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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35화 (35/529)

<-- 35 회: 2권 - 3장. 알현 -->

랜달은 사흘 내내 나와 대련을 하다가 속이 다 시원하다는 얼굴로 돌아갔다.

랜달 다음은 아버지였다.

그간 얼마나 실력이 좋아졌는지 보자며 롱 소드를 뽑아 드셨다.

생사를 넘나드는 대련!

덕분에 난 온몸 구석구석이 쑤셔서 이틀간 끙끙 앓아야 했다.

그것도 운디네의 치유가 아니었다면 일주일을 앓아야 했을 것이다.

내가 끙끙 앓는 동안 한센이 내 객실을 방문했다.

“단주님. 수확한 작셀 잎을 가공하는 작업이 모두 끝났습니다.”

약초 농부들은 작셀 잎을 여름에 이미 수확했다.

그걸 햇볕에 말려서 빻아 가루로 만드는 작업을 가을 내내 했다.

그 작업이 다 끝난 모양이었다.

그래.

세상 사람들도 살리고, 내 배도 부르게 할 작셀의 수확과 가공이 거의 대부분 끝났구나.

내가 이미 곡물로 한탕 했지만, 이걸로도 엄청나게 크게 해 먹으리라.

그리고 육제후.

네 녀석들 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 주마.

음하하하하.

“그래? 보관은 어떻게 하고 있고?”

“지금은 농부들이 각자 보관 중입니다만, 창고가 하나 필요합니다. 약초를 보관하려면 햇볕이 들지 않는 서늘한 음지에 만들어진 창고가 필요해요.”

“그런 창고 몇 군데 알고 있지?”

“네.”

약재상 아들네미가 그것도 모르면 맞아야지.

어디 보자.

지금 내 수중에 있는 현금은…… 거의 없군. 월급 주기도 빡빡하네.

“약재 창고를 필요한 만큼 구입해. 돈은 겨울에 지급하겠다고 하고. 2백 레디나 이내로 해결해.”

“네.”

“그리고 조만간 왕실에서 밀 3만 5천 포대를 가지러 올 거니까 수량이랑 보관 상태 다시 점검하고.”

“네…….”

“그리고 약초 농부들에게 지급하는 급여 등은 장부로 잘 기록하고 있는 거지? 내일 중으로 장부를 깔끔히 정리해서 보여줘.”

“단주님!”

“왜?”

한센은 울먹거리는 얼굴로 날 노려본다. 뭐야 저 건방진 눈길?

“정말 너무하시는 것 아닙니까?”

“잉?”

한센은 단단히 삐친 표정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이러다가 제 몸이 남아나질 않겠습니다! 제발 직원 몇 명 더 뽑아달라고요! 곡물 사업에 약재 사업까지 벌이시고는 왜 상회 직원이 저 혼잡니까?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나 됩니까? 단주님이야 그냥 몇 마디 툭툭 내뱉듯이 시키면 되지만 저는 일에 치여서 밤을 지새워야 할 지경이라고요!”

이놈 봐라?

오냐오냐 잘 해주니까 이제 나에게 화도 내네?

물론 뭐 내가 좀 혹사시키긴 했지만…… 그래도 월급은 2레디나씩이나 주잖아? 세 사람 분의 업무를 시키긴 하지만…….

“흐음, 그래. 네 말이 맞다.”

“정말입니까?”

“그래그래. 생각해보니 직원을 더 뽑아야 할 것 같아. 그런데 아무나 뽑을 수는 없어.”

“어째서입니까?”

“생각해봐. 지금 우리 상회의 구성원이 너랑 나 둘뿐이야. 근데 거기서 한 명 더 추가된다 생각해봐. 나중에 상회 규모가 커지면 그 세 번째 직원도 자연스럽게 상회의 고위급 인물이 되겠지?”

“그, 그렇군요.”

“그런데 그런 직원이 대충 잡일 시키려 뽑은 잡놈이면 되겠어?”

한센.

띨빵한 네 녀석은 믿고 있지만, 다른 놈은 내가 못 믿는다.

“안 되죠.”

“그래서 말인데, 글과 숫자도 알고 장사 경험도 있고 제법 강단도 있는 사람 없을까? 있으면 추천 좀 해줘.”

“글쎄요…….”

한센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흐흐흐.

