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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77화 (77/529)

<-- 77 회: 3권 - 8장. 세 번째 정령 계약 -->

샐러맨더의 저 모습은 그런 내 속마음이 표출된 것이리라.

존재하지도 않게 되어버린, 태어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내 아들을 기억에서 지우지 않고 간직하고 싶어하는 나의 안타까움이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샐러맨더는 얄미운 녀석이 아니라, 나의 소망을 들어준 고마운 정령이었다.

“영주님.”

어느새 제론이 다가왔다.

“불의 정령과의 계약에 성공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아아. 운이 좋았어.”

“평생 정령을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이렇게 세 명이나 되는 정령을 보게 되는군요.”

제론은 흥미로운 눈길로 내 정령들을 바라보았다.

운디네에게 한참 혼이 나고 심통이 가득해진 샐러맨더는 나와 함께 있는 제론을 발견했다.

샐러맨더는 쌩하니 나에게 날아와 물었다.

-아빠, 아빠!

“어.”

-쟤 뭐야?

“제론 데커드라고, 내 부하야.”

“정확히는 왕실 소속의 관리입니다만?”

제론은 기분 나쁘다는 듯이 대꾸했다.

샐러맨더는 제론을 빤히 쳐다보더니 내게 물었다.

-얘 불태워도 돼?

천민난만한 그 물음에, 제론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안 돼. 내 허락 없인 어떤 것도 태우면 안 돼.”

-한 번만! 딱 얘만 불태우면 안 돼? 재미있을 것 같은데!

샐러맨더는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며 무서운 말을 해댄다. 제론은 식은땀을 흘리며 날 쳐다봤다.

“여, 영주님. 이건 정령입니까, 악마입니까?”

“글쎄. 처음엔 정령인 줄 알았는데 이젠 나도 헷갈려.”

능청스럽게 대꾸해준 나는 샐러맨더에게 말했다.

“얘야, 절대로 어떤 것도 태워서는 안 되고, 하물며 살아 있는 생명을 불태우는 건 내 허락 없인 결코 안 돼. 내 말 안 들으면 돌려보내고 다시는 소환 안 한다?”

-쳇! 쫀쫀하긴.

저런 말은 또 어디서 배운 거야!

샐러맨더는 침을 탁 뱉고는 날아가 버렸다. 침을 뱉은 자리에 화르륵 작은 불똥이 불타올랐다. 나는 조용히 불똥을 발로 밟아 껐다. 저 망할 녀석! 정령애호가(?)인 나라도 도저히 예뻐해 줄 수가 없어!

“아무튼 영주님께서 불의 정령도 거느리게 되셨으니, 오크 부족을 화공으로 선제공격하는 방안이 채택되겠군요.”

“그래. 빠를수록 좋으니 이틀 뒤에 출진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나도 한가한 사람은 아니다.

대흉년과 흑혈병의 여파가 남아서 경기가 불황인 이 틈에 여러 사업에 진출해야 한다. 이런 촌구석 영지의 영주노릇이나 할 틈이 없단 말이지.

오크 문제만 해결하고 나면 이 영지는 제론에게 맡겨놓고 나는 다시 본업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   *   *

“어째서 저는 안 된단 말입니까?”

육제후의 두뇌라 불리는 볼프강 란즈헬 백작에게, 그의 맏아들 제이슨이 따지고 들었다. 제이슨은 울화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란즈헬 백작은 차가운 얼굴로 제이슨을 응시했다.

“넌 아직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제가 에반 테일러, 그 청소부 놈보다 부족하단 말입니까?”

“그렇다.”

“크윽!”

제이슨은 이를 갈았다.

나이가 벌써 30대 중반인 제이슨은 자신이 이제 겨우 20대 중반인 에반 테일러보다 못하다는 아버지의 평가가 억울하고 치욕스러웠다.

란즈헬 백작이 말했다.

“날 찾아와 그런 요구를 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도록 해라. 너는 대놓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드러내었으므로 어리석었고, 자신의 감정을 감출 줄 모르고 드러내었으므로 이 또한 어리석었다. 대체 넌 무슨 수로 네가 에반보다 능력이 있음을 증명할 생각인 거냐?”

“…….”

제이슨은 치욕감에 몸을 떨었다.

그는 에반 테일러, 바로 자신의 아버지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에반 테일러 남작.

그 음흉하고 비열한 녀석은 아버지의 심복이 되어서 란즈헬 가문의 대소사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동생들과 후계자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하는 제이슨으로서는 그런 에반이 몹시도 거슬렸다.

‘난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어서 안달인데, 그 천한 새끼는 대체 뭔데 아버지의 신임을 받고 있냔 말이다.’

제이슨은 아버지가 에반에게 너무 많은 권력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이 가문의 대공자인 자신보다도 훨씬 말이다.

그래서 제이슨은 이 자리에 찾아와 자신이 에반 테일러를 대신해 아버지를 보좌하겠다고 뜻을 밝혔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나가라. 내 뜻은 이미 밝혔다.”

“아버님……!”

