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22화 (22/529)

<-- 22 회: 1권 - 8장. 두 번째 정령 계약 -->

밭을 매입하려면 농사를 짓지 않는 겨울에 해야 한다. 다행히 현재 땅값은 매우 싼 편이다.

간단한 논리다.

근 5년간 곡물 생산량이 높았고 큰 전쟁도 없었다.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았다. 건강해서 질병에 잘 안 걸렸다. 당연히 약재가 잘 안 팔린다. 약초 재배를 하는 전문 농부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서 밭을 매물로 내놓는다.

어디 그뿐인가?

밀 값도 폭락해서 밀농사를 짓는 자작농도 돈벌이가 안 돼 밭을 팔려고 내놓는다. 땅값은 폭락, 폭락. 

그렇게 약초와 밀농사를 짓는 사람이 줄어들었고, 그 바람에 막상 대흉년과 전염병이 닥치자 피해는 더 어마어마해졌다. 그게 전생 때 내가 겪은 시대 흐름이었다.

나 혼자서 어떻게 시대 흐름을 바꾸겠냐마는, 최소한 우리 영지라도 잘 보전해야 하지 않겠나?

내 예상대로 한센은 밭을 팔고 싶다는 약초 농사꾼 네 명을 알아냈다. 

한센 녀석은 남을 몰아붙일 줄을 몰라 협상에 서툴기 때문에 내가 직접 가서 매입 협상을 해야 했다. 

“그래도 제 밭이 30레디나라니 너무 쌉니다. 공자님.”

울상이 된 중년의 약초 농부에게 내가 말했다.

“밭을 30레디나에 매입하는 대신, 당신을 고용하지.”

“예?”

“아무렴 내가 직접 농사지을까봐? 그대 같은 전문가가 필요해. 급여는 한 달에 1레디나씩. 4인 가정의 한 달 생계비로 적당하지. 어때?”

솔깃해진 약초 농부는 갈등하기 시작했다. 

“밭도 처분하고 먹고 살 길도 생겼는데 뭘 그리 망설여? 땅 팔겠다는 사람은 많다고.”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넘어왔다. 땅도 헐값에 사고 전문 인력도 고용하고 일석이조! 역시 내 연륜은 어딜 안 간다니까.

나는 같은 방법으로 약초밭을 계속 매입하고 약초 농부를 고용했다. 

내가 약초밭을 사고 고용까지 해준다는 소문이 퍼지자 다른 약초 농부들도 서로 밭을 팔겠다고 몰려들었다. 

결국 400레디나를 들여서 이 인근 약초밭의 약 40%를 내가 보유하게 되었다. 

이런. 이건 조금 과한데.

400레디나밖에 안 썼는데 우리 영지 약재업계의 거물이 되고 만 이 현실. 빈약하구나, 약재업계. 

경기가 불황일 때 찬스가 생기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라지만 좀 너무한다 싶었다. 

아무튼 나는 고용한 약초 농부들에게 작셀을 재배할 준비를 하도록 했다. 그리고 지난번 몬스터 사냥에서 얻은 짐마차 두 대 분량의 어스 스웜의 잔해도 제공해주었다. 최고의 비료를 투입해서 최대한 높은 생산량을 얻기 위해서였다.

전부 계획대로 척척 진행되고 있다. 이제 이 겨울만 끝나면 본격적으로 약초 재배를 시작할 것이다. 

*   *   *

아직 바람이 쌀쌀했지만 쌓인 눈이 녹기 시작했다. 3월, 봄의 시작은 명백해 보였다.

그리고 레던 왕국 또한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다.

펠론 국왕이 마침내 죽은 것이다.

태자 에릭은 왕좌에 즉위할 준비를 서둘렀고, 2왕자 브란도는 형 에릭의 자질 문제를 거론하며 그의 즉위에 반발했다.

갈등은 점점 불거져 마침내 브란도 2왕자가 먼저 지지 세력을 결집해 무력시위에 나섰다. 에릭 태자 역시 자신을 따르는 귀족들의 군대를 불러 모아 일전을 준비했다.

레던 왕국 유일의 오러 마스터 크라일 뮤트 공작은 침묵을 유지했다. 그와 그의 백여 명의 제자는 혼트 제국의 침략을 경계하는데 바빴다.

레던 왕국의 가장 큰 세력인 ‘육제후’는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육제후는 레던 왕국의 백작 6인을 일컬었다. 서대륙의 젖줄이나 다름없는 바덴 강 연안에 자리 잡고 매년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대영주들. 그들의 세력은 왕실조차도 어쩌지 못할 정도였다.

