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회: 3권 - 6장. 바탄 영지의 위기 -->
구스 영감은 2개월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검을 만드는데 몰두했다.
그렇게 가을이 지나 초겨울이 되자 검이 완성됐다.
미스릴 롱 소드. 오직 크라일 뮤트 공작을 위해 만들어진 대륙 최고의 검!
구스 영감도 자신의 작품이 마음에 들었는지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제가 이걸 만들다니! 그 뮤트 공작 전하께 바쳐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구스 영감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진정 대륙 최고의 검이겠네.”
“허허헛, 이 늙은이를 너무 띄워주시는군요.”
미스릴 롱 소드는 목곽에 잘 포장했다.
그리고 충성스런 기사인 카스토 경에게 부탁해서 이것을 뮤트 공작가에 전해달라고 했다.
카스토 경은 쾌히 승낙했다.
“뮤트 공작 전하께서 쓰실 지도 모르는 검을 운반하는 일이라니 영광이군요.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카스토 경.”
아무래도 1만 5천 레디나짜리 물건이라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길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과연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나도 사뭇 궁금해진다.
***
“뮤트 공작 전하께 인사드립니다. 저는 쿤트 자작가의 기사 릭 카스토라고 합니다. 오늘은 카록 쿤트 남작님의 심부름으로 공작 전하께 이것을 전해드리려고 왔습니다.”
카스토는 공손하게 두 손에 든 목곽을 내밀었다.
“카록 쿤트 남작이 내게 전하라 했다고?”
“예, 전하.”
뮤트 공작은 목곽을 받아들었다.
“잘 받았다.”
“네.”
뮤트 공작은 뭔가가 떠올랐는지 다시 말했다.
“오느라 피곤하겠군. 사흘간 머물다 가라. 원한다면 제자들의 공동 수련장을 구경해도 좋다.”
그 말에 카스토의 안색이 환해졌다.
템플 오브 나이트.
레던 왕국 기사들의 꿈같은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실력과 명성으로 이미 정평이 난 그의 제자들의 수련장을 견학하는 것만으로도 카스토 같은 일반 기사들에게는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카스토가 밖으로 나간 후, 뮤트 공작은 목곽을 바라보았다.
‘카록인가.’
젊은 현 국왕 폐하께 많은 도움을 준 젊은이라고 들었다.
특히 요번의 흑혈병 땐 카록의 조언으로 레던 왕실이 사전에 약재를 많이 확보했고, 그로 인해 바닥난 재정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다.
그것이 기특해서 원하는 걸 한 가지 들어주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군대에 병기를 납품할 권리를 주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자신의 검을 5분간 빌려달라고 했다. 부탁이 겨우 그거라니.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흥미가 가는 청년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목곽을 열어보았다.
은빛의 광택이 흐르는 미스릴 롱 소드였다.
“쓸데없는 짓을…….”
뮤트 공작이 중얼거렸다.
기사는 무기를 함부로 바꾸지 않는다. 손에 익은 무기는 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뮤트 공작은 자신의 미스릴 롱 소드를 30년째 써오고 있었다. 아무리 미스릴이라 해도 30년이나 써와서 많이 낡았지만 그래도 결코 새 걸로 바꿀 수 없었다.
카록이 선물로 보내온 미스릴 롱 소드는 뮤트 공작에게 의미 없는 선물이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잘 만든 것 같았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정말 잘 만들긴 했군.’
한눈에도 검신의 균형이 아주 잘 맞아떨어졌다. 다루기 힘든 미스릴을 이렇게까지 제련할 수 있는 장인은 이 세상에 몇 없다.
‘그런 장인이면 높은 경지에 이른 기사가 무기를 함부로 바꾸지 않는다는 것도 알 텐데.’
이상한 마음이 든 뮤트 공작은 목곽 안의 검에 손을 뻗었다.
처억.
손잡이를 잡자 묘하게 안정되고 익숙한 감촉이 퍼진다.
뮤트 공작은 흠칫했다.
그것을 꺼냈다.
길이, 무게감이 완벽했다. 완전하게 자신을 위한 검이었다.
“허…….”
처음으로 뮤트 공작의 입에서 감탄사가 나온다.
‘새로운 검인가.’
오랜만에 흥이 난 뮤트 공작은 강기를 일으켰다.
콰아아!
푸른 아지랑이처럼 흘러나오던 오러가 고체처럼 검의 형상을 이루었다. 그것이 바로 오러 마스터만이 발휘할 수 있는 강기였다.
부우웅!
강기가 공기를 찢었다.
부웅! 파앗!
몇 번 더 휘둘러본 뮤트 공작은 내심 감탄했다. 검신까지 자신의 검술에 특화된 것 같았다. 마치 평생을 써왔던 애검 같지 않은가!
“그래, 그래서 5분간 내 검을 빌렸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것은 귀중한 선물이었다.
이런 걸 선물하다니, 카록 그 청년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인물인지도 몰랐다.
30년간 바꾸지 못했던 검을 마침내 바꾸게 되었다.
