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회: 1권 - 6장. 사냥 -->
「마법을 응용한 야영 요리 50선」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마에 식은땀을 맺혔다. 기가 막혔지만 몹시 자랑스러워하는 시스의 표정을 보니 뭐라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 하하. 시스도 아주 철저히 준비했구나. 하하하…….”
애써 칭찬을 해주자 놀랍게도 드물게 뺨을 발그레 붉히는 게 아닌가.
감정이 담긴 시스의 표정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설마, 칭찬에도 약한가?
나는 한 번 시험해보기로 했다.
“시스가 요리를 해주면 아주 맛있을 것 같아. 정말 기대되는데?”
시스는 고개를 푸욱 숙인다. 귀까지 빨개질 정도로 부끄러움을 타고 있었다. 헉! 귀여움의 레벨이 노움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어라? 그 별모양의 은 귀걸이도 예쁘구나. 이제 보니 우리 시스 무척 귀여운 아이였네. 오, 그 머리핀도 아주 예뻐.”
칭찬공세를 퍼붓자 시스는 부끄러워 몸서리를 쳐댔다. 아하하, 이거 재밌다.
휘이잉―
찬바람이 쌩하니 불자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늦가을이 지나고 겨울에 진입하려는 날씨였다.
렉스는 낡은 갈색 망토로 몸을 둘둘 감으며 내게 질문했다.
“그런데 왜 몬스터 사냥을 하러 온 겁니까? 카록 공자님은 정령사이시긴 하지만 본래 직업은 상인이신데.”
“그건 그렇군요. 굳이 몬스터 출몰이 뜸한 황야지대로 온 것도 궁금하고 말입니다.”
딘도 의문을 드러냈다.
두 사람의 말 대로였다.
몬스터 토벌에 나서서 아서 형님의 짐을 약간이나마 덜어주자는 뜻도 있었지만, 사실 목적은 따로 있었다.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무엇을 말입니까?”
딘의 물음에 내가 설명했다.
“어스 스웜은 토양의 영양분과 수분을 먹고 살기 때문에 땅속에서 나오는 법이 없어.”
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그렇죠. 어스 스웜한테 습격당했단 소린 거의 못 들어봤고요.”
“그런데 그 어스 스웜이란 녀석들은 말야, 날씨 변화에 굉장히 예민하단 말이야.”
“예?”
내 말에 모두들 의문을 표했다.
그래, 처음 들어본 이야기일 것이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앞으로 30년쯤 뒤에야 학회에 발표되는 이야기니까.
나는 일행에게 어스 스웜에 대한 비밀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농부가 농사를 짓는데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당연히 날씨다.
비가 제때 와야 작물에 수분을 공급하고 토지를 비옥하게 하기 때문이다. 비가 안 오거나, 혹은 너무 많이 오면 농부에게 가뭄과 홍수라는 재앙이 닥친다.
우습게도 어스 스웜도 마찬가지였다.
흙으로 이루어진 괴물인 어스 스웜은 농작물과 마찬가지로 토양의 영양분과 수분을 먹고 산다. 당연히 어스 스웜도 날씨에 굉장히 예민했다.
어스 스웜은 본능적으로 다음해의 날씨가 어떤지 예측한다.
다음해에 비가 너무 많이 올 것 같으면 홍수에 휩쓸리지 않게 높은 지형으로 이동한다.
반면, 가뭄이 발생할 것 같은 경우, 동면을 해야 하는 겨울이 오기 전에 필사적으로 수분 확보에 나선다. 내년의 가뭄에도 버틸 수 있도록.
내 얘기를 듣고 딘은 놀라 소리쳤다.
“정말로 어스 스웜이 다음해의 기후를 예측한단 말입니까? 그, 그러니까 다음해에 홍수가 발생할지, 가뭄이 발생할지를?!”
“응. 만약 내년에 가뭄이 발생할 경우, 어스 스웜은 겨울이 되기 직전인 바로 지금부터 필사적으로 수분을 확보하려 들 거야.”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군요.”
