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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12화 (12/529)

<-- 12 회: 1권 - 5장. 재미있는 정령술 -->

“이 새끼들이…… 머리 처박아!”

혼트 제국군 십인장 모드로 돌변한 딘.

혼비백산한 마크와 한스가 본능적으로 머리를 땅에 박고 엎드렸다. 난데없이 길거리 한복판에서 얼차려를 받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사나이가 한 번 내린 결심을 번복하면 되나?”

“안 됩니다!”

마크와 한스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사나이가 가야할 길을 앞에 두고 우물쭈물하면 되나?”

“안 됩니다!”

“사나이들의 작별에서 계집애처럼 눈물 질질 짜면 되나?”

“안 됩니다!”

“그럼 한 번만 더 기회 준다. 벌떡 일어서서 똑바로 앞을 보고 걸어간다. 질질 짜는 새끼나 뒤 돌아보다가 나와 눈 마주치는 새끼는 뒈진다. 알겠나?!”

“옛!”

“기상!”

마크와 한스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짐을 싸들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누가 군인 출신 아니랄까봐 명령대로 뒤도 안 돌아보고 머뭇거림 없이 걸어 나간다.

하지만 우리는 두 사람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억지로 참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울음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은 끝까지 딘의 명령을 지키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그를 영원히 자신들의 상관으로 여긴다는 의미였다.

딘과 렉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그들의 우정과 이별에 나 역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렇게 마크와 한스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딘은 어서 슬픔을 씻어버리려는 듯 입을 열었다.

“몬스터 토벌을 할 장소가 남쪽의 황야지대가 맞습니까?”

“응.”

“그럼 사냥할 몬스터는 블러드 스콜피온과 어스 스웜 정도군요.”

남쪽의 황야지대는 몬스터의 개체수가 그리 많지 않아서 우리끼리만 가도 충분했다. 

“어스 스웜이야 별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없지만, 블러드 스콜피온이라면 위험할 수 있겠군요. 일주일 정도 시간을 주시면 장비도 점검하고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나도 마침 정령술에 대해 좀 더 연구하려 했던 참이었다.

*   *   *

“우리는 새 무기를 장만하러 갈 건데 같이 갈 테냐?”

딘의 물음에 시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나중에 보자.”

딘과 렉스는 함께 병기점으로 떠났다.

홀로 여관에 남겨진 시스는 무얼 해야 할지 고민해보았다.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마침 여관 주인인 맥스가 다가와 은근슬쩍 물었다. 

“마법사 아가씨, 뭐 먹고 싶은 것 없어? 어제 맛있게 먹었던 새끼 돼지 통구이는 어때?”

맥스는 그녀가 먹을 것에 약하다는 걸 알고 꾀기 시작했다. 그녀가 먹기 시작하면 은화 다섯 닢은 너끈히 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스는 고개를 저었다. 

맥스는 깜짝 놀랐다. 어제는 작은 오우거처럼 먹어대던 그녀가 먹기 싫다니?

“왜? 속이 안 좋아? 아, 역시 어제 너무 많이 먹었나? 하긴 그 정도로 먹어대면 누구라도 체하기 마련이긴 하지만…….”

“물려.”

“아, 하긴 통구이는 어제도 먹었지. 그럼 우리 여편네가 다른 음식도 끝내주게 잘 하는데…….”

“물려.”

“…….”

비로소 맥스는 그녀가 이 여관의 요리에 질렸다고 말한 것임을 깨달았다. 

맥스가 포기하고 돌아서자, 시스는 문득 한가지 하고 싶은 일이 떠올랐다.

거리에 나가서 군것질을 실컷 해보자. 

색다른 음식이 잔뜩 있을 거야.

900레디나나 되는 어마어마한 돈이 수중에 있다. 난생 처음으로 돈 걱정 없이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실컷 할 수 있게 되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자유로움이란 어떤 것일까? 이제 만끽할 수 있다.

시스는 본래 농노의 딸이었다.