그간 레던 왕실은 육제후의 세력 성장을 억누르는데 온힘을 기울여왔다. 그런데 펠론 국왕이 죽고 두 아들이 저들끼리 다투자, 육제후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즐겁게 관망했다. 

“쯧쯧. 결국 이 뒤에는 육제후에 의해 이 나라가 좌지우지되겠지.”

나는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육제후는 서대륙 물류 중심인 바덴 강을 휘어잡고서 상인들로부터 엄청난 통행세를 뜯어냈다. 모든 물류가 바덴 강을 통하기 때문에 육제후의 재산은 왕실을 능가했다. 상인인 내 입장에서 그놈들은 도둑놈들이다.

그놈들 잘 되는 꼴을 알면서도 보고만 있어야 한다니.

생각 같아서는 2왕자 브란도를 찾아가 한 대 쥐어박고 되도 않는 짓 관두라고 훈계하고 싶었다. 전생에서 욕심만 앞세운 브란도 2왕자는 결국 내전에서 패해 처형당했던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겠지.

다행히 우리 쿤트 남작가는 에릭 태자의 편. 전생 때도 아버지와 아서 형님이 참전하여 별 피해 없이 귀환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두 분의 안위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중요한 건 그깟 내전이 아니라 대흉년과 전염병이니까.

어쩌면 신은 우리들 인간을 비웃고 있는 게 아닐까?

어이쿠, 저 녀석들 또 지들끼리 싸우네. 오랫동안 잠잠했더니 심심했나보군. 대흉년과 전염병을 더블 크리티컬로 팍팍 내려줘야지, 하고 말이야.

하하, 그런 막장 신이 있을 리 없지만.

아버지와 아서 형님은 에릭 태자의 부름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출발하게 되었다.

은빛 하프 플레이트 메일을 입은 아버지는 선두에서 중장보병과 궁수로 이루어진 군대를 지휘하셨다. 우리 영지의 병력 5백 중 4백 명이 내전에 참가한다. 

내가 구한 블러드 스콜피온의 껍질로 만든 갑옷을 입은 중장보병들을 보니 마음이 뿌듯해졌다. 

어차피 금방 끝날 내전이다. 2왕자 브란도는 예상과 달리 쉽게 무너질 테니까. 아버지 같은 강자가 이끄는 우리 영지의 강군이라면 별 피해 없이 돌아오리라.

“아버님, 부디 무운이 함께 하길 빌겠습니다.”

“그래. 우리가 없는 동안 영지를 부탁한다. 업무는 집사에게 맡겨놨다만, 만에 하나 영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네가 힘써다오.”

아버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십시오. 아버님과도 호각을 다투는 정령사가 여기 있는데 뭐가 문제겠습니까?”

“뭣이? 하하핫, 이 녀석!”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나는 이번에는 아서 형님에게 말했다. 

“형님, 전쟁 지휘 경험을 쌓으려고 함께 가시는 모양인데, 형님 검술 실력이 별 볼일 없는 건 세상이 다 아니 너무 무리하지는 마십시오.”

“흥! 이놈아, 너보단 낫다. 난 그래도 오러 유저라도 되지 않으냐.”

아서 형님과 나는 킬킬 웃었다. 

“영지를 잘 부탁한다.”

“예, 형님.”

“금방 돌아올 것이니 작별인사는 그쯤 해둬라. 자, 출발! 반역자의 모가지를 가지러 간다!”

“와아아아!”

“쿤트 만세!”

병사들도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호응했다. 

그렇게 아버지 일행은 출발했다. 아마 봄이 끝날 때쯤에 돌아오겠지. 

아버지 일행이 떠나자 나도 상회 사무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한센이 기특하게도 얼 그레이 티를 가져다주었다. 그 보답으로 나는 한센에게 일거리를 잔뜩 안겨주었다.

“한센, 쿤트 남작가 저택의 군량고에 가서 우리 밀 4만 포대의 보관 상태를 점검하고 약초밭을 모두 돌면서 약초 농사를 잘 시작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와.”

“……네.”

한센은 한숨을 푹 쉬며 사무실을 나섰다. 

한센을 직원으로 두고 있으니 무진장 한가했다. 원래 상인은 이렇게 한가하지 않다. 밀 4만 포대를 매입해둔 걸로 일이 끝나는 게 아니다. 각지를 돌면서 판매처를 찾아야 한다. 막상 팔 데가 없으면 모두 쓰레기가 되는 거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판매처를 애써 찾아다닐 필요가 전혀 없었다. 올해에 대흉년이 오면 다들 알아서 밀 좀 팔아달라고 찾아올 텐데 뭘.