“아아. 나도 어떤 노인에게서 들은 거야.”
틀린 말은 아니지. 나도 회귀 전에는 노인이었다고.
“즉, 공자께서 후디니 자작령에서 구입하신 대량의 밀이 얼마나 팔릴지 어스 스웜을 관찰하면 알 수 있겠군요?”
딘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 무릎을 탁 쳤다.
“바로 그거지. 내년에 가뭄이 발생하면 미리 밀을 많이 사놓은 나는 대박이지.”
사실은 이미 알고 있지만. 내년에는 초초초대형 가뭄이 온답니다.
어스 스웜을 사냥하러 온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런데 어스 스웜이 수분을 확보한단 얘기는…….”
렉스가 어쩐지 불길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예를 들면 우리 몸에 흐르는 피도 수분이지.”
모두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쿤트 남작령의 서부에 해당되는 황야지대는 이름 그대로 텅 빈 황야가 끝없이 펼쳐진 장소였다.
본래는 비옥한 땅이었는데 이곳에 서식하는 어스 스웜이 양분을 모조리 빨아먹어서 메마른 황야가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옛날부터 전해진다. 뭐, 아주 신빙성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아무튼 이곳은 중요한 교통로도 아니고 개발할 수 있는 땅도 아니어서 우리 쿤트 가문에서도 손을 놓고 있는 현황이었다.
다만 매년 몬스터 토벌을 할 땐 이 지역을 빼놓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이곳에 서식하는 몬스터 종류 때문이었다.
블러드 스콜피온.
그리고 어스 스웜.
둘 다 위험했다. 블러드 스콜피온은 상당히 강하고 흉포한 몬스터이므로 개체수가 늘지 않도록 꾸준히 처치하고, 알을 찾아 파괴해야 한다.
어스 스웜은 영지민이 사는 농토로 침범할 경우 작물을 죽일 수 있으므로 넘어오는 녀석들이 있나 경계해야 했다.
그걸 올해는 내가 대신 해주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어스 스웜은 죽으면 부서져서 검은 흙이 되는데 이게 또 굉장히 양분이 풍부한 흙이다.
사실 내 목적은 바로 이거였다.
약초를 키우려면 아주 비옥한 토지가 필요한데 놈을 퇴치하고서 얻은 검은 흙으로 약초밭을 가꿀 계획이었다.
어차피 당분간은 달리 할 일도 없으니까.
“저, 저길 보십시오!”
짐마차 위에 서서 사방을 경계하던 딘이 앞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쪽을 바라보니 시커먼 무언가가 기분 나쁘게 꾸물거리며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총 다섯 마리였다.
어스 스웜이었다.
“정말로 어스 스웜이!”
렉스는 식은땀을 흘렸다.
“놈들이 먼저 습격해오는 경우는 처음 보는군요.”
딘도 신기하다는 듯이 놈들을 바라보았다.
비록 움직임은 굼뜨지만 놈들은 분명 우릴 향해 접근 중이었다.
“좋아, 그동안 연습한 정령술을 선보일 때가 됐나?”
내가 노움을 부르려 하자 딘이 만류했다.
“정령친화력은 아껴두십시오. 벌써부터 공자님께서 나설 필요는 없으니 여긴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좋아. 지휘는 딘 네게 맡길게.”
“감사합니다. 그럼 시스, 물 계통의 마법을 할 줄 아나?”
“……워터 볼.”
“그걸 놈들에게 끼얹어라. 물에 젖으면 놈들의 움직임이 굼떠진다. 그때 나와 렉스가 창으로 놈들의 핵을 찔러 퇴치한다. 카록 공자님은 만일의 경우 지원 부탁드립니다.”
딘은 능숙하게 지휘를 내렸다. 지휘 경험이 풍부한 탓인지 제법 관록이 있어 보인다.
어스 스웜 다섯 마리가 10미터 안으로 접근했을 때, 딘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워터 볼.”
