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회: 2권 - 8장. 광산 -->
그때 두 자작가가 짊어진 전쟁배상금을 대신 갚아준 뒤 그 대가로 그들의 영지를 몰수한다. 그게 란즈헬 백작의 진짜 목적이다.
육제후에게 부족한 게 뭘까?
그건 바로 땅이다.
그들의 영지는 실제로 바덴 강 유역뿐이었다.
그 바덴 강이 물류 중심이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일 뿐이다.
돈으로 영지도 살 수 있다지만, 어떤 영주가 자기 가문이 오랫동안 통치한 땅을 포기하겠는가? 오히려 빚에 시달려도 영지만큼은 지키려고 악을 쓸 것이다.
왕실에 돈을 납부해 영지를 하사 받는 방법도 있지만, 왕실이 육제후에게 영지를 팔겠는가? 천금을 줘도 육제후에게만큼은 안 팔지.
그렇다고 돈으로 군대를 키워 주변 영지를 정복하면 어떻게 될까?
주변 모든 영주가 육제후를 공적으로 삼고 왕실의 편이 될 것이다.
더욱이 지금껏 왕실이 계속 육제후를 압박하고 견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육제후는 강압적 수단 대신 돈으로 회유하는 유화책으로서 세력 확대를 해온 것이다.
게다가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란즈헬 백작은 심성이 냉정하지만 의외로 가정적인 남자였다.
아들들을 아낀다.
그런데 물려줄 영지는 바덴 강 유역 하나뿐.
맏아들 외에 다른 아들들에게 물려줄 건 돈밖에 없었다.
그래서 란즈헬 백작은 이번 기회에 더 많은 땅을 확보하려 하는 것이다.
“카록 쿤트 남작. 그대는 올해로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올해 봄에 스무 살이 되었지요.”
“대단하군요. 그 나이에 그런 통찰력이라니.”
아냐, 실은 네가 더 대단해. 너 내 정신연령이 몇 살인 줄 알긴 하니?
“그대의 추측은 모두 맞습니다.”
“그럼 적당히 두 자작가가 파산하기 직전의 수준까지 전쟁의 배상을 요구해야겠군요.”
“이제야 뜻이 통했군요. 쿤트 가문에게도 손해는 아닐 겁니다.”
나와 에반은 씨익 웃었다. 두 영지의 운명이 이 대화로 결정된 것이다.
이러니까 우리가 꼭 이야기 속에 나오는 악당들 같다. 에반 저 작자는 몰라도 난 착한 남잔데.
***
그로부터 열흘 뒤, 영지전에 대한 배상 협상이 시작됐다.
협상은 우리 쿤트 자작가의 저택에서 열렸다.
나는 몰스 자작가에게 마을 네 개, 성채 하나, 배상금 6만 레디나를 요구했다.
그리고 페트람 자작가에게는 포로로 잡고 있는 기사들과 병사 9백여 명을 풀어주는 조건으로 영지의 절반, 그리고 배상금 6만 레디나를 요구했다.
상환기간은 올해 가을이 끝날 때까지로 못 박았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조건이오! 영지의 절반이라니?!”
“맞소! 그런 돈은 없소!”
페트람 자작과 몰스 자작이 벌컥 화를 내며 반발했다. 하지만 나는 강경한 태도로 끝까지 이 조건을 고수했다.
“받아들일 수 없다면 전쟁을 재개하면 됩니다!”
내가 소리치자 두 자작은 찔끔했다.
그때 란즈헬 백작의 대리인으로 중재를 하던 에반이 나섰다.
“서로 간에 감정이 너무 격앙된 듯싶군요. 잠시 휴식을 취하도록 하지요.”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휴식을 취하는 동안 나는 은밀히 인적 없는 저택 뒤편의 정원으로 갔다.
잠시 후 그곳으로 에반이 나타났다.
에반은 품속에서 서류를 꺼냈다.
“콘월 자작가의 광산 매매에 대한 계약서입니다. 쿤트 남작만 서명하면 광산은 그대의 것입니다.”
콘월 자작가가 보유한 철광석 광산을 팔겠다는 내용과 함께, 콘월 자작가의 인장도 찍혀 있었다. 나만 계약하면 광산은 내 것이 되는 것이다.
가격까지 6만 레디나로 제시되어 있었다.
“양심적인 가격입니다.”
에반이 덧붙였다.
안다.
괜찮은 가격이다.
그 광산은 현재 철광석 매장량이 얼마 남지 않아 채굴되는 철광석이 매년 감소하고 있다.
그걸 감안한다 해도 6만 레디나라면 괜찮은 가격이었다.
게다가 사실 그 광산은 아직 철광석이 고갈되지 않았다.
향후 5년쯤 뒤에 더 풍부한 철광석이 매장되어 있음이 밝혀지니까.
전생 땐, 재정난에 허덕이던 콘월 자작가가 그로 인해 다시 부흥했더랬다.
그걸 감안하면 6만 레디나라니, 푸히히.
턱없이 싼 가격이다.
아무튼 에반은 약속을 지켰다.
