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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74화 (74/529)

<-- 74 회: 3권 - 7장. 제론 데커드 -->

이 영지의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이 숲이다.

영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드넓은 숲지대!

귀한 야생 약초와 짐승들이 서식해서 사냥꾼과 약초꾼에게 좋은 일터가 되고 있지만, 반면 몬스터들 역시 득시글거려서 인간을 위협한다.

따라서 영지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면, 일단은 이 숲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종이와 펜을 들고 숲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노움과 운디네를 소환해두어서 위험에 대비했기 때문에 안전은 문제없었다.

-주인님, 193미터 앞에 몬스터.

“그렇구나. 그럼 왼쪽으로 꺾어야겠다.”

-응, 거긴 몬스터 없어.

내 오른쪽 어깨에 앉은 노움이 말했다.

그 말에 따라 나는 왼쪽으로 방향을 돌리며 종이에 계속 스케치를 했다. 숲의 지도를 그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왼쪽 어깨에 앉아 있던 운디네가 그걸 빤히 보더니 질문했다.

-……그거 뭐야?

“응? 아, 이거? 이건 지도를 그리는 거야.”

-지도, 그려?

“응.”

나는 운디네에게 지도 그리는 걸 보여주었다. 검정색 잉크에 깃펜을 찍어서 종이에다가 주변 지리를 그린다.

내 그림 실력은 조잡스러웠지만, 대충 알아볼 수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문제없었다.

근데 이런 속도로는 언제 지도를 완성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적어도 이 일대를 그리는 데만도 일주일은 걸릴 것 같았다.

그런데 운디네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주인님.

“응, 운디네.”

-……나도 할래.

“응?”

-지도 그릴래.

그 말에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어라?

그러고 보니…… 나 지금 삽질한 거?!

지도는 깃펜으로 그린다. 깃펜에 검정색 잉크를 찍어서.

검정색 잉크는 액체다.

그리고 운디네는 물의 정령. 당연히 검정색 잉크 역시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황당해졌다.

“운디네! 그럼 네가 이 일대의 지도를 한 번 그려볼래?”

-응!

“좋아. 그럼 하늘 높이 날아올라서 바탄 성을 중심으로 인근 10킬로미터 일대를 한 번 그려봐.”

-……응!

운디네는 휙 하고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높이 날아오른 운디네는 잠시 후에 다시 내 왼쪽 어깨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가 들고 있던 검정색 잉크로 손을 뻗었다.

꿈틀꿈틀.

검정색 잉크가 회오리치며 공중에 솟구쳤다. 허공에서 검정색 잉크가 덩어리를 이루더니, 종이로 쏘아졌다.

촤아아아악! 촤좌좍!

“허억!”

나는 깜짝 놀랐다.

종이에 바탄 성 일대의 숲이 아주 상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하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풍경을 그대로 종이에 옮겨놓은 듯했다.

운디네는 눈망울을 귀엽게 반짝이며 물었다. 칭찬해달라는 얼굴이었다.

“어휴, 우리 운디네 완전히 천재야! 천재 화가!”

나는 운디네를 끌어안고 부비부비 뺨을 맞대고 문질렀다. 운디네는 꺄르르 웃었다.

나는 서둘러 바탄 성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하인들에게 커다란 종이와 물감을 구해오라고 시켰다. 이 촌구석 영지에서 물감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그걸 갖고 있는 사람이 있었던 듯했다.

전직 떠돌이 화가였다가 이곳에 정착한 사람이 있어서 그에게서 물감을 2레디나에 구입했다.

그리고 양팔을 뻗는 길이보다 더 커다란 종이도 구해왔다. 군사용 지도를 그릴 때 쓰는 종이인 듯했다.

성의 1층 홀에 종이와 물감을 펼쳤다. 그리고 운디네를 소환했다.

“운디네. 그때처럼 이 주변 일대의 지도를 그려줘. 이번에는 꽤 멀리까지 상세하게 그려줘. 여러 가지 물감도 있으니 더 재미있을 거야.”

-……응!