심심해진 나는 저택 서재에서 가져온 정령술에 관한 책 두 권을 꺼냈다. 먼저 ‘정령술 총론’이란 책부터 읽었다. 

‘정령술의 입문’과 겹치는 내용이 많았지만 새로운 사실도 많이 수록되어 있었다. 특히 정령과 정령사를 하급, 중급, 상급, 최상급으로 분류해서 등급별로 상세한 설명이 되어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마침 아버지로부터 혹시 중급 정령사가 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았던 터라 나는 집중해서 읽어보았다.

「정령과 정령사는 계약을 맺은 순간부터 이미 영혼이 이어진 사이다. 때문에 정령과 정령사 둘 중 한 사람만의 성장은 있을 수 없다. 

정령사의 정령친화력이 늘어나면 정령도 덩달아 성장한다. 정령이 성장하면 정령사 역시 정령친화력의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둘은 함께 성장하는 관계다.

그렇다면 정령이 성장하면 어떤 변화가 생기가 될까?

가장 뚜렷한 특징은 크기의 성장이다. 처음 계약했을 때와 같은 외모를 띠지만 크기는 점점 커진다. 그리고 성장이 일정 수준에 이르렀을 때 진화를 한다. 진화를 겪은 정령을 두고 우리는 소위 중급 정령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정령은 일생토록 총 네 번의 진화를 겪는데, 네 번째 진화를 마친 정령이 바로 정령왕이다.

정령의 진화는 곧 정령사의 진화로 이어진다. 자신의 정령이 성장 끝에 진화를 맞이하면 정령사 또한 큰 변화를 맞이한다.

그 변화란 바로 정령과의 영혼의 교감이 깊어지는 것이다. 서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더욱 잘 알 수 있게 된다. 정령은 정령사가 말로 길게 설명해주지 않아도 무엇을 바라는지 알아채고 움직여준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말하자면, 정령 컨트롤이 하급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섬세해지는 것이다.」

그랬군.

우리 귀염둥이 노움이 몸집은 많이 커졌지만 아직 진화는 안 했으니 중급 정령은 아닌 모양이었다. 물론 나 또한 중급 정령사가 되지 못했다는 뜻.

물론 추측컨대 거의 중급의 경지에 가까워진 것 같다. 노움을 소환할 수 있는 시간이 무려 10시간이나 되었을 정도로 정령친화력이 늘었고, 그 강한 아버지와도 제법 싸울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하긴, 아버지가 많이 봐주긴 했지. 정령사와의 싸움을 경험하려고 일부러 내가 공격할 기회를 많이 주셨으니까. 실전처럼 붙었다면 훨씬 빨리 날 쓰러뜨릴 수 있었을 것이다.

계속해서 책을 읽는데 문득 눈에 띠는 대목을 발견했다.

「하급 정령사는 정령친화력이 오를 경우 다른 정령과 계약을 더 할 수 있게 된다. 엘프는 모든 속성의 정령들과 계약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인간은 상성에 따라 네 가지 속성의 정령과 계약할 수도, 반대로 한 가지 속성의 정령밖에 보유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계약한 정령이 많든 적든 장단점이 다 있기 때문에 선택은 정령사 본인의 것이다.」

솔깃해진다. 노움 하나도 귀여워 죽겠는데 그런 것이 또 하나 생긴다면?

귀여운 정령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해하는 나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해 죽을 것 같아!

하지만 한 눈 팔면 노움이 삐칠 수도 있기 때문에 일단은 노움에게 물어봐야 할 듯했다. 이제 정이 식었냐며 훌쩍거리는 노움을 상상하니 등골이 오싹해진다. 물론 정령이 질투를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지만.

“노움.”

-응.

노움이 바닥에서 슉 하고 솟아났다. 나는 폴짝 내 무릎 위에 올라와 앉은 노움을 쓰다듬어주며 물었다.

“혹시 친구 필요 없니?”

-친구?

“응. 내가 놀아주지 못하면 우리 귀염둥이 노움이 혼자서 심심해지잖아. 내가 다른 정령과 계약하면 같이 놀고 좋지 않을까?”

-응, 좋아!

노움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휴우, 다행이다. 뭐, 애당초 우리 착하디착한 노움에게 질투심 따위가 있을 리 없었지만.

그럼 정령석이 필요한데? 어디 보자…… 내 수중에 돈이 대략 650레디나쯤 있었다. 약초밭을 대량 매입하느라 400레디나를 지출한 탓이었다. 300레디나짜리 내 트롤 레더 재킷도 지출에 한몫 했고.

