따윈 입에도 대지 않았고요.”

“바로 그러하네.”

우리는 어깨동무를 하고 왕궁으로 향했다.

왕궁에 이르자 병사들이 랜달을 알아보고 알아서 길을 비켜주었다.

에릭 국왕은 수도방위군을 시찰 나가서 아직 안 돌아왔다고 한다. 뭐, 왕은 바쁜 법이니까.

대신 듀론 후작은 일찌감치 업무를 종료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우리는 듀론 후작의 재상부로 가서 보고를 했다.

“으음, 그랬던가.”

듀론 후작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혼트 제국의 어린 황제는 보통 인물이 아니었으며, 대륙 정복의 야망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알려지지 않았던 오러 마스터 한 명이 더 있는 것으로 드러냈다.

어딜 보나 혼트 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레던 왕국으로서는 좋아할 수 없는 소식이었다.

“처음부터 예상은 했지만 이번 바덴 강 협상은 신중하게 균형을 맞춰야 하네. 바덴 강의 통행세를 낮추면 우리로서는 육제후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고, 높은 물가도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 하지만 혼트 제국에도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단점이 있네. 군수품이나 식량의 수입이 원활해지면 혼트 제국의 전쟁 준비도 그만큼 빨라지니까 말일세.”

그렇게 되면 균형이 혼트 제국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육제후랑 싸우느라 혼트 제국 좋은 일 시켜준 모양새라고 할까?

내가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협상을 계기로 오리엔 왕국과의 관세 협정까지 맺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양국의 동맹으로 이어나가면 혼트 제국에 맞서는 첫 번째 조건이 달성됩니다. 균형이 맞게 되죠.”

“그게 우리에게는 최상의 시나리오로군. 그렇다면 혼트 제국에게 최상의 시나리오란 어떤 것일지 짐작이 가는가?”

듀론 후작의 질문에 나는 난감해졌다.

“죄송합니다. 거기까지는 생각 못해봤습니다.”

“죄송할 것 까지 있는가? 이번 일에 우리 왕실이 자네 한 사람에게만 너무 많이 의지했구먼.”

듀론 후작은 혀를 차며 안타까워했다.

현재 레던 왕국 내에는 왕실을 따르는 가문도 적지 않지만, 막상 에릭 국왕의 주변에 있는 인물들 중에는 인재가 별로 없었다.

에릭 국왕의 손발은 물론 두뇌가 되어줄 유능한 인재가 없어서 왕실이 힘을 제대로 발휘 못하는 형편이었다.

이번 바덴 강 문제는 내가 구상했고 노련한 듀론 후작이 뒷받침했지만 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예상이 빗나가는 돌발 상황은 언제든 발생하는데, 그때마다 이렇게 몇 사람이서만 끙끙대며 머리를 싸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안 되겠다.

참모타입의 인재가 필요해.

그래, 뮤트 공작이 나에게 완전해지라고 한 말도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리라.

“듀론 후작님. 아무래도 이번 일을 함께 상의할 인물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건 나도 동감이네. 하지만 그만한 인물이 많지 않아서 문제로군.”

“일단 제가 한 사람을 천거해도 되겠습니까?”

아깝긴 하지만 꽁꽁 숨겨두고 나만 써먹고 싶었던 카드를 꺼내야겠구나.

“누군가? 유능한 인재가 있다면 알려주게.”

“제론 데커드라는 인물입니다. 왕실 관리로 현재 저희 영지에서 영주 대행 일을 하고 있습니다. 위기파악능력이 상당한 인물이죠.”

내 비장의 카드는 바로 제론 데커드.

전생 때는 제론 폴만이란 가명으로 오리엔 왕국의 통상부상서를 역임한 인재.

혼트 제국의 침공을 막아내는데 크게 기여함으로서 ‘오리엔 왕국의 마지막 장벽’이라 불린 인물이다.

그런 제론을 참모로 두면 이번 일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오, 그런가? 그럼 지체 말고 불러오게. 또 없는가? 주변에 아는 인재가 있으면 말해보게나.”

인재에 목말랐던 듀론 후작은 계속 요구했지만, 내 카드는 이 정도였다.

“없습니다.”

“끄응.”

어라? 가만…….

제론 데커드처럼 내가 전생 때 들어봤을 법한 유명 인물이 또 있지 않을까?

훗날 빛을 봐서 명성을 떨치게 되는 재능 있는 인재들을 지금부터 미리 영입하면 된다. 이미 줄리아나 제론 덕분에 내가 얼마나 이득을 봤는가.

“후작 각하. 혹시 왕실 관리들의 명단을 제가 한 번 볼 수 없겠습니까?”

“응? 그건 왜인가?”

“혹시나 제가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알겠네. 가져오라고 하지.”

듀론 후작은 즉시 사람을 시켜서 왕실 관리 명단을 가져오게 했다.

한참 뒤에야 왕실 관리 명단이 내 수중에 들어왔다.

나는 에릭 국왕이 시찰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명단을 훑어보기로 했다.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사실 왕실 관리들 중에는 듀론 후작처럼 뛰어난 인물로 이름을 남긴 자보다 무능하기로 이름을 남긴 경우가 훨씬 많았다. 아무래도 나라가 망했다 보니 누구 탓이었는가의 논쟁이 많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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