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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60화 (60/529)

<-- 60 회: 3권 - 3장. 순조로운 사업 -->

듀론 후작은 나에게 질문했다.

“지금 왕실은 자네의 조언 덕분에 흑혈병을 치료할 작셀을 많이 보유했네. 이걸 어떻게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육제후에게 팔아야 합니다.”

내 말에 듀론 후작은 놀란 얼굴로 날 쳐다봤다.

“육제후에게?”

“그렇습니다.”

“어째서인가?”

“현 대륙의 사정을 보면, 작년의 대흉년으로 인한 식량 부족 문제에 몰두하다가 뜬금없이 흑혈병이라는 복병에게 기습을 당한 꼴입니다. 식량 부족과 흑혈병,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난제를 겪고 있죠. 레던 왕실은 다행히 흑혈병 문제는 모면했지만 식량 부족은 여전합니다. 반면에 육제후는 식량은 잔뜩 확보했지만 흑혈병을 고민해야 하지요.”

“그래서 작셀을 육제후에게 팔아야 한다는 것인가.”

“예. 아마 이 나라에서 흑혈병으로 가장 피해를 보는 쪽이 바로 육제후일 겁니다. 바덴 강 유역은 물류의 중심이라 풍족한 지역이고, 그래서 피난민들이 많이 유입되었죠. 외부에서 유입된 인구가 많은 만큼 흑혈병도 어느 지역보다도 빠르게 퍼지고 있을 겁니다.”

흑혈병은 북부로부터 발생한 피난민에 의해 대륙 전체로 퍼져나갔다. 북부의 피난민이 가장 많이 간 지역이 바로 바덴 강 유역이니, 당연히 흑혈병으로 가장 고생하는 건 육제후였다.

“그럼 육제후와 거래를 함으로써 부족한 식량을 확보해야겠군?”

“예. 단, 지금 당장 거래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듀론 후작은 의아해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가을에 팔아야지요. 가을은 추수기이므로 식량 문제가 어느 정도 풀립니다. 육제후와 거래할 때 더 유리해지죠.”

“하지만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는 동안 육제후 쪽의 영지민들이 흑혈병 때문에 계속 죽을 걸세.”

“그들의 영지민이 많이 죽을수록 육제후의 힘이 약해지는 셈인데 이익 아닙니까. 국왕 폐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실 텐데요?”

나는 냉혹하다 할 수 있는 발언을 하며 듀론 후작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나 역시 듀론 후작이 얼마나 현명한 인물인지 알고 싶어서 시험을 해본 것이다.

듀론 후작은 연륜 깊은 재상답게 내 말에 동의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허허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어린 친구가 능글맞구먼. 이 늙은이와 폐하를 시험하지 말게. 영주는 자기 영지를 살피지만 왕은 나라 전체를 두루 살펴야 하네. 육제후가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이들이라 하여 그들의 영지에 처한 재앙을 외면한다면, 이 나라를 왕실과 육제후 둘로 스스로 쪼개는 꼴일세.”

나는 웃었다.

그는 정답을 말했다.

역시 듀론 후작은 명재상으로 역사에 기록될 자격이 있는 인물이었다.

육제후의 영지에서 발생한 흑혈병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비록 정치적으로는 대립하고 있다 해도 그들은 여전히 레던 왕실을 받드는 제후들이다.

만약 작셀을 많이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육제후에게 팔지 않으면, 차후 육제후파는 물론 그들의 영지민까지도 왕실을 증오할 것이다. 그럼 존재만으로 모두의 구심점이 되는 왕실의 명분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최악의 경우에는, 차후에 그들이 레던 왕국이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 독립할지도 모른다.

이렇듯 눈앞의 이익만 쫓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또 하나 묻겠네. 그렇게 흑혈병과 식량 부족을 해결한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제가 일전에 폐하께 올린 소견대로 바덴 강 통행세 협상으로 육제후를 압박해야 합니다.”

“그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계속되는 질문에도 나는 거침없이 내 생각을 마음껏 펼쳤다.

“바덴 강의 통행세가 동결된 후에는 오리엔 왕국과 관세 협상을 해서 높은 물가를 잡고 상업을 진흥시킵니다.”

“그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덴 강 유역에 집중된 상권을 왕실파가 포진한 중·북부 지역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육제후의 가장 큰 힘은 돈이니, 상공업 진흥 정책으로 그들의 돈줄을 서서히 빼앗아야 합니다.”

“그게 가능하겠나?”

듀론 후작은 흥미 깊은 표정으로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예. 다행히 육제후는 바덴 강을 지배하고 있어서 돈을 벌고 있을 뿐이지, 상공업자들은 육제후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들의 최대 돈줄인 바덴 강 통행세를 하향 동결시킨 후, 상공업자들을 왕실의 편으로 만든다면 언젠가는 육제후를 능가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렇군! 바덴 강 통행세 협상은 단지 육제후를 압박하고 물가를 잡는 수단만이 아니었구먼! 육제후의 힘을 서서히 약화시키는 장대한 계획이었어!”

