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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40화 (40/529)

<-- 40 회: 2권 - 4장. 불길한 조짐 -->

“우리가 각각 남쪽과 동쪽에서 동시에 침공을 하면, 바스크 제 놈이 몸뚱이가 두 개가 아닌 이상 무슨 수로 방어하겠소? 그 무식한 놈만 없으면 두려울 게 없고, 병력면에서도 우리가 우위에 있소.”

하지만 페트람 자작은 불안감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다.

“쿤트 가문에는 정령사 카록도 있잖소. 그 애송이가 정령술로 펼친 일들이 상당하여 명성이 자자하던데 말이오.”

정령술.

확실히 그것도 대단한 힘이라고 할 수 있었다.

“소문을 믿을 것 없소. 그 애송이가 정령사로 알려진 건 작년부터였소. 이제 1년밖에 안 지났는데 실력이 뛰어나면 얼마나 뛰어나겠소? 아직 초급 정령사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거요.”

“하지만 쿤트 자작령의 영지민들은 놈을 열렬히 칭송하는 듯했소.”

“그깟 무지렁이들이야 단순하지 않소. 정령 좀 보여주니 신기해서 호들갑을 떠는 게지.”

“그렇구려. 이제야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소. 역시 몰스 자작은 노련하시군.”

“푸흐흐.”

두 영주는 음흉하게 웃으며 쿤트 자작가를 떠났다.

***

마법길드 레던 왕성 지부는 건물이 왕궁을 방불케 했다. 웬만한 영주의 저택보다도 커 보였다.

과연…….

왕실 직속의 마법사단을 보유하지 못한 레던 왕국 같은 소국에서 마법길드는 강한 힘을 발휘한다.

그들의 권위 의식과 오만이 웅장한 건물과 과장스럽게 뾰족한 첨탑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입구를 지나 온갖 석고 조각들이 요란스럽게 진열된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나하나는 훌륭한 장인이 만든 조각 같은데 그걸 한데 모아놓은 무질서한 배치가 거슬린다.

한마디로 그냥 돈 퍼 들여서 마구 꾸며댔다는 거지.

입구로 들어서니 직원으로 보이는 10대 후반의 청년이 반겼다.

“어서 오세요. 뭘 도와드릴까요?”

“정령석 세 개, 시스 하나.”

“예, 정령석 세 개랑 시스…… 예?”

“시스라는 마법사 있지? 불러줘.”

“시스요? 잘 모르겠는데…… 찾아봐야할 것 같네요. 이곳엔 마법사가 한둘이 아니어서요.”

곤란한 얼굴로 말하는 청년에게 내가 덧붙였다.

“무진장 귀여운 10대 후반 소녀, 긴 푸른 머리칼, 붉은 실크 로브. 먹는 거에 환장하고.”

“아! 그 분 이름이 시스였군요. 조금 전에 식사 하러 나가는 걸 언뜻 본 것 같아요.”

역시. 남자라면 절대 시스를 잊을 수 없지.

“고마워. 정령석 세 개 갖다 줘.”

“네!”

청년은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이내 정령석 세 개를 가져왔다.

“1,500레디나입니다.”

나는 1만 레디나짜리 왕실 어음 한 장을 건넸다. 어음에 적힌 액수를 본 청년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거, 거스름돈은…….”

“되도록 100레디나짜리 금화로. 카스토 상단 어음도 괜찮고.”

카스토 상단은 전 대륙을 무대로 활약하는 거대 상단으로, 그들이 발행한 어음은 레던 왕실 어음보다도 신뢰성이 높을 정도였다.

“네.”

청년은 마법길드의 관계자로 보이는 늙은 마법사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잠시 후 돈을 거슬러왔다.

“카스토 상단 어음 1천 레디나짜리 다섯 장, 나머지 3,500레디나는 금화로 가져왔습니다.”

“고마워. 참, 시스가 어디서 식사를 하는지 알아?”

“글쎄요. 소문으로는 그녀가 안 가본 식당이 없다던데요. 아! 요즘은 줄리아 레스토랑의 요리에 맛을 들였다는 소문도 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1레디나를 청년에게 팁으로 주었다.

청년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보아하니 가난한 평민 출신으로 보이는 애송이 마법사였다. 돈이 한창 궁할 때다.

거리로 나와 줄리아 레스토랑을 찾아보았다.

내가 모르는 레스토랑인 걸 보니 오래 가지 못해 망한 곳 같았다.

행인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줄리아 레스토랑을 알고 있었다.

이상하군? 내가 모른다면 망한다는 건데, 사람들은 알고 있다? 이 정도 인지도면 장사도 잘 된다는뜻인데.

뭔가 사건이라도 일어나서 사라지나 보구먼.

10분쯤 걸어간 끝에 찾아냈다.

예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레스토랑이었다.

크기는 내가 상회 사무실로 쓰는 레스토랑보다 약간 작았지만, 꽃과 그림 등을 잘 배치했고 벽도 핑크빛이 아주 약간 감도는 예쁜 색으로 칠했다.

