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 회: 3권 - 6장. 바탄 영지의 위기 -->
“오늘은 실컷 놀고 내일 정오까지만 이곳에 집합하도록 한다. 사고 치지 말도록!”
“예!”
단원들은 환성을 지르며 뿔뿔이 흩어졌다. 보나마나 술집이나 사창가를 찾아가겠지.
우리는 오랜만에 ‘맥스의 쉬어가는 집’으로 몰려갔다.
“어이쿠, 어서 오십……!”
날 반기던 맥스는 뒤따라 들어오는 딘과 렉스를 보곤 얼굴을 굳혔다.
“자, 자네들도 왔군?”
“오랜만입니다, 맥스 씨.”
“오늘 하루 매출은 염려 놓으십쇼! 우리가 새벽까지 마셔댈 테니까! 으하하핫!”
렉스의 말에 당황한 맥스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 아니, 그래도 건강을 생각해야지. 적당히 마시고…….”
“무슨 소리냐, 렉스? 새벽까지라니, 설마 잠을 잘 생각을 했느냐?”
딘의 추궁에 렉스는 능청스럽게 놀란 시늉을 하며 말했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단장님. 오늘은 밤새워서 술을 마시겠습니다!”
“자, 자네들. 술은 새벽 1시까지만…….”
“맥스, 괜찮으니 우리의 건강은 걱정해주지 않아도 돼.”
난 맥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며 말했다.
맥스는 울상이 되었다.
우리는 일단 가볍게 맥주 한 통을 시켰다. 한 통이란 물론 오크통을 말한다.
붓고 마시고 또 붓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흥겹게 술자리가 이어지다가, 딘이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떤 의뢰로 저희를 부르셨습니까?”
“사실은 꽤 어려운 의뢰야.”
나는 바탄 영지의 사정을 간략하게 들려주었다. 딘과 렉스의 표정이 굳었다.
“1천 마리 규모의 오크 부족이라니…… 확실히 위험하군요.”
“으와, 하필이면 오크라니.”
“역시 어려우려나?”
내 물음에 딘은 잠시 고려하다가 입을 열었다.
“글쎄요. 아예 비관적으로만 생각할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열 마리의 오크는 강하지만 천 마리의 오크는 약하다는 말도 있지요.”
“그게 무슨 뜻이야?”
“오크들은 집단전투에 능하지만, 전략적 판단력이 결여되어 있는 무식한 몬스터이기 때문에 천 마리 이상의 대규모가 되면 오히려 같은 숫자의 인간보다 약해지기도 합니다. 적절한 전략을 채용하여 맞서면 오크 부족과의 전쟁도 승산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구나. 그러면 쓸 만한 전략이라도 있어?”
“글쎄요. 그건 그쪽 영지의 전력이나 지리적 특성 등을 모두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침착한 설명을 들어보니 나는 더더욱 딘을 끌어들이고 싶어졌다.
“딘, 그럼 의뢰를 받아주겠어? 성공만 한다면 특별 수당을 듬뿍 줄 테니까. 너희가 아니면 안 돼.”
딘은 고심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남작님께는 신세진 일도 있으니까요.”
“게다가 남작님과 함께라면 죽을 것 같지도 않고 말입니다.”
렉스의 말에 딘과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딘 용병단을 고용하는데 성공하자 나는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다.
그날 우리는 밤새도록 술판을 벌였다. 우리가 얼마나 시끄럽게 떠들어댔는지 한밤중에 몇 번이고 객실 손님들이 내려와 ‘이 여관에 니들만 있냐!’ 하며 화를 냈다.
그때마다 나는 ‘이 카록 쿤트 남작이 술을 마시겠다는데 누가 감히 불만을 표하느냐?’고 맞섰고, 불만을 제기한 자들은 꼬리를 내리고 자기 객실로 후다닥 달아났다.
결국 주인인 맥스가 나에게 사정사정하기 시작했고, 비로소 우리는 술판을 깨고 들어가 자기로 했다.
그 대가로 다음날 아침, 숙취가 파도처럼 밀려와 메스껍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운디네를 소환해서 숙취를 치유한 후에야 살 만해졌다.
센스 좋은 줄리아는 아침식사로 숙취에 좋은 맑은 해산물 스프를 해주었는데 먹으니까 속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고마워, 줄리아.”
“후훗, 저 예쁜 아내가 될 것 같죠?”
