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66화 (66/529)

<-- 66 회: 3권 - 5장. 크라일 뮤트 공작 -->

결혼식 당일이 되었는데도 릭 형님이 오지 않아서 별로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 릭 형님이 결혼식을 거행하기 세 시간 전에 도착해서 기뻤다. 수십 년간 보지 못했던 릭 형님이라서 꼭 다시 한 번 얼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뮤트 공작까지 올 줄은 몰랐다.

크라일 뮤트 공작.

그는 바로 이 나라의 유일한 오러 마스터이자 기사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다.

수많은 제자를 거느리며 검술을 가르치고 있어서 그의 성을 템플 오브 나이츠라 부를 정도였다.

그는 혼트 제국과의 국경에 위치한 영지를 다스리고 있어 레던 왕국의 수호신이라고도 불린다.

위세 등등한 육제후조차도 뮤트 공작의 앞에서는 꼬리를 내린다. 작위나 무위나 인품이나 여러모로 그를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육제후가 세를 떨치며 왕실과 으르렁대는 것도 다 뮤트 공작이 혼트 제국의 위협으로부터 이 나라를 지키고 있는 덕분이 아닌가.

뮤트 공작은 전형적인 왕실파 인물로 왕실에 더없이 충성스런 인물이지만, 혼트 제국 탓에 국내의 정치 싸움에 개입할 여유는 없었다.

혼트 제국의 위협만 없었더라면 육제후는 감히 뮤트 공작이 버티고 있는 왕실을 상대로 대립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리라.

릭 형님이 뮤트 공작과 단 둘이 왔다면, 그가 그만큼 그의 신뢰를 받는 제자라는 뜻이었다.

아서 형님의 결혼식에 그 뮤트 공작의 참석이라. 아하하, 정말 놀랐다. 이런 엄청난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야.

이 일로 우리 가문의 위상이 더 치솟을 것이다. 오러 마스터 크라일 뮤트 공작이 쿤트 가를 축하해주기 위해 방문했으니까 말이다.

아버지도 아서 형님도 이 소식을 듣고 황급히 달려왔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공작 전하! 쿤트 자작입니다. 전하의 명성을 늘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뮤트 공작에게 인사했다. 뮤트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갑네. 릭의 수다가 아니더라도 자네의 이름은 풍문으로 자주 듣고 있지. 폐하의 충신 중에 자네 같은 이가 있어서 참 다행이군.”

그 말은 아버지에게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감격어린 표정을 짓는 아버지를 보니 아버지가 얼마나 뮤트 공작을 존경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 기사라면 다들 아버지 같은 반응을 보이겠지.

뮤트 공작은 모든 기사의 동경의 대상이니까. 심지어 뮤트 공작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따라하려는 극성맞은 기사까지 있을 정도였다.

음? 가만.

이거 잘만 하면……. 어쩌면 아주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겠어!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치는 아이디어에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잘만 하면 사업을 크게 키울 수 있는 기회였다.

아버지의 인사가 끝나자 이번에는 새신랑 아서 형님이 나섰다.

“그 무명이 만방에 알려지신 뮤트 공작 전하께 인사드립니다. 쿤트 대공자 아서라고 합니다.”

“결혼을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전하!”

음, 이번에는 내 차례인가?

나는 뮤트 공작 앞에 섰다.

“카록 쿤트 남작입니다. 공작 전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자네가 카록이군.”

뮤트 공작은 날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근엄하게 다물어진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자 다들 깜짝 놀랐다.

“자네가 왕실에 이래저래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대흉년 때도 자네 덕에 왕실로부터 군량을 무사히 보급 받을 수 있었지.”

뮤트 공작은 휘하에 2만 명이나 되는 병력을 거느린 대영주다. 그는 그 모든 전력을 혼트 제국의 침공에 대비하는데 쓰고 있다.

왕실로서는 그렇듯 나라에 헌신하는 뮤트 공작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할 필요가 있었다. 듣기로 매년 군량미와 자금을 지원해주고 있다고 들었다.

“레던 왕실에 충성하는 자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내가 자네에게 도움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지. 그 보답을 하고 싶네.”

뮤트 공작의 말에 모두들 놀랐다.

크라일 뮤트 공작의 보답이라니! 그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모를 사람은 없으리라.

“공작 전하께서 있어서 이 나라가 평안한데 어찌 제가 염치없이 보답을 바란단 말입니까?”

내 대답에 아버지와 아서 형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 한 번 잘 했다고 호응했다.

“원하는 걸 하나 말하게.”

뮤트 공작이 다시 말했다.

음. 겸양은 이 정도면 됐지?

이제 원하는 걸 하나 말해야겠다. 이게 웬 떡이냐? 마침 나도 뮤트 공작에게 바라던 게 하나 있었는데 잘됐어.

평범한 상인이라면 이럴 때 ‘뮤트 공작가의 군대에 병기를 납품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고 소원을 외쳤겠지?

하지만 난 달라.

상인 경력 74년차의 92살짜리의 생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단 말이지.

나는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말하게.”