흥분한 듀론 후작은 재차 나에게 물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양반 정말…… 그만 좀 물어보란 말이야!

나는 계속되는 질문에 부담을 느꼈지만, 하는 수 없이 계속 말했다.

“상공업자를 왕실의 편으로 끌어안으면 재정이 풍족해질 겁니다. 그 돈으로 왕실군을 키워 서쪽으로는 혼트 제국을 견제하고 남쪽으로는 육제후를 압박합니다. 육제후의 최대 약점은 그들을 따르는 기사가문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풍족한 자금으로 강한 군대를 키웠겠지만, 전쟁에 능한 인물이 부족합니다. 왕실군을 남부로 포진시켜서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면 육제후파를 동요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 다음에는?”

“란즈헬 백작가를 내분시킵니다.”

“뭐라고?”

내 말에 듀론 후작은 크게 놀랐다.

“육제후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사람은 볼프강 란즈헬 백작입니다. 그는 무척 현명하여 한 번도 오판을 한 적이 없고 모략에도 능합니다. 육제후가 지금껏 순조롭게 세력을 확장한 건 볼프강 란즈헬 백작의 능력입니다.”

이건 내 전생의 경험이 증명한다.

볼프강 란즈헬 백작이 병으로 죽자, 얼마 안 가 육제후는 혼트 제국에게 멸망당했다.

만약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적극적으로 왕실을 도와 혼트 제국의 침공을 물리치려 했을 것이다.

레던 왕국이라는 울타리가 있어야 자신들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의 아들들도 그처럼 현명할까요?”

“뭐라고?”

“제가 알기로 그에게는 아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러나 그처럼 현명한 아들은 없지요. 아들들을 부추겨서 후계다툼을 유도하면 란즈헬 백작가는 흔들리고 덩달아 육제후 전체가 흔들릴 겁니다. 바로 그때 군사적으로 압박하고 회유책을 병행하여 육제후 중 한 사람이라도 포섭해 내는데 성공하면 육제후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게 됩니다.”

똘똘 뭉쳐 있는 여섯 가문을 흔들고 그 중 하나라도 포섭해내면 육제후 전체가 무너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한 번 신뢰가 깨진 조직은 오래 갈 수 없는 법이니까.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듀론 후작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기 시작했다.

“오리엔 왕국과 계속해서 정치적·경제적 관계를 긴밀히 하여 든든한 동맹국으로 만들고 함께 혼트 제국을 견제해야 합니다.”

이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모두 끝났다. 어디 정치가 말처럼 쉬울까보냐 하지만, 이 정도가 나의 최선이었다.

듀론 후작은 한참동안이나 말을 하지 않았다.

비로소 그는 레이스 브리튼의 마개를 뽑고 유리잔에 따랐다. 그리곤 한 모금 마신다.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정말 향기롭구먼. 최상의 맛일세. 폐하께서 왜 왕실 주류고의 명주들을 1년 만에 모두 마셔버리셨는지 이해가 되네.”

“하하하.”

“이보게 카록 남작.”

“예, 후작 각하.”

듀론 후작이 돌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도 예의상 덩달아 일어나야 했다.

그는 나에게 다가와 내 손을 꼭 잡았다.

“부디 이 나라의 재상이 되어주게.”

“예엣?!”

기겁을 한 나에게 그가 말했다.

“이 몸은 너무 늙어서 폐하를 오랫동안 보필할 수 없네. 자네가 왕실에 와준다면 내 책임지고 자네를 차기 재상으로 만들어주겠네.”

“후, 후작 각하…….”

재상이라니?

상인으로 평생 살았던 내게는 너무 거대한 직함이다.

“저, 저는 일개 상인일뿐입니다.”

“자네는 유능한 상인일세. 그렇지 않은가?”

“……예.”

부인하면 지나친 겸양이 되기 때문에 낯부끄럽지만 나는 동의했다.

상인 경력만 92년인데 이 정도면 유능한 상인라고 자부해도 되지 않겠는가?

“정치든 사업이든 다를 것은 없네. 앞날을 예측하고 정세를 파악하여 조직을 경영해 나가는 것은 모든 일의 기본 원칙일세. 이 늙은이가 자네에 대한 평가를 내리겠네. 자네는 아주 훌륭한 재상이 될 수 있을 걸세. 나를 믿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냥 거절만 할 수는 없었다.

내 말에 듀론 후작도 이쯤에서 타협을 보기로 했는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알겠네. 거절을 당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소득이 있다고 생각하겠네.”

이것으로 무거운 주제의 토론은 끝났다.

우리는 포도주를 즐기며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듀론 후작은 무척 즐거워 보였는데, 그것이 다만 레이스 브리튼의 맛이 뛰어나서 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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