나는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생각해보니 한 명 있다.”

“누굽니까?”

“니네 엄마.”

“우리 엄……마아?!”

한센은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경악했다.

“글과 숫자도 알고 장사 경험 풍부하고 무진장 강단 있고. 딱 니네 엄마잖아. 평생 약재상을 했으니 약재 사업 관리를 맡겨놓으면 아주 펄펄 날아다니겠군. 어때?”

상상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는지 후들후들 떠는 한센. 녀석이 더듬거리며 말한다.

“아, 아니요. 생각해보면 저희 어머니는 연세도 많으셔서 건강도 안 좋으시고…….”

“전에 힐링 포션 줬잖아. 지금쯤 튼튼하다 못해 날아다닐 텐데?”

힐링 포션. 그거 참 좋은 거야. 아무렴. 한 병당 10레디나씩이나 하는걸.

“하지만 저희 어머니는 남의 밑에서 일하는 걸 원채 안 좋아하시고…….”

“그건 모르지. 월급을 3레디나 쯤 준다고 하면 곧바로 오케이 할 것 같은데. 그리고 네 엄마 원래 통 큰 거 좋아하지 않냐? 약재 사업 관리를 전부 맡긴다고 하면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고 발 벗고 나설 텐데. 아냐?”

실제로 그럴 거 같다.

음. 내가 말해 놓고도 참 그럴싸해.

“어, 어째서 저희 어머니에 대해 그렇게 잘 아시는 겁니까?! 아무튼 안 됩니다! 안 된다고요! 여긴 제 직장이에요! 직장에서도 어머니랑 같이 일해야 한다니 상상만으로도 무섭다고요! 싫어!”

어허. 이 녀석.

“하지만 지금대로라면 우리 소중한 직원인 한센의 몸이 남아나질 않겠는걸.”

“아닙니다! 제가 분골쇄신하여서 어떻게든 할 겁니다. 시키신 일이 약재 창고 구입과 밀 보관 점검, 급여 장부 정리였죠? 내일까지 후딱 해치우겠습니다! 신규 직원 따윈 필요 없습니다!”

그러면서 한센은 후다닥 뛰쳐나갔다.

역시 한센을 다스리는 공식은 채찍, 채찍, 채찍, 채찍, 당근. 앞으로 채찍질 몇 번 더 하고 당근 하나 줘야지.

아하핫.

그런데 너무 몰아붙였나? 저 녀석 전생 때보다 더 일을 잘 하는데.

아무튼 한센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제 슬슬 직원을 더 구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시골 영지에서 인재를 구할 순 없는 노릇. 레던 왕성에 갈 일이 있을 때 뽑는 수밖에 없다.

이 나라 수도인 만큼 거기는 인재가 많을 테니까.

마침 수도에 갈 일도 있고.

왜 가냐고?

작위랑 영지, 그리고 돈 받으러 가야지!

***

일주일이 흘렀을 때.

왕실에서 보낸 군대가 영지를 방문했다.

“왕실군 7군단 부사령관 한즈덱 자작이오.”

왕실군 중장보병 4백 명을 이끌고 온 한즈덱 자작이 인사했다.

그는 평범한 체격에 무표정한 얼굴을 한 30대 후반의 사내였다.

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와 악수를 했다.

“쿤트 자작이오. 반갑소.”

한즈덱 자작과 7군단 병력이 온 건 밀 3만 5천 포대를 가져가기 위해서였다.

늦가을과 초겨울의 경계점에 있는 시기라 식량난이 더욱 심각해진 시점.

누군가가 밀 3만 5천 포대를 노리고 습격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군대가 동원된 것이다.

왕실군 병사들은 우리 저택의 군량고에 보관되어 있던 밀 포대를 짐수레에 싣기 시작했다.

“뭣들 하느냐? 우리도 왕실군을 도와라.”

아서 형님은 영지 병력 5백 명을 시켜서 왕실군을 도와 밀 포대를 옮겨주었다.

한즈덱 자작은 아버지와 아서 형님에게 묵묵히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왕실군과 왕실파 가문은 원래 친한 법이지.

그날 저녁이 되어서야 비로소 전부 짐수레에 실을 수 있었다. 물량이 워낙 많아서였다.

한즈덱 자작은 내게 말했다.