다들 나에게 주목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공작 전하의 검을 5분만 빌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그 말에 다들 깜짝 놀랐다. 내 부탁이 너무나 의외였기 때문이다.

“은유적인 표현인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공작 전하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5분만 빌렸으면 합니다.”

“내 검이라…… 하하핫!”

뮤트 공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자네는 정말 알 수 없는 친구로군. 크하핫! 자, 가져가게!”

그는 기꺼이 허리춤에서 롱 소드를 검집째 꺼내 나에게 던졌다.

그걸 공손히 두 손으로 받은 나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5분 뒤에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러고서 나는 검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아무도 없는 곳을 찾다가 예전에 내 침실이었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노움을 소환했다.

-불렀어?

두더지처럼 슝 튀어나온 노움.

난 노움에게 뮤트 공작의 보검을 보여주었다.

“노움, 이걸 잘 보고 기억해둬.”

-응.

노움은 제 키보다 더 큰 검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기억했어.

“응, 잘했어. 그런데 이 검의 재질을 알아보겠어?”

-음……, 뭔지 알고는 있는데 뭐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어.

“그럼 역시 미스릴 보검이구나.”

이 세상에 대지의 정령인 노움이 모르는 광물이란 없었다. 다만 뭐라고 부르는지 명칭을 모를 뿐이다.

-그게 미스릴이야?

“응.”

나는 노움을 돌려보내고 검을 들고 뮤트 공작과 가족이 있는 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여기 있습니다.”

나는 공손하게 뮤트 공작에게 검을 넘겼다.

그것을 받아 허리춤에 채운 뮤트 공작은 날 보며 희미하게 웃더니 이내 시선을 돌렸다.

다들 날 보며 그 검을 5분간 빌려서 뭘 했냐는 눈치였지만 난 모른 척했다. 다 깊은 뜻이 있거든요?

뮤트 공작과는 다들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눴는지 이제는 릭 형님이 가족과 재회하고 있었다.

“그동안 잘 지냈느냐? 1년에 한 번씩은 편지나 하지 그랬느냐, 이 매정한 녀석아.”

아서 형님은 릭 형님을 핀잔했다.

릭 형님은 머리를 긁적였다.

“저도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 자꾸만 깜빡해서요.”

그 말에 아버지도 공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거다. 검술 수련에 몰두하면 다른 일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지.”

그러자 아서 형님은 ‘그래서 아무 일도 안 하고 날 이리 고생 시킵니까?’라고 묻는 눈으로 노려봤고, 아버지는 딴청을 부렸다.

“자, 스승님. 어떻습니까? 우리 아버님을 실제로 보니까. 저랑 아버님 둘 중 누가 더 세 보입니까?”

릭 형님의 장난스런 질문에 아버지도 호승심이 생겼는지 눈을 번뜩였다.

릭 형님은 오러 엑스퍼트 상급의 경지로 아버지와 동일했다. 나보다 다섯 살 더 많으니 25살인데 벌써 그 경지이니 실로 검의 천재라 불릴 만했다.

하지만 아버지도 릭 형님 같은 천재는 아니지만 대단한 재능과 열정의 소유자로 이 일대에서는 당해낼 자가 없는 강자 아닌가.

뮤트 공작이 입을 열었다.

“조금 놀랐다. 네가 부친에게 뒤처질 수도 있겠군.”

“예?”

릭 형님과 아버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말뜻은 릭 형님보다 아버지가 더 먼저 오러 마스터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었다.

“말도 안 돼! 난 천재라고요? 아버지는 범재고!”

범재라는 말에 아버지는 발끈해서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쯧쯧.”

자기 입으로 천재라니, 릭 형님답다. 뮤트 공작은 그저 혀를 찰 뿐이었다.

“아버님, 간만에 저랑 한 판 붙죠?!”

“호오, 조심하려무나. 이 애비가 요즘 물이 올랐다.”

서로를 마주보며 투지를 불태우는 검 바보 부자.

이대로라면 아서 형님 결혼식도 안 보고 당장 수련장으로 달려갈 것 같아서 내가 나섰다.

“릭 형님, 전 안 보이십니까?”

“아차차, 카록! 그래, 카록 너 참 오랜만이구나!”

그제야 릭 형님은 대뜸 날 끌어안았다. 나도 마주 끌어안았다.

릭 형님의 단단한 몸과 체온을 느끼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형님.

언제나 쾌활했던 형님을 꼭 다시 보고 싶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렇게 허무하게 죽지 마세요.

***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활기찬 음악에 맞춰서 사람들은 춤을 추었고 아서 형님과 레이라는 그 정중앙에 위치했다. 두 사람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키스를 하며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고, 그 이후 음유시인의 노래나 서커스단의 묘기가 이어져 흥을 돋우었다.

얼마나 흥이 났냐 하면, 나도 정령들과 함께 몇 가지 묘기를 부리며 사람들을 즐겁게 해줬을 정도였다.

몇몇 영주들이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자신의 아들의 결혼식에도 와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내 정령술 묘기가 재미있었나 보다.

물론 다 거절했다.

난 정령사지 서커스단이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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