시스가 마법을 펼쳤다. 머리통보다 조금 더 큰 물 덩어리가 날아들었다.
퍼엉! 쏴아아!
물 덩어리가 폭발하면서 어스 스웜들에게 물을 흠뻑 끼얹었다. 어스 스웜들은 물에 닿자 당황했는지 이리저리 기분 나쁘게 꿈틀거렸다.
“이때다!”
딘과 렉스가 달려들어 강철창을 내질렀다.
푸욱! 퍽!
정확한 창질! 두 마리가 핵을 파괴당해 형태를 잃고 우수수 검은 흙이 되어 쏟아졌다.
“썬더 에로우.”
시스는 연이어 번개의 화살을 쏘아서 어스 스웜 한 마리의 핵을 관통시켰다.
남은 두 마리도 딘과 렉스가 가볍게 처치했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로군!”
내가 앞으로 걸어 나가며 뒷북을 치자 다들 뭔 소리냐는 듯이 쳐다본다. 나는 용맹하게 소리쳤다.
“노움! 잔해를 수거해!”
-응.
노움은 어스 스웜의 잔해를 모두 수거해서 짐마차에 실었다.
“…….”
왜 그런 눈으로 날 봐? 그럼 니들이 일일이 손으로 퍼서 담을래?
“또 옵니다. 이거 정말 내년에는 가뭄이 올지도 모르겠네요.”
렉스가 왼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왼쪽 50미터쯤 되는 지점에서 어스 스웜 세 마리가 기어오고 있었다.
“저쪽.”
이번에는 시스가 오른쪽 멀리에서 기어오는 네 마리의 어스 스웜을 보며 경고했다.
“오른쪽의 네 마리는 우리가, 왼쪽 세 마리는 카록 공자님께서 맡아주십시오.”
“오케이.”
드디어 이 몸의 활약 개시다!
“어스 스피어!”
콰직!
땅에서 불쑥 튀어나온 대지의 창이 어스 스웜 한 마리의 몸통을 꿰뚫었다.
“어스 스피어! 어스 스피어!”
계속해서 대지의 창이 땅에서 솟구칠 때마다 어스 스웜이 한 마디씩 박살나 잔해를 쏟아냈다.
원 샷 원 킬! 이런 칼 같은 명중률은 우리 기특한 노움의 센스 덕분이었다. 노움은 어스 스웜의 핵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어스 스피어를 펼칠 때마다 한 방에 파괴할 수 있는 것이다.
딘 일행도 잘 하고 있는 듯했다.
“워터 웨이브.”
시스가 주문을 외었다.
허공에서 수분이 뭉쳐서 물웅덩이로 화하더니, 물결을 치며 파도처럼 어스 스웜들을 덮쳤다.
촤아악!
물에 흠뻑 젖은 네 마리가 꿈틀대며 발작했다. 그 틈에 딘과 렉스가 달려들어 강철창으로 마구 찔렀다. 핵이 어디 있는지 겉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푹푹 여러 번 찔러야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발밑에 두 마리.
“뭐?”
노움의 경고에 우리가 당혹해할 때였다.
푸하악!
검은 흙으로 이루어진 어스 스웜 두 마리가 우리의 발밑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어스 스피어!”
내 외침에 노움이 대지의 창으로 한 마리를 찔렀다. 푸수수― 하고 부서져 내리는 검은 흙무더기.
그러나 또 한 마리는 렉스를 덮쳤다.
“으왁! 이 자식!”
렉스는 급히 강철창으로 찔렀지만 핵을 맞추지 못했는지 소용없었다.
재차 찌르려고 했지만 그보다 어스 스웜이 온몸으로 렉스를 집어삼키는 속도가 더 빨랐다. 마치 개미지옥에 빨려 들어가듯 놈에게 덮쳐지는 렉스.
오른팔까지 검은 흙에 덮쳐진 바람에 렉스는 강철창을 휘두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