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43화 (43/529)

<-- 43 회: 2권 - 5장. 줄리아 로렌 -->

글쎄다.

난 두 번째라서.

줄리아는 불타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인생은 딱 한 번뿐인데, 누구는 잘 먹고 잘 살고 떵떵거리고 존경받고 누구는 돈 없어서 빌빌대고 먹고 살 궁리나 해야 하고…… 약 오르잖아요!”

그 성공의 원동력은 질투였냐.

뭔가 내 환상과 로망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 든다.

“기필코 누구보다도 성공하고 잘 살아서 죽을 때 내가 니들보다 더 잘살았다고 실컷 잘난 척 할 거예요.”

그래. 잘났다.

그런 마음으로 성공 했구나.

“…….”

굉장히 의지에 찬 얼굴로 저런 소릴 하니 더 무섭다. 하지만 강한 야망을 품고 있고 그걸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점은 높이 살만했다.

게다가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빚 독촉에 시달리다가 늙은 귀족의 애인이 되었다가 버림받는다.

가엾지 않은가.

“그럼 내가 제안 하나 할게.”

“어떤 제안이요?”

줄리아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우리 상회의 직원이 되겠어?”

“네?”

뜻밖의 제안에 줄리아의 안색이 변한다.

“난 네 상재와 의지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어. 내 부하가 되어준다면 장차 어마어마한 상단의 2인자가 되게 해줄게.”

“……정말요?”

응. 사실 한센이 1년 먼저 들어왔지만, 너 정도 성격이면 한센이 꼼짝도 못할 테니까.

“그럼. 생각해봐. 내가 요즘 돈 많이 번 거 알지? 그걸로 큰 사업을 계속 벌일 거고 그만큼 상회도 성장할 거야. 너는 큰물에서 놀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지. 게다가 내 부하로 있으면 여자라고 얕보이거나 하는 어려움도 상당부분 사라지지.”

그리고 나는 미래의 황금의 여인 줄리아 로렌을 직원으로 둔 행운아가 되고.

줄리아는 고민에 빠졌다. 갑작스런 제안이니 덜컥 승낙할 리 없었다.

“자, 계속 서있기도 뭐한데 식사라도 하면서 얘기할까?”

“식사는 제 레스토랑에서 해요!”

줄리아가 퍼뜩 고개를 들고 반사적으로 말했다. 정말 대단한 장사꾼 정신이다.

이러다가 나중에 내가 잡아먹히는 거 아냐?

***

줄리아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식사를 했다.

시스는 비프스테이크 3인분과 사과주스를 시키려다가 흠칫했다.

돈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시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시스, 내 직원으로 있는 동안에는 실컷 먹어도 돼.”

“……정말?”

“그럼. 내가 우리 시스 하나 배불리 먹여주지 못할까봐? 내가 평생 배불리 먹여줄게.”

아차, 자칫 잘못 들으면 이상하게 해석되려나?

시스의 두 뺨이 빨갛게 물든다.

어휴, 귀여워라. 정말 시스의 선조는 엘프나 정령이 아닐까?

나는 토마토소스가 드레싱 된 샐러드와 백포도주를 주문했고, 줄리아는 내가 산다는 말에 눈을 빛내더니 제일 비싼 푸아그라를 주문한다.

괘씸한!

식사를 하면서 나와 줄리아는 계속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남작님은 앞으로 어떤 사업을 할 건가요?”

“가장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장사 품목이 뭘까?”

“군수품과 사치품이요.”

“정답이야.”

역시 줄리아 로렌답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하나 더 있어.”

“뭔데요?”

“문화산업.”

“……문화요?”

“보고 듣고 느끼며 즐길 수 있는 인간의 모든 유희활동이야말로 가장 큰 돈벌이지.”

처음 듣는 얘기일 거다.

문화산업이란 개념은 전생 때 내가 죽을 때쯤에야 등장한 상업계의 새로운 화두였으니까.

“나는 그 세 가지를 전부 할 거다.”

줄리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전 대륙이 대흉년에 비틀거릴 때 나는 거꾸로 큰돈을 손에 넣었지. 군수품이나 사치품 같은 사업 분야에 손쉽게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야. 거기다가 지금 하는 곡물 사업도 계속 하고, 문화 사업까지 시도할 계획이야. 그럼 한 번 생각해봐.”

나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먹고, 싸우고, 꾸미고, 즐기는 것.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 모든 것을 이용해서 돈을 벌게 되는 거야.”

“아아!”

줄리아는 크게 감탄을 했다.

그녀처럼 야망이 큰 여자에게는 이 정도 스케일은 보여줘야지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내 예상대로 그녀는 거의 홀린 듯이 황홀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 세상의 모든 돈을 쓸어 담을 수 있겠네요?”

“물론.”

“저 결심했어요! 남작님의 직원이 될게요.”

“잘 생각했어.”

우리는 악수를 했다.

그리하여 황금의 여인은 내 수중에 들어왔다. 줄리아를 설득하는 데는 약 30분 정도가 걸렸다.