운디네는 다시 한 번 하늘높이 날아올랐다.

성 안의 사람들도 내가 뭐 하나 싶어서 다들 구경을 나왔다. 그 중에는 제론 데커드도 포함되어 있었다.

돌아온 운디네가 물감으로 종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주 커다란 종이였지만 그림이 완성되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촤좌좍!

“허억!”

“저, 정령이 그림을 그렸다!”

“세상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종이에 바탄 성을 중심으로 일대 숲의 지리를 실제로 내려다보는 것처럼 리얼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정령에게 그런 재주도 있었습니까?”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 제론이 물었다. 나는 씨익 웃었다.

“정령들이 얼마나 재주가 많은데.”

“그걸로 뭘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보면 알아.”

나는 다 그려진 지도를 둘둘 말아서 들고 성 밖으로 나갔다.

성 밖 마을의 중앙 광장에는 나무로 된 커다란 게시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 게시판은 마을 주민들끼리 소식을 알리거나 영주의 명령을 게시하곤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게시판에 지도를 붙였다.

그리고 신임 촌장 타이렌을 불러 지시했다.

“이 마을에 사는 모든 사냥꾼과 약초꾼을 불러 모으도록 해라.”

“예!”

“아, 그리고 대장간에 가서 못을 100개쯤 가져오고.”

“알겠습니다, 영주님.”

타이렌은 지시를 따르기 위해 황급히 달려갔다. 거 봐. 젊은 촌장을 뽑아놓으니 저렇게 빠릿빠릿하잖아.

타이렌 촌장은 시킨 일을 금방 수행했다. 마을 광장에 금방 약초꾼과 사냥꾼이 백여 명이나 보였다.

“대체 무슨 일이지?”

“몰러, 아무튼 영주님이 부르시니까 모여야지.”

“오크 놈들 때문인가?”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나는 그들 앞에 나서서 말문을 열었다.

“다들 잘 모였다. 알다시피 나는 너희의 영주 카록 쿤트 남작이다.”

그제야 사람들이 잡담을 멈추고 내 말에 주목했다.

“오늘 너희를 이 자리에 불러 모은 이유는 너희가 겪는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거기 자네.”

나는 눈앞에 있는 사냥꾼으로 보이는 중년 사내를 지목했다.

“말해봐라. 숲에 몇 번이나 나가지?”

“거의 매일 숲에서 살다시피 합니다요.”

“숲에서 몬스터를 얼마나 맞닥뜨리지?”

“몬스터가 출몰하지 않는 길로 조심스럽게 가도 이틀에 한 번쯤은 마주치지요.”

“몬스터가 출몰하지 않는 길을 어떻게 알지?”

“그야…… 그냥 경험에 따르지요. 저는 경험이 좀 쌓여서 몬스터의 흔적을 잘 알아채고 피해갑니다만, 젊은 것들은 몬스터를 만나 비명횡사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요.”

“바로 그게 문제다. 특히나 약초꾼의 경우는 몬스터를 만나면 대항할 방도가 없어서 더욱 위험에 시달릴 것이라고 본다.”

다들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생업은 거의 매일 목숨을 건다고 봐야 했다.

“그래서 이 지도를 준비했다. 봐라!”

나는 운디네가 완성한 초정밀 숲 지도를 보여주었다. 바탄 성을 중심으로 이 숲 일대를 더없이 세밀하게 그려진 지도였다.

다들 지도를 보고 감탄했다. 어떤 솜씨 좋은 화가가 그려도 이처럼 그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한 명씩 나와서 최근 열흘 간 몬스터를 직접 봤거나 흔적을 발견한 장소에 이 못을 꽂아 표시해라.”

그러자 한 명씩 나와서 지도에 못을 꽂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세 명…… 많은 사람을 거치자 지도에 꽂힌 못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모두들 지도에 못을 꽂자, 전부 51개의 못이 지도에 꽂히게 되었다.

“이제 다시 이 지도를 보아라.”

게시판에 전시된 지도를 본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감탄을 해야 했다.

“아!”

