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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24화 (24/529)

<-- 24 회: 1권 - 9장. 중급 정령사 -->

노움과 운디네를 보고 있노라니 나는 정말로 두 딸의 아버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 노움도 운디네도 귀여운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건 내 마음이 그런 모습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생의 나는 그럭저럭 잘 살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불행한 점도 있었다.

바로 가족.

일방적으로 이혼 서류를 던지고 떠난 아내. 그런 아내를 따라서 외가로 가버린 망나니 아들.

그들이 떠나고 나는 평생 가족 없이 살았다. 결국 죽을 때도 나는 혼자였다.

그렇다.

나는 가족을 갈망했다. 귀여운 딸들을 잔뜩 낳아서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노움과 운디네의 모습은 그런 내 내면의 깊은 욕구가 형상화된 것이다.

아니.

외모뿐만이 아니다.

밝고 활발한 노움. 수줍고 얌전하지만 애교가 많은 운디네. 둘 다 착하고 귀여우며 나를 마치 아버지처럼 잘 따라준다.

나는 그런 두 정령의 성격 또한 내가 그러길 원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정령들은 정령사의 모든 속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처음 계약할 때 정령사가 원하는 모습과 성격으로 구현화가 된 것이다.

물론 이건 내 가설이다. 하지만 꽤나 신빙성 있는 추측이다. 정령들이 다 저렇게 귀엽고 애교가 많다고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

결론은 하나였다.

이번 생에서 내가 가장 잘한 것은 밀 4만 포대도, 약초 사업도 아닌, 바로 정령술을 익힌 것이다.

노움, 운디네. 

너희를 만나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야.

함께 있으면 괜히 즐겁고 행복해서 앞으로도 쭈욱 곁에 있고 싶고, 서로 바라만 봐도 마음이 따스해지고 안심이 든다. 가족이란 바로 그런 것 아니겠는가?

정령술을 익히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가장 원하던 것을 얻게 된 것이다.

-주인님.

고맙다. 노움, 운디네. 

앞으로도 쭈욱 함께 하자. 

같이 뒹굴고 노닥거리고 태평하게 시간을 보내는 거야. 

-주인님.

응?

그제야 나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노움이 날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러니 노움?”

-나 이상해.

노움은 적잖이 당황한 얼굴이었다.

“이상해? 그게 무슨 소리야?”

나도 깜짝 놀라 달려왔다.

노움에게 무슨 이상이라도 생겼나?

-내가 막……막…… 변하려고 그래.

“변해?”

그때였다.

파아앗!

노움의 황금빛의 몸체가 일출하는 태양처럼 찬란한 빛을 내며 번쩍였다. 

“큭! 노, 노움?!”

눈이 부셔서 한 손으로 눈을 가리며 나는 소리쳤다.

노움의 몸이 수십 가닥의 빛으로 분리되었다. 뭉쳐져 있던 털실뭉치를 풀듯이 빛줄기들이 해체됐다. 

“노우우움!”

마치 노움이 흩어져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기 때문에 나는 비명처럼 노움을 불렀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파파팟!

해체됐던 빛줄기들이 다시 뭉치기 시작한 것이다.

팔다리와 머리가 만들어진다. 얼굴의 이목구비가 점차 뚜렷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윽고 완성된 형태는 내가 알던 노움 그대로였다.

아니, 그대로는 아니었다.

노움은 열두 살 남짓한 소녀처럼 변했다. 이전보다 약 두 살 정도 자란 모습이었다. 게다가 키는 무려 70센티미터에 달했다. 

마치 정말로 나이를 먹은 것처럼 변한 노움을 보며 나는 너무도 놀라 입을 쩌억 벌렸다.

-진화.

운디네가 말했다.

진화?

그래, 진화!

노움은 중급 정령이 된 것이다!

-주인님, 나 진화했어!

“그, 그래. 우리 노움이 성장했구나. 정말 다행이다!”

-다행이야? 왜?

“우리 귀여운 노움에게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을까봐 얼마나 걱정했다고!”

-주인님, 나 걱정했어?

“그럼! 우리 노움이 얼마나 소중한데.”

-헤헤, 나 소중해.

기뻐서 배시시 웃는 노움을 보니 비로소 안심이 들었다. 

