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63화 (63/529)

<-- 63 회: 3권 - 4장. 아서 형님의 결혼식 -->

자, 잠시 돈 계산이나 좀 해보자.

지난번에 왕실에 밀 3만 5천 포대를 팔아서 8만 레디나를 벌었고 추가로 남작의 작위와 영지도 하사 받았다.

그 8만 레디나 중 후디니 자작가에 청산한 밀 값 금액이 5천 레디나.

철광석 광산을 매입하느라 3만 레디나.

초대형 병기점 설립에 4,200레디나.

지난번 영지전에서 우리 가문을 지원한 돈이 5천 레디나.

얼마 전에 줄리아에게 병기점을 운영하라고 준 자금이 1만 레디나.

그밖에도 레던 왕성에서 줄리아의 레스토랑을 1천 레디나에 인수해 주고, 저택을 짓는데 돈 쓰고, 직원들 월급 등등 나간 돈이 한두 푼이 아니었다.

나간 돈이 대략적으로 6만 레디나쯤 되었다. 정말이지, 웬만한 영지 예산보다 많은 돈을 벌고 펑펑 써대고 한 것이다.

그러나 흑혈병 유행을 맞이하여 작셀을 팔아서 번 수입만 6만 레디나였다. 그걸로 그간의 지출을 단숨에 만회한 것이다.

추가로 가을에는, 노는 약초밭에 심어서 봄에 수확했던 토르마도 비싼 값을 받고 팔아치워 약 2천 레디나의 수입을 올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을 낙엽이 지는 즈음에 초대형 병기점이 완공되었다.

이름 하여 카록 병기점.

사장은 줄리아, 최고 장인은 구스 영감이다.

줄리아는 내가 준 1만 레디나로 병기점을 훌륭하게 운영하기 시작했다.

레던 왕성에서 일반 장인 열 명과 사무실 직원 열 명을 영입했고, 우리 영지의 빈민들 중에서 젊은 사내 30명을 도제로 채용했다.

기존의 구스 영감의 병기점에서 일하던 장인 7인은 숙련 장인으로 임명됐다.

최고 장인 구스 영감과 숙련 장인 7인은 각자 개인 작업장에서 심혈을 기울여 고급 무구를 만들기 시작했고, 새로 채용한 일반 장인 10인은 공동 작업장에서 도제 30명과 함께 납품할 병기를 대량 생산케 하는 체제를 이루었다.

때마침 철광석 광산에서도 철광석을 많이 채굴하기 시작했다. 채굴된 철광석은 모두 카록 병기점으로 운반되어서 철제 병기로 만들어졌다.

마침내 군수사업을 개시한 것이었다.

뭐, 이미 오리엔 왕실군 2, 3, 7군단에 2년간 납품하기로 계약했고, 그밖에도 총 12개의 영지의 군대에서도 납품 계약을 따냈으니 금방 고수익을 볼 터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영지전에서 우리에게 패배한 두 가문, 페트람 자작가와 몰스 자작가가 전쟁 배상금 9만 레디나를 보내 왔다.

대흉년과 흑혈병으로 영지가 피폐해진 그들이 어떻게 그런 돈을 마련했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란즈헬 백작가가 빌려 줬겠지.”

란즈헬 백작은 조만간 그들에게 돈을 갚으라고 독촉을 가할 것이다. 그리고 1년 안에 돈 대신 영지를 몰수하겠지. 이미 그의 심복 에반 테일러와 이야기해서 확인된 일이다.

무서운 돈의 힘.

나도 얼른 돈 벌어야지. 육제후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육제후 그것들은 바덴 강 유역을 지배한다는 이유 하나로 돈을 갈퀴로 퍼 담고 있는데, 나는 내 힘으로 벌겠어.

아무튼 두 가문이 보낸 전쟁 배상금 중에서 3만 레디나는 내 몫으로 떨어졌다.

영지전 때 내가 많은 자금을 지원했고, 또한 활약도 했기 때문이다.