란즈헬 백작은 더는 말하기 싫은 듯 파리를 쫓듯이 휙 손짓했다.

제이슨은 침울한 얼굴로 집무실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밖으로 나서려던 찰나,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노크했다.

똑똑똑.

“에반입니다, 백작 각하.”

“들어와라.”

“예.”

안으로 들어온 에반은 제이슨과 마주치고는 흠칫했다.

“대공자를 뵙습니다.”

“흥.”

제이슨은 코웃음으로 답하고는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버렸다.

에반은 식은땀을 흘렸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구나.’

란즈헬 백작의 심복으로서 많은 권력을 행사하는 에반이었지만, 제이슨 대공자와 대립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제이슨 대공자는 비록 자질은 부족하지만 그를 따르는 가신 세력은 막강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제이슨 대공자가 란즈헬 백작가의 다음 대 가주가 된다면 에반은 축출될 것이 틀림없었다.

“무슨 일이냐?”

란즈헬 백작의 조용한 물음에 에반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왕실로부터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내용은 확인해보았느냐.”

“예. 그런데 그것이…….”

“말해보아라.”

“예. 왕실에서 보낸 서신의 내용은, 바덴 강의 통행세를 대폭 낮추라는 요구였습니다.”

“바덴 강의 통행세를?”

란즈헬 백작의 눈썹이 꿈틀했다.

바덴 강의 통행세는 란즈헬 백작가를 비롯한 육제후의 가장 큰 돈줄이었다.

그리고 바덴 강 통행세에 대한 문제는 전적으로 자신들의 권한이지 왕실이 간섭할 문제가 아니었다.

왕실은 왜 이런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기 시작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던 란즈헬 백작이 입을 열었다.

“그것은 요청이냐, 왕명이냐?”

“……왕명이었습니다.”

“허.”

란즈헬 백작은 기가 막혀서 코웃음을 쳤다.

“다른 제후들에게도 같은 서신이 갔겠군.”

“예. 아마 왕실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화를 내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요청이라면 한 번 고려해봄직 하나, 왕명이라면 필히 거절해야 한다.”

“예. 제 생각도 같습니다.”

만약 대흉년, 흑혈병의 여파로 피폐해진 민생(民生)을 살려야 한다는 명목으로 ‘요청’을 했더라면 고려해보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들 육제후가 바덴 강 유역을 독점하고 있는 것을 좋게 보지 않는 시선이 많으니 한 번쯤은 양보를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왕명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통행세를 낮추라고 왕실이 ‘명령’을 내렸을 때, 그것에 응하면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가 된다. 또다시 왕실이 바덴 강 통행세 문제를 간섭할 명분을 주기 때문이다.

“거절은 물론이고 가문의 내정에 왕실이 간섭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서신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하다. 문제는 왜 왕실이 이런 서신을 보냈느냐다. 우리가 거절할 것은 당연히 왕실도 알고 있을 터.”

상대의 수를 읽어야 한다.

무슨 속셈인지 파악해야 한다.

에반은 잠자코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바덴 강 통행세 문제를 공론화하여 우리를 압박하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왕실이 무슨 힘으로 우릴 압박하느냐가 문제다. 분명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시비를 걸어온 건 아닐 것이다.”

에반은 열심히 생각해야 했다.

왕실의 의도는 명백하다. 바덴 강 통행세를 낮춰서 육제후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것.

그런데 왕실은 현재 육제후에게 압력을 행사하기에는 힘이 부족한 상황. 흑혈병 때 작셀을 팔아서 재정을 꽤 회복했다곤 하지만 아직 육제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승부수를 띄운 이유는 무엇일까?

고심하는 에반에게 란즈헬 백작이 말했다.

“알아내라.”

“옛?”

“이건 왕실 측 인물이 생각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과감하군. 젊은 국왕도 늙은 재상도 계략에 능한 타입은 아니다. 이 계획이 누구 머릿속에서 나온 건지 알아내라.”

“예.”

에반도 궁금해졌다.

젊은 국왕에게 계략에 능한 참모타입의 인물이 붙었다면 반드시 체크해야 한다.

*   *   *

“이제 시작이구려.”

“그렇습니다, 폐하.”

젊은 국왕과 늙은 재상.

에릭과 듀론 후작은 거절의 뜻이 담긴 육제후의 답신을 보고 있었다.

국왕 에릭이 말했다.

“아무래도 카록, 그의 능력이 필요할 것 같소. 즉시 그를 부르도록 하시오. 이참에 내 그를 반드시 짐의 사람으로 만들 것이오.”

“예, 폐하.”

*   *   *

영지군 200명. 경비대 50명. 딘 용병단 50명. 그리고 바탄 성 마을의 자경단에서 뽑은 정예 300명.

도합 600명의 병력이 오크 부족을 치기 위해 집결했다.

크고 작은 전투를 많이 겪어본 딘을 부대장으로 삼았다. 물론 대장은 바로 나였다.

“가자! 이참에 이 영지에서 오크들의 씨를 말려버리자.”

“옛!”

병사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렇게 오크 토벌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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