노움이 갑자기 중급 정령으로 진화한 건 아마도 방금 전에 정령들을 소중하게 여겼던 내 마음이 작용했던 것 같았다. 

정말인지, 정령술은 나에게 내려진 축복 같다. 

난 그저 노움과 운디네가 좋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이렇게 성장할 수 있다니 말이다.

나는 노움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런데 내 손이 노움에게 닿는 순간, 노움을 통해서 이질적인 감각이 나에게 전달되었다. 

“엇?!”

그것은 마치 처음 정령 계약을 했을 때 서로 영혼이 연결됐던 경험과 동일한 느낌이었다.

번쩌억!

일순간 머릿속에서 밝은 빛이 가득 터져 나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다행히 책을 읽었기 때문에 이게 무슨 현상인지 알 수 있었다.

「정령의 진화는 곧 정령사의 진화로 이어진다. 자신의 정령이 성장 끝에 진화를 맞이하면 정령사 또한 큰 변화를 맞이한다.

그 변화란 바로 정령과의 영혼의 교감이 깊어지는 것이다.」

노움이 중급 정령이 되면서 덩달아 나 역시 중급 정령사가 된 것이다.

중급 정령사라니! 내가?

「서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더욱 잘 알 수 있게 된다. 정령은 정령사가 말로 길게 설명해주지 않아도 무엇을 바라는지 알아채고 움직여준다.」

그럼 말을 하지 않아도 노움과 운디네에게 나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다는 뜻?

한 번 시험해봐야겠다.

나는 노움을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생각을 집중했다.

나는 노움이 너무 좋아. 너무너무 좋아. 영원히 함께 있었으면 좋겠어. 노움이 너무 좋아, 너무 좋아.

그러자 노움이 날 보며 방긋 웃었다.

-나도 주인님 좋아.

“노움!”

나는 감격하여 노움을 또다시 와락 끌어안는다. 노움은 수줍어하면서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운디네가 다가와 내 주변을 서성거린다. 자기도 안아들라는 무언의 표시했다.

“그래그래. 이번엔 운디네도 해볼까?”

이번에는 운디네에게 정신을 집중했다.

운디네가 너무 좋아, 너무 좋아. 우리 운디네는 너무 귀여워.

그러자 운디네도 반응을 보였다.

-잘 모르겠어. 하지만 주인님, 좋은 생각 하고 있어.

아무래도 운디네는 이제 갓 계약한 하급 정령이라서 노움처럼 내 마음을 정확히 읽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우리 운디네가 너무 좋다고 했지.”

나는 운디네 역시 품에 안아주었다. 

그날 나는 중급 정령사가 된 기쁨을 노움, 운디네와 함께 나눴다. 

*   *   *

레던 왕국의 내전은 초여름에 접어들어서야 종료되었다. 결말은 생각보다 싱거웠다.

세력비는 비슷했으나 지도자로서의 역량은 에릭 태자가 앞섰다. 전생 때의 기억에 의하면, 에릭 태자는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한 군주였다. 적재적소에 휘하 인물을 배치해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어나갔다.

반면 그릇이 작은 브란도 2왕자는 전황이 불리해지자 침착성을 잃고 불안과 조급함에 시달렸던 모양이다. 

브란도 2왕자는 단숨에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과격한 비책을 사용했다. 

이웃나라 오리엔 왕국에 지원 요청을 한 것이다.

레던 왕국으로 세력을 뻗칠 기회라 판단한 오리엔 왕국은 브란도 2왕자의 요청에 응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는 브란도 2왕자의 결정적인 실책이었다.

지금껏 가만히 강 건너 불구경이나 하고 있던 육제후가 일제히 나선 것이다.

에릭 태자와 브란도 2왕자가 서로 싸워서 왕실의 힘을 소모하는 건 육제후로서는 퍽 즐거운 일이었다. 내전이 끝났을 때, 육제후는 왕실의 힘이 약화된 틈을 타 레던 왕국 전역으로 세력을 확대할 심산이었다.

그러나 오리엔 왕국이 내전에 참여할 경우 일이 틀어진다. 오리엔 왕국이 내전 참여를 빌미로 향후 레던 왕국 내에 간섭하면 육제후 대 오리엔 왕국이라는 대립구도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육제후는 내전에 참여, 에릭 태자의 편에 섰다. 오리엔 왕국이 끼어들기 전에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함이었다.