시스는 그곳에 있었다.

붉은 실크 로브를 입은 채 우걱우걱 뭔가를 먹고 있었다.

뒷모습밖에 안 보였지만 작은 체구나 긴 푸른 머리칼은 분명 시스였다.

저렇게 걸신들린 듯이 먹는 푸른 머리의 여자가 시스 외에 누가 또 있겠나?

“호호호, 아무도 뺏어가지 않으니까 천천히 드세요.”

하얀 원피스의 소녀가 레몬을 띄운 주스를 가져다주며 타이르듯이 말한다.

나이는 열일곱 살쯤 되었을까?

웨이브가 진 붉은 머리칼과 매혹적인 눈을 가진 소녀는 시스와 또래 정도로 보였지만 몸은 훨씬 성숙해 보였다.

앳되고 활기찬 얼굴이 아니었으면 20대 초반쯤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왠지 본 적이 있는 듯 한 얼굴인데.

내 착각이려나?

“덥지 않으세요? 그 로브는 이제 벗고 다른 것을 입으시지.”

“……싫어.”

시스는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대꾸한다.

“호호호, 선물 받은 거라고 하셨죠?”

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남자?”

시스는 흠칫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뺨이 약간 붉어졌다.

“호호호! 그럼 아주 소중하겠네요. 그럼 그 달링에게 여름용 로브도 사달라고 졸라보세요.”

“……달링 아냐.”

“호호호호. 부끄러워하시긴, 귀여워라!”

밖에서 대화를 몰래 들으며 나는 감격의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사준 붉은 실크 로브를 저렇듯 소중히 여겨주다니!

역시 작별 선물로 저걸 준 건 최고로 잘 한 짓이었다.

장하다 나!

그런데 여름용 로브?

조금만 기다리렴.

나는 옷가게를 찾아 길거리를 뛰어다녔다.

다행히 마법길드 근처라서 마법사를 위한 옷가게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옷가게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주인으로 보이는 후덕한 중년 여성에게 말했다.

“여름용 로브. 키가 145센티미터쯤 되는 소녀가 입을 거로. 긴 푸른 머리칼과 잘 어울리는…… 그래, 옅은 하늘색 로브가 딱 좋겠군.”

그런데 주인 여성이 날 딱하다는 듯이 본다.

“누구에게 선물할 건지 알 것 같군요. 퇴짜 맞고 선물을 다시 환불하러 올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답니다.”

“엥?”

“기다리세요, 스물여섯 번째 도전자.”

뭐, 뭐래?

주인 여성은 이윽고 하늘빛의 예쁜 로브를 가져왔다.

“이것보다 더 좋은 옷은 없을 겁니다. 그 귀여운 먹보 마법사님께 딱 어울릴 거예요.”

그것은 내가 주문한 그대로 옅은 하늘색의 로브였다.

얇고 통기성이 좋은 리넨 소재의 로브였는데, 신기하게도 만져 봐도 리넨 특유의 까끌까끌함이 없고 오히려 부드러웠다.

“마법 처리가 되어 있네?”

“역시 안목이 좋으시네요!”

주인 여성도 놀란 얼굴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그 마법사 소녀 분께 반한 사람은 한둘이 아니죠. 소문으로는 벌써 스물다섯 명이 고백했다가 차였다나요? 그들 중 몇 분은 로브를 선물하겠다고 찾아왔는데, 그때마다 전 이 로브를 추천해드렸죠. 그리고 다음날 좌절한 얼굴로 돌아오셔서는 환불해가더군요.”

“…….”

정말 할 말이 없다.

하긴 전설의 엘프처럼 시스를 가만 놔둘 리 없지.

마법길드 소속만 아니었으면 벌써 납치라도 당했을 것이다.

“마법 처리를 한 리넨 소재인 것을 아시니 150레디나란 가격에 불만은 없으실 테고, 환불하실 땐 80레디나만 돌려드립니다.”

“지금껏 돈벌이가 꽤 좋았겠네.”

“그래서 전 청춘을 응원한답니다.”

나는 주인 여성과 함께 웃었다.

“여기. 그리고 나는 환불 안 해.”

돈주머니에서 150레디나를 꺼내주며 내가 장담했다.

“흐응, 그럼 내기 하실래요?”

“오오? 그것도 좋은 돈벌이였나 봐?”

“후훗, 눈치도 빠르셔라.”

주인 여성과 나는 또 다시 웃었다.

“하지. 선물을 받아준다에 10레디나.”

“더 쓰시죠? 받아주지 않는다에 80레디나.”

“그쪽 사정을 생각해서 적게 불러줬건만, 좋아. 80레디나.”

여름용 로브를 구입하고 내기까지 성립한 나는 다시 시스가 있는 줄리아 레스토랑으로 달려갔다.

시스 덕분에 돈 좀 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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