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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61화 (61/529)

<-- 61 회: 3권 - 3장. 순조로운 사업 -->

듀론 후작이 돌아가고 나서도 우리 영지에 방문하는 중요한 손님들은 끊이질 않았다.

이웃영주들이 계속해서 우리 가문을 방문했는데, 그들의 목적은 딱 하나였다.

내가 보유한 작셀.

내가 작셀을 대량 보유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이웃 영주들이 급하게 찾아온 것이다.

내가 보유한 작셀 알약은 무려 3만여 개에 달했다. 올해 여름에 수확한 작셀까지 포함한 수량이었다.

우리 가문에 무료로 1천여 개를 공급하고도 그 정도가 남은 것이다.

우리 영지의 약초밭을 절반 이상 보유한 나는 2년간 작셀 재배에만 올인 했다. 그러니 그 정도 물량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작셀의 정상가는 30실버.

흑혈병이 발생하면 보통 1레디나까지 치솟는다.

하지만 대륙 전체에 흑혈병이 퍼져서 모든 군주들이 작셀을 찾는다면?

당연하게도 2레디나는 족히 받을 수 있다.

강짜를 부리면 더 많이 받을 수도 있지만 그냥 2레디나 정도만 받기로 결심했다.

다만 다른 부탁으로써 이득을 더 챙길 생각이었다.

“다시 보는군, 카록 쿤트 남작.”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후디니 자작님.”

우리의 사돈이 될 후디니 자작 역시 나를 찾아왔다. 흑혈병에 골머리를 앓는 건 그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돈은 얼마든지 낼 용의가 있네. 각설하고, 작셀 3천 개를 내게 팔게.”

돈이 많은 후디니 자작답게 호쾌한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개당 2레디나에 팔겠습니다.”

“생각보다 싸게 받는군? 물론 평소 작셀 시세에 비하면 무척 비싸지만 전 대륙이 작셀을 찾는 마당인데.”

후디니 자작은 의외라는 듯이 내게 물었다.

“사람을 구하는 일인데 돈이 부족하여서 필요한 만큼의 작셀을 구입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저도 상인으로서 이익을 추구해야 하니, 2레디나가 적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훌륭한 마음가짐이군.”

“대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말해보게.”

후디니 자작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대꾸했다.

“저는 우리 쿤트 가문과 함께 군수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철광석 광산의 운영도 정상화되었고, 초대형 병기점도 올해 안에 가동될 예정입니다.”

“그렇군. 그럼 우리 후디니 자작가의 군대에 3년간 병기를 납품하게나. 이러면 되겠나?”

거상가문답게 후디니 자작은 곧바로 내 의중을 알아차렸다.

“감사합니다.”

“뭘. 어차피 군대에 공급할 병기는 필요하니 나도 손해는 아니네.”

곧 사돈이 될 관계여서 그런지 협상은 어렵지 않았다. 금방 계약이 이루어졌고, 후디니 자작은 밝은 얼굴로 돌아갔다.

이 같은 방식으로 나는 여러 가문으로부터 작셀을 팔아주는 대가로 병기 납품 계약을 따냈다.

우리에게 철광석 광산을 매각한 바 있었던 콘월 자작가도, 북부의 하르셀 남작가도 나와 계약했다.

작셀을 팔아서 돈도 벌고 병기 납품 계약도 따내서 초대형 병기점의 매출을 올리니 일석이조였다.

그렇게 나는 불과 보름 사이에 총 10개나 되는 가문으로부터 납품 계약을 얻어내는 기염을 토했다. 그만큼 흑혈병의 유행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작셀은 총 1만 5천 개를 팔았다. 작셀을 팔아 거둔 수입은 총 3만 레디나.

이제 남은 물량은 1만 5천여 개. 물론 작셀을 서로 더 사가려고 아우성을 쳤지만, 남은 물량은 아껴둘 필요가 있었다. 이걸 사갈 사람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슬슬 오리엔 왕실에서 입질이 올 때가 됐는데…….”

흑혈병이 유행하는 마당에 그들이 작셀을 팔겠다는 내 제안을 무시할 리 없었다.

내 예상대로, 그로부터 열흘 뒤에 특별한 손님이 나를 찾아왔다.

오리엔 왕실에서 보낸 인물은 내 생각보다 더한 거물이었다.

바로 바르한 브리튼 자작.

오리엔 왕국의 명문가 브리튼 공작가의 차기 후계자인 그가 오리엔 왕실을 대표하여 날 찾아온 것이다.

얼마 전에 마셨던 명주 레이스 브리튼이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브리튼 가문은 그 백포도주로 더 알려져 있다.

브리튼 공작가는 대대로 오리엔 왕실에 충성을 바쳤던 가문이었다. 따라서 그가 왕실 대표로 온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바르한 브리튼 자작일세.”

바르한 브리튼 자작은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였다. 특징 없는 평범한 외모였지만 턱선이 굵고 눈매가 강직해보였다.

“브리튼 공작가의 차기 주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반갑네, 카록 쿤트 남작. 뛰어난 상재로 2년 사이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자네의 이야기가 우리 오리엔 왕국에까지 전해지더군.”

