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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34화 (34/529)

<-- 34 회: 2권 - 2장. 대박이 터지다 -->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저 같은 정령사는 정령친화력을 가진 이를 만나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책에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스페이 백작 각하께는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이 말은 사실이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했다.

그가 강한 것은 알겠지만, 나와 동류라는 감각은 없었다.

“허어!”

랜달은 나라가 망한 것처럼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술에 목숨을 거는 것 같은 반응이었다.

“죄송하군요. 이 환상의 맛은 평생 저 혼자만 실컷 맛보겠습니다.”

“이런 고약한 친구가 있나. 그리 놔둘 줄 알고? 자주 찾아올 테니 각오하게!”

“하하핫!”

운디네가 솜씨를 발휘한 환상의 퀸즈 블러드와 함께 농담이 오가자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낮에 있었던 협상 때의 갈등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친밀함이 자리 잡았다.

랜달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밀을 팔게.”

“3만 5천 포대 전부 말입니까?”

“이렇게 부탁하지.”

나는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릴까요?”

랜달은 조용히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봄의 내전으로 인하여 2왕자 브란도 일파가 모두 숙청당했고 그들의 영지도 모두 몰수됐습니다. 그중 상당수는 폐하를 따랐던 영주들에게 공로대로 배분되었지만, 왕실의 직할령이 된 영지도 꽤 많지요.”

랜달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렇게 감정이 쉽게 얼굴에 드러나다니, 나름 귀여운 구석이 있는 양반이다.

내가 핵심에 접근했다는 증거다.

“작위와 영지, 그리고 포대당 2레디나 50실버쯤. 그게 백작 각하께서 부를 수 있는 최대의 조건이겠지요?”

“허, 허어어……!”

너무나도 놀란 랜달은 눈이 크게 떠지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확하게 맞췄군.

오랜 세월로 다져진 내 눈치는 아직 죽지 않았나보다. 으흐흐흐.

그럼 어디 보자. 계산을 해보자.

밀 3만 5천 포대를 포대당 3레디나에 판다면 10만 5천 레디나.

포대당 2레디나에 판다면 7만 레디나.

포대당 2레디나 50실버에 팔면 8만 7천 5백 레디나.

그럼 8만 레디나 에다가 작위, 영지를 받는 게 현실적인 최상의 시나리오이겠군.

“작위는 남작일세. 아무것도 상속 받지 못한 서자인 자네에게 작위는 남다른 의미겠지.”

“상인으로 사는데 남작이란 타이틀은 나름 유용한 구석이 있겠군요.”

“영지는 이곳 쿤트 자작령에서 남쪽으로 보름 거리 떨어진 땅을 줄 수 있네. 예전에는 바탄 남작령이라 불렸네.”

“저도 들어본 곳이군요.”

“그리고 밀의 가격은…….”

랜달은 내 눈치를 한 번 보았다.

“3만 5천 포대 모두 다해서 7만 2천 레디나를 지불해주겠네.”

“조금만 더 불러주시죠. 깔끔하게 8만.”

“7만 5천 레디나. 여기서 멈추게.”

“왕실 재정난이 생각보다 심각한 모양이군요. 그냥 3만 포대에 6만 레디나로 할까요?”

한 번 더 당겨 봐야 제맛이지.

“에잇 8만! 8만 하겠네! 이제 됐나?”

역정을 내는 랜달에게 나는 싱긋 웃었다.

“계약서 쓸까요?”

랜달은 준비해둔 계약서 2부를 꺼냈다. 국왕의 옥새가 찍힌 빈 계약서였다.

타협한 조건을 적은 뒤 나는 서명을 했다.

그렇게 계약이 성립되었다.

나는 퀸즈 블러드가 담긴 잔을 들어올렸다.

“자, 계약 성사를 축하하며.”

랜달도 부루퉁한 얼굴로 잔을 들었다.

“악마 같은 젊은 상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건배를 하고 다시 이 멋진 포도주를 음미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거래도 성사된 뒤였기 때문에 모든 짐을 훌훌 내려놓은 랜달은 편안한 얼굴로 술을 즐겼다.

문득 그가 물었다.

“그런데 바스크 쿤트 자작은 어디에 있나?”

“그게…….”

***

의문의 바위 괴물을 토벌하러 온 바스크 일행은 황당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이틀 만에 발견한 바위 괴물은…….

“그냥 조각인데요?”