정령석의 가격은 500레디나.

그걸 사버리면 내 수중에는 약 150레디나밖에 안 남게 된다. 물론 그 돈만 갖고 있어도 올 겨울까지 한센이나 약초 농부들 월급을 주고 버틸 수는 있지만, 만에 하나의 경우에 대비한 비상금도 있어야 하는 법이었다.

어쩌지? 

그냥 나중으로 미룰까?

지를까 말까를 두고 갈등하고 있을 때였다.

“단주님, 시키신 일을 다 마치고 왔습니다. 다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한센이 시킨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어리버리한 한센의 얼굴을 보니 나는 결심을 내릴 수 있었다. 이상하게 나는 이 녀석만 보면 무언가 일을 시키고 싶거든.

“한센아. 마법길드 가서 정령석 하나 사와라.”

한센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다. 단주님! 마법길드라면 그 레던 왕성에 있는……?”

“응, 거기가 제일 가깝잖아.”

“절 죽이시려고요?! 지금 레던 왕성은 전쟁터가 되기 일보직전이라던데요!”

아참. 에릭 태자와 브란도 2왕자의 내전을 깜빡했네. 아무리 한센을 굴리고 싶다지만 전쟁터 같이 위험한 곳에 보내면 안 되지. 비명횡사라도 하면 평생 부려먹을 수가 없잖아?!

“그럼 올란드 백작령에 있는 마법길드에 다녀와. 올란드 백작령 알지?”

“네…… 남서쪽으로 걸어서 보름 이상 걸리는 곳에 위치한다고 들었습니다.”

“내일 당장 출발해. 돈은 여기 있어. 503레디나니까 3레디나는 여비로 써.”

나는 돈주머니를 한센에게 건넸다.

한센은 울상이 되었다. 

한센이 없는 한 달여 동안 나는 바쁜 시간을 보냈다.

오전에는 유술 수련 및 체력 단련에 전념했다. 

오후에는 약초밭을 돌며 약초 농사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밀 4만 포대의 보관상태도 점검했다. 한센이 없으니 내가 직접 돌면서 관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참, 직원 하나를 더 뽑던지 해야지, 원.

그리고 저녁부터 밤늦게까지는 정령술 수련을 했다.

무슨 정령술 수련이냐고?

그야 당연히 노움과 노닥거리며 노는 거지. 정령과의 관계가 친밀해질수록 정령친화력이 증가하는 건 대정령사 라울 리간드가 입증한 사실이니까. 나야 우리 귀염둥이와 놀면서 강해질 수 있으니 일석이조지.

유술 수련으로 나의 열여덟 살짜리 젊고 팔팔한 육체를 아름답게 가꾸고, 오후에는 일을 한 뒤 밤에는 노움과 즐겁고 한가로운 시간을! 이 얼마나 보람찬 하루하루인가?

그렇게 한 달 하고도 열흘이 더 지나자 비로소 한센이 돌아왔다. 

거의 부랑자 같은 행색을 한 한센은 감격에 차 울 것 같은 얼굴로 사무실에 기어 들어왔다.

“다, 다, 다…….”

“다 뭐?”

“다녀왔습니다!”

한센은 정령석을 내게 내밀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40여 일간 여행을 다녀오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 그렇게 남자는 성숙해가는 거지. 친히 여비까지 쥐어주며 널 진정한 어른으로 만들어주는 내게 감사하렴.

나는 한센이 측은해져서 이번 달치 월급과 함께 남은 여비도 가지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은 일찍 들어가 쉬라고 집에 돌려보냈다. 

어깨 좀 토닥거리며 달래주니 그제야 한센의 기분도 한결 풀어진 듯했다. 흐흐, 단순한 녀석. 역시 한센을 다룰 때는 채찍, 채찍, 채찍, 채찍, 당근이라니까.

좋아! 정령석도 손에 넣었겠다. 오늘 당장 정령 계약을 시도해야겠다. 

어떤 정령이 소환될지 몹시 궁금해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날이 저물어 저녁이 되자, 나는 사무실 문을 걸어 잠그고 정령 계약 준비에 들어갔다.

사발에 정령석을 넣고 빻아 가루로 만든다. 물을 부어서 끈적끈적한 액체를 만들어낸다. 

정령 계약 마법진을 그리기까지 한 시간 가량이 거렸다. 

“다 됐다.”

마법진 위에 선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주문을 외었다.

“태초부터 존재해온 자연계의 위대한 정신이여, 나의 영혼의 부름에 응답해다오.” 

파아아앗!

마법진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와 사무실 안을 가득 메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