사실 오러 마스터가 되고부터는 검의 성능에 대해 그다지 신경을 안 써왔다. 그런데 이번에 선물을 받고서야 새 검을 들게 된 것이다.
“스승님~!”
멀리서 누군가의 유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 촐싹대는 말투는 한 놈밖에 없었다.
릭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가문에서 사람을 보냈다면서요? 무슨 일이래요?”
“귀중한 선물을 보냈더군.”
“엇? 그 검은 뭡니까? 무진장 좋아 보이는데?!”
“내 새로운 검이다.”
“엑? 정말요?”
릭은 깜짝 놀랐다. 그의 스승은 지금껏 검을 한 번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좋은가요?”
“검사로서 이런 명검을 쥘 수 있다는 것은 더없는 행운일 것이다.”
“아!”
스승이 저런 극찬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뮤트 공작은 자신의 허리춤에 걸려 있던 기존의 미스릴 검을 릭에게 휙 던졌다.
“그건 네가 써라. 낡긴 했어도 미스릴이니 쓸 만하다. 넌 나와 검술의 스타일이 비슷하니 그 검에 적합한 주인이 되겠군.”
“저, 정말입니까? 이 귀한 걸…….”
“네 동생에게 더 귀한 선물을 받았다.”
뮤트 공작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선물 받은 새 검을 허리춤에 찼다.
스승의 검을 받고 희희낙락하는 릭에게 뮤트 공작이 말했다.
“그리고 네 동생에게 앞으로 우리 군대가 쓸 병기를 납품하라고 해라. 그 정도 실력을 갖춘 병기점이라면 맡길 수 있겠군.”
“예, 스승님.”
릭은 대답을 하고는 물러나며 생각했다.
‘카록 녀석이 그렇게 실력 좋은 병기점을 운영하고 있었단 말이야? 이 괘씸한 녀석이. 그럼 이 형님한테도 냉큼 저런 명검 한 자루를 바칠 것이지!’
릭은 언제 한 번 기회를 봐서 특별 제작한 미스릴 검 한 자루를 뜯어내리라고 결심했다.
그 전까지는 스승에게 물려받은 검을 쓸 생각이었다. 스승으로부터 검을 물려받은 것은 특별한 의미였기 때문에 쉽게 새 검으로 바꿀 수는 없을 것 같았다.
***
“세상에나! 대체 어떻게 하신 거예요, 단주님?”
저녁 무렵.
뒤늦게 퇴근한 나를 반기며 줄리아가 방방 뛰었다.
“뭐가?”
“카록 병기점에 납품 주문이 밀려들어오고 있어요! 특히 뮤트 공작가에도 납품 주문이 들어왔고요! 세상에,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리신 거예요?”
“간단한 홍보 효과를 이용했을 뿐이야.”
나는 줄리아에게도 공부가 될 것 같아서 뮤트 공작에게 검을 선물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선물한 검을 받고 뮤트 공작은 ‘검사로서 이런 명검을 쥘 수 있다는 것은 더없는 행운일 것이다.’ 라고 평을 했다고 한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의 제자들은 물론이고 레던 왕국과 인근 국가의 내로라하는 기사들이 우리 병기점을 찾아왔다.
그들은 그냥 검 한 자루를 사 가는 게 아니라, 숙련 장인에게 특별 제작된 보검을 주문했다. 뮤트 공작의 인정을 받은 병기점이니 아무리 비싸도 믿고 맡길 만하다는 것이었다.
구스 영감이 버티고 있는 우리 병기점의 실력은 최고라고 내세울 만했다.
그렇게 특별 제작을 주문한 자들도 완성된 검을 받고 무척 만족해했고, 그리하여 우리 카록 병기점의 명성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당연히 각지의 영주들이 우리 병기점에 군대에 보급할 병기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영지를 지키는 군대가 쓸 무기인데 싸구려 병기를 보급할 수는 없는 노릇. 특히나 영지전 같은 긴박한 상황에 처한 영주들은 우리 영지에 납품을 주문했다.
덕분에 줄리아는 행복한 비명을 질러댔다.
새로 신설된 병기점이라 잘 알려지지 않은 약점이 1년도 되지 않아 해결된 셈이니까.
“단주님, 정말 존경스러워요. 그 값비싼 미스릴 롱 소드를 공짜로 선물함으로서 더 큰 이익을 유도하다니! 그런 방법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어요. 저라면 미스릴이 아까워서 그러지 못했을 텐데!”
“큰 이익에는 언제나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법이야. 명심해두면 좋을 거야.”
“네! 정말 존경해요!”
하며 줄리아가 와락 나에게 안기는 게 아닌가?
얘, 얘 진짜 왜 이래! 원래 안 이랬잖아?
당황하여 얼어붙은 나를 시스가 빤히 바라본다.
“…….”
나와 날 와락 끌어안은 줄리아를 특유의 무표정으로 번갈아본 시스는 스윽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 자기도 나의 품에 안긴다.
“……존경해.”
내 품에 억지로 파고든 여자가 둘.
어쩐지 남자로서는 기분 좋긴 한데, 황당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