그런데 급여 수준을 놓고 협상하는 데는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월급을 한 푼이라도 더 올리고 싶어서 안달이 난 그녀를 상대하다 보니 나도 지고 싶지 않단 생각이 불쑥 들어서 어린애처럼 싸웠다.

결국 한센과 똑같이 월 2레디나로 결정지었다.

대신 이 레스토랑을 내가 인수해주기로 했다.

“다른 모르는 사람에게 팔고 싶지 않아요. 제 어린 날의 청춘이 묻어 있는 레스토랑이거든요.”

어차피 나도 언젠간 레던 왕성 쪽에서 근거지를 잡고 활동할 계획이었다.

땅값 쌀 때 건물 하나 사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레스토랑은 1천 레디나에 인수했다.

역시 이 나라의 수도다 보니 우리 영지보다 땅값이 훨씬 비쌌다.

그나마 땅값 싼 게 이 정도라니…….

물론 마법길드와 인접한 지역이라 외성에서는 비싼 편이었고, 고급 레스토랑이라 시설 등에 투자한 돈도 많아서 1천 레디나가 나왔지만 말이다.

아무튼 시스는 물론 줄리아 로렌까지 고용했으니 손해 봤다는 느낌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마법에 대한 재능을 타고난 시스와 상재를 타고난 줄리아. 두 사람에게 얼마나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지는 오래 살아본 내가 더 잘 안다.

그날 오후에 줄리아는 레스토랑을 정리했다.

인수비로 내가 준 400레디나로 주방장과 종업원들의 마지막 월급을 주고 식료품은 마음대로 가져가게 했다. 그리고 문을 닫고 자물쇠를 채웠다.

“휴우…….”

줄리아는 애증 어린 눈길로 레스토랑을 쳐다봤다. 열정을 바쳐서 일으켜 세운 레스토랑. 그것을 자기 손으로 문 닫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곧 잡념을 털어버리듯 고개를 흔들곤 내게 말했다.

“준비 다 됐어요, 단주님.”

“그럼 새 직원에게 첫 지시를 내려 볼까? 내일 출발할 테니 마차 한 대를 구해봐. 할 수 있지?”

“그 정도야 간단하죠. 그럼 내일 그 여관으로 마차와 함께 기다릴게요. 내일 봬요!”

지시를 받자마자 줄리아는 어디론가 쌩하니 달려간다. 수완가이니 마차쯤이야 금방 구하겠지.

나도 시스와 함께 묵고 있는 여관으로 향했다.

아참, 그 전에 들를 곳이 있었지!

나는 시스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거기가 어디냐 하면 바로 시스에게 선물한 새 로브를 산 옷가게였다.

“어머, 오셨군요. 어때요? 환불은 말씀드렸다시피…….”

날 보곤 반갑게 인사하던 주인 여성은 그 옆의 시스를 보자 말꼬리를 흐렸다.

여기서 긴 말은 필요없지.

나는 웃으며 한 마디만 했다.

“청춘만세.”

주인 여성은 똥 씹은 표정으로 80레디나를 내놓았다.

“가자 시스. 이걸로 내일도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휴 귀여워.

내 세 번째 정령으로 착각할 것 같아. 귀여움의 정령이라든가 아름다움의 정령, 뭐 그런 거?

***

페트람 자작과 몰스 자작.

쿤트 자작령을 집어삼키려는 작당모의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은 허리를 직각으로 굽힌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과 떨리는 손이 그들이 얼마나 긴장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있는 반백의 중년 신사는 그들이 감히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는 거물인 것이다.

온도 조절 마법이 걸린 붉은 코트를 입은 중년 신사는 특유의 차가운 눈길로 두 자작을 응시했다.

“식량을 달라?”

“예, 란즈헬 백작 각하!”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페트람 자작과 몰스 자작이 쩔쩔 매며 답했다.

그렇다.

그들은 육제후의 1인인 볼프강 란즈헬 백작과 대면하고 있었다.

란즈헬 백작에게서 풍기는 카리스마와 차가운 눈빛은 그들의 영혼을 쥐어짜듯이 압도하고 있었다.

“식량을 빌려주면 쿤트 자작령을 친다? 에반.”

“예, 백작 각하.”

옆에 서 있던 그의 심복 에반 테일러 남작이 고개를 숙였다.

“평가해봐라.”

“빌려줘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각하.”

그러면서 에반은 백작의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뭐라고 부연설명을 했다.

란즈헬 백작은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과연. 제법이구나, 에반.”

“과찬이십니다.”

둘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알 수가 없어서 페트람 자작과 몰스 자작은 더 신경을 곤두세웠다.

“각각 밀 1만 포대를 빌려주겠다. 내년 봄에 쿤트 자작가를 쳐라.”

“예!”

“감사합니다!”

두 자작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대답했다.

이윽고 떠나는 두 자작을 보며 란즈헬 백작은 냉소를 지었다.

“너희가 이기든 지든 나는 대가를 받아낼 것이니.”

그 말에 계략을 짠 에반도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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