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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19화 (19/529)

<-- 19 회: 1권 - 7장. 작별 -->

“수량은 정확하게 4만 포대가 확실하다. 확인해보아라.”

“형님께서 확인하셨으니 정확하겠죠.”

나는 널찍한 군량고를 가득 채운 밀 포대를 보며 황홀감에 빠졌다. 

대흉년을 앞두고 엄청난 양의 밀 포대가 나의 수중에 있다! 이보다 더 든든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걸로 가문도 영지도 재앙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고 돈도 아주 많이 벌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많이 사서 어쩌려고 그러는지 걱정이 많았다만 다행히도 내년에 전쟁이 날 가능성이 높구나. 밀 값이 뛸 테니 그때 팔아라.”

“잘 생각해서 판단해보겠습니다.”

“그래,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 망하면 내 밑에서 일하면 되고.”

“아버님께서는 담보 따윈 필요 없다고 하셨는데…….”

“영지 일을 하는 게 누구냐?”

“아서 형님이죠.”

“그럼 내 말이 곧 법이다.”

“…….”

‘맥스의 쉬어가는 집’에 돌아오니 딘 일행이 이미 테이블에 온갖 맛있는 음식을 잔뜩 깔아놓고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음식이 십여 가지가 넘었는데, 생선 요리는 보이지 않았다. 하하하.

“여어, 공자님! 어서 와서 한 잔 하시죠!”

“한 잔만 갖고 돼? 맥스! 맥주 다 가져와!”

“예입!”

맥스는 신이 나서 주류창고에서 맥주를 오크통 하나 통째로 가져왔다. 

우리는 환호하며 맥주잔을 가득 채웠다. 물론 시스는 맥주는 거들떠도 안 보고 닭고기를 난폭하게 공격했다. 건배하고 마시고 떠들고 또 건배하고……. 렉스는 쉴 새 없이 입을 나불거리며 술자리의 분위기를 띄웠다. 

술기운이 너무 올라 기진맥진할 때쯤, 딘이 입을 열었다.

“카록 공자님께 진 신세는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잉? 뭐야? 곧 떠날 사람처럼.”

“이틀 뒤에 떠날 계획입니다. 북부 지방은 겨울에도 몬스터가 기승을 부리니 그쪽으로 일거리를 찾아갈 생각입니다.”

“에에? 돈도 많이 벌어놨는데 여기서 좀 쉬면서 겨울을 보내면 안 되고?”

내가 섭섭해서 물었지만 딘은 나직이 웃었다.

“겨울은 일거리가 상당히 없는 시기입니다. 용병단의 단원을 모집하기에는 최적의 시기죠. 마침 공자님 덕분에 자금도 많이 있으니 쓸 만한 녀석들로 스무 명 정도 구할 생각입니다.”

“용병단?”

“이왕 평생 용병 노릇을 하기로 결심한 이상, 대형 용병단의 단장노릇 한 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참고로 부단장은 접니다!”

렉스가 신이 나서 거들었다.

“정말 목표를 향해 잘 나아가는군.”

나는 딘에게 감탄했다. 용병으로서 살기로 결심하자 큰돈을 투자해서 오러 브레싱도 배우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용병단도 운영하려 하고 있다. 저렇게 뚜렷한 목표의식과 추진력이 있는 인물이라면 분명 꿈을 이룰 것이다. 

내 안목으로 봤을 때, 딘은 매사에 침착하고 통솔력도 있어서 능히 대형 용병단의 단장이 될 만한 그릇이었다. 위험을 피해갈 줄 아는 판단력도 가졌다.

자, 그럼 나는 오랜만에 늙은이의 지혜를 발휘해 볼까.

나는 돈주머니에서 50레디나를 꺼내 딘에게 건넸다.

“용병단 창설 자금에 보테도록 해.”

“아니, 공자님!”

딘과 렉스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대신 출세하면 날 도와주는 거야. 어때?”

“하하! 좋습니다! 공자님께서 도움을 요청하시면 반드시 힘을 드리겠습니다. 이게 다 공자님 덕분인데 어찌 의리를 지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딘은 크게 웃으며 승낙했다. 이 약속이 나중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기대해도 좋아, 딘. 상인 인생 72년으로 단련된 내 안목은 상당히 정확하다고.