그가 이 계약서를 가져오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의 협상을 깰 생각이었다.
나는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이로서 그 광산은 내 것이었다.
“이제 협상을 마칠 때군요.”
내 말에 에반도 히죽 웃으며 말했다.
“휴식 시간도 끝났으니 가시죠. 아, 그리고 6만 레디나는 너무 비싸니 4만 5천 레디나로 깎아주시겠습니까?”
“까짓 거, 그러죠. 어디까지나 아슬아슬하게 망하지 않는 선에서 뜯어내야 우리 둘 다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이거, 아무리 봐도 너무 악당 같다.
결국 그날 오후, 협상 타결과 함께 영지전은 종료되었다.
몰스 자작가로부터 마을 네 개와 성채 하나를 빼앗았고, 페트람 자작가로부터 영지의 절반을 빼앗았다.
그리고 두 가문은 올해 가을까지 4만 5천 레디나를 지불하기로 했다.
두 자작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각자의 영지로 돌아갔다.
아마 배상금은 두 자작이 어떻게든 간신히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직후에 같은 편인 줄 알았던 란즈헬 백작가가 밀 1만 포대의 값을 지불하라고 요구하겠지.
갚지 못한 그들은 영지의 통치권을 빼앗기고 몰락할 것이다.
어쩐지 재주는 우리가 다 부리고 란즈헬 백작가는 구경만 하다 이득을 본 거라서 기분 나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그렇듯 세상은 돈이 지배하는데.
돈이 있으면 남을 춤추게도 하고 가만히 앉아서 모든 걸 빼앗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돈을 벌고 싶은 것이다.
그런 막강한 힘을 탐내서가 아니라, 모진 세파로부터 나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하여.
***
내가 얻은 협상 성과에 아버지와 아서 형님은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더 많이 뜯어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광산을 매입하다니?”
“서쪽의 콘월 자작가가 보유한 철광석 광산을 6만 레디나에 매입했습니다.”
“6만 레디나에? 그런데 광산은 왜 매입했느냐?”
아서 형님이 재차 물었다.
“군수산업에 진출하고 싶어서요. 지금 같은 시기가 아니면 광산을 이 가격에 구입할 수나 있겠습니까? 게다가 영지전도 끝난 지금은 빈민의 유입이 다시 많아지고 있습니다. 빈민문제를 잘 해결만 한다면 우리 영지는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아서 형님은 내 말뜻을 알아들었다.
“빈민들을 채용해서 광산에서 일하게 할 생각이구나.”
“예. 빈민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광산과 가까운 영지 서부의 마을에 정착시키면 빈민 문제는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구나.”
“광산을 매입하는 비용은 가문과 제가 3만 레디나씩 내서 지분을 반으로 나눔이 어떻습니까?”
내 제안에 아서 형님은 쾌히 승낙했다.
“알았다. 배상금을 받아내면 재정적으로 여유도 생기고, 광산으로 빈민 문제를 해결하는 셈이니 우리도 투자를 하마. 괜찮겠지요, 아버님?”
“그 문제는 네가 알아서 하래도.”
아버지는 사업 얘기가 지겨웠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검술이나 수련하러 가겠다. 좀이 쑤셔서 안 되겠다. 차라리 전쟁이나 또 났으면 싶구나.”
아버지는 휘적휘적 개인 수련장으로 떠나버렸다. 저런 철 없는 양반 같으니!
나는 아서 형님과 계속 사업 얘기를 했다.
“군수산업에 진출하겠다면 철광석 광산만 확보해서 되는 문제가 아닐 텐데, 다른 계획도 있느냐?”
“물론이죠. 초대형 병기점을 차려서 무기를 생산할 겁니다. 책임자로 생각해둔 사람도 있죠. 형님도 아시잖아요.”
“구스 영감 말이구나.”
구스 영감은 이 나라에서도 손꼽히는 대장장이였다. 그런 기술을 가진 사람이 초대형 병기점의 책임자가 된다면, 굉장히 품질이 좋은 무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무기가 필요 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았나. 좋은 무기는 항상 잘 팔린다.
“알겠다. 아무튼 광산에는 너와 가문이 3만 레디나씩 지불하는 것으로 하자. 네가 계획하는 그 초대형 병기점도 가문에서 투자를 하마.”
나는 아서 형님과 협의 끝에 광산은 5대 5로, 초대형 병기점은 내가 6, 가문이 4의 비율로 투자하기로 했다.
“그리고 배상금 말이다.”
“네, 형님.”
“올해 가을에 배상금을 모두 받아내면 그중 3만 레디나는 네게 주마.”
“3만 레디나를요?”
나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도 가문을 위해 전쟁 준비에 돈을 많이 투자하지 않았더냐. 너 없이는 이기지 못했을 거다.”
“형님…….”
“너는 상인의 길, 나는 가문의 길. 서로 다른 길을 가도 언제나 우리는 한 가족이다. 언제까지고 변함없이 서로를 위하며 함께 나아가자꾸나.”
“물론입니다, 형님.”
나는 와락 아서 형님을 끌어안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