“하하,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운만이 아닌 것 같던데.”

바르한은 흥미로운 눈길로 날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듀론 후작이 날 보던 눈빛과 비슷했다.

그 역시도 나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 왕국 역시 흑혈병으로 고난을 겪고 있네. 흑혈병에 걸린 백성들을 따로 격리시켜서 더 이상 번지지 못하게 막기는 했지만, 격리된 이들을 그냥 죽게 놔둘 수만도 없는 노릇이지.”

“심려가 크시겠습니다.”

“그러니 거두절미하고 빨리 거래를 성사시키고 싶네. 자네가 가진 작셀이 얼마나 되는가?”

“대략적으로 1만 5천 개가 조금 넘는 수량입니다.”

“그걸 모두 구입하겠네.”

“어떤 조건으로 말입니까?”

내가 넌지시 묻자 바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네. 오리엔 왕실군 2, 3, 7군단에 2년간 병기를 납품할 권리를 주겠네. 대신 작셀은 레던 왕국의 화폐로 개당 1레디나에 사고 싶네. 어떤가?”

오.

세 개 군단에 납품할 권리라면 매출이 대단한 거래였다.

하지만 90년 상인 근성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게 한다. 협상을 하면 값을 더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1레디나는 너무 쌉니다. 2레디나는 받아야 합니다. 이것도 현재 작셀의 수요에 비하면 상당히 싼 편이라는 건 브리튼 자작님께서도 잘 아실 겁니다.”

“알지. 하지만 왕실군 2,3,7군단의 병력을 합치면 총 3만에 달하네. 2년간 세 군단에 납품을 하면 훨씬 많은 수익을 거둘 수 있을 텐데 그냥 이 정도로 만족하지 그러나.”

“제가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초대형 병기점은 생산품의 품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서 어느 병기점보다도 좋은 병기를 공급할 것입니다. 저희에게 납품을 맡기시는 것이 오리엔 왕실의 입장에서 결코 손해가 아닐 것입니다.”

“자네에게 납품 권리를 주려면 그동안 2,3,7군단에 병기를 납품해오던 이들과의 거래를 끊어야 하지. 그들 대부분은 고위 귀족 가문이고, 왕실은 그들과의 관계가 악화되지 않도록 다른 편의를 제공해 주어야 하네, 그런 우리의 손해를 감안해 주었으면 좋겠네.”

“브리튼 자작님.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은 저, 아니 쿤트 가문으로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의아해하는 바르한에게 내가 말했다.

“재작년 봄에 있었던 일을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바르한의 얼굴이 굳었다.

2년 전 봄.

바로 우리 레던 왕국에 있었던 내전을 뜻했다.

지금은 국왕이 된 태자 에릭과 2왕자의 왕위 다툼.

오리엔 왕국은 2왕자의 편에 서서 내전에 개입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그 일로 현재 양국 간의 관계는 상당히 불편한 상황이었다.

“아시다시피 우리 쿤트 가문은 레던 왕실을 따르고 있습니다. 귀국과 거래를 하는 것만으로도 왕실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입니다. 물론 저는 상인이니 이윤을 추구해야 하므로 귀국과 거래를 추진했지만, 그 때문에 심기가 불편해진 왕실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대가를 바쳐야 합니다.”

“…….”

바르한은 대꾸가 없었다.

좋아, 흐름이 내게로 넘어왔어.

“최근 2년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으나 그래봤자 저는 일개 상인입니다. 왕실을 거스르고서는 힘이 듭니다. 부디 그런 저의 입장을 생각해주십시오.”

사실 에릭 국왕은 나의 조언을 듣고 오리엔 왕국에 대한 악감정을 접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지난 내전을 언급하며 바르한을 압박했다.

바르한은 혀를 차며 말했다.

“알겠네. 2레디나에 하지. 대신 운반 문제는 우리 쪽에서 알아서 하겠네.”

“좋습니다.”

작셀 1만 5천 개는 지난번의 밀 4만 포대에 비하면 별것 아닌 물량이었지만, 여기서 오리엔 왕국까지는 상당히 먼 길이기 때문에 운반에 많은 비용이 들었다.

오리엔 왕국은 아마도 자국의 상단에 운반을 하청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뭐, 나야 상관없다.

오히려 일거리가 줄어드니 환영이지.

납품할 병기의 가격까지 협상하여서 계약서를 작성했다.

이로서 내가 가진 작셀은 모두 오리엔 왕실의 것이 되었고, 대신 난 오리엔 왕실군 세 개 군단에 2년간 병기를 납품하게 되었다.

초대형 병기점이 완공되고 정상적으로 생산을 시작하면 떼돈을 벌 수 있으리라. 군수사업은 약재사업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판이 크니까.

“자네는 정말 보통이 아니군. 나이가 이제 겨우 스무 살이라니 믿겨지지가 않네.”

“별말씀을요.”

“나는 자네가 마음에 드네. 앞으로도 또 만날 기회가 있으면 좋겠군.”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차후 브리튼 공작가의 가주가 될 그와 친분을 다지면 나로서도 이득이다.

우리는 악수를 하고 작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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