기사 하나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의 눈앞에는 크기가 5미터쯤 되는 거대한 오우거의 조각이 있었다.

바위를 통째로 깎아 만든 듯한 그 조각은 진짜 오우거처럼 위협적이고 사납게 생겼으나…… 그냥 조각이었다.

그러나 잔뼈가 굵은 바스크는 신중함을 잃지 않았다.

“혹시 모른다. 가고일 처럼 평소에는 평범한 조각처럼 있다가 마법의 힘을 받으면 움직일지도…….”

바스크는 롱 소드를 뽑아들고 조심스레 접근했다.

퍼억!

오러를 일으켜 휘두르자 오우거의 팔 하나가 떨어져나갔다.

“그냥…… 조각인데요?”

아까 그 기사가 다시 말한다.

“그냥 조각이군.”

바스크는 허탈해졌다.

그렇다.

그냥 조각이었다.

“누군가가 장난을 쳐놓은 모양입니다. 괘씸하긴 하나 솜씨 하난 대단한 조각가로군요.”

“그렇군. 음? 잠깐.”

바스크는 오우거 조각을 유심히 보다가 의문점을 발견했다. 그는 조각을 쓰다듬으며 자세히 살폈다.

“정과 모루로 깎은 결이 아닌데.”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깎인 게 아니라 마치 자연스럽게 그렇게 만들어진 듯 한 흔적이었다.

아주 정교한 오우거 조각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오러 엑스퍼트 상급인 그의 감각이 틀릴 리 없었다.

그래, 대지의 정령이 만들었다면 바로 이런 느낌일 것이다!

“정령? 카록?”

바스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놈의 자식이!

“이 녀석이 장난을 친 건가?”

그래.

카록 녀석은 전에 여름 내내 영지를 돌아다녔었다.

이곳을 지나다가 심심풀이로 이런 조각을 만들었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으드득.

바스크는 짜증이 밀려왔다.

의문의 바위 괴물, 어쩌면 흑마법사의 소행일지도 모른다고 얼마나 기대했던가!

신나게 한 판 싸워보려고 했더니 시간과 인내심만 낭비했다.

“돌아간다!”

바스크 일행은 쿤트 성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

돌아온 아버지는 내게 불같은 화를 내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타이밍 좋게 랜달 스페이 백작을 소개해드렸고, 꼭 한 번 붙어보고 싶었던 맞수를 만난 아버지는 분노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스페이 백작 각하이시군요!”

역시 아버지는 단순해.

우히히히.

“그대의 무명은 익히 들었소. 지난봄에는 직접 견식하기도 했지.”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하하! 맞는 말이오.”

“제 전용 수련장으로 가시죠.”

“그럽시다!”

헐헐.

어떻게 만난 지 5분도 안 되어서 의기투합할 수가 있지?

정말 협상 전에 아버지를 미리 빼돌려놓지 않았더라면 큰일 날 뻔했군.

“아, 그런데 말이오.”

랜달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그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날 보며 말했다.

“수십 년간 검술을 연마하며 살았지만 부끄럽게도 아직까지 정령사와 겨뤄본 경험이 없소.”

“호오, 그렇다면 못해본 경험을 해보실 기회를 오늘 잡으신 거로군요.”

아버지까지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날 본다.

무언가 나에게 쌓인 게 있는 듯한 눈초리다.

왜, 왜들 이래?!

“꼭 좀 부탁드립니다.”

랜달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결국 나까지도 수련장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아버지의 개인 수련장으로 향하면서 나는 조심스레 랜달에게 물었다.

“혹시 화나신 건 아니겠지요?”

이 양반 뒤 끝 있는 양반은 아니겠지?

“화나다니? 협상이 아~주 잘~ 끝났는데 자네에게 화를 낼 이유가 없지 않은가.”

뒤 끝이 엄청 있구나.

“저, 정말 대련을 빙자하여 화풀이를 하실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걱정 말게. 이 랜달 스페이. 로열나이츠의 부단장으로서 명예를 아는 사람일세.”

그리고 잠시 후…….

“죽어라 이 새끼!”

“역시 화났잖습니까?!”

어스 월로 랜달의 돌진을 막아내며 나는 비명을 질렀다.

“화 안 났다! 죽어!”

화 내고 있어!

“화난 거 맞잖아요!”

“그냥 기합일 뿐이다! 대련은 실전처럼 해야지! 뒈져라!”

뒈져라! 같은 기합이 어디 있어!?

“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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