사실 대흉년과 흑혈병을 피해간 것도 내 덕분이니 배상금의 3분의 1을 받을 자격은 충분했다.

이로써 내 수중에는 대략 11만 레디나쯤 되는 엄청난 돈이 있는 셈이 되었다.

이쯤 되자 나는 ‘카록 곡물 상회’ 라는 명칭을 ‘카록 상단’으로 바꿔버렸다.

군수사업과 약재사업에 진출하고 있어서 곡물 상회라는 명칭은 이제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도 더 많은 사업에 진출해서 돈을 벌 생각이었다. 세상은 넓고 돈은 사방에 널렸거든.

***

흑혈병은 크나큰 파동을 일으켰다.

대흉년에 이어 흑혈병이라는 재앙까지 겹치자 대륙 전체 인구의 15%가 목숨을 잃는 재앙이 벌어졌다.

식량부족, 인구급감.

평민층이 죽어나가니 그들에게 세금을 거둬서 부를 쌓는 귀족들도 돈이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사치를 부리며 살던 귀족들까지 돈주머니를 열지 않을 정도로 경제가 심하게 악화되자, 상인들은 견뎌내지 못하고 줄도산을 했다.

그러나 그 시기를 틈타 급성장한 자들도 없는 건 아니었다.

바로 레던 왕실.

타국에서 대흉년 여파로 식량난을 해결하려고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레던 왕실만은 전염병 발생 위험을 조사하여 더 큰 재앙에 대비했다.

흑혈병이 발생했을 때, 레던 왕실은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조치하고 대량 재배한 작셀로 위기를 넘겼다.

뿐만 아니라 작셀을 육제후를 포함한 자국의 영주들에게 판매하여 큰 이문을 얻었다. 그로 인해 바닥난 왕실 재정이 다시 풍족해졌다고 한다.

세간에서는 앞날을 내다본 젊은 국왕 에릭 레던의 현명함을 칭송했다.

그런데 레던 왕실 외에도 한몫 크게 번 상인이 있었다.

카록 쿤트 남작.

최근 욱일승천하고 있는 쿤트 자작가의 삼남인 카록 쿤트 남작은 지난번 대흉년에 이어 이번 흑혈병 때도 대량의 작셀을 팔아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뿐만 아니라 거금을 과감하게 투자해 광산 매입과 초대형 병기점 설립 등 군수산업 진입을 시도했는데, 작셀을 팔 때 병기 납품 계약까지 여러 건 따냈기 때문에 이미 큰 매출이 예정되어 있다는 소문이었다.

본래 무기와 방어구를 대량으로 생산해서 군대에 납품하는 군수사업은 웬만한 대영주가 아니면 진출할 수 없는 분야였다.

철광석이 원활하게 공급되어야 하고 솜씨 있는 장인도 필요하며 설비에 대한 투자비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록 쿤트 남작은 대흉년과 흑혈병으로 도래한 불황기를 틈타서 발 빠르게 군수산업 진입에 성공한 것이다.

대흉년을 예측하고 밀을 보유하고 흑혈병에 대비해 작셀을 재배한 천재 상인!

불과 약관의 나이에 레던 왕국의 손꼽히는 거상이 된 카록 쿤트 남작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더군다나 보기 드문 정령사이기도 했기 때문에 명성을 얻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소식이 레던 왕국 내에 알려졌다.

쿤트 자작가의 대공자 아서 쿤트와 후디니 자작가의 다섯 번째 영애 레이라가 혼인한다는 소식이었다.

무서운 성장세를 타고 있는 쿤트 자작가와 대흉년 때 큰돈을 벌어들인 후디니 자작가의 결합은 많은 이의 관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

저택은 결혼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아직 보름이나 남았음에도 아서 형님은 발 벗고 나서서 성대한 결혼식을 준비했다.

말로는 쿤트 가의 성세를 보여줄 절호의 기회라고는 하는데, 어째 연신 싱글벙글하고 눈이 반짝거리는 아서 형님을 보면 그냥 예쁜 신부랑 결혼하게 되어서 흥분한 것으로밖에 안 보였다.