“그래그래, 누군지 몰라도 너 데려갈 남자는 행운아일 거야,”
예쁘고 돈도 잘 벌고 요리도 잘 하니까.
다만 불만쟁이라서 매일 바가지를 긁는 게 문제겠지만, 원래 다 장단점이 있는 거 아니겠어? 어떤 남잔지 몰라도 쟤 데려갈 남자는 아서 형님보다 더 심지가 굳어야 할 거야.
뭐, 아무튼 그건 내가 알 바는 아니지.
나는 내 영지와 오크 부족 문제를 다시 떠올렸다.
일단은 딘 용병단을 고용했지만, 오크 부족의 숫자는 어림잡아도 1천여 마리.
보다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할 것 같다.
일단 아서 형님한테 군대를 좀 빌려달라고 해볼까?
그래그래, 하릴 없이 검술 수련만 하는 아버지도 있잖아? 싸움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시니 아버지께도 도움을 요청해야겠어.
곧장 가문의 저택으로 찾아가 우선은 아서 형님에게 먼저 도움을 요청해보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실망스러웠다.
“지금은 어렵구나.”
“그런가요?”
“현재 실전에 투입 가능한 병력은 모두 몬스터 토벌을 하고 있다. 새로 뽑은 신규 병력 5백 명도 있지만 이제 훈련에 투입한 신병들이라 도움이 안 될 거다.”
으음,
그러고 보니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라서 몬스터 토벌이 한창이구나.
몬스터 토벌은 연례행사지만 한 해라서 거르면 다음해에 엄청나게 증식한 몬스터들을 상대로 뒷감당을 해야 한다.
“그럼 혹시 아버님의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을 까요?”
“으음, 확실히 아버님은 수련만 하실 뿐 달리 하는 일이 없으시다만…….”
아서 형님은 약간 곤란하다는 표정이었다.
“왜요?”
“아버님께서 뮤트 공작 전하와 대련이 있은 뒤에 수련에 지독히 몰두하고 계신다. 무언가 감이 잡히신 것 같다고 하시던데…….”
“그게 정말입니까?”
나는 크게 놀라 물었다.
무언가 감이 잡혔다면, 잘만 하면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도 오러 엑스퍼트 상급으로 명성 높은 아버지였다. 한 단계 더 발전한다면 최소한 최상급! 이 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를 방해하면 안 되겠군요,”
“아무 도움도 못 줘서 미안하구나. 정 안 되겠으면 몬스터 토벌이 끝날 때까지 네 영지로 가지 말고 기다려 보아라.”
“아닙니다, 형님. 제가 미적대는 사이에 영지민들이 죽을 수 있으니까 빨리 가봐야죠. 저도 나름 용병단을 고용해뒀고, 제 정령술이면 오크 수십 마리 정도 상대할 수 있으니까 어떻게든 될 겁니다.”
일전에 오크 11마리를 순식간에 처리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내가 전력을 다 하면 100마리는 사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정령술로 기선제압을 하고 딘 용병단과 영지 군대가 받쳐주면 잘하면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 가서 최대한 버텨보아라. 몬스터 토벌이 끝나는 대로 군대를 파견해주마.”
“예, 형님.”
“다른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말해라.”
“아, 그럼 부탁만 하나 해도 될까요?”
“부탁?”
“예. 왕실에 서신을 한 통 보내고 싶은데요.”
“알겠다. 사람을 시켜서 서신을 보내마.”
나는 즉석에서 종이와 펜을 빌려 서신을 작성했다.
「더 없이 고귀하며 그 이름도 영광되신 에릭 레던 국왕 폐하께.
……(중략)따라서 부디 폐하의 유능한 왕실 관리, 제론 데커드를 당분간 제 휘하로 부릴 수 있도록 해주시옵소서.
-폐하의 충성스러운 가신 카록 쿤트 남작」
음, 됐어.
이 정도 부탁쯤이야 들어주겠지. 내가 왕실에 도움 준 게 얼만데?
나는 서신을 아서 형님께 맡기고 저택을 나왔다. 이제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
딘 용병단을 고용한 일 외에도, 나는 짐마차 수십 대를 빌려 밀 3천 포대를 실었다. 오크 부족과의 전쟁에 군량으로 쓰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영지의 절반이 숲 지대인 곳이니 식량이 별로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자 나는 비로소 바탄 영지로 출발했다.
나에게 길안내 임무를 받은 한스가 나귀를 타고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