“그런데 시스도 같이 가는 거야?”

닭고기를 막 다 먹은 시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시스는 나와 함께 여기에 남는 거야?”

나는 내심 기뻐서 물었지만 시스는 냉정하게도 고개를 다시 한 번 저었다.

“그럼 어디로?”

“마법길드.”

아!

3서클을 배우러 갈 생각인 듯했다. 마법사라면 더 수준 높은 마법에 대한 갈망이 있을 테니까. 900레디나가 넘는 돈이 있으니 스승을 구해서 3,4서클을 배우기에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시스가 떠난다고 하니 섭섭했다. 저렇게 예쁘고 귀여운 여자와 작별해야 하는데 어떤 남잔들 섭섭해 하지 않겠는가? 좀 더 친해지고 툭 터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되고 싶었다.

쳇, 할 수 없지.

떠나기 전에 선물이라도 해야겠어. 

시스에 대해 아쉬운 마음이 들자 맥주가 더욱 당긴다. 한 잔 가득 따라 단숨에 털어놓는다. 목에 착 감기는 시원한 감촉이 끝내준다. 가슴 깊이에서 뜨거운 술기운이 올라와 기분을 좋게 했다. 

우리는 실컷 술을 마셨고, 새벽 2시가 되어서야 맥스와 맥스 아내의 애걸에 술판을 끝냈다. 이 부부는 왜 매상을 올려줘도 징징대는 거야?

다음날 잠에서 깨어나니 11시였다. 요즘은 점심 때 일어나는 게 버릇이 된 것 같아. 아침형 인간이 바람직한데 큰일이야.

오늘은 아버지가 한 번 보자고 하신 날이지. 보나마나 한 판 붙자고 하실 텐데 준비 단단히 해야겠어.

나는 우물가에서 씻은 후 움직이기 편한 긴팔 셔츠와 신축성 있는 가죽 바지를 입고서 위에 트롤 레더 재킷을 걸쳤다. 

명장 구스 영감이 거저 만들어준 나의 사랑스런 트롤 레더 재킷. 아버지가 오러를 쓸지도 모르니 내 생명을 잘 부탁한다.

식사를 간단히 하고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에 도착하니 병사들의 우렁찬 기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훈련 하나? 그럼 훈련을 관장하는 건 아서 형님일 게 분명한데.

저택의 뒤편에는 수백 명의 병사를 수용할 수 있는 드넓은 연병장이 있다. 

그쪽으로 가보니 과연 예상대로 아서 형님이 훈련을 주도하고 있었다. 

“쏴라!”

아서 형님의 명령이 떨어지자 궁수들이 일제히 활을 쏜다. 백여 대의 화살이 짚단인형들을 꿰뚫었다. 

“중장보병대 밀집대형으로!”

중장보병대가 앞으로 걸어 나와 방패와 창을 들고 밀집했다. 병사들의 움직임은 한 치 흐트러짐도 없이 절도와 패기가 넘쳤다. 

“돌격!”

“와아아아!”

“돌격하라!”

중장보병대는 함성을 지르며 빠른 걸음으로 진격한다. 고슴도치처럼 빼곡히 세운 창이 화살이 꽂힌 짚단인형을 찌르고 부수고 밟는다. 

“훌륭하네요.”

나는 아서 형님께 다가가며 칭찬을 했다.

“왔느냐?”

“예, 아버님께서 보자고 하셔서요.”

“안다. 이걸 받아라.”

아서 형님은 갑자기 내게 힐링 포션 한 병을 내밀었다. 

“힐링 포션은 왜……?”

“필요할 거다.”

나는 스멀스멀 밀려오는 불안감을 느꼈다. 에이, 설마 아들을 죽이기야 하겠어.

“그럼 수고하십시오, 형님.”

“그래. 몸조심해라.”

이 양반이, 끝까지 불길한 소리만 하네.