그녀의 가족은 영주 소유의 땅에서 피땀 흘려 농사를 짓고 간신히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식량을 받았다. 어렸을 적부터 그녀의 소원은 맛있는 걸 실컷 먹는 것이었다. 

일곱 살 때 전염병으로 부모님을 잃고는 영주의 저택에서 하녀로 일했는데, 그 해 겨울에 방문한 어느 마법사가 시스가 마법에 재능이 있음을 알아챘다. 

마법사는 금화 몇 푼을 영주에게 주고 시스를 마법길드로 데려왔다. 

마법을 익히려면 마나를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체질은 천 명 중에 한 명 꼴로 매우 드물었다. 

마법길드는 그런 드문 재능을 가진 아이를 데려와 무상으로 교육시키는 정책을 펴고 있었다. 마법사의 숫자가 곧 길드의 파워였기 때문이다.

겨우 누울 수 있는 작은 방에 배정 받았고, 매끼마다 작은 빵과 맹물 같은 스프를 먹었다. 빵은 너무 딱딱해서 스프에 담가놓지 않으면 도저히 씹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굶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고 마법까지 가르쳐주는 대신, 마법길드에서의 생활은 결코 편치 않았다. 타인과 거의 단절된 채 쉬거나 놀 틈도 없이 마법만 죽도록 연마해야 했다. 마법사들이 말수가 적고 음울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공짜로 무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은 열여섯 살 때까지였다. 게다가 2서클 마법까지만 가르쳐주며, 3서클부터는 다른 마법사의 제자가 되어야 했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돈 많은 귀족 출신이 아닌 제자를 원하지 않았다. 자기보다 더 재능이 뛰어난 제자는 더더욱 꺼려했다. 언젠간 자신을 능가할 거라는 질투심 때문이다.

열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2서클을 마스터한 시스는 그 두 가지에 모두 부합한 케이스였다.

마법길드는 무상 교육을 시켜주는 대신 2서클 마스터가 되면 5년간 의무적으로 길드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스승을 얻지 못한 시스는 열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마법길드의 말단 직원으로 온갖 잡무를 처리해야 했다. 그렇게 3년을 일했을 때, 길드로부터 충격적인 선고를 받았다.

마법길드는 시스에게 남은 의무기간 2년을 어느 이름 모를 용병단에게 팔아버렸다. 용병단에게 돈을 받고 시스를 팔아치운 것이다. 그것이 마법길드의 재정적인 수입 중 하나였다.

용병단은 길드보다 훨씬 더 시스를 혹독하게 부렸다. 성인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전쟁터에서 마법으로 살인을 해야 했다. 

용병 생활 1년간 시스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점점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숲에서 용병단이 야영을 하다가 오우거를 만났을 때, 용병들은 절망했지만 시스는 무덤덤했다.

굶어 죽는 아이들. 돌림병으로 죽은 부모님. 전쟁터에서 무더기로 죽어나가는 용병과 군인들.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미 많은 사람의 죽음을 지켜본 그녀였다. 그녀 자신도 그 수많은 죽음 중 하나가 될 거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오우거가 용병들을 무참히 찢어 죽일 때 시스 역시 공포에 질렸지만 그것은 오우거의 폭력성에 압도된 탓이지 죽음을 겁낸 건 아니었다. 죽음을 두려워하기에는 지난 삶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적이 벌어졌다.

카록 일행이 가까스로 그녀를 구해주고 함께 오우거를 물리치자 시스에게 뜻하지 않았던 행운이 잇달아 찾아왔다.

용병단은 그녀를 제외하고 전부 몰살당했다. 더 이상 지긋지긋한 계약에 얽매여 혹사당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카록이라는 남자와 그의 일행은 그녀로서는 오랜만에 본 좋은 사람들이었다. 