그 결과, 에릭 태자는 육제후와 함께 불과 보름 만에 브란도 2왕자를 격파했다. 사로잡힌 브란도 2왕자는 처형당했고, 덕분에 오리엔 왕국은 내전에 끼어들 명분을 잃고 뜻을 접었다.

에릭 태자는 정식으로 왕위에 올랐고, 그렇게 내전이 종료되자 아버지와 아서 형님도 군대를 이끌고 귀환하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다 예측범위 내였다.

그런데 전생과는 다른 일이 하나 벌어져서 나는 깜짝 놀라야 했다. 

그것은 바로,

“전공을 세우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아버님.”

“하하하! 이게 다 네 덕분이구나, 카록. 너와 대련하며 다양한 실전 경험을 쌓지 않았더라면 리타 백작의 목을 베지 못했을 게다.”

리타 백작은 브란도 2왕자의 심복으로 6서클을 마스터한 뛰어난 마법사였다. 

전장에서 아버지는 뛰어난 검술과 용맹을 마음껏 발휘하며 활약하셨다. 그러다가 브란도 2왕자를 잡을 기회가 생겼는데, 아깝게 놓쳤다고 한다. 대신 브란도 2왕자를 보호하려고 필사적으로 대항하던 리타 백작을 베는 데는 성공하셨다.

리타 백작은 갖가지 마법을 펼쳐서 방해했지만, 아버지는 나와 대련하던 경험을 살려서 침착하게 그의 마법을 오러로 부숴나가며 전진, 리타 백작의 수급을 손에 넣었다.

이는 큰 전공이었기 때문에 즉위한 에릭 태자는 아버지를 자작으로 승격시키고, 우리 쿤트 남작령의 남쪽에 인접한 작은 영지를 하사했다.

이제 남작가가 아니라 쿤트 자작가다!

나도 이제는 쿤트 자작가의 삼남 카록이라고 소개를 하게 된 것이다. 남작과 자작의 차이는 매우 크다!

덕분에 쿤트 가문의 저택에서는 아버지의 생환 및 전공 기념의 파티가 열렸다. 물론 술 파티였다.

맥주를 호쾌하게 들이켠 아버지는 턱수염에 뭍은 맥주거품을 닦으며 신나게 무용담을 떠들었다. 술에 취하셨는지 평소의 아버지답지 않게 흥분하신 상태였다.

“리타 백작이 마법으로 바위벽을 만들어낼 때는 정말 당황스럽더군. 그냥 포기하고 돌아설까 싶었어. 그런데 생각해보니 바위로 된 벽을 만들어내서 진로를 막는 건 정령사인 우리 아들 카록이 자주 쓰던 방법이란 말야! 콰앙! 하고 오러로 부숴버리고 당황한 리타 백작에게 그대로 롱 소드를 냅다 던졌지. 기사가 검을 던져 공격할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조금만 늦었으면 리타 백작이 먼저 실드를 펼쳐 방어했을 거야. 으하핫! 고맙구나, 카록!”

“아뇨, 별 말씀을요. 아버님의 무용이 마침내 빛을 발했을 뿐입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나는 내심 놀랐다.

정령사가 되어 아버지와 대련 좀 한 사실 하나가 미래의 흐름을 이렇게 바꿔놓다니!

긍정적인 변화였으니 다행이지, 어쩌면 내 행동으로 인해 내가 알던 미래보다 더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뜻 아닌가?

게다가 그동안 미래의 흐름을 알고 있다는 것은 내게 큰 안도감을 주고 있었다. 덕분에 전 재산을 퍼부어 밀 4만 포대를 구입해놓고도 이렇게 태평스럽게 지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더 이상 미래를 알 수 없게 돼버리면 그런 이점이 사라지게 된다.

전생에서 그랬듯 미래 예측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정보 수집과 경기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귀찮은 짓을 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고? 

상인에게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시장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이니까!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하고 태평하게 있다가는 초대형 상단도 눈 깜짝할 새에 망해버리는 게 상계다.

아, 귀찮은데.

그냥 이대로 정령들과 노닥거리며 살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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