나는 불안감을 억누르고 아버지의 수련장으로 걸어갔다. 물론 힐링 포션은 소중히 품안에 넣어두었다. 부디 이걸 쓸 일이 없길 빌어야지. 근데 우리 아버지가 싸우다가 흥이 나면 눈이 뒤집히는 경향이 있는데 걱정이네. 

아버지의 전용 수련장에 들어가기 전에 천장에 매달린 종을 울렸다. 

“들어와라.”

“예.”

아버지는 어제와 달리 하프 플레이트 메일을 착용하고 계셨다. 투구까지 왼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 전쟁터로 뛰어들기 직전의 기사 같았다. 

“왜 불렀는지 아느냐?”

“……알죠.”

아버지는 피식 웃었다.

“이 아비가 다른 기사들과는 많이 싸워봤다만 마법사나 정령사와는 겨뤄본 적이 없어서 이번에 경험을 쌓고자 한다. 협조해다오.”

“예. 너무 세게 하지나 말자고요.”

“걱정 말아라. 그래서 힐링 포션을 미리 준비했잖느냐.”

“…….”

“농담이다. 다치지 않도록 노력하마.”

그렇게 말하며 아버지는 투구를 눌러썼다. 

은빛으로 번쩍이는 하프 플레이트 메일로 빈틈없이 무장한 아버지는 허리춤에서 롱 소드를 뽑았다. 샤랑 하고 맑은 소리가 울린다. 명검이구나. 구스 영감 작품일 거야.

“노움.”

-불렀어?

노움이 땅에서 불쑥 솟았다. 

“지금부터 아버지와 싸울 거야.”

-누가 주인님 해치려 해? 내가 혼내줄게.

나는 기특한 소릴 하는 노움이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니야. 다치지 않는 선에서 싸우는 거야. 대련이라는 거지.”

-대련?

“응. 서로 크게 다치지 않는 선에서 누가 더 잘 싸우는지 겨루는 거야. 게다가 아버지는 내게 아주 소중한 가족이야.”

-죽게 하면 안 되는 거지?

“응.”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 정령과 꽤 친하구나.”

“정령사는 정령과 친한 법이죠.”

“네 정령에게 전해주거라. 내 사정을 봐줄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아버지의 롱 소드에서 파앗 하고 푸른빛이 일렁거렸다. 오러였다. 

-봐줄 필요 없대. 죽여도 돼?

“안 돼.”

노움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간다!”

순간 아버지가 움직였다. 한 발 크게 내딛더니 삽시간에 거리를 좁히며 롱 소드를 휘둘렀다. 

“헉! 어, 어스 스피어!”

노움이 삽을 내리찍자 땅에서 대지의 창이 솟아 아버지를 공격했다. 

콰앙!

아버지는 오러로 대지의 창을 파괴했다. 하지만 돌진을 멈추게 하는 데는 성공했다. 

“어스 스피어! 어스 스피어!”

계속해서 나는 어스 스피어로 아버지를 공격하며 뒷걸음질로 거리를 벌렸다. 아버지가 오러로 대지의 창을 부술 때마다 굉음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아버지는 오러 엑스퍼트 상급의 실력자고, 나는 정령술을 익힌 지 한 달밖에 안 된 하급 정령사다. 아버지의 접근을 허락한 순간 패배다. 

좋아, 그렇다면 오우거를 상대할 때 배운 꼼수를 써야지. 중요한 건 타이밍.

아버지는 나를 노리고 다시 발을 내딛으며 돌진해왔다. 바로 지금!

“어스 핸드!”

나는 흙의 손으로 잽싸게 아버지의 다리를 낚아챘다.

쿠웅!

하프 플레이트 메일의 무게만큼이나 육중한 소리를 내며 아버지는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어스 핸드 또 하나를 만들어서 아버지가 일어서지 못하게 잡아 누르려 했다. 그보다 아버지가 더 빨랐다. 바닥을 한 바퀴 뒹굴어 흙의 손을 피하고 몸을 일으킨 것이다.

“후우, 제법이구나. 아주 재밌어. 아주.”

“아, 아버님? 이마에 핏대가 솟았습니다만. 설마 화나신 건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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