“수량은 모두 확인했네. 여기 대금일세.”

그는 왕실 직인이 찍힌 어음 몇 장을 건넸다. 받아서 확인해보니 1만 레디나짜리 어음 여덟 장이었다.

난 어음 보다는 현금을 원했는데.

쩝쩝.

“축하하네.”

축하한단 말을 저렇게 딱딱하게 할 수 있다니. 원래 성격이 저런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폐하께서 따로 분부가 계셨네.”

“어떤 분부입니까?”

“자네도 우리와 동행해 상경하여 폐하를 알현하라는 명이시네. 작위와 영지의 수여식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싶으시다 하셨네.”

“영광이군요. 어명을 따르겠습니다.”

이미 늦은 시각이었기 때문에 한즈덱 자작과 왕실군은 이곳에서 주둔하고 내일 출발하기로 했다. 아서 형님이 성 밖의 공터를 주둔지로 내주었다.

“너는 날 따라와라.”

아서 형님이 내게 말했다.

나는 아서 형님을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복도를 걸으며 아서 형님이 말했다.

“네가 폐하를 알현하여 작위와 영지를 받게 될 날이 올 줄은 미처 몰랐다. 항상 네 걱정만 했는데 성인이 되더니 듬직해졌구나.”

“별 말씀을요.”

“아무튼 폐하를 알현하는 영광을 얻었는데 새 옷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제 몸에 맞는 옷이 있나요?”

“릭이 놓고 간 옷이 있다. 중요한 자리에서 입으라고 비싼 돈을 들여 예복을 맞춰주었는데, 불편해서 수련에 방해된다며 한 번도 입지 않았지. 괘씸한 녀석.”

하하, 둘째 릭 형님은 항상 그랬지.

검술 말고는 아무 관심도 없는 게 아버지를 쏙 빼닮았어.

물론 아버지와 달리 장난스럽고 유쾌한 성격이긴 했지만. 아아, 보고 싶구나.

그러고 보니 릭 형님을 못 본 지가 수십 년이 넘었어.

“너와 릭은 체격이 비슷하니 네게도 잘 어울릴 거다.”

아버지와 아서 형님은 190센티미터에 달하는 큰 키와 우람한 체격을 가졌다.

반면 릭 형님과 나는 180센티미터에 약간 못 미치는 키에 체형이 날렵했다.

릭 형님의 드레스 룸에 들어간 아서 형님은 옷 몇 벌을 꺼내다 주셨다.

“네가 다 가져라. 릭 그놈이 한 번도 안 입은 옷이다. 녀석과 달리 넌 상인이니 앞으로도 중요한 사람을 만날 일이 많을 것 아니냐. 그래 뵈도 장인 재단사를 시켜 맞춘 옷이라 가격으로 치면 300레디나쯤 된다.”

“예. 정말 옷감의 질이 좋네요.”

양모를 굉장히 촘촘하게 잘 짜서 만든 예복이었다.

그것도 보통 양모가 아니었다.

만져보고 들어보니 경량화 마법을 걸어놓은 옷감으로 만든 예복이었다.

그중에 하얀색과 검정색이 뒤섞인 패턴의 예복이 있어 그걸 입어보았다.

검정색인 트롤 레더 재킷과도 무리 없이 어울려서 마음에 들었다.

구스 영감이 만들어준 트롤 레더 재킷은 벗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복을 입은 내 모습을 훑어본 아서 형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어울린다. 폐하를 알현할 때 그걸 입어라.”

“감사합니다, 형님.”

아참.

그러고 보니 가문에 갚을 돈이 있었군.

나는 한즈덱 자작에게 받은 어음 중 한 장을 아서 형님께 건넸다.

“이걸 받아주십시오.”

왕실 어음에 적힌 액수를 본 아서 형님은 안색이 변했다.

“1만 레디나?!”

“빌린 돈은 이자 쳐서 갚겠다고 했잖아요. 유능한 정령사의 평생보다는 싼 값이지만요. 하하핫!”

“네게 빌려준 돈은 4,500레디나고 이자는 50% 아니더냐.”

갚아야 할 금액은 정확히 6,750레디나.

하지만 한 가족끼리 그게 뭐냐? 반올림으로 1만 레디나를 떡하니 드려야 나도 체면 좀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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