“카록, 봐라. 홀에 장식할 그림을 몇 점 샀는데 어떠냐?”

아서 형님은 내게 그림 다섯 점을 보여주며 물었다.

“웬 그림입니까, 형님?”

“기사가문이라고 삭막하고 무식하단 소리를 들으면 안 되지 않느냐.”

“그렇군요.”

난 그림들을 빤히 보다가 두 번째와 세 번째를 가리켰다.

“이것과 이것은 제법 수준이 있네요. 다른 건 별로입니다.”

“그래? 알았다. 다른 건 환불해야겠구나.”

일은 잘 하지만 예술적인 안목은 떨어지는 아서 형님은 내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뭐, 92년을 살았으니 내 안목이 좀 좋은 건 사실이었다.

그렇게 아서 형님은 저택을 고풍스럽고도 세련되게 꾸미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빤히 지켜보는 아버지는 왠지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우리는 유서 깊은 기사 가문인데 그런 것에 신경 쓸 필요가 있겠느냐?”

예술과는 영 거리가 먼 아버지가 투덜거렸다.

나는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도 귀족의 교양 하면 예술이잖습니까.”

“쯧, 그래도 그럴 돈으로 좋은 검이나 사서 장식하는 편이 훨씬 더 기사가문으로서의 위엄을 떨치는 길이 아니냐. 듣자하니 사돈 될 후디니 자작도 몬스터의 박제를 잔뜩 장식해서 가문의 위엄을 뽐내고 있다고 하던데…….”

헐.

마초적인 아버지는 후디니 자작의 집착이 서린 몬스터 박제가 부러웠던 모양이다.

박제?

그럼 우리도 그런 걸 장식해 볼까?

나는 잠시 궁리하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버님! 제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응? 뭐냐?”

“생각해보면 변방의 작은 영지를 다스리던 우리 쿤트 가문이 아버님 대에 이르러서 성세를 떨치기 시작했잖습니까?”

“흠흠, 그야 그렇지.”

아버지는 부끄러워 헛기침을 하면서도 은연중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건 사실이었다.

내 도움도 컸지만, 우리 가문의 명성은 내전에서 6서클 마법사 리타 백작의 목을 베고, 영지전에서도 무위를 떨친 아버지가 얻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만간 둘째 형님인 릭 형님도 그 못잖은 무위를 드러내 검의 천재로 명성을 떨치겠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결혼식 때 릭 형님도 오려나?

아무리 검에 미쳐 사느라 집에는 편지 한 통 안 보내는 릭 형님이라도, 아서 형님의 결혼식에는 올지도 모른다.

헐, 그럼 수십 년 만에 릭 형님과 재회하는 셈이구나.

나는 잡생각을 접어두고 아버지에게 계속 말했다.

“그러니 역대 가주 분들 중 가장 훌륭한 업적을 세우신 아버님의 석상을 여기에 세우는 겁니다.”

“뭐라고? 내, 내 석상을?”

아버지는 크게 놀란 표정이 되었다.

잠시 후 아버지는 쑥스러워하시며 겸양했다.

“에이, 아니다. 아비보다 훌륭하신 선조님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내 석상을 세운단 말이냐?”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버님이 가주가 되시면서 우리 영지는 세 배로 커졌으며, 7천 명이 조금 넘던 인구수가 지금은 3만 명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레던 왕국에서 아버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험험, 그러느냐?”

나의 칭찬공세에 아버지는 은근 기분 좋아하며 솔깃했다. 이럴 때 점수 좀 따놔야지.

“여기에 한 5미터쯤 되는 크기로 아버님의 석상을 만들겠습니다. 제가 정령술로 만들 테니 돈 한 푼 안 들이고 가문을 빛낼 수 있습니다.”

“커험, 험. 정 네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여라.”

“예. 노움!”

ㅤㅆㅠ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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