“그래! 저 못이 표시된 곳만 피해 다니면 되겠어!”

“저런 방법이 있었구나.”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 일을 나가기 전에는 이 지도를 먼저 살펴서 몬스터 출몰이 없는 곳으로 다니도록 해라. 그리고 숲에서 몬스터를 발견했거든 마을로 돌아와 이 지도에 못으로 표시를 해놓도록 해라.”

어떠냐? 나의 지혜가!

92년 인생 연륜에 몸도 젊어져서 머리까지 팽팽 잘 돌아가니 이런 방법도 떠올리게 된다.

“보았듯이 모두가 머리를 맞대면 이렇게 대책을 세울 수 있게 된다. 앞으로도 이처럼 서로 협조를 하면서 마을과 영지의 안전을 위해 힘쓰도록.”

멋지게 마무리를 한 나는 휙 돌아서서 성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뒤에서 감복한 사람들이 환호하였다.

“여, 영주님 만세!”

“지혜로우신 영주님 만세!”

하여튼 이 몸의 위대함은. 잘난 척 하지 않는데도 사람들이 알아서 존경을 해준다니까.

아무튼, 나의 대책은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나는 딘과 렉스를 불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나를 따라와 봐.”

나는 마을 광장으로 두 사람을 데려가, 광장 게시판에 게시된 지도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세밀한 지도는 처음 봅니다!”

“우와! 이게 그 정령이 그렸다던 그 지도입니까?”

딘과 렉스는 크게 감탄하였다.

“이 지도 곳곳에 꽂힌 못은 몬스터를 뜻하는 거야. 숲을 다니는 약초꾼들과 사냥꾼들이 표시해놓은 거지.”

“그렇군요. 이런 방법이 있었다니, 과연 남작님이십니다.”

딘은 이 지도의 가치를 금세 알아보았다.

나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어때? 이 지도를 보고서 몬스터 사냥을 다니면 좋은 돈벌이가 될 것 같지 않아?”

“예. 몬스터 사냥은 보통 숲을 열심히 헤집고 다녀서 몬스터의 흔적을 추적해야하지요. 그런데 이 지도가 있으면…… 정말 쉽게 돈벌이를 할 수 있겠군요.”

“너희는 몬스터 사냥으로 돈벌이를 할 수 있어서 좋고, 우리는 영지민이 안전해지니까 좋고. 이게 바로 상부상조 아니겠어?”

“그렇군요. 마침 단원들도 하릴 없이 놀고 있으니 몬스터 사냥이나 시켜야겠습니다. 다들 소일거리가 생겨서 좋아할 겁니다.”

“참, 몬스터 사냥을 하고 난 뒤에는 돌아와서 지도에 표시된 못을 뽑아둬.”

“예, 이해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바탄 영지에 탄생한 명물이 바로 ‘몬스터 맵’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몬스터 맵을 확인하고서 안전한 길로만 다니기 시작했고, 딘 용병단은 몬스터 맵에 표시된 몬스터를 손쉽게 찾아내 사냥하며 돈벌이를 했다.

그러자 영지민들의 사망률이 크게 줄어들었고, 덕분에 나를 칭송하는 영지민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제론과 저녁 식사를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다.

제론도 인정했다는 듯이 말했다.

“과연 훌륭하신 발상이었습니다. 그런 간단한 방법으로 영지민들에게 큰 도움을 주다니. 왜 저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 했었나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장점이 있는 법이지. 네 장점은 문제를 파악하고 그에 대응하는 능력이야. 사람들의 경험을 모아서 몬스터 맵을 만들었던 것처럼 각자의 재능을 모으면 영지를 부흥시킬 수 있다.”

“그게 당신의 경영 철학입니까?”

“그래.”

정확히는, 뛰어난 인재를 잔뜩 모아서 적재적소에서 재능을 발휘하게 해놓고, 나는 뒤로 빠져서 한가롭게 노는 거지. 그게 내 경영 철학이다.

나를 보는 제론의 눈빛이 처음과는 사뭇 달라졌다.

“훌륭하시군요.”

응, 나도 알아.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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