카록은 오우거의 사체를 비싸게 팔아치워서 공평하게 대금을 나누어주었다. 금화는커녕 은화도 만져보지 못한 처지였는데 900레디나라는 거금이 뚝 떨어지자 시스는 실감이 나지 않아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예쁜 아가씨, 여기 예쁘게 생긴 머리핀 좀 보세요.”

길거리를 지나는데 장신구를 파는 행상인 여인이 시스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흠칫 놀란 시스는 행상인 여인이 보여주는 머리핀을 쳐다보았다.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길이의 작은 쇠붙이로 된 머리핀. 끝은 나무로 조각된 장미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어머, 마법사이신가보죠?”

행상인 여인이 시스가 들고 있는 지팡이를 보며 묻자 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여운 분이네. 이 머리핀으로 얼굴을 가린 머리를 조금 걷어내면 더 예쁠 거예요.”

그녀는 아무렇게나 기른 푸른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기고 머리핀을 꽂아주었다. 그리고 손거울을 보여주었다. 

“한 번 보세요. 한결 예쁘죠?”

시스는 거울 속에 비춰진 자신이 특별히 예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난생 처음 머리에 머리핀을 장식한 기분은 신선했다. 나쁘지 않았다. 

시스는 금화 한 닢을 내밀었다.

“어머, 이건 너무 큰돈인데요. 거스름돈이 없는데…… 잠깐만요.”

행상인 여인은 자신의 가방을 뒤적거려서 새로운 장신구를 더 꺼냈다. 은으로 별 모양이 세공된 귀걸이였다. 

“이걸 더 드릴게요. 제가 가진 물건 중 가장 값비싼 거예요. 순은이고 굉장히 정교한 솜씨로 세공된 물건이니 얼추 가격이 맞을 거예요.”

시스는 순순히 별모양의 은 귀걸이를 귀에 달았다. 행상인 여인은 잽싸게 손거울을 보여주었다. 시스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마찬가지로 난생 처음 달아본 귀걸이였던 것이다.

행상인 여인과 작별하고 시스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아까보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길거리에는 군것질거리가 아주 많았다. 시스의 입에 군침에 고였다. 마침 웬 노인이 꼬치에 끼워 파는 양고기를 파는 게 보여서 다가갔다. 

“어서 오시오, 아가씨. 양고기 꼬치가 아주 맛있다오.”

시스는 하나를 집어서 먹기 시작했다. 입가에 소스를 잔뜩 뭍힌 채 몹시 맛있게 꼬치를 먹는 모습을 노인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하나, 둘, 셋…… 열하나, 열둘……. 20개가 넘어가자 노인의 입가에 웃음이 사라졌다. 

노인은 서둘러서 양고기 꼬치를 더 굽기 시작했다. 굽는 속도와 시스가 먹어치우는 속도가 비슷했다. 지친 노인이 질린 얼굴로 물었다.

“대체 얼마나 먹으려 그러나?”

시스는 대답대신 금화 하나를 꺼내 건넸다.

“실컷 먹게.”

반짝이는 금화를 보자 노인의 눈빛이 변했다.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양고기를 굽고, 양념치고, 꼬치에 꿰었다. 1레디나면 양고기 꼬치 1,000개 값이었다.

먹다가 지친 시스는 손수건으로 입을 닦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곤 더러운 행색의 아이들이 멀리서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시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꼬치 하나를 내밀었다. 침을 질질 흘리는 아이들이었지만, 머뭇거리며 다가오려 하지 않았다. 그중 한 소녀가 용기를 내어서 다가가 꼬치를 받았다. 얼굴이 환해진 소녀가 꼬치를 먹기 시작하자, 다른 아이들도 우르르 몰려왔다. 시스는 하나씩 나눠주었다. 

소문이 돌자 동네의 굶주린 아이들이 몰려왔다. 

시스는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금화 한 닢을 더 꺼내 양고기 꼬치 파는 노인에게 건네주고는 길을 떠났다.

노인은 꼬치를 달라고 아우성치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채 고래고래 소리쳤다.

